[K-뷰티 글로벌전략③] 동남아 넘어 중동·중남미로…K-뷰티, 규제 네트워크 넓힌다
ASEAN 규제당국자 연수 이어 서울서 GCORAS 출범…UAE·브라질·멕시코까지 12개국 15개 기관 참여 브라질 ANVISA와 인허가·사후감시 실무협력 구체화…글로벌 사우스 시장서 제도 접근성 중요성 확대 2026~2030 국제개발협력에도 ‘글로벌사우스 지원’ 포함…제품·유통에서 규제기관 관계로 넓어진 해외전략
[KtN 박준식기자]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 등 ASEAN 국가에서 아랍에미리트(UAE), 브라질, 멕시코까지 화장품 규제기관 관계자들이 9월 서울에 모였다. 9월 7일부터 9일까지 열린 ‘글로벌 화장품 규제기관장 협의체(GCORAS·Global Cosmetic Regulatory Authority Summit)’ 첫 회의에는 12개국 15개 기관이 참여했다. 참가국의 화장품 수출 비중을 합하면 세계 시장의 약 46%에 이른다.
같은 기간 성남과 서울에서는 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필리핀·베트남의 규제담당자들이 참여한 ‘아시아 개도국 화장품 규제당국자 초청 연수’가 진행됐다. 국가별 실행계획(Action Plan)을 마련한 실무자 연수와 규제기관장이 참여하는 국제 협의체가 9월 서울에서 나란히 가동된 셈이다.
K-뷰티의 해외 확장이 제품을 판매할 국가를 늘리는 단계에서 규제를 담당하는 국가기관과의 관계까지 넓어지고 있다. 동남아에서는 ASEAN의 화장품 공동규정을 실제로 운용하는 행정 역량을 다루고, 국제 협력망에서는 중동과 중남미 규제기관까지 접점이 확대됐다.
2025년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114억달러로 전년보다 11.8% 증가했다. 한국은 수출액 기준 세계 2위 화장품 수출국에 올랐다. 2026년 상반기에도 수출액이 70억달러를 기록하면서 해외 시장의 비중은 더 커졌다.
수출 규모가 커질수록 시장마다 다른 규제가 기업 경영 안으로 들어온다. 미국과 유럽, ASEAN, 중동과 중남미는 제품 분류와 성분 관리, 안전성 자료, 표시, 시장 진입 절차와 판매 이후 관리 체계가 서로 다르다. 소비자에게 알려진 브랜드와 현지 유통망을 확보했더라도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의 규제체계를 먼저 통과해야 한다.
동남아 5개국을 대상으로 진행된 규제역량 연수가 K-뷰티 글로벌전략에서 의미를 갖는 지점도 시장 진입을 둘러싼 제도 기반에 있다. ASEAN은 2003년 화장품 규제조화 체계를 마련했고, ASEAN Cosmetic Directive(ACD)를 통해 제품 통보와 GMP, 제품정보파일(PIF), 안전성 평가, 이상사례 보고 등 공통적인 기술체계를 구축해 왔다. 기업에는 제품의 안전성과 품질에 대한 책임을 두고 각 회원국 규제기관은 시판 후 감시를 담당하는 구조다.
공동규정이 실제 시장에서 작동하려면 이를 운용하는 국가별 행정역량이 필요하다. 9월 연수에서 인도네시아가 식약당국 BPOM을 중심으로 1년 단위의 실행계획을 마련하고, 참가국 규제담당자들이 국가별 계획을 놓고 논의를 이어간 것도 같은 흐름에 놓여 있다.
동남아에서 형성된 규제 접점은 올해 중남미로도 구체화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6월 브라질 위생감시청(ANVISA)과 화장품 분야 규제협력을 확대했고, 같은 달 30일 국내 업계를 대상으로 브라질 화장품 규제 설명회를 마련했다. ANVISA 인허가 담당자가 브라질의 화장품 규제, 시장 승인과 사후감시 절차, 부작용 모니터링 등을 직접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브라질은 중남미 화장품 시장에서 규모가 큰 국가다. 한국 기업이 현지 시장에 진입할 때 필요한 규정을 국내 중개기관이 재해석해 전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현지 규제당국이 제도를 직접 설명하는 채널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규제협력의 방식도 구체적이다.
기업이 해외시장에서 겪는 비용 가운데 상당 부분은 관세와 물류처럼 숫자로 바로 드러나는 항목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제품 분류를 잘못 판단하거나 성분 기준을 뒤늦게 확인하면 제품을 수정해야 하고, 제출자료나 라벨을 다시 준비하면 출시 일정이 늦어진다. 판매 이후 안전관리 체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리콜이나 이상사례 대응에서도 부담이 커진다.
규제기관 간 협력이 기업에 미치는 효과도 이런 과정에서 나타난다. 상대국의 제도와 담당기관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규정 변경 정보를 확보하며, 현지 행정기관과 실무 소통을 이어갈 수 있는 통로가 많아질수록 시장 진입 과정의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9월 출범한 GCORAS는 양자 관계를 다자 네트워크로 넓혔다. 첫 회의에는 ASEAN 규제기관뿐 아니라 UAE와 브라질·멕시코가 참가했고, 유럽연합(EU) 관계자도 국제기구 측으로 참여했다. 회의 일정에는 국가별 주요 화장품 정책 소개와 협의체 운영규정, 협력 분야, 워킹그룹 운영 등이 포함됐다.
ASEAN과 중동, 중남미를 한 회의체 안에서 연결한 구성은 한국 화장품 산업이 상대하는 규제 지형이 이미 특정 지역에 머물지 않고 있다는 현실과 맞물린다. 소비시장은 국가별로 분절돼 있지만 제품 안전과 신기술, 규제 대응에서는 공통된 현안이 늘고 있다.
AI를 활용한 안전성 평가도 GCORAS 첫 회의의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유럽 화장품 규제환경 변화와 호주·뉴질랜드 제도 비교, AI 기반 안전성 평가 등이 함께 다뤄졌다. 국가별 법령을 소개하는 데서 더 나아가 신기술이 화장품 안전성과 규제 운영을 어떻게 바꾸는지까지 국제 논의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K-뷰티가 글로벌 사우스와 접점을 넓히는 시점에는 한국의 국제개발협력 정책도 변화하고 있다. 정부가 2026년 2월 확정한 ‘제4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2026~2030)’은 ‘글로벌사우스 성장과 위기 대응 지원’을 호혜적 상생 분야에 포함했다. 협력국과 민간의 수요를 바탕으로 사업을 발굴하고 상호 신뢰에 기반한 협력을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다.
화장품 분야의 규제협력은 해당 정책과 별도로 각 사업과 기관의 일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지만, 글로벌 사우스와의 경제·산업 관계가 단순한 상품 거래를 넘어 제도와 인력 협력까지 넓어지는 시기와 겹친다.
동남아는 이런 구조가 일찍 자리 잡은 지역이다. ASEAN이라는 공동 규제체계가 있고, 각 회원국에는 이를 집행하는 규제기관이 있다. 한국 기업은 이미 해당 지역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규제당국자 교육과 국가별 실행계획까지 협력 범위가 넓어졌다.
중남미에서는 브라질 ANVISA와 직접적인 규제정보 교류가 진행됐고, GCORAS에는 브라질과 멕시코가 함께 참여했다. 중동에서는 UAE가 첫 회의에 참가했다. 동남아에서 시작한 규제당국 간 접점이 중동·중남미까지 연결되는 흐름이 2026년 한 해 동안 구체적인 일정으로 나타난 셈이다.
K-뷰티 기업에도 시장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인구와 구매력, 온라인 거래 규모뿐 아니라 규제가 얼마나 명확하게 작동하고 현지 기관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지도 장기 진출의 조건이 된다. 특히 자체 해외 규제조직의 규모가 작은 중소·중견기업에는 공식적인 규제정보와 기관 간 협력망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크다.
국제협력의 직접적인 목적은 현지 규제 역량과 소비자 안전을 높이는 데 있다. 안전성 평가와 제조·품질관리, 사후감시 체계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면 시장에 공급되는 제품의 관리 수준도 높아진다. 한국 기업에는 제도 운영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는 환경이 형성될 수 있다.
규제협력은 특정 국가의 기준을 다른 나라에 그대로 옮기는 방식과도 거리가 있다. ASEAN은 이미 자체 화장품 규제조화 체계를 운영하고 있고 브라질과 UAE 등도 독자적인 규제제도를 갖고 있다. 한국이 축적한 산업·안전관리 경험과 각국의 제도를 연결하면서 규제기관 간 실무 접점을 늘리는 방향에 가깝다.
2026년 9월 서울에서 열린 두 일정은 K-뷰티 글로벌전략의 범위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동남아 규제담당자들은 국가별 실행계획을 마련했고, GCORAS에서는 ASEAN과 UAE, 브라질, 멕시코 등 규제기관이 국제 협력 분야와 운영방식을 논의했다. 6월에는 브라질 ANVISA가 한국 기업에 자국의 인허가와 사후관리 체계를 직접 설명했다.
동남아 규제당국자 초청연수는 2029년까지 이어진다. GCORAS 첫 회의에서는 협력 분야와 워킹그룹 운영, 차기 회의 일정이 의제로 다뤄졌다. 제품과 브랜드의 해외 진출에서 시작한 K-뷰티의 글로벌 확장은 2026년 규제 실무자 교육, 국가 간 양자 협력, 다자 규제기관 네트워크라는 세 층으로 범위를 넓혔다. 중동·중남미를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 시장에서 제도와 전문인력의 연결이 얼마나 지속되는지가 다음 단계의 해외 사업 기반을 좌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