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사랑’ 국내 첫 공개…이창동 “해고·계급·창작 윤리, 복잡한 세계 담아”

베니스 은사자상·FIPRESCI상 뒤 서울 언론시사회…설경구·조인성·조여정 참석, 전도연 뉴욕서 화상 연결 두 부부 통해 노동의 상실과 돈, 욕망, 타인의 삶을 기록하는 카메라까지…23일 극장 개봉

2026-09-21     김동희 기자
‘가능한 사랑’ 베니스 은사자상·FIPRESCI상 뒤 서울 언론시사회…설경구·조인성·조여정 참석, 전도연 뉴욕서 화상 연결.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동희기자]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과 국제비평가연맹(FIPRESCI)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국내 언론에 공개됐다. 21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와 기자간담회에는 이창동 감독과 배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참석했다. 전도연은 미국 뉴욕에서 연극 ‘벚꽃동산’ 공연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 화상으로 자리를 함께했다.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최호석과 아내 안미옥, 해고 노동자들을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이예지와 남편 상우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전도연이 미옥, 설경구가 호석, 조인성이 상우, 조여정이 예지를 맡았다. 서로 다른 경제적 조건과 생활방식을 가진 두 부부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계기로 가까워지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감춰졌던 욕망과 부부 사이의 균열도 모습을 드러낸다.

이창동 감독은 한 가지 주제로 작품을 규정하는 데 선을 그었다.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이면서 계급 갈등을 다루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윤리와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 함께 들어 있는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현실을 단순한 구도로 정리하기보다 여러 층위가 서로 얽혀 있는 상태를 두 부부의 삶을 통해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가능한 사랑’ 베니스 은사자상·FIPRESCI상 뒤 서울 언론시사회…설경구·조인성·조여정 참석, 전도연 뉴욕서 화상 연결.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8년 만의 장편에서 다시 출발점이 된 것은 노동이었다. 호석은 직장에서 해고된 뒤 소득만 잃은 인물이 아니다. 노동을 통해 얻었던 사회적 자리와 자기 가치까지 함께 흔들린다. 설경구는 호석을 해고 이후 자아가 무너지고 수치심과 죄책감,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로 해석했다. 다른 계급에 속한 상우와 예지를 만나면서 열등감과 위축도 커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옥은 같은 사건을 다른 방식으로 견딘다. 가족의 생활을 이어가면서 예지의 다큐멘터리 촬영을 받아들이고,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부부와 가까워진다. 전도연은 미옥을 돈과 계급이 사람의 가치관을 흔들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려는 인물로 바라봤다. 경제적 조건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게 두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미옥의 행동에 놓여 있다는 설명이다.

호석과 미옥 사이에 예지의 카메라가 들어오면서 ‘가능한 사랑’은 노동 문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예지는 해고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고 싶어 하지만, 카메라를 든 사람과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의 위치는 같지 않다. 누구를 찍고 어떤 이야기를 남길지 선택할 수 있는 사람과 자신의 삶을 들려줘야 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가 두 부부의 관계에 그대로 들어온다.

‘가능한 사랑’ 베니스 은사자상·FIPRESCI상 뒤 서울 언론시사회…설경구·조인성·조여정 참석, 전도연 뉴욕서 화상 연결.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창동 감독은 타인의 고통을 영화의 재료로 소비하지 않으면서 진실하게 표현하는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왔다고 밝혔다. ‘가능한 사랑’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을 주요 인물로 배치한 것도 같은 고민과 연결된다. 예지가 호석과 미옥을 바라보는 시선과 이창동 감독이 인물을 영화로 담는 행위가 겹치면서 창작자의 위치까지 작품 내부로 들어온다.

다큐멘터리 촬영과 극영화를 섞는 형식도 의도적으로 길게 가져갔다. 영화에는 해고 노동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직접 이야기하는 대목이 상당한 분량으로 들어간다. 일반적인 극영화의 흐름에서는 길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창동 감독은 노동을 잃으며 삶과 정체성이 무너진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부분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상우와 예지는 노동자 부부의 반대편에 단순하게 배치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관계의 결핍과 욕망에서 자유로운 인물들도 아니다. 특히 상우는 자신의 속내를 쉽게 내보이지 않고, 예지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 하면서도 그 삶을 자신의 다큐멘터리에 담으려 한다.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을 도덕적으로 나누기보다 돈과 계급이 인간관계 안으로 들어오는 방식을 좇는 데 무게가 실린다.

‘가능한 사랑’ 베니스 은사자상·FIPRESCI상 뒤 서울 언론시사회…설경구·조인성·조여정 참석, 전도연 뉴욕서 화상 연결.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두 부부가 가까워질수록 ‘사랑’의 의미도 넓어진다. 배우자에 대한 감정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활, 경제적 안정, 자유, 인정과 관계까지 욕망의 대상이 된다. 누군가는 이미 가진 것을 지키고, 누군가는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 하며, 또 다른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삶을 바라본다. 영화 첫머리에 놓인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계명도 네 사람을 지나면서 돈과 계급, 사랑과 창작까지 범위를 넓힌다.

베니스에서 먼저 나온 반응은 작품의 국제적 관심을 끌어올렸다. ‘가능한 사랑’은 지난 12일 폐막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국제비평가연맹도 경쟁부문 최고작으로 선정해 FIPRESCI상을 수여했다. 공식 경쟁부문 심사위원단과 국제 영화비평가들이 같은 작품을 선택했다.

베니스 현지의 반응은 기자간담회에서도 화제가 됐다. 공식 기자회견이 끝난 뒤 외신 기자들이 감독과 배우들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몰리는 상황이 벌어졌고, 당시 조인성은 자신들이 무언가 잘못한 줄 알고 당황했다고 회상했다. 설경구와 조인성은 현지 상영 뒤 이어진 박수 속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가능한 사랑’ 베니스 은사자상·FIPRESCI상 뒤 서울 언론시사회…설경구·조인성·조여정 참석, 전도연 뉴욕서 화상 연결.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서울 언론시사회 포토타임에는 베니스에서 받은 은사자상도 함께 등장했다. 이창동 감독과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은 트로피와 함께 취재진 앞에 섰다. 2002년 ‘오아시스’ 이후 다시 베니스 공식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국내 첫 공식 일정이라는 의미도 더해졌다.

이번 작품은 ‘버닝’ 이후 8년 만의 이창동 장편이다. 전도연은 ‘밀양’ 이후 다시 이창동 감독의 장편 주연으로 돌아왔고, 설경구는 ‘박하사탕’과 ‘오아시스’를 거쳐 24년 만에 이창동 감독의 장편에서 주연을 맡았다. 조인성과 조여정은 이번 작품으로 이창동 감독과 처음 영화 작업을 했다.

‘가능한 사랑’은 오는 23일 국내 일부 극장에서 먼저 개봉한다. 호주에서는 10월 22일, 미국·캐나다·영국·아일랜드·일본에서는 10월 23일부터 극장 상영에 들어간다. 넷플릭스 세계 공개일은 11월 6일이다.

베니스에서 수상 결과를 먼저 받은 영화가 이제 국내 관객과 만난다. 해고 노동자의 삶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계급과 부부관계, 욕망을 지나 타인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의 위치까지 뻗어 있다. 8년 만에 장편으로 돌아온 이창동 감독이 서울에서 처음 꺼내놓은 설명도 하나의 해답보다 서로 다른 삶이 충돌하는 복잡한 현실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