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이트⑪] ‘Baby Face’, 은행의 층계를 오르며 검열의 경계까지 밀어붙인 1933년
바버라 스탠윅이 연기한 릴리 파워스, 남성 중심 금융회사에서 위층으로 이동할수록 달라지는 삶…1934년 제작규정 집행 강화 직전 할리우드가 허용했던 여성의 욕망과 생존
[KtN 최유식기자]펜실베이니아의 철강도시. 릴리 파워스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불법 술집에서 일한다. 손님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고, 아버지는 딸을 보호하기보다 남성 손님들을 상대하도록 몰아붙인다. 릴리가 집과 술집을 떠나는 선택에는 화려한 성공에 대한 동경보다 먼저 벗어나야 할 삶이 놓여 있다.
1933년 7월 공개된 앨프리드 E. 그린(Alfred E. Green) 감독의 ‘Baby Face’는 바버라 스탠윅(Barbara Stanwyck)이 연기한 릴리가 뉴욕으로 향한 뒤 대형 금융회사에서 자리를 높여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처음에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출발하지만 릴리가 관계를 맺는 남성들의 직급이 올라갈 때마다 공간도 위층으로 이동한다. 사무실의 층계와 엘리베이터가 한 여성의 사회적 상승을 그대로 보여주는 구조다.
‘Baby Face’가 만들어진 1933년은 할리우드 검열의 경계가 크게 흔들리던 시기였다.
미국 영화업계는 이미 1930년 영화제작규정(Motion Picture Production Code), 이른바 헤이스 코드(Hays Code)를 채택한 상태였다. 성적 관계와 범죄, 폭력, 결혼과 종교 등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기준도 존재했다. 그러나 강제 집행력이 충분하지 않아 스튜디오들은 1930년대 초 여러 금기를 비교적 직접적으로 건드렸다. 1934년 제작규정관리국(Production Code Administration·PCA)이 출범해 집행력이 강화되기 전까지의 시기를 오늘날 ‘프리코드(Pre-Code)’라고 부른다.
대공황 한복판의 할리우드는 현실의 어두운 부분도 빠르게 영화로 끌어들였다. 갱스터와 실업자, 교도소, 빈곤과 부패가 스크린에 등장했다. 워너브러더스는 ‘The Public Enemy’, ‘I Am a Fugitive from a Chain Gang’, ‘Heroes for Sale’ 등을 내놓으며 도시의 범죄와 경제적 불안을 전면에 다뤘다. ‘Baby Face’도 같은 스튜디오에서 나왔다.
릴리의 출발점에는 계층 문제가 먼저 자리한다.
아버지 닉 파워스는 철강도시에서 불법 술집을 운영한다. 릴리는 어린 시절부터 남성 손님들에게 노출된 환경에서 성장했고, 영화 초반에는 아버지의 폭력적인 통제에서 벗어나려 한다. 아버지가 사고로 숨진 뒤 릴리는 고향을 떠난다. 함께 기차에 오른 사람은 테리사 해리스(Theresa Harris)가 연기한 치코다. 두 사람은 뉴욕으로 향한다.
릴리에게 자신의 조건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라고 부추기는 인물은 동네 구두수선공 크래그다.
개봉 전 원래 구성에서 크래그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을 끌어와 릴리에게 남성들에게 이용당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의 힘을 사용하라고 말한다. 영화 검열 과정에서는 이 대사가 크게 문제가 됐다. 이후 수정본에서는 릴리의 행동을 부추기는 내용이 줄고, 잘못된 길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방향으로 크래그의 역할이 바뀌었다.
뉴욕에 도착한 릴리가 들어가는 곳은 금융회사다.
처음부터 전문 능력이나 학력을 앞세워 입사하는 과정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릴리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성을 이용해 회사 안으로 들어가고, 다시 상급자와 관계를 맺으며 위치를 바꾼다. 지미 매코이에서 브로디, 네드 스티븐스로 상대가 달라질 때마다 직급도 높아진다.
이동을 보여주는 방식은 노골적이다.
카메라는 금융회사의 건물 외관과 층수를 이용해 릴리의 상승을 압축한다. 한 남성을 지나 다음 남성에게 접근할 때마다 사무실의 위치가 달라진다. 승진이나 업무 성과를 길게 설명하는 대신 건물의 수직 구조가 릴리의 새로운 위치를 보여준다.
1930년대 초 미국에서 대형 금융회사는 남성 중심의 권력 공간이었다. ‘Baby Face’는 여성이 그 구조의 규칙을 정면으로 바꾸는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는다. 릴리는 기존 조직에서 공식적인 권한을 얻기보다 조직을 장악한 남성들의 욕망을 이용한다.
남성에게 종속된 구조를 깨고 나온 여성이 다시 남성 중심의 구조를 통해 상승한다는 모순도 함께 남는다.
릴리를 단순한 유혹자로만 놓으면 영화의 초반부와 연결이 끊어진다.
고향에서 릴리의 몸을 이용해 이익을 얻던 사람은 아버지였다. 뉴욕에서는 릴리가 관계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한다. 남성에게 이용당하던 위치에서 남성을 이용하는 위치로 이동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수단 자체는 여전히 성별과 계급이 정한 범위 안에 있다.
바버라 스탠윅의 연기도 이런 변화를 크게 과장하지 않는다.
고향의 릴리는 상대를 노려보고 거칠게 말을 받아친다. 뉴욕에 도착한 뒤에는 목소리와 표정, 자세가 달라진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순진한 신입사원과 세련된 여성의 모습을 바꿔가며 보여준다. 남성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빠르게 파악하고 필요할 때 꺼내는 방식이다.
의상도 위치의 변화를 따라간다.
철강도시를 떠날 때의 단순한 옷차림은 금융회사에서 위치가 올라갈수록 정교해진다. 이후 고급 아파트와 보석, 모피가 릴리 주변에 쌓인다. 의상은 단순한 치장이 아니라 누구와 관계를 맺고 어느 계층까지 이동했는지를 보여주는 표시가 된다.
워너브러더스는 ‘Baby Face’를 18일 만에 촬영했다. 제작비는 18만7000달러였다. 연출은 앨프리드 E. 그린, 촬영은 제임스 반 트리스(James Van Trees), 미술은 안톤 그로트(Anton Grot), 편집은 하워드 브레더턴(Howard Bretherton)이 맡았다. 의상에는 오리-켈리(Orry-Kelly)가 참여했다.
짧은 제작기간과 비교하면 이야기의 이동 범위는 넓다.
철강도시의 술집에서 출발해 뉴욕의 금융회사, 고급 아파트를 지나 파리까지 이어진다. 장소가 달라질 때마다 릴리에게 접근하는 남성의 경제적 지위도 높아진다.
네드 스티븐스는 릴리를 위해 아파트를 마련하지만 이미 앤 카터와 약혼한 상태다. 이후 앤의 아버지 J. R. 카터까지 릴리와 관계를 맺는다. 스티븐스가 두 사람을 발견하면서 총격과 자살로 이어지고 회사는 스캔들에 휘말린다.
릴리는 스캔들 뒤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피해자라는 입장을 내세워 회사와 협상하고 돈을 받은 뒤 파리로 떠난다. 뉴욕에서의 추문마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자산으로 바뀐다. 이후 회사의 새 경영자로 들어온 코틀랜드 트렌홈과 만나 결혼한다. 조지 브렌트(George Brent)가 맡은 트렌홈은 이전 남성들과 달리 릴리의 최종적인 결혼 상대가 된다.
1933년 영화 검열 관계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부분도 여기에서 선명해진다.
릴리는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한동안 뚜렷한 처벌도 받지 않는다. 범죄나 성적 일탈을 보여준 뒤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는 도덕적 결말과 거리가 있었다.
헤이스 사무국은 개봉을 전후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릴리가 남성을 이용해 얻은 성공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 주요 쟁점이었다.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부양받는 관계를 직접 드러내는 부분도 잘려나갔다. 버지니아주 검열위원회는 영화의 상영을 거부했다.
수정은 영화의 방향 자체를 건드렸다.
크래그의 대사가 바뀌었고, 릴리가 선택한 방식이 잘못됐다는 도덕적 판단이 추가됐다. 결말에서도 릴리가 축적한 재산을 잃고 과거의 철강도시로 돌아가는 내용을 강조했다. 관객이 릴리의 행동을 성공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만드는 조치였다.
검열 전 버전과 일반 개봉본의 차이는 수십 년 뒤 다시 드러났다.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약 5분이 더 긴 개봉 전 판본이 발견되면서 삭제된 대사와 행동, 다른 결말의 성격을 비교할 수 있게 됐다. BFI는 온전한 개봉 전 버전이 의회도서관 소장 자료에서 발견되면서 ‘Baby Face’가 검열 과정에서 얼마나 크게 수정됐는지 다시 확인됐다고 설명한다.
두 버전을 비교하면 당시 검열이 단순히 노출이 강한 몇 초를 잘라내는 작업만은 아니었다는 점도 드러난다.
가장 큰 차이는 릴리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게 만들 것인가에 있다. 같은 인물이 같은 방식으로 금융회사를 올라가더라도 앞뒤의 대사와 결말을 바꾸면 관객에게 전달되는 도덕적 판단이 달라진다.
1934년 제작규정관리국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이런 선택의 폭은 크게 줄었다.
제작규정 자체는 1930년에 존재했지만 1934년 이전에는 집행력이 제한적이었다. 대공황기의 범죄, 성적 관계, 불륜과 사회 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룬 영화들이 이어지면서 종교·시민단체의 반발도 강해졌다. 가톨릭 계열의 Legion of Decency를 비롯한 단체들이 영화산업에 압력을 높였고, 스튜디오들은 결국 제작규정의 강제 집행을 받아들이게 됐다.
‘Baby Face’는 이 충돌의 중심에서 자주 언급된 작품이었다.
1933년 말부터 1934년 초까지 영화의 성적 표현과 범죄 묘사에 대한 반발이 커지는 과정에서 ‘Baby Face’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인 논란작으로 거론됐다. 한 편의 영화가 제작규정 강화의 유일한 원인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프리코드 할리우드가 어디까지 나아갔는지를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여성 캐릭터를 둘러싼 변화도 제작규정 이후 크게 영향을 받았다.
릴리에게는 성적 욕망과 경제적 야망이 동시에 주어진다. 남성과의 관계를 스스로 선택하고 중단하며, 사회적 상승을 목표로 행동한다. 행동의 도덕성을 영화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와 별개로 이야기의 추진권을 쥔 인물은 릴리다.
남성들이 릴리의 인생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 전체의 이동 방향은 릴리의 선택을 따라간다.
릴리가 만나는 남성 대부분은 잠시 머무는 단계다. 영화는 남성의 직급이 높아질수록 릴리의 위치가 올라가는 구조를 반복해 보여주면서 금융회사의 조직도 자체를 성별 권력의 지도처럼 사용한다.
치코의 존재는 릴리가 고향에서 뉴욕으로 이동한 뒤에도 이어진다.
테리사 해리스가 연기한 치코는 철강도시를 함께 떠나 뉴욕까지 동행한다. 영화에는 W. C. 핸디(W. C. Handy)의 ‘St. Louis Blues’를 부르는 치코의 목소리도 반복해서 등장한다. 릴리의 사회적 위치와 주변 남성들이 계속 바뀌는 동안 고향에서 함께 출발한 치코는 곁에 남는다.
영화에서 존 웨인(John Wayne)의 젊은 시절 모습도 짧게 등장한다.
당시 아직 대스타가 아니었던 웨인은 지미 매코이 역을 맡았다. 릴리가 금융회사에서 만나는 초기 남성 가운데 한 명이다. 1939년 ‘Stagecoach’ 이후 미국 서부극을 대표하는 배우가 되기 전의 경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바버라 스탠윅에게 ‘Baby Face’는 프리코드 시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스탠윅은 이미 ‘Ladies of Leisure’, ‘Night Nurse’, ‘The Miracle Woman’ 등을 거치며 강한 성격의 여성 인물을 연기하고 있었다. ‘Baby Face’에서는 피해자와 야심가를 한 인물 안에 놓았다. 릴리는 착취당한 과거를 갖고 있지만 이후의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인물도 아니다. 영화는 릴리를 도덕적으로 단순한 위치에 고정하지 않은 채 성공과 대가를 함께 따라간다.
2005년 미국 의회도서관은 ‘Baby Face’를 국가영화등기부(National Film Registry) 보존작으로 선정했다. 의회도서관은 작품을 프리코드 시대의 대표적인 멜로드라마로 소개하면서, 당시의 비교적 느슨한 검열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대담한 작품들이 1934년 제작규정 집행 강화로 이어진 영화산업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고 평가했다.
‘Baby Face’가 공개된 지 1년 뒤인 1934년 7월부터 제작규정 승인 없이는 주요 스튜디오 영화의 정상적인 배급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이후 할리우드의 성적 관계와 범죄, 결혼과 욕망을 표현하는 방식은 오랫동안 훨씬 강한 제한을 받았다.
1933년 릴리 파워스가 오른 것은 금융회사의 층계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술집에서 벗어난 여성은 뉴욕의 남성 중심 기업 안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허용된 수단을 이용해 경제적 위치를 바꿨다. 카메라는 상대 남성이 달라질 때마다 건물의 위층을 보여주며 이동을 기록했다.
같은 상승을 바라보던 검열 당국은 다른 결론을 요구했다. 릴리가 얻은 것을 그대로 갖게 둘 수 없었고, 행동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설명과 결말이 덧붙었다.
‘Baby Face’의 두 버전 사이에 놓인 약 5분의 차이는 1930년대 초 할리우드가 어디까지 인물을 밀어붙일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릴리가 금융회사의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영화도 당시 검열이 허용하던 경계에 가까워졌다. 1934년 제작규정 집행 강화는 바로 그 경계를 크게 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