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l Sander SS27①] 주름진 재킷과 느슨해진 수트…벨로티가 바꾼 Jil Sander의 정돈법

코트·팬츠·펜슬 스커트 기본형은 유지, 허리 셔링과 비정형 여밈 더해…매끈한 미니멀리즘에 들어온 의도적 불균형

2026-09-26     임우경 기자

[KtN 임우경기자]회색 재킷은 어깨에서 허리까지 반듯하게 내려오지만 앞섶에는 천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검정과 차콜 수트에서도 몸을 빈틈없이 감싸는 날카로운 재단보다 재킷과 팬츠 사이에 여유를 둔 실루엣이 두드러졌다. 시몬 벨로티(Simone Bellotti)는 Jil Sander 202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코트와 재킷, 팬츠, 펜슬 스커트라는 익숙한 옷을 남긴 채 표면과 여밈, 허리선의 정돈 방식을 바꿨다.

9월 23일 밀라노에서 공개된 SS27은 벨로티가 Jil Sander에서 선보인 세 번째 컬렉션이다. 벨로티는 브랜드가 오랫동안 구축해 온 ‘완벽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과 함께 “미니멀리즘이 너무 주류가 됐다”고 설명했다. 매끈한 수트와 정교한 코트를 버리기보다 일부러 작은 부정확성을 넣고, 몸의 움직임에 따라 천이 접히는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 선택됐다. 

Jil Sander SS27 Puts a Wrinkle In Its Minimalism. 사진=Filippo Fio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회색 재킷과 팬츠의 색은 절제돼 있지만 재킷은 전형적인 비즈니스 수트와 다르다. 어깨와 소매에는 충분한 여유가 있고 재킷의 품도 몸에 밀착되지 않는다. 붉은색 상의가 목 주변에서 작게 드러나면서 회색이 차지하는 넓은 면적을 끊는다. 팬츠는 곧게 떨어지지만 발등 가까이에서 천이 자연스럽게 모인다. 완벽하게 팽팽한 실루엣보다 실제 움직임이 남을 수 있는 길이와 여유분을 택했다.

벨로티가 손댄 부분은 수트의 기본 골격보다 몸과 옷이 만나는 지점이다. 어깨는 재킷의 형태를 유지하고, 팬츠 역시 기존 테일러링의 긴 세로선을 남긴다. 대신 허리와 앞섶, 소매와 밑단에서 옷이 몸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을 일부러 남겼다. Jil Sander 특유의 절제된 색과 긴 선은 유지하면서 ‘완벽하게 정돈된 표면’의 비중을 낮춘 셈이다.

검정 재킷과 팬츠도 같은 방향에 놓인다. 블랙이라는 색이 전체 형태를 단순하게 묶지만 옷의 표면까지 매끈하게 통제하지는 않는다. 여밈의 위치가 조금 올라가거나 재킷의 앞부분이 한쪽으로 당겨지고, 팬츠의 폭과 길이는 몸에 여유를 남긴다. 멀리서 보면 전형적인 미니멀 수트지만 가까이에서는 재단과 착용 방식의 작은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Jil Sander SS27 Puts a Wrinkle In Its Minimalism. 사진=Filippo Fio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밝은 회색 수트에서는 재킷과 팬츠의 관계가 조금 더 분명하다. 재킷은 허리를 강하게 조이지 않고 엉덩이 위까지 내려오며, 팬츠는 다리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일정한 폭을 남긴다. 구조적인 가방과 컬러 액세서리가 단색 수트 아래에서 작은 대비를 만든다.

Jil Sander의 미니멀리즘은 오랫동안 불필요한 장식을 줄이고 재단과 소재, 비율을 앞세워 왔다. 벨로티도 그 바탕을 지우지 않았다. SS27에서 달라진 부분은 장식을 추가하는 방식보다 잘 정돈된 옷에 일부러 어긋나는 요소를 넣은 데 있다. 재킷이 조금 구겨지고, 셔츠 칼라는 라펠 위로 올라오며, 허리에는 천이 모인다. 과도한 장식 없이도 옷의 상태 자체가 디자인 요소가 됐다. Hypebeast는 이번 컬렉션의 특징으로 의도적인 주름, 허리의 퍼커링(puckering), 높은 여밈, 버블헴 등을 꼽았다. 

구김을 단순히 ‘편안함’으로 해석하기에는 재킷의 구조가 여전히 단단하다. 어깨와 칼라, 팬츠의 중심선까지 모두 풀어버린 옷이 아니라 정확한 재단과 흐트러진 표면을 한 벌 안에 함께 둔 형태다. 벨로티가 말한 ‘조금 잘못된 듯한’ 상태도 옷 전체를 무너뜨리는 방식보다 특정 부분에 집중됐다. 

Jil Sander SS27 Puts a Wrinkle In Its Minimalism. 사진=Filippo Fio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차콜 재킷과 팬츠에서는 색과 장식이 더욱 줄었다. 셔츠와 재킷, 팬츠가 비슷한 어두운 색으로 이어지면서 시선은 자연스럽게 재킷의 길이와 팬츠 폭으로 향한다. 재킷은 상체를 단단하게 조이지 않고, 팬츠도 발목에서 빠르게 좁아지지 않는다. 몸을 날카롭게 재단된 수트 안에 집어넣기보다 옷과 몸 사이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최근 몇 시즌 동안 이어진 미니멀 스타일이 단색과 간결한 형태만으로 소비됐다면 SS27에서는 익숙한 기본형을 유지하면서 비율이나 착용 상태를 틀어 변화를 만드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런던 SS27에서는 테일러링과 실제 착용 가능한 드레스가 강하게 남았고, 밀라노에서도 날카로운 재단과 가벼운 소재를 한 착장에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 확인되고 있다. 에트로 역시 가벼운 드레스와 날카로운 테일러링을 같은 컬렉션에 배치했다. 

Jil Sander의 선택은 화려한 장식이나 극단적인 실루엣으로 이동하기보다 미니멀리즘 내부에서 차이를 만드는 쪽에 가깝다. 단정한 재킷을 유지하되 허리를 접고, 익숙한 팬츠를 입히되 길이를 조금 늘리고, 셔츠와 재킷의 겹침을 완벽하게 정리하지 않는다. 옷의 종류보다 ‘얼마나 정돈할 것인가’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트렌드 변화와 맞닿는 부분도 여기다. SS27 여성복 시즌에서는 다시 입을 수 있는 재킷과 팬츠, 드레스 같은 기본형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동시에 단순한 클래식 복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정확한 수트를 그대로 반복하는 대신 비대칭과 길이 차, 주름과 부드러운 소재를 넣어 익숙한 옷의 인상을 바꾸는 방식이다. 밀라노 패션위크에서도 테일러링은 주요 축으로 남아 있다. 

Jil Sander SS27 Puts a Wrinkle In Its Minimalism. 사진=Filippo Fio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검정 재킷은 허리 부근에서 형태가 달라진다. 상체를 따라 내려오던 앞섶이 한쪽으로 모이면서 재킷 중심에 미세한 방향 변화가 생긴다. 팬츠는 비교적 단순하게 유지돼 상체의 변형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 벌 전체를 비정형적으로 만드는 대신 재킷 한 부분에 변화를 집중시킨 구성이다.

허리를 강조하는 방식도 몸에 꼭 맞춘 전통적인 테일러링과 차이가 있다. 다트를 이용해 허리를 매끈하게 좁히기보다 천을 모으거나 앞섶의 위치를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굴곡을 만든다. 몸의 형태를 정확하게 복제하기보다 재킷 자체에 작은 뒤틀림을 넣어 실루엣을 조절한다.

벨로티가 SS27에서 다룬 ‘취약함’과 ‘불완전함’도 여기에서 구체적인 옷으로 바뀐다. 부드러운 소재나 볼륨 드레스만으로 연약함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완성될 수 있는 재킷을 일부러 완벽하게 평평하게 만들지 않는 방식까지 포함된다. 실제 컬렉션에서는 의도적으로 구겨진 블레이저와 허리 주변에 천이 모이는 트렌치, 칼라가 재킷 라펠 밖으로 빠져나온 셔츠가 함께 사용됐다. 

그렇다고 모든 변형이 몸을 더 좋아 보이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허리에 천이 많이 모이면 복부와 골반 주변의 면적이 커질 수 있고, 재킷과 팬츠를 모두 넉넉하게 잡으면 체형에 따라 몸의 비율이 무거워질 가능성도 있다. 제공된 컬렉션 설명에서도 전위적인 비율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맞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언급됐다. 대신 가벼운 소재와 따뜻한 뉴트럴 컬러를 함께 사용해 구조의 부담을 낮췄다. 

Jil Sander SS27의 변화는 수트를 없애는 데 있지 않다. 회색과 검정 재킷, 플레어 팬츠, 코트와 펜슬 스커트는 여전히 컬렉션의 중심에 남아 있다. 달라진 것은 옷을 얼마나 매끈하게 완성하고 얼마나 정확하게 착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다.

주름은 다려 없애야 할 흔적에서 재킷의 형태를 바꾸는 요소로 들어왔고, 여유 있는 팬츠 길이는 몸의 움직임을 남겼다. 재킷의 앞섶과 허리는 중심에서 조금씩 벗어났지만 어깨와 전체 비율까지 무너지지는 않았다. 벨로티의 세 번째 Jil Sander 컬렉션은 브랜드의 익숙한 수트를 그대로 두면서 표면과 착용 상태에 작은 불균형을 더했다. SS27에서 확인되는 변화도 ‘미니멀리즘 이후’보다 완벽하게 정돈된 미니멀리즘의 범위를 조금 넓힌 쪽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