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K-뷰티의 미래,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람을 남기는 전략’
수출 70억달러 이후의 경쟁은 제품보다 오래가는 인적자원에서 갈려 글로벌 사우스, 판매지역 확대보다 현지 연구자·규제전문가와 지식 축적하는 구조 필요 교육이 지식을 전하고 연구가 현지의 답을 만들 때 K-뷰티도 산업으로 남아
[KtN 박준식기자]2026년 상반기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70억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27.3% 늘어난 역대 상반기 최대 실적이다. 미국 14억5000만달러, 중국 10억1000만달러, 일본 5억8000만달러를 기록하며 K-뷰티의 시장은 더 넓어졌다. 수출액 70억달러라는 숫자는 한국 화장품이 세계 소비시장에서 확보한 위치를 말해준다. 동시에 다음 성장을 어디에서 만들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지금까지 K-뷰티의 성장은 제품이 앞에서 만들었다. 새로운 원료와 제형, 빠른 제품개발, 브랜드 기획과 디지털 유통이 세계 소비자를 움직였다. 산업의 규모가 커진 지금부터는 제품 뒤에 축적되는 사람과 지식이 더 중요해진다. 히트상품은 교체될 수 있고 유통채널은 바뀔 수 있지만 연구와 교육, 안전관리와 규제를 이해하는 인적자원은 산업 안에 남는다.
K-뷰티의 미래를 HR(Human Resources)의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장품 산업에서 말하는 인적자원은 연구원의 숫자나 기업의 채용 규모만을 뜻하지 않는다. 원료와 제형을 이해하는 연구자, 제조와 품질을 관리하는 실무자, 안전성을 평가하는 전문가, 해외 규제를 읽는 인력, 시장의 변화를 교육과 연구로 되돌릴 대학과 연구기관이 함께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한 제품이 연구소를 떠나 여러 나라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지식은 끊임없이 다른 전문영역을 통과한다.
국내 제도 변화도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2028년부터 화장품 안전성 평가 제도가 단계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며, 올해 6월에는 안전성 평가 보고서 항목과 작성 원칙, 국내외 기준 활용 방법 등을 담은 가이드라인이 마련됐다. 제품을 만드는 능력과 제품의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이 산업 안에서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는 변화다.
해외로 나가면 연결해야 할 지식은 더 많아진다. 같은 제품도 시장에 따라 성분 규정과 제품 분류, 제조관리, 안전성 자료, 표시·광고, 시장 진입 절차가 달라진다. 현지에 출시된 뒤에는 사후 안전관리와 규제기관 대응이 이어진다. 연구개발을 잘하는 기업과 글로벌 사업을 잘하는 기업 사이에 해외 규제와 안전성을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K-뷰티의 글로벌 사우스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 수출 전략과 달라져야 한다. 글로벌 사우스를 ‘앞으로 화장품을 더 많이 팔 수 있는 지역’으로만 해석하면 인구와 성장률, 구매력, 온라인 유통 규모를 비교하는 시장 분석에 머문다. 동남아와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에는 서로 다른 규제제도와 산업구조, 대학과 연구기관, 소비문화가 존재한다. 글로벌 사우스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묶여 있어도 같은 시장은 없다.
정부가 올해 확정한 제4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2026~2030)에도 글로벌사우스 지원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호혜적 협력이 주요 방향으로 들어갔다. 협력국과 민간의 수요를 바탕으로 사업을 제안하는 방식도 포함됐다. 한국이 가진 경험을 일방적으로 옮기는 방식보다 협력국의 현실에서 출발하는 관계가 중요해진 것이다.
화장품 산업에서 이런 관계를 가장 오래 남길 수 있는 수단이 교육과 연구다. 다만 교육과 연구를 각각의 사업으로 나눠서는 충분하지 않다. 교육이 이미 축적된 지식을 전달한다면 연구는 각 나라의 현실에서 새로운 지식을 만든다. 교육받은 사람이 현지 문제를 연구하고, 연구에서 얻은 결과가 다시 교육과 제도에 들어갈 때 지식은 한 번의 연수를 넘어 축적된다. 글로벌 사우스 전략에서는 교육과 연구가 같은 사람, 같은 기관, 같은 문제 위에서 겹쳐야 한다.
지난 9월 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필리핀·베트남의 화장품 규제담당자들이 한국에서 국가별 실행계획(Action Plan)을 논의한 일정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인도네시아는 식약당국 BPOM을 중심으로 후속 계획을 마련했다. 규제담당자가 교육을 받고 귀국하는 과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속기관의 업무로 연결할 계획까지 다뤘다는 점에서 인적자원 협력의 다음 단계를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연구가 결합되면 협력의 성격은 달라질 수 있다. 연수 참가자가 귀국한 뒤 현지 대학 연구자와 함께 자국 화장품 시장의 안전관리 자료를 분석하고, 한국 연구진과 공동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현지에서 축적된 이상사례나 소비환경, 제조·품질관리 경험을 연구자료로 만들고, 연구결과를 규제기관의 교육과 대학원 수업에 다시 활용할 수도 있다. 다음 연수 참가자는 앞선 연구의 결과에서 출발할 수 있다.
몇 년 뒤 남는 것은 교육 이수자의 숫자보다 현지에서 스스로 연구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과 기관이다. 같은 원칙도 산업 규모와 제조환경, 시험·검사 시설, 전문인력, 소비자의 사용 방식에 따라 실제 집행 과정이 달라진다. 현지 데이터를 연구하지 않고 한국의 경험만 설명해서는 각국의 규제 역량을 충분히 키우기 어렵다.
연구가 논문으로만 끝나도 산업은 달라지지 않는다. 연구에 규제기관 실무자와 기업, 대학원생이 함께 참여하고 결과가 직무교육과 정책, 제품개발로 되돌아가야 한다. 교육과 연구의 중첩은 논문과 연수 사이에 끊겨 있던 지식의 순환을 이어주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대학의 역할도 넓어져야 한다. 글로벌 K-뷰티 인재를 양성한다는 말이 외국어 능력과 해외 마케팅 교육에 머물던 시기는 지났다. 앞으로 필요한 사람은 제품을 이해하면서 규제를 읽고, 안전성을 이해하면서 시장을 분석하며, 국내에서 얻은 지식을 현지 전문가와 함께 다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석·박사 교육 역시 같은 방향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 국내 기업의 제품을 분석하는 연구를 넘어 인도네시아·베트남·브라질·중동 시장의 규제와 안전성 데이터를 현지 대학과 공동으로 연구할 수 있다. 대학원생이 규제기관과 산업 현장에서 실제 데이터를 접하고, 현지 연구자가 한국 기업과 대학의 연구과정에 참여하는 구조도 가능하다. 한 나라의 대학원생이 다른 나라의 시장을 연구하는 것과 양국의 연구자가 하나의 문제를 함께 연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자산을 남긴다. 전자는 지식을 얻지만 후자는 관계까지 축적한다.
글로벌 사우스 전략에서 HR을 바라보는 방식도 여기에서 달라진다. 인적자원을 ‘한국이 교육해야 할 사람’으로만 생각해서는 지속성이 약하다. 현지 전문가는 교육의 대상인 동시에 공동연구자이고, 규제기관 실무자는 제도를 배우는 사람이면서 현지 시장에 관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다. 한국이 제공하는 지식과 현지가 축적한 지식이 만나야 새로운 산업적 해법이 나온다.
한국 역시 배우는 쪽에 서야 한다. 글로벌 사우스의 기후와 피부환경, 원료, 소비행태, 유통구조, 안전관리 경험은 한국 화장품 산업이 갖고 있지 않은 지식이다. 한국 기업이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은 한국의 제품을 현지에 적용하는 과정인 동시에 현지에서 다시 화장품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런 상호학습이 쌓이면 글로벌화의 의미도 달라진다. 해외 판매 비중이 높아지는 것만으로 글로벌 산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진 지식이 다시 한국의 연구개발과 교육에 들어와야 한다.
김주덕 서울사이버대학교 일반대학원 뷰티산업학과 석좌교수가 아시아 규제당국자 연수에 참여한 것도 이런 인력 구조를 생각하게 하는 한 흐름이다. 김 교수는 LG생활건강과 애경산업 화장품연구소를 거쳐 대학에서 화장품 교육을 이어왔고, 보건복지부 화장품발전기획단장과 식품의약품안전처 화장품위해평가 자문위원·화장품 분야 정책자문위원 등으로 산업과 규제 영역에 참여했다. 현재는 ‘화장품학특론’을 맡고 있다.
개인의 경력보다 중요한 것은 연구소와 대학, 산업과 규제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만들어지는가에 있다. K-뷰티가 세계 시장에서 요구받는 전문성은 이미 한 분야의 경계 안에 머물기 어렵다. 기업 연구자는 규제를 이해해야 하고 규제전문가는 제조와 연구개발을 알아야 한다. 대학 연구자는 산업의 문제를 연구주제로 가져와야 하고, 기업은 축적한 데이터를 연구와 교육에 다시 연결할 필요가 있다. 해외 규제기관과 관계를 유지할 사람도 단기 국제업무 담당자가 아니라 해당 국가의 제도와 산업을 장기간 이해한 전문가여야 한다.
HR은 결국 사람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이 이어지는 구조의 문제다. 좋은 인재 한 명을 확보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이 조직에 남고, 다음 사람에게 넘어가며, 해외 파트너의 지식과 다시 결합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 사람을 뽑는 일과 사람을 축적하는 일의 차이다.
K-뷰티는 지금 두 개의 시간을 동시에 지나고 있다. 제품의 시간은 빠르다. 유행은 짧아지고 새로운 브랜드와 제형은 계속 등장한다. 산업의 시간은 훨씬 길다. 연구자가 성장하고 전문성이 쌓이며 국가와 국가 사이에 신뢰가 만들어지는 데는 여러 해가 걸린다.
수출 70억달러 이후의 K-뷰티가 준비해야 할 것은 두 번째 시간이다. 글로벌 사우스를 새로운 판매처로 더하는 전략보다 현지에서 연구자를 만들고, 규제전문가를 키우고, 대학과 산업이 함께 지식을 축적하는 구조가 오래 간다. 교육과 연구가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이어질 때 한국이 전한 지식은 현지의 경험과 만나 새로운 지식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제품은 소비되고 브랜드는 교체된다. 산업을 다음 세대로 넘기는 것은 결국 사람과 지식이다. K-뷰티의 미래에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제품을 만드는 속도만이 아니다. 사람을 키우고 지식을 남기며, 그 지식이 국경을 넘어 다시 사람에게 이어지게 하는 능력이다. 글로벌 사우스 전략의 깊이도 어느 나라에 얼마나 많이 팔았는지가 아니라, 함께 연구하고 함께 성장할 사람을 얼마나 남겼는가에서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