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Fendi SS27, 옷의 경계를 지우지 않고 건너는 법
브라와 수트, 레이스와 퍼, 남녀 옷장이 한몸 위에서 교차…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두 번째 피부’, 몸을 규정하는 옷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옷으로
[KtN 박인경기자]흰색 민소매 톱과 검정 쇼츠, 브라와 슬립, 넓은 팬츠와 긴 코트가 Fendi의 2027년 봄여름 컬렉션에 함께 놓였다. 피부 가까이에 머물던 란제리는 재킷 밖으로 나왔고, 정장 코트 아래에는 워싱 데님이 들어갔다. 남성 모델과 여성 모델에게 비슷한 폭의 팬츠와 깊게 열린 재킷이 입혀졌으며, 얇은 레이스에는 부피가 큰 퍼가 맞붙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옷을 발명하기보다 오랫동안 정해져 있던 옷의 위치와 조합을 바꿨다.
브라는 감추는 옷이고 재킷은 드러내는 옷이라는 구분은 패션의 오래된 질서 가운데 하나다. 슬립은 사적인 공간에 가까웠고 수트는 직업과 사회적 역할을 드러내는 공적인 옷으로 기능했다. 남성복과 여성복도 서로 다른 재단과 비율, 착용법을 발전시켜왔다. Fendi SS27에서는 서로 떨어져 있던 옷들이 한 사람의 몸 위에서 만난다. 브라 위에 재킷을 걸치고, 짧은 쇼츠에는 긴 스타킹과 아우터를 더하며, 넓은 팬츠 위에는 면적이 작은 상의를 놓는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노출의 양보다 노출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허리와 복부를 드러내면서 팔과 다리는 니트와 스타킹으로 가리고, 피부가 비치는 레이스 위에는 몸을 크게 감싸는 퍼를 입혔다. 짧은 하의와 긴 외투, 얇은 속옷과 넓은 팬츠가 한 착장에 함께 들어간다. 벗거나 가리는 두 가지 선택만 남기는 대신 어느 부분을 열고 어느 부분을 덮을 것인지 여러 단계로 나눴다.
치우리가 이번 컬렉션에서 언급한 신체의 자율성도 이런 옷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얻는다. 몸의 자유를 피부를 많이 드러내는 상태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옷을 덜 입어야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몸을 완전히 가렸다고 자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브라와 재킷, 쇼츠와 스타킹을 함께 남겨둔 구성은 선택의 폭을 넓힌다. 자유의 기준이 ‘얼마나 벗었는가’에서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로 이동한다.
패션은 오랫동안 옷을 통해 이상적인 몸의 비율을 만들어왔다. 여성복은 허리를 좁히고 가슴과 엉덩이의 곡선을 강조했으며, 남성복은 어깨와 가슴의 폭을 넓혀 다른 종류의 실루엣을 만들었다. Fendi SS27의 재킷과 팬츠는 몸을 한 가지 형태로 교정하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재킷은 허리를 강하게 조이지 않고 몸에서 곧게 떨어지며, 팬츠에는 움직일 공간을 남긴다. 남녀 모델에게도 비슷한 길이와 폭이 반복된다.
그래서 이번 컬렉션을 단순히 ‘젠더리스’라는 한 단어로 묶으면 오히려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남성복과 여성복을 하나의 중성적인 형태로 합친 것이 아니다. 재킷과 드레스, 브라와 팬츠가 가진 차이는 그대로 남겨두면서 누가 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에 관한 규칙을 낮췄다. 차이를 지운 것이 아니라 차이를 건널 수 있게 했다.
남성 모델의 가슴이 깊게 열린 재킷과 여성 모델의 넓은 팬츠가 자연스럽게 같은 컬렉션에 놓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없애려는 옷이라기보다 특정한 옷이 특정한 몸에만 속해야 한다는 오래된 관습에서 한 걸음 벗어난다. 성별은 옷을 고르는 유일한 기준이 되지 않는다.
Fendi가 ‘두 번째 피부’라는 표현을 사용한 대목도 같은 맥락에서 의미가 생긴다. 피부는 사람의 몸을 외부와 나누는 가장 분명한 경계이면서 동시에 외부 세계와 직접 맞닿는 부분이다. 옷 역시 몸을 보호하고 감추지만, 사람이 사회에 나서는 순간 가장 먼저 드러나는 외피가 된다. 사적인 물건이면서 사회적인 표면이다.
브라가 밖으로 나오면 가장 사적인 옷이 공적인 옷이 된다. 반대로 수트에서 셔츠가 사라지고 피부가 드러나면 사회적인 옷이 개인적인 몸에 가까워진다. 속옷과 겉옷의 위치가 바뀌는 일은 스타일링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개인의 영역과 사회의 영역을 나누던 옷의 역할까지 흔든다.
레이스와 퍼는 같은 생각을 소재로 이어간다. 레이스는 피부를 비추고 퍼는 피부를 덮는다. 실크는 몸을 따라 움직이고 재킷은 몸에서 떨어진다. 벨벳은 빛을 머금고 금빛 장식은 빛을 되돌린다.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하나로 통일하지 않은 채 같은 옷장 안에 둔다.
강함과 연약함 역시 서로 반대되는 두 이미지로 갈라지지 않는다. 얇은 브라 위에 무거운 퍼를 걸치고, 넓은 팬츠 위에는 작은 상의를 입힌다. 레이스를 입은 몸이 반드시 연약해야 할 이유도 없고 수트를 입은 몸이 반드시 강해야 할 이유도 없다. 옷에 붙어 있던 성격을 사람의 성격과 곧바로 연결하지 않는 것이다.
라파엘라 카라(Raffaella Carrà)가 컬렉션에 들어온 방식도 흥미롭다. 카라의 무대 의상을 그대로 복원하지 않고 레오퍼드와 퍼, 금빛 장식, 반짝이는 소재와 과감한 노출을 여러 옷에 나눠 담았다. 1970년대 이탈리아 대중문화의 외형만 되살리는 복고보다 카라가 몸과 무대에서 만들어낸 자유로운 태도에 더 가까이 접근했다.
레오퍼드 퍼는 흰 셔츠와 팬츠 위에 놓이고, 장식적인 재킷은 워싱 데님과 만난다. 화려한 옷과 일상복도 더 이상 완전히 다른 장소에 속하지 않는다. 특별한 밤을 위한 옷과 낮에 입는 옷, 무대의 옷과 거리의 옷을 구분하던 선도 낮아진다.
E. E. 커밍스(E. E. Cummings)의 시를 가져온 선택은 몸을 혼자 존재하는 대상으로 두지 않는다. 몸은 다른 몸과 만나고, 바라보고, 접촉하며 자신의 감각을 확인한다. 옷도 혼자 있을 때보다 사회 안에서 훨씬 많은 의미를 얻는다. 무엇을 입는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옷은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규범을 통과한다.
루치아노 파브로(Luciano Fabro)의 ‘Cubo di specchi’를 참조한 거울 구조물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울에는 모델만 들어가지 않았다. 관객의 몸도 함께 반사됐다. 패션쇼에서 모델은 보여지는 사람이고 관객은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익숙한 관계가 거울 안에서 겹쳤다. 옷을 보는 사람 역시 누군가에게 보이는 몸이라는 사실이 공간 안으로 들어왔다.
모델의 몸만 특별한 대상으로 남겨두지 않는 구성이기도 하다. 이상적인 몸을 무대 위에 세우고 객석에서 바라보게 하는 패션쇼의 오래된 구조 안에 관객 자신의 모습을 집어넣었다.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타인을 향했다가 자신에게 돌아온다.
치우리가 말한 자율성은 그래서 개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롭게 입을 권리는 다른 사람의 몸과 선택 역시 인정해야 성립한다. 누군가의 브라와 슬립, 넓은 수트와 노출된 피부를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을 때 비로소 각자의 옷장이 가능해진다. 거울에 모델과 관객을 동시에 넣은 공간은 옷의 선택이 언제나 타인의 시선과 함께 존재한다는 현실까지 품는다.
2027년 봄여름 패션에서 란제리와 시스루, 여유 있는 테일러링이 여러 컬렉션에 등장하는 흐름도 Fendi와 맞닿는다. 몸을 단단하게 조이는 옷보다 피부와 움직임을 남겨두는 옷이 늘고, 정장과 일상복을 한 착장에 섞는 방식도 넓어지고 있다. Fendi는 유행의 요소를 가져오면서 퍼와 레이스, 테일러링과 이탈리아 대중문화라는 자신의 재료를 함께 남겼다.
치우리의 접근에서 중요한 대목은 경계를 없애겠다는 선언을 하지 않는 데 있다. 브라는 여전히 브라고 수트는 수트다. 레이스와 퍼의 차이도 남는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흔적도 지워지지 않는다. 다른 것을 하나로 합치기보다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다시 배치한다.
완전히 경계가 없는 세계보다 현실적인 선택이다. 사람은 하나의 성별, 직업, 나이, 역할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하루 안에서도 여러 관계를 오가고 같은 사람에게 공적인 모습과 사적인 모습이 함께 존재한다. 옷도 하나의 역할만 수행할 이유가 줄어든다.
검정 역시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지 않는다. 불투명한 재킷에서는 선과 형태가 강조되고, 레이스와 시스루에서는 피부가 드러난다. 같은 색이라도 소재가 달라지면 몸과 맺는 관계가 달라진다. 핑크와 녹색, 브라운과 골드, 레오퍼드가 더해졌지만 컬렉션을 묶는 것은 특정 색보다 서로 다른 옷을 조합하는 방식이다.
Fendi SS27에서 치우리가 건드린 것은 결국 옷에 붙어 있던 ‘정답’이다. 브라는 안에 입어야 하고 수트는 특정 장소에 어울리며, 퍼는 특정 계절의 옷이고 남성복과 여성복은 각자의 몸에 따로 배정된다는 규칙이다. 치우리는 규칙을 지운 자리에 새로운 규칙을 세우지 않았다. 브라와 재킷, 데님과 퍼, 레이스와 수트를 한 옷장에 두고 선택의 범위를 넓혔다.
몸을 옷에 맞추는 대신 옷이 몸의 여러 상태를 받아들이고, 한 사람에게 하나의 이미지 대신 여러 조합을 허용한다. Fendi가 말한 ‘두 번째 피부’는 그래서 몸을 감싸는 또 하나의 껍질보다 몸과 사회 사이에서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층에 가깝다.
Fendi SS27의 철학은 경계를 없애는 데 있지 않다. 경계가 남아 있어도 자유롭게 건널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치우리는 옷이 사람을 규정하던 오래된 질서에서 한 걸음 물러나, 사람이 옷의 의미를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자리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