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l Sander SS27②] 허리를 접고 앞섶을 틀었다…수트 중심선에서 벗어난 Jil Sander

높은 여밈·허리 셔링·비대칭 재단으로 달라진 재킷…반듯한 테일러링에 남긴 의도적 불균형

2026-09-27     임우경 기자

[KtN 임우경기자]회색 재킷의 허리 한쪽으로 천이 모이고 앞섶은 비스듬히 내려간다. 검정과 차콜 재킷도 몸의 중심을 따라 반듯하게 닫히기보다 한쪽으로 당겨지거나 접히며 좌우 길이를 달리했다. 시몬 벨로티(Simone Bellotti)는 Jil Sander 202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수트의 어깨와 팬츠가 가진 기본 구조는 유지하면서 허리와 여밈, 밑단을 조금씩 틀었다. 변화가 집중된 곳은 수트의 외곽보다 몸의 중심이었다.

재킷은 좌우 균형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옷이다. 어깨와 라펠, 단추와 허리 다트가 몸의 중심을 기준으로 맞춰지고, 팬츠까지 같은 축을 따라 내려간다. 벨로티는 이 익숙한 구조를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어깨는 반듯하게 남겨두고 허리 아래에서 원단을 한쪽으로 모으거나 앞섶의 방향을 바꾸면서 작은 불균형을 만들었다.

Jil Sander SS27 Puts a Wrinkle In Its Minimalism. 사진=Filippo Fio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차콜 재킷은 어깨와 소매에서는 정돈된 테일러링을 유지하지만 허리에서 좌우 선이 갈라진다. 한쪽 앞섶은 몸 안쪽으로 당겨지고 반대편은 아래로 길게 떨어진다. 재킷 밑단도 같은 높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팬츠는 비교적 단순하게 내려가 상체에 들어간 변형을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허리를 만드는 방식도 전통적인 수트와 다르다. 좌우 다트를 이용해 몸에 밀착시키기보다 천을 한쪽으로 모아 굴곡을 만든다. 허리의 가장 가는 부분을 정확하게 따라가는 대신 원단이 접힌 위치에서 새로운 중심선이 생긴다. 실루엣은 여전히 날렵하지만 표면에는 주름과 겹침이 남는다.

회색과 차콜처럼 장식이 적은 색도 이런 차이를 가리지 않는다. 패턴이나 강한 장식 대신 접힌 허리와 비스듬한 앞섶, 서로 다른 밑단 길이가 옷의 변화를 만든다. 색과 장식을 줄인 미니멀한 옷일수록 몇 센티미터의 차이가 전체 인상에 더 크게 작용한다.

벨로티가 이번 시즌에 다룬 ‘취약함’과 ‘불완전함’도 재킷의 재단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매끈하게 정리할 수 있는 원단을 일부러 한쪽에 모으고, 완전히 대칭으로 만들 수 있는 앞섶에 작은 틀어짐을 남겼다. 강한 수트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완벽하게 평평해야 한다는 조건을 낮춘 것이다.

Jil Sander SS27 Puts a Wrinkle In Its Minimalism. 사진=Filippo Fio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밝은 회색 재킷은 허리 앞쪽에 원단이 집중되면서 굵은 주름을 만든다. 흰 셔츠와 회색 팬츠라는 익숙한 조합이지만 재킷 앞부분은 전형적인 투 버튼 수트처럼 평평하게 내려오지 않는다. 허리에 모인 천이 상체의 중심을 한 번 끊고, 팬츠의 긴 세로선과 다른 방향을 만든다.

주름이 들어간 위치에 따라 몸의 비율도 달라진다. 시선이 어깨에서 팬츠까지 곧게 내려가기보다 허리에 한 번 머무르기 때문이다. 허리 위에서 원단이 모이면 상체가 짧아 보일 수 있고, 골반 가까이 내려가면 재킷 길이가 길게 느껴질 수 있다. 비대칭 자체보다 어느 위치에서 선이 꺾이는지가 실제 착장에서 더 중요하다.

재킷은 몸에 바짝 붙지 않는다. 어깨는 형태를 유지하지만 가슴과 허리에는 여유가 있고, 한쪽으로 모인 원단이 몸의 굴곡과 다른 선을 만든다. 허리를 잘록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여성 수트와 거리가 생기는 지점도 여기다.

최근 미니멀 테일러링에서도 이런 변화가 조금씩 나타난다. 재킷과 팬츠라는 기본형을 바꾸기보다 허리 위치와 여밈, 밑단의 길이를 조정해 익숙한 수트에 차이를 만드는 방식이다. 비대칭이나 주름을 큰 장식으로 사용하기보다 재단 안에 제한적으로 넣는 흐름이 이번 Jil Sander와 맞닿아 있다.

Jil Sander SS27 Puts a Wrinkle In Its Minimalism. 사진=Filippo Fio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회색 재킷 아래에서는 밝은 셔츠 자락이 바깥으로 내려오고, 재킷 허리는 한쪽에서 안으로 접힌다. 무릎 아래에는 분홍색 스타킹이 들어가 상체의 회색과 하체의 색을 분리한다.

재킷과 셔츠의 길이가 맞지 않는 점도 수트의 비율을 바꾼다. 재킷 아래로 나온 셔츠가 허리와 하체 사이에 새로운 경계를 만들고, 비대칭 밑단과 겹치면서 상체에 여러 개의 기준선이 생긴다. 한 벌의 수트가 상체와 하체를 매끈하게 연결하기보다 서로 다른 길이를 겹쳐 놓는 방식이다.

분홍색 스타킹은 회색 수트 안에서 제한된 면적으로 사용됐다. 강한 색이 재킷 전체를 덮지 않고 무릎 아래에만 들어가면서 무채색 테일러링의 구조를 유지한다. 뉴트럴 컬러에 작은 면적의 선명한 색을 끼워 넣는 방식 역시 SS27에서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다.

셔츠와 재킷을 완벽하게 정리하지 않는 착용법도 같은 방향에 놓인다. 셔츠 자락과 칼라를 모두 수트 안으로 감추는 대신 일부를 밖으로 남기면서 재킷의 밑단과 다른 선을 만든다. 미니멀리즘의 변화가 새로운 장식보다 ‘얼마나 정돈할 것인가’에서 나타난 셈이다.

다만 허리에 원단이 많이 모이거나 상의 길이가 여러 번 나뉘면 체형에 따라 복부와 골반의 면적이 커 보일 수 있다. 재킷 아래로 셔츠가 길게 내려오면 상체가 길어 보이는 효과도 생긴다. 실제 착장에서는 주름이 시작되는 위치와 셔츠의 길이, 팬츠의 허리선을 함께 맞춰야 한다.

Jil Sander SS27 Puts a Wrinkle In Its Minimalism. 사진=Filippo Fio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검정 재킷과 광택 있는 하의에서는 비대칭이 소재 차이와 함께 나타난다. 깊게 열린 V네크라인은 목에서 가슴까지 긴 사선을 만들고, 허리 아래의 검정 소재는 빛을 반사하며 재킷과 다른 표면을 만든다. 분홍색 스타킹과 색이 다른 슈즈가 더해지면서 검정으로 이어진 상체와 하체 사이에도 여러 개의 경계가 생긴다.

같은 검정이라도 재킷과 하의의 질감은 다르다. 재킷은 형태를 잡는 매트한 표면에 가깝고, 하의는 움직일 때마다 빛을 받아 몸의 곡선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허리를 기준으로 소재까지 달라지면서 하나의 색으로 이어진 옷이 위아래에서 다른 무게를 만든다.

깊은 V도 전형적인 셔츠와 재킷 조합과 거리가 있다. 목과 쇄골이 넓게 드러나면서 라펠의 사선이 강조되고, 무릎 아래에서는 스타킹의 색이 다리를 다시 나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의 긴 선으로 이어지는 수트보다 상체와 허리, 무릎 아래에서 서로 다른 기준선이 생기는 구조다.

벨로티가 손댄 범위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재킷의 어깨를 해체하거나 팬츠의 기본형을 크게 바꾸지 않았고, 수트의 색도 검정과 회색을 중심으로 유지했다. 대신 앞섶과 허리, 셔츠 밑단처럼 수트의 중심을 결정하는 부분에 변화를 집중시켰다.

과도한 해체주의와 구분되는 부분도 여기에 있다. 소매나 라펠을 없애는 대신 원래 형태를 남겨두고, 천을 한 번 접거나 여밈을 조금 옮기는 방식으로 차이를 냈다. 멀리서는 익숙한 수트로 보이지만 가까이에서는 허리와 밑단의 불균형이 남는다.

Jil Sander SS27의 수트가 기존 미니멀리즘과 갈라지는 지점도 이런 세부에 있다. 매끈한 표면과 좌우 대칭을 유지하는 대신 구김과 셔링, 길이 차를 옷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최근 테일러링에서 구조적인 재킷과 비정형적인 허리, 느슨한 레이어링이 함께 나타나는 흐름과도 맞닿는다. 다만 변화의 폭은 크지 않다. 수트 자체를 버리기보다 수트를 정리해 온 규칙을 조금 완화하는 수준에 머문다.

회색과 검정 재킷, 긴 팬츠와 무릎 길이 하의는 여전히 Jil Sander의 기본적인 옷장을 유지한다. 달라진 것은 허리를 반드시 대칭으로 잡아야 한다는 방식과 앞섶을 반듯하게 닫아야 한다는 기준이다. 접힌 원단과 비스듬한 여밈, 밖으로 내려온 셔츠가 수트의 중심선을 조금씩 움직였다.

벨로티가 SS27에서 만든 변화는 크게 소리 내지 않는다. 허리 한쪽의 주름과 몇 센티미터 다른 밑단,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앞섶이 대부분이다. 장식이 적고 색이 절제된 Jil Sander에서는 작은 차이가 그대로 남는다. 수트의 형식은 유지됐지만 완벽한 대칭과 평평한 표면에서 조금 벗어난 테일러링이 이번 시즌의 변화를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