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나비킴 김현정 ‘날으는 빛 1’…어둠을 뚫고 번지는 날개, 빛이 비상의 속도를 얻다

짙은 남색 공간 위로 청록·보라·분홍의 투과색이 겹쳐진 2009년작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에서 RGB 광원으로…나비의 형상보다 ‘빛이 이동하는 순간’에 가까워진 구성

2026-09-25     박준식 기자
나비킴(Navikim·김현정), ‘날으는 빛 1(Flying Lighting 1)’, 2009, Constructed photography, Pigment print, 100×70cm. 투명 재료와 인공광을 활용해 나비와 빛의 중첩을 구성한 뒤 촬영과 피그먼트 프린트로 완성한 ‘날으는 빛’ 연작이다.

[KtN 박준식기자]짙은 남색의 깊은 공간을 가르며 빛의 덩어리가 비스듬히 퍼져나간다. 왼쪽 위에서는 옅은 보라와 푸른빛의 날개가 크게 열리고, 중앙에는 분홍과 연두, 청록이 겹치며 밝은 중심을 만든다. 오른쪽 아래로 내려갈수록 형상은 다시 흩어진다. 나비의 몸과 날개를 분명하게 따라가기보다 여러 겹의 색과 빛이 한순간 움직이며 남긴 흔적에 가깝다.

나비킴(Navikim·김현정) 작가의 2009년작 ‘날으는 빛 1(Flying Lighting 1)’은 ‘첫 만남’에서 시작된 나비의 형상을 실제 광원의 성질과 본격적으로 결합한 작품이다. 꽃 위에 내려앉았던 나비가 한 개체의 모습으로 존재했던 초기 작업과 달리, 여기서는 나비의 외곽보다 날갯짓이 만들어내는 움직임과 빛의 확산이 앞선다.

구성의 중심은 정중앙에 고정돼 있지 않다. 밝은 색은 왼쪽 위에서 중앙으로 모였다가 오른쪽과 아래쪽으로 길게 풀어진다. 날개의 윤곽 역시 좌우 대칭으로 닫히지 않는다. 옅은 보라색 형상은 왼쪽으로 넓게 펼쳐지고, 청록과 녹색의 조각은 오른쪽 위로 솟는다. 아래쪽에는 푸른색과 청록의 흐릿한 흔적이 이어지면서 한 번의 날갯짓이 다음 움직임으로 연결되는 듯한 속도를 만든다.

짙은 남색 바탕은 이 움직임을 더욱 깊게 만든다. 완전한 검정에 가까운 어둠보다 푸른 기운을 머금은 공간이 넓게 깔리면서 밝은 색과 배경이 완전히 단절되지 않는다. 청록과 파랑은 어두운 바탕 속으로 스며들고, 분홍과 연두는 그 위에서 밝기를 끌어올린다.

어둠과 빛이 서로 맞서는 구도라기보다 어둠 속에서 색이 서서히 생성되는 구성이다.

‘날으는 빛 4’에서 한 마리의 나비가 검은 공간 위에 비교적 응축된 형태로 떠올랐다면 ‘날으는 빛 1’에서는 형상이 훨씬 빠르게 풀어진다. 나비의 몸은 중심을 이루지만, 날개는 여러 색의 파편과 투명한 겹으로 확장돼 주변 공간과 섞인다. 개체를 보여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비상 자체를 하나의 시각적 상태로 옮긴 셈이다.

색도 물감의 덩어리처럼 고정되지 않는다. 보라와 청록, 연두와 분홍이 서로 겹치면서 아래에 놓인 색을 완전히 가리지 않는다. 여러 층이 동시에 비치기 때문에 하나의 색이 끝나고 다른 색이 시작되는 경계가 약하다.

김현정 작가는 이 시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에서 경험했던 선명하고 투명한 색을 회화 안에 다시 구현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안료를 섞을수록 밝기가 낮아지는 감산혼합과 달리, 빨강·초록·파랑의 빛은 중첩될수록 밝아지는 가산혼합의 원리를 갖는다. ‘날으는 빛’ 연작은 바로 이 차이를 실제 광원으로 실험한 작업이다.

RGB 광원의 사용은 나비의 색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았다. 색이 만들어지는 방식 자체를 바꿨다.

물감에서는 작가가 안료를 섞어 원하는 색을 만들지만, ‘날으는 빛’에서는 서로 다른 빛이 투명한 재료를 통과하고 겹치면서 새로운 색이 발생한다. 김 작가는 플렉시글라스를 비롯한 투명한 재료에 광원을 배치하고, 빛의 투과와 반사, 산란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색을 촬영했다.

‘날으는 빛 1’에 나타나는 색의 흔들림도 이런 제작 방식과 맞닿아 있다. 보라색 한 면 안에서도 밝기와 투명도가 균일하지 않고, 청록과 분홍의 경계 역시 흐릿하게 겹친다. 광원이 투명 재료를 통과하면서 생기는 여러 층의 빛을 한순간에 포착했기 때문이다.

Constructed photography라는 제작 방식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김 작가는 카메라 앞에 우연히 존재하는 대상을 촬영한 것이 아니라 먼저 촬영될 공간을 만들었다. 페인팅과 콜라주, 투명 재료와 광원을 구성하고 실제 빛이 어떻게 통과하고 반사되는지를 조정한 뒤 그 결과를 촬영했다. 사진은 제작 과정의 마지막 기록이면서 동시에 최종 작품을 만드는 또 하나의 매체가 된다.

이 때문에 ‘날으는 빛 1’에는 회화와 사진, 빛이 동시에 존재한다.

색의 조각은 회화를 떠올리게 하고, 빛의 번짐과 흐릿한 중첩은 사진의 시간성을 품는다. 실제 광원이 만든 색은 촬영을 거쳐 피그먼트 프린트라는 평면으로 다시 돌아온다. 빛을 재료로 사용하면서도 최종적으로는 하나의 이미지로 정착시키는 구조다.

나비 형상의 변화도 이 매체 전환과 맞물린다.

‘첫 만남’의 나비는 꽃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했다. 날개와 몸통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고 자연 속 한 생명체라는 성격이 강했다. ‘날으는 빛 1’에서는 자연 배경이 사라진다. 꽃도 땅도 없다. 대신 짙은 공간 속에서 여러 색으로 분해되고 다시 합쳐지는 날개의 움직임만 남는다.

나비가 자연에서 떨어져 나와 ‘빛의 공간’으로 들어간 것이다.

2005년 ‘프라하의 창’에서 빛을 받아들이는 통로는 스테인드글라스였다. 색유리를 통과한 햇빛이 공간을 물들이는 경험은 이후 나비 날개의 색 조각과 투명한 중첩으로 이동했다. ‘날으는 빛’에 이르면 스테인드글라스의 물질적인 창은 사라지고, 빛을 통과시키는 현대적인 투명 재료와 인공광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나비의 날개는 일종의 새로운 색유리처럼 기능한다.

보라와 청록, 분홍과 연두가 작은 조각으로 갈라지고 다시 겹치면서 날개의 내부를 채운다.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서로 다른 색유리가 하나의 창을 만들듯, 서로 다른 빛의 색이 한 마리 나비의 움직임을 만든다.

하지만 ‘프라하의 창’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2005년에는 빛을 바라보는 인물이 작품 안에 있었다. ‘날으는 빛 1’에서는 관찰자가 사라지고 빛의 움직임 자체가 작품을 채운다.

빛을 바라보는 단계에서 빛 안으로 들어간 셈이다.

왼쪽 상단의 날개가 넓게 번지고 오른쪽 아래의 청록빛 형태가 흐려지는 구성에서는 시간의 감각도 읽힌다. 하나의 나비를 한순간에 정지시킨 형태라기보다 이전 위치와 다음 위치가 겹쳐 있는 듯하다. 투명한 형상들이 여러 번 중첩되면서 날갯짓의 잔상이 남는다.

그래서 제목의 ‘날으는 빛’은 단순히 빛나는 나비를 가리키는 표현보다 넓게 읽힌다. 나비가 날아가는 동시에 빛도 이동한다. 나비의 움직임과 광원의 움직임을 따로 분리하기 어려운 상태다.

‘날으는 빛 1’에서 김현정 작가가 시도한 것은 나비에 밝은 색을 칠하는 일이 아니었다. 빛이 통과하고 겹치고 흩어지는 물리적인 과정을 나비의 비상과 결합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비는 점차 단단한 외곽을 잃는다. 구체적인 몸은 흐려지고 빛과 색의 잔상이 더 크게 남는다. 대신 움직임은 강해진다. 형상이 희미해질수록 비상의 속도가 앞으로 나온다.

이후 ‘제로(Zero)’에서는 빛을 반사하는 자개가 들어오고, ‘무한(Infinity)’에서는 실제 LED가 작품 구조 안에 자리한다. ‘별과 별사이(Interstellar)’에서는 나비의 내부가 직접 광원이 된다. ‘날으는 빛 1’은 그 긴 변화에서 실제 빛이 나비의 표면을 넘어 형태와 움직임 자체를 다시 만들기 시작한 시점에 놓인다.

2009년 ‘날으는 빛 1’의 나비는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여러 색의 날개가 겹치고 갈라지며 짙은 푸른 공간을 통과한다. 프라하에서 바라봤던 빛은 이제 창 너머에 있지 않다. 빛은 나비의 몸을 지나고, 날개의 움직임을 따라 퍼지며, 마침내 비상 자체의 형태로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