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사랑⑥] 국내 투자 막힌 이창동 신작, 베니스 은사자에서 아카데미 한국 출품작까지

극장영화 투자 여의치 않자 넷플릭스 제작 참여…164분 작가영화의 형식은 그대로 베니스 심사위원대상·FIPRESCI상 거쳐 제99회 아카데미 국제장편부문 한국 출품작 선정 9월 23일 국내 극장 선개봉, 11월 6일 세계 공개…한국영화 제작자본과 유통 경로의 변화

2026-09-26     김동희 기자

[KtN 김동희기자]국내 극장영화로 출발하려던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장편은 투자사를 확보하지 못한 채 제작 방식부터 다시 찾아야 했다. 2025년 여름 넷플릭스가 제작에 참여하면서 ‘가능한 사랑’은 완성 단계로 넘어갔다. 1년여 뒤 영화는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과 국제비평가연맹(FIPRESCI)상을 받았고, 제99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에도 선정됐다. 국내 투자 단계에서 멈출 수 있었던 영화가 글로벌 플랫폼 자본을 거쳐 세계 영화제와 극장, 아카데미 출품 절차로 이어진 과정에는 최근 한국영화 제작 환경의 변화가 함께 들어 있다.

[가능한 사랑⑥] 국내 투자 막힌 이창동 신작, 베니스 은사자에서 아카데미 한국 출품작까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가능한 사랑’이 처음부터 넷플릭스 영화였던 것은 아니다. 이창동 감독의 작품을 제작해온 파인하우스필름 이준동 대표는 2025년 국내 투자자들이 작품에 관심을 보였지만 최종 투자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상업성을 강하게 앞세운 영화가 아닌 데다 한국 영화 투자시장 자체의 여력이 크게 줄어든 상황을 배경으로 들었다. 넷플릭스는 초기부터 투자 의사를 보였고, 제작진이 국내 극장영화 방식의 가능성을 먼저 살피는 동안 기다린 뒤 제작에 참여했다.

감독의 이름과 배우진만으로 제작금융의 불확실성을 넘기 어려웠다는 대목은 가볍지 않다. 이창동 감독은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을 거쳤고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주연을 맡았다. 해외 영화제와 국제 판매에서 이미 인지도를 확보한 감독과 배우들이 모였지만, 국내 투자의 판단 기준에는 작품의 이력과 별개로 극장 관객 규모와 제작비 회수 가능성이 놓였다.

영화의 형식도 투자 판단을 어렵게 만들 만한 요소를 갖고 있다. 상영시간은 164분이다. 해고 노동자 호석과 아내 미옥,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남편 상우가 가까워지면서 계급과 노동, 부부관계, 욕망, 타인의 삶을 기록하는 행위까지 서사가 넓어진다. 사건을 빠르게 쌓아가는 장르영화보다 네 인물의 관계가 달라지는 시간을 오래 따라간다. 베니스 공식 크레디트에는 파인하우스필름과 Anonymous Content, 나우필름이 제작사로 이름을 올렸고 이창동·오정미가 각본, 김지용이 촬영, 김다원이 편집, 장민우가 미술, 정재일이 음악을 맡았다.

넷플릭스의 자본이 들어왔다고 영화가 스트리밍 플랫폼의 익숙한 호흡으로 바뀐 것도 아니다. 이창동 감독은 넷플릭스가 제작 과정에서 별도의 요구를 하지 않았으며 감독으로서의 독립성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이전 작품들과 비교해 가장 편하게 작업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첫 넷플릭스 영화에서 164분의 러닝타임과 느린 호흡, 노동자의 긴 증언과 네 인물 사이의 침묵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플랫폼 자본과 작가의 독립성이 반드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가능한 사랑’의 제작 과정에서 먼저 확인된다. 국내 극장 투자시장에서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영화가 글로벌 플랫폼에서는 제작비를 얻었고, 완성된 영화는 극장과 국제영화제를 먼저 거쳐 스트리밍으로 이동하는 순서를 택했다.

[가능한 사랑⑥] 국내 투자 막힌 이창동 신작, 베니스 은사자에서 아카데미 한국 출품작까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첫 국제 무대에서 영화가 받은 평가는 컸다. 9월 12일 폐막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가능한 사랑’은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매기 질렌할(Maggie Gyllenhaal)이 이끈 경쟁부문 심사위원단은 21편 가운데 마이 엘투키(May el-Toukhy)의 ‘Woman Unknown’에 황금사자상을,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에 심사위원대상을 수여했다.

국제비평가연맹도 같은 작품을 선택했다. 베니스 공식 경쟁부문과 별개로 수여하는 FIPRESCI 경쟁부문 최고작에 ‘가능한 사랑’이 선정됐다. 공식 심사위원단의 주요상과 국제 영화평론가들의 선택이 한 작품에 겹친 셈이다.

이창동 감독 ‘가능한 사랑’, 베네치아 은사자상에 이 대통령 축하    사진=2026. 09.13. labiennale , @jacopo_salvi

이창동 감독에게 베니스는 낯선 무대가 아니다. 2002년 ‘오아시스’로 은사자상-감독상을 받은 뒤 24년 만에 다시 공식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가 베니스 경쟁부문에서 수상한 것도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이후 14년 만이다.

베니스의 결과를 국내 투자 판단과 단순히 맞세우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국제영화제의 작품 평가와 국내 극장시장에서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는지는 다른 판단 영역이다. 작가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국내 흥행까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가능한 사랑’이 드러낸 것은 국내 투자사의 판단이 틀렸다는 결론보다, 작품성과 국제 경쟁력을 갖춘 프로젝트도 현재의 한국 극장 투자 구조에서는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현실에 가깝다.

영화가 베니스에 도착하기 전 또 하나의 일정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8월 25일 ‘가능한 사랑’을 제99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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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품작 선정 심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작품성과 국제 캠페인 환경이 함께 고려됐다는 점이다. 심사위원단은 영화의 완성도와 감독의 메시지, 영화 전체를 누르는 공기와 미장센, 서로 다른 계급에 놓인 두 부부의 관계, 노동과 인간의 욕망을 복합적으로 다룬 연출을 높게 평가했다. 네 배우의 연기와 인물 관계의 다층성도 심사평에 포함됐다.

아카데미를 향한 현실적인 조건도 심사 대상이었다. 심사위원단은 ‘버닝’이 한국 영화 최초로 당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쇼트리스트에 진입했던 이력과 함께 북미 매체의 관심, 넷플릭스 어워즈 전담팀의 캠페인 준비를 평가 요소로 적시했다. 작품을 고르는 단계부터 북미에서 작품을 알리고 투표권자에게 도달할 수 있는 배급과 캠페인 역량까지 함께 본 것이다.

'전도연, 100년에 한 번 나올 명연기' 외신 찬사 봇물…베니스 발칵! 외신 평점 'A' 터졌다… 7분 기립박수 쏟아진 이창동 신작 '가능한 사랑'    사진=2026. 09.07 넷플릭스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과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함께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현장 공개)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한국 출품작 선정과 아카데미 후보 지명은 구분해야 한다. ‘가능한 사랑’은 한국을 대표해 국제장편영화 부문에 제출되는 한 편으로 선택된 것이며, 이후 각 국가·지역의 출품작과 함께 아카데미 심사 절차를 거친다. 아카데미가 공개한 제99회 규정에는 국제장편영화상을 포함한 부문별 자격과 출품 절차가 별도로 마련돼 있다.

국내 극장 개봉일인 9월 23일도 이 일정과 맞물린다. 한국 출품작 선정 문서에는 선정작이 9월 30일까지 국내 극장 개봉을 완료해야 하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차순위 작품을 출품한다고 명시돼 있다. ‘가능한 사랑’은 넷플릭스 세계 공개보다 44일 앞서 국내 극장에서 먼저 상영된다.

극장 선개봉은 아카데미 출품 조건만을 위한 절차로 좁혀볼 필요도 없다. 넷플릭스는 7월 공개 일정을 발표하면서 한국에서는 9월 23일, 호주에서는 10월 22일, 미국·캐나다·영국·아일랜드·일본에서는 10월 23일부터 극장 상영을 시작하고 11월 6일 세계 스트리밍 공개로 넘어간다고 밝혔다. 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작품을 알리고 주요 국가 극장을 거쳐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배급 일정이 처음부터 별도로 설계됐다.

[가능한 사랑⑥] 국내 투자 막힌 이창동 신작, 베니스 은사자에서 아카데미 한국 출품작까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넷플릭스와 이창동 감독의 결합을 국내 극장과 OTT의 단순한 대립으로 보는 것도 실제 배급 경로와는 거리가 있다. ‘가능한 사랑’은 넷플릭스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이면서 극장에서 먼저 공개되고, 베니스와 토론토를 비롯한 국제영화제 상영을 거친다. 뉴욕, 산세바스티안, 취리히, 밴쿠버 등에도 초청됐다.

넷플릭스는 베니스 수상 이틀 뒤 이창동 감독의 전작까지 여러 국가에서 추가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등 기존 작품의 해외 접근성을 넓히는 일정이다. 신작 한 편의 공개를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체로 확장한 배급 전략이다.

전도연·설경구·조인성·조여정, 이창동 신작 ‘가능한 사랑’ 캐스팅 확정 사진=2025 08.05   넷플릭스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내 제작자본의 공백과 글로벌 플랫폼의 역할은 여기에서 동시에 드러난다. 한쪽에서는 극장 관객 감소와 투자 위축으로 중간 규모 이상의 작가영화가 제작비를 마련하기 어려워졌고, 다른 쪽에서는 세계 가입자를 가진 플랫폼이 감독의 창작권을 유지하면서 제작비와 국제 배급망을 제공했다.

두 흐름 가운데 하나만 긍정적으로 볼 수도 없다. 글로벌 플랫폼의 투자는 국내에서 만들어지지 못할 영화를 완성시키는 자금이 될 수 있다. 베니스와 토론토, 북미 극장, 세계 스트리밍으로 이어지는 유통망 역시 국내 제작사가 단독으로 확보하기 쉽지 않은 규모다. 반면 한국 작가영화의 주요 제작 자본과 세계 유통을 해외 플랫폼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진다면 국내 제작·투자 생태계가 맡아온 역할은 그만큼 줄어든다.

‘가능한 사랑’은 바로 그 변화 한가운데 놓인 작품이다. 국내 투자시장에서 외면받았다는 사실만 강조하면 제작 과정이 지나치게 극적으로 단순화되고, 넷플릭스가 모든 해답을 제공했다고 정리하면 한국 영화산업의 자본 구조가 안고 있는 문제를 놓치게 된다. 국내 투자가 멈춘 자리에서 글로벌 자본이 들어왔고, 이창동 감독은 창작의 독립성을 유지한 채 영화를 완성했다. 완성된 작품은 다시 극장과 국제영화제라는 전통적인 영화의 공간을 먼저 통과하고 있다.

베니스 수상 뒤 이창동 감독이 강조한 것도 플랫폼보다 영화와 관객의 관계였다. 극장에 사람들이 모이기 어려워지고 영화를 통해 서로 생각을 나누던 관계가 끊어지는 시대에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관객과 더 깊이 만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가능한 사랑’에서 노동의 의미가 사라지는 문제를 다룬 감독이 영화 밖에서는 변화한 영화산업의 생산 조건을 직접 통과한 셈이다. 해고된 노동자의 존엄과 자본을 가진 사람의 삶을 다루는 영화가 국내 제작 자본을 구하지 못해 글로벌 플랫폼의 투자를 받아 완성됐다는 과정은 작품의 내용과 기묘하게 겹친다. 다만 영화 속 계급 관계와 실제 제작 구조를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작품 바깥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한국 작가영화가 자본을 확보하고 관객에게 도달하는 경로가 이전보다 복수화되고 있다는 정도다.

[가능한 사랑⑥] 국내 투자 막힌 이창동 신작, 베니스 은사자에서 아카데미 한국 출품작까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베니스 은사자상과 FIPRESCI상은 이미 기록으로 남았다.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 선정도 확정됐다. 9월 23일에는 국내 일부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하고, 10월에는 호주와 미국·캐나다·영국·아일랜드·일본의 극장으로 범위를 넓힌다. 11월 6일부터는 넷플릭스가 세계에 공개한다.

국내 투자자를 찾던 장편영화가 넷플릭스 제작작으로 방향을 바꾸고, 베니스 경쟁부문에서 은사자상과 FIPRESCI상을 받은 뒤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이동하기까지 1년여가 걸렸다. ‘가능한 사랑’이 앞으로 추가할 기록과 별개로 제작에서 영화제, 극장, 스트리밍까지 이어진 경로는 이미 한국 작가영화가 놓인 자본과 유통 환경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