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ndi SS27⑤] 검정·레이스·퍼를 한 옷장에…치우리, Fendi의 경계를 다시 짰다

란제리와 수트, 데님과 퍼, 남녀 테일러링 교차…거울 런웨이까지 이어진 SS27의 변화

2026-09-29     박인경 기자

[KtN 박인경기자]흰색 민소매 톱과 검정 쇼츠, 검정 액세서리는 색을 절제한 대신 몸의 비율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브라렛과 쇼츠, 슬립에는 연한 핑크와 녹색이 더해졌고, 검정과 흰색을 바탕으로 노출되는 피부의 면적과 옷의 길이를 달리했다. Fendi의 2027년 봄여름 컬렉션은 새로운 옷의 종류를 늘리기보다 속옷과 겉옷, 수트와 데님, 남성복과 여성복이 만나는 방식을 바꾸는 데 무게를 뒀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는 브라와 슬립을 재킷이나 드레스 안쪽에 감추지 않았다. 브라렛은 상의가 됐고, 레이스 쇼츠에는 긴 스타킹과 아우터가 붙었다. 깊게 열린 재킷에는 셔츠 대신 피부와 얇은 이너가 드러났으며, 넓은 팬츠가 작은 상의의 비율을 받쳤다. 속옷과 겉옷을 가르던 순서는 흐려졌지만 각각의 옷이 가진 형태는 그대로 남았다.

[Fendi SS27⑤] 검정·레이스·퍼를 한 옷장에…치우리, Fendi의 경계를 다시 짰다. 사진=Fend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흰색과 검정의 단순한 조합은 색보다 상하의의 길이와 노출 정도를 먼저 보여줬다. 연한 핑크와 녹색이 들어간 브라렛과 쇼츠도 전신을 밝은 색으로 채우지 않았다. 검정 니트와 스타킹, 긴 아우터를 함께 사용해 피부가 드러나는 부분과 가려지는 부분을 나눴다.

노출 자체보다 옷을 조합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 작은 브라 톱에는 넓은 팬츠를 맞추고, 짧은 쇼츠에는 긴 아우터를 더했다. 얇은 슬립 위에는 무게가 있는 외투를 걸쳤다. 한 착장 안에서 짧음과 김, 얇음과 두꺼움이 반복적으로 교차했다.

브라운과 올리브가 들어오면서 색의 밀도도 높아졌다. 레오퍼드와 퍼, 금빛 장식이 더해졌고 매끄러운 실크와 거친 털, 광택 있는 표면이 한데 섞였다. 검정과 흰색 중심의 단순한 조합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질감의 차이가 옷의 인상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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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과 붉은색이 섞인 얇은 드레스에서는 피부와 패턴이 함께 드러난다. 불투명한 재킷과 팬츠에서 나타난 선명한 윤곽 대신 몸을 따라 움직이는 얇은 소재가 중심에 놓였다. 검정이라는 같은 색도 직물의 투명도와 무늬에 따라 전혀 다른 밀도를 보였다.

라파엘라 카라(Raffaella Carrà)의 영향도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레오퍼드와 퍼, 금빛 표면과 깊게 열린 상의는 1970년대 이탈리아 대중문화의 화려함을 떠올리게 한다. 카라의 특정 무대 의상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 당시의 강한 색과 장식, 몸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던 감각을 현재의 재킷과 드레스, 팬츠에 나눠 넣었다.

화이트 셔츠와 팬츠 위에 애니멀 패턴 퍼를 걸친 옷에서는 화려한 소재가 일상복과 직접 만났다. 레오퍼드는 전신을 채우지 않았고, 브라운 퍼도 긴 드레스나 수트에만 머물지 않았다. 눈에 띄는 소재를 한 부분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비교적 단순하게 두는 방식이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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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롱코트와 워싱 데님은 수트와 일상복의 경계를 낮췄다. 바닥 가까이 내려오는 코트 아래에는 정장 팬츠 대신 색이 빠진 청바지가 들어갔고, 상의는 가슴 부분을 깊게 열었다. 검정 코트의 격식과 데님의 일상성이 한 착장 안에서 만나면서 정장과 캐주얼을 따로 나누던 방식도 달라졌다.

같은 변화는 남녀 모델의 테일러링에서도 나타났다. 길게 떨어지는 재킷과 코트, 깊은 V네크라인, 여유 있는 팬츠가 남성복과 여성복에 나란히 사용됐다. 여성에게만 허리를 강조한 재킷을 입히거나 남성에게만 넓은 팬츠를 배치하는 전통적인 구분은 약해졌다. 옷의 형태를 중성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옷을 입을 수 있는지에 대한 범위를 넓힌 쪽에 가깝다.

치우리가 Fendi에서 이어온 코트와 재킷도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브라와 레이스, 데님과 퍼가 함께 들어가면서 한 벌의 정장으로 완결되는 옷보다 여러 소재와 길이를 겹친 구성이 많아졌다. 검정 재킷 아래로 흰색 상의를 길게 내리고, 롱코트 아래에는 워싱 데님을 놓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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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드레스에서는 색보다 투명도와 표면의 차이가 먼저 드러난다. 불투명한 검정 천과 피부가 비치는 시스루가 한 옷 안에 놓였고, 레이스는 브라와 쇼츠의 장식을 넘어 긴 드레스와 스커트로 확대됐다. 몸을 완전히 가리는 검정과 피부를 드러내는 검정이 같은 컬렉션 안에 공존했다.

퍼와 레이스의 차이도 분명하다. 퍼는 몸에서 떨어지는 부피를 만들고 레이스는 몸의 윤곽을 그대로 남긴다. 실크는 움직임을 따라 흐르고 벨벳은 빛을 받아 깊은 색을 만든다. 서로 다른 재료를 한 가지 분위기로 맞추기보다 각 소재가 가진 두께와 광택을 그대로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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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계열 상하의는 장식을 줄이고 색과 실루엣으로 옷의 인상을 만들었다. 상의는 몸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졌고 팬츠는 길게 이어졌다. 브라운과 골드, 레오퍼드가 보여준 강한 표면과 달리 비슷한 색을 위아래로 연결하면서 소재와 비율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202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브라와 슬립을 겉옷처럼 사용하고, 몸을 강하게 조이지 않는 재킷과 넓은 팬츠를 입히며, 시스루와 레이스를 일상복에 섞는 흐름은 여러 브랜드에서 나타나고 있다. Fendi도 같은 흐름과 맞닿아 있지만 란제리 하나를 유행 품목처럼 앞세우지는 않았다. 브라 옆에 수트를 두고, 수트에는 데님을 붙이며, 퍼와 레이스를 같은 옷장 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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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회색 드레스는 넓은 네크라인과 길게 떨어지는 실루엣, 미세한 광택으로 옷의 표면을 강조했다. 퍼나 애니멀 패턴 없이도 소재가 빛을 받으면서 주름과 움직임이 드러났다. 검정 민소매 드레스와 넓은 팬츠, 한쪽 어깨를 드러낸 니트, 시스루 드레스에서도 같은 색이 각기 다른 형태와 질감으로 나타났다.

쇼 공간을 채운 거울은 옷의 변화와 별개의 장치가 아니었다. 루치아노 파브로(Luciano Fabro)의 'Cubo di specchi'에서 가져온 구조물에는 모델의 몸과 옷뿐 아니라 관객의 모습도 함께 비쳤다. 옷을 바라보던 사람도 거울 안에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들어갔다.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을 구분하던 패션쇼의 관계가 한 공간 안에서 겹쳐졌다.

E. E. 커밍스(E. E. Cummings)의 시와 신체에 관한 언급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Fendi는 이번 컬렉션에서 옷을 몸과 감정에 가까운 ‘두 번째 피부’로 설명했다. 피부를 가리는 동시에 바깥에 드러나는 옷의 성격을 브라와 수트, 레이스와 퍼, 남녀 테일러링을 통해 구체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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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은 재킷과 팬츠에서는 형태를 선명하게 만들고, 레이스와 시스루에서는 피부와 옷 사이의 경계를 드러냈다. 같은 색을 사용하면서도 직물과 길이, 노출 정도에 따라 전혀 다른 옷이 만들어졌다. 흰색과 검정, 핑크와 녹색, 브라운과 골드, 레오퍼드가 섞였지만 컬렉션을 묶은 것은 색 하나가 아니라 조합의 방식이었다.

치우리는 Fendi가 오래 다뤄온 퍼와 테일러링을 남겨두고 브라와 슬립, 워싱 데님, 레오퍼드, 시스루를 한 옷장에 들였다. 속옷과 겉옷, 남성복과 여성복, 정장과 일상복 사이에 있던 구분도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다. 익숙한 옷을 없애지 않고 서로 다른 자리에 놓으면서 입는 방식의 선택지를 늘렸다.

Fendi SS27은 한 가지 유행을 강조하는 컬렉션과 거리가 있다. 란제리와 시스루, 유연한 테일러링처럼 2027년 봄여름에 반복되는 요소를 받아들이면서도 Fendi의 퍼와 레이스, 코트와 가죽, 이탈리아 대중문화의 화려함을 함께 남겼다. 치우리의 두 번째 Fendi 레디투웨어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새로운 형태 하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옷을 함께 입을 수 있도록 조합의 범위를 넓힌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