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데님을 입는 사람들, 오래 입는다는 것
새것보다 시간이 더해진 뒤 비로소 자기 것이 되는 옷 빈티지와 ‘새 빈티지’ 사이에서 다시 읽는 데님의 문화와 사람의 흔적
[KtN 박인경기자]청바지는 오래 입었다고 해서 반드시 낡은 옷이 되지는 않는다. 허벅지의 인디고가 옅어지고 무릎에 주름이 잡히며 밑단이 조금씩 닳으면 오히려 그때부터 한 사람의 옷이 된다. 주머니 가장자리에는 반복해서 손을 넣은 흔적이 남고, 자주 접히는 곳에서는 색이 먼저 빠진다. 해진 부분을 덧대고 다시 꿰매면 공장에서 같은 모습으로 나왔던 청바지는 세상에 하나뿐인 옷으로 바뀐다.
데님은 다른 옷보다 시간을 오래 품는다. 새 셔츠의 변색이나 재킷의 마모는 대개 손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청바지에서는 같은 변화가 매력으로 읽힌다. 색이 빠진 정도를 살피고, 주름의 방향을 이야기하며, 오래 입어 부드러워진 원단을 좋다고 말한다. 새것에서 멀어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일반적인 소비의 질서와는 다른 방식이다.
노동복으로 출발한 청바지가 한 세기를 넘어 살아남은 배경에도 이런 성질이 있다. 튼튼한 면직물이라는 물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청바지를 둘러싼 의미는 여러 차례 바뀌었다. 노동 현장의 옷이 젊음과 저항의 상징이 됐고, 음악과 영화, 거리문화가 다시 청바지에 새로운 이미지를 입혔다. 한 시대의 유행이 지나가면 사라지는 옷이 아니라 시대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방식으로 다시 입는 옷이 됐다.
빈티지 데님을 찾는 사람들이 생산 연도와 제조사, 리벳과 버튼, 봉제 방식까지 살피는 이유도 단순한 수집욕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래된 청바지에는 생산 당시의 기술과 디자인뿐 아니라 이후의 시간이 함께 남는다. 무릎 한쪽만 유난히 밝거나, 뒷주머니 한쪽만 닳았거나, 다른 천을 덧댄 자리에 다시 바느질이 지나간 흔적은 처음 디자인 도면에는 없던 것이다.
정확한 사연을 알 수 없어도 누군가 오래 입었다는 사실은 남는다. 어느 도시를 걸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얼마나 자주 세탁했는지는 모르지만 몸과 생활이 원단을 조금씩 바꿨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빈티지 데님이 새 제품보다 비싸지는 역설도 이런 데서 나온다. 공장에서 가장 균일했던 순간보다 사람의 시간을 거쳐 서로 달라진 뒤 더 높은 가치를 얻는다.
대량생산의 역사는 오랫동안 같은 품질과 같은 형태를 정확하게 반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데님 문화는 그 질서에서 조금 비껴나 있다. 같은 모델을 같은 날 구입한 두 사람이 몇 년 뒤 완전히 다른 청바지를 갖게 되는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균일함보다 차이를, 새것보다 사용의 흔적을 높게 평가하는 문화다.
최근 일본 데님 브랜드들이 오래된 데님의 흔적을 새 제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움직임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니드바이 빈티지(NEEDBY VINTAGE)는 워싱으로 색을 빼는 데서 멈추지 않고 페인트와 수선, 다른 데님의 덧댐까지 제작 과정에 넣는다. 1970년대 데님에서 느낄 수 있었던 질감을 원사와 직조 단계에서 다시 만들고, 초기 청바지의 서스펜더 버튼이나 오래된 워크셔츠의 구조도 현재의 실루엣에 옮긴다.
새 청바지를 오래된 것처럼 만드는 기술 자체는 낯설지 않다. 워싱과 디스트레스드 가공은 이미 오래전부터 패션산업의 일부였다. 달라진 부분은 낡은 효과를 얼마나 강하게 넣느냐가 아니라 시간을 제품의 설계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예전에는 사람이 옷을 입은 뒤 흔적이 생겼다. 이제는 몇 년을 입어야 생길 법한 흔적을 가진 청바지를 먼저 사고, 그 위에 다시 자신의 시간을 쌓는다. 자연스러운 에이징과 공장에서 만든 에이징이 한 벌의 옷 안에서 이어지는 셈이다.
실제 빈티지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몇 년 동안 한 사람이 입어 만든 주름과 디자이너가 위치를 정해 만든 주름은 출발부터 다르다. 필요해서 덧댄 수선과 미리 설계한 패치도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생산 연도와 실제 사용 이력을 가진 빈티지 한 벌의 시간은 새 제품으로 대신할 수 없다.
그렇다고 데님 문화가 자연스럽게 닳기만을 기다려온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새 청바지를 물에 담갔고, 자신에게 맞도록 길들였으며, 밑단을 접고 여러 차례 세탁하면서 원하는 색을 만들었다. 빨리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자주 입거나 거칠게 다루기도 했다. 데님을 자신의 방식으로 바꾸는 행위는 처음부터 이 옷의 문화 안에 있었다.
‘새 빈티지’는 그런 욕망을 공장 안으로 한 걸음 더 끌어들였다. 허리와 밑위, 폭과 길이를 먼저 고르고 원하는 색과 마모까지 선택한다. 오래된 청바지에서 우연히 동시에 만나야 했던 조건을 새 제품에서는 따로 설계할 수 있다. 빈티지를 찾아 헤매는 일이 발견의 즐거움이라면, 새 빈티지는 선택의 폭을 넓히는 쪽에 가깝다.
여기에는 지금의 소비문화를 비추는 흥미로운 모순도 있다. 사람들은 기다리기를 어려워하면서도 기다린 뒤의 모습을 원한다. 새 제품을 사면서 오래된 표면을 선택하고, 처음 입는 날부터 이미 여러 해를 살아온 듯한 옷을 원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교체되는 시대에 사람들이 낡은 표면을 찾는 이유를 단순한 복고 취향으로만 볼 수는 없다. 디지털 환경은 갈수록 매끈해지고 상품은 더 정확하게 복제된다. 어느 나라에서 사더라도 같은 모델이라면 같은 색과 같은 형태를 얻을 수 있다. 그럴수록 사람의 손과 시간이 남은 물건은 오히려 드물어진다.
완벽하게 동일한 상품이 많아질수록 작은 차이에 눈이 간다. 살짝 다른 색, 조금 비뚤어진 수선, 예상하지 못한 주름에 가치가 붙는다. 데님은 그런 욕망을 가장 오래 받아온 옷 가운데 하나다.
빠른 패션은 새로움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시즌이 바뀌면 다른 색과 다른 실루엣이 등장하고, 지난 시즌의 옷은 빠르게 뒤로 밀린다. 데님은 조금 다른 시간표를 가진다. 오래 입을수록 표면이 달라지고 몸에 맞아가며, 수선한 흔적도 옷의 일부가 된다. 새것과 오래된 것의 경계가 다른 옷보다 느리게 움직인다.
몇 년 동안 한 청바지를 입어본 사람이라면 같은 제품의 새 바지를 받아 들었을 때 어딘가 낯설다는 것을 안다. 모델명도 같고 사이즈도 같지만 자신의 청바지와는 다르다. 오래 입은 바지에는 몸이 앉고 걷고 움직였던 방식이 남아 있다. 원단은 부드러워지고 주름은 특정한 자리에서 반복되며, 색은 몸이 자주 닿는 순서대로 사라진다.
옷을 입는 사람이 생산자가 만든 완성품에 계속 손을 더하는 셈이다.
일본 데님 산업이 오래된 셔틀 직기와 복잡한 워싱, 수선과 덧댐을 계속 들여다보는 이유도 과거에 대한 향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훨씬 빠르고 균일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는데도 일부러 느린 직조와 불균일한 질감을 선택한다. 효율을 낮추면서까지 완벽하게 같지 않은 결과를 얻으려 한다.
산업기술이 정밀해질수록 일부 소비자는 오히려 정밀하지 않은 흔적에 매력을 느낀다. 기계가 모든 제품을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된 뒤 사람은 다시 서로 다른 표정을 찾기 시작했다.
니드바이 빈티지가 새 옷에 미리 시간을 넣는 방식도 같은 흐름 안에 있다. 원사와 직조에서부터 과거 데님의 질감을 만들고, 워싱과 페인트, 수선으로 여러 시기의 흔적을 겹친다. 생산자가 만든 시간이 먼저 놓이고, 옷을 산 사람의 시간이 다시 그 위를 지난다.
몇 년 뒤 그 청바지가 처음 매장에 걸려 있던 모습과 같을 가능성은 낮다. 미리 넣어둔 페이딩 위에서 또 다른 색이 빠지고, 공장에서 만든 수선 주변이 실제 생활 속에서 다시 닳는다. 처음부터 낡아 있었던 옷도 사람의 몸을 만나면 다시 변한다.
그래서 데님에서 마지막 시간을 만드는 사람은 여전히 착용자다. 브랜드는 원단을 고르고 직조 방식을 정한다. 디자이너는 핏을 만들고 워싱과 수선 위치를 결정한다. 공장은 청바지를 완성해 매장으로 보낸다. 그러나 어디가 먼저 닳고, 어떤 주름이 깊어지고, 몇 년 뒤 어느 곳을 수선하게 될지는 옷을 입는 사람이 결정한다.
데님을 입는다는 것은 완성된 상품을 소비하는 일과 조금 다르다. 입는 동안 옷을 계속 바꾸는 일에 가깝다. 앉고 걷고 일하는 동안 색을 조금씩 지우고 주름을 새긴다. 낡으면 고치고, 다시 입으면서 먼저 만든 흔적 위에 새로운 흔적을 더한다.
아마 그래서 오래 입은 청바지는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원단이 비싸서만도 아니고 유명한 모델이어서만도 아니다. 옷장에 남아 있는 것은 면직물 한 벌과 함께 보낸 시간이기도 하다.
패션은 계속 새것을 만들 것이다. 데님 역시 새로운 핏과 새로운 워싱, 새로운 가공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청바지가 다른 옷과 구별되는 오래된 성질 하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자기 것이 된다는 점이다.
데님 문화의 중심에는 결국 브랜드도, 빈티지의 연식도, 제조기술도 아닌 입는 사람이 있다. 공장에서 완성된 청바지는 한 사람의 몸을 만난 뒤 다시 시작한다. 청바지는 만들어져 완성되는 옷이 아니라, 오래 입으면서 비로소 완성돼 가는 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