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l Sander SS27④] 허리를 조이지 않은 드레스…버블헴과 볼륨으로 넓어진 Jil Sander
네이비·페일 블루·옐로 드레스에 넉넉한 여유분…몸의 굴곡보다 천의 움직임 살린 SS27 실루엣
[KtN 임우경기자]짙은 네이비 드레스는 어깨 아래에서 넓게 퍼지고, 옅은 블루 드레스는 몸과 천 사이에 큰 공간을 남겼다. 노란 드레스는 가슴과 허리를 따라 몸에 붙기보다 소매와 밑단의 부피를 키웠다. 시몬 벨로티(Simone Bellotti)의 Jil Sander 202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재킷과 팬츠가 몸의 중심선을 조금씩 비틀었다면 드레스는 몸에서 아예 거리를 뒀다. 허리를 잘록하게 나누거나 골반의 굴곡을 따라가기보다 천이 움직일 수 있는 면적을 넓힌 실루엣이 등장했다.
코트와 수트, 펜슬 스커트처럼 선이 분명한 옷이 그대로 남은 컬렉션에서 이런 드레스는 대비가 크다. 몸을 정교하게 재단한 옷과 신체에서 떨어지는 옷을 나란히 두면서 Jil Sander의 미니멀리즘도 하나의 실루엣에 머물지 않았다. 벨로티가 이번 시즌 언급한 ‘취약함(fragility)’과 ‘연약함(vulnerability)’ 역시 얇은 소재나 노출만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몸의 형태를 강하게 고정하지 않는 옷에서도 나타났다.
짙은 네이비 드레스는 목 가까이까지 올라온 상단과 넓은 몸판이 이어진다. 허리에서 갑자기 좁아지지 않고 어깨에서 아래로 천의 면적을 유지해 몸통의 실제 폭을 감춘다. 소매와 몸판 사이에도 여유가 커 팔과 허리의 경계가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다.
검정에 가까운 네이비를 넓은 면적으로 사용했지만 옷이 무겁게 붙어 있지는 않다. 몸과 원단 사이에 공간이 생기면서 색의 무게와 실루엣의 가벼움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한다. 구조적인 재킷이 어깨와 허리의 위치를 분명하게 만들었다면 이 드레스는 같은 지점을 천 안에 감춘다.
허리선을 지우는 옷은 체형을 날씬하게 보이게 하는 전통적인 드레스와도 거리가 있다. 몸의 가장 가는 부분을 강조하지 않고, 상체와 하체의 비율도 명확하게 나누지 않는다. 사람이 움직일 때 옷의 외곽이 달라지는 만큼 고정된 실루엣보다 움직임 자체가 형태를 만든다.
벨로티가 수트에서는 허리를 접고 앞섶을 틀었다면 드레스에서는 굳이 허리를 만들지 않았다. 두 방식은 달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신체를 하나의 이상적인 비율에 맞춰 정리하기보다 옷이 몸과 만나는 위치를 바꾸는 방식이다.
페일 블루에 가까운 긴 드레스는 색과 소재가 네이비보다 가볍다. 목을 감싸는 높은 상단 아래로 넓은 몸판이 내려오고, 허리와 골반에는 뚜렷한 절개가 없다. 밝은 색이 큰 면적을 차지하지만 직물이 몸에서 떨어져 있어 실루엣에는 여유가 남는다.
옅은 블루는 검정과 회색 중심의 수트와도 다른 인상을 만든다. 색을 강하게 대비시키기보다 밝은 단색으로 넓은 면적을 채워 옷의 부피 자체를 더 잘 드러낸다. 몸에 밀착된 드레스라면 피부와 신체의 윤곽이 먼저 들어왔겠지만, 여기서는 어깨에서 밑단까지 이어지는 천의 면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번 컬렉션에서 사용된 가벼운 소재는 실루엣의 부피를 실제 무게와 분리한다. 옷의 면적은 크지만 천이 얇아 걸을 때마다 접히고 흔들린다. 큰 옷이 반드시 단단하거나 무거워야 한다는 공식에서 벗어난 부분이다.
SS27을 앞두고 예상된 흐름에서도 드레이프와 흐르는 실루엣, 여유 있는 소재의 비중 확대가 거론됐다. Vogue Business가 시즌 개막 전 트렌드 전망에서 인용한 분석에서도 드레이프 의류와 가볍게 흐르는 소재, 느슨한 상의의 성장 가능성이 언급됐고, 조형적인 볼륨은 이전 시즌에서 이어지는 흐름으로 제시됐다. Jil Sander의 넓은 드레스도 이런 방향과 맞닿아 있지만 장식이나 프린트를 크게 늘리기보다 단색과 절제된 표면 안에서 부피를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몸에 달라붙는 실루엣과 넓은 볼륨이 같은 시즌 안에서 함께 등장하는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허리선을 강조한 옷이 다시 늘어나는 동시에 신체에서 멀어지는 드레이프와 볼륨 역시 이어지고 있다. SS27의 실루엣이 하나의 몸매 기준으로 모이기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노란 드레스에서는 부피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한쪽 어깨 가까이에서 넓게 펼쳐진 천이 팔과 몸통 주변으로 내려오고, 짧은 밑단에는 둥근 볼륨이 남는다. 허리선을 따라 들어갔다가 다시 퍼지는 전형적인 피트앤드플레어와 달리 몸 전체를 하나의 큰 형태 안에 넣는다.
노란색도 실루엣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네이비처럼 그림자에 형태가 묻히지 않고, 밝은 색이 천의 주름과 부피를 그대로 드러낸다. 붉은 슈즈가 발끝에 작은 대비를 만들지만 옷 전체에서 가장 큰 면적은 여전히 드레스의 볼륨이다.
버블헴은 밑단을 단순히 넓히는 방식과 다르다. 천이 바깥으로 퍼진 뒤 다시 안쪽으로 말리면서 둥근 외곽을 만든다. 다리와 옷 사이에 공간이 생기고, 걷는 동안 밑단의 형태도 계속 달라진다. 벨로티가 이번 컬렉션에 넣은 ‘의도적인 불완전함’도 이런 움직임 속에서 나타난다. 정지된 상태에서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는 옷보다 착용 과정에서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는 옷에 가깝다.
볼륨이 커졌다고 해서 실루엣이 모두 과장된 것은 아니다. 장식과 패턴을 줄이고 한두 가지 색을 넓게 사용하면서 부피를 제어했다. 네이비는 색을 가라앉히고, 페일 블루는 면적을 가볍게 만들며, 옐로는 형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형태는 커졌지만 시각적 정보량까지 함께 늘리지는 않았다.
이런 드레스가 모든 체형에 같은 효과를 내는 것도 아니다. 허리선이 사라지면 상체와 하체의 실제 비율이 감춰지는 대신 옷 자체의 폭이 커지고, 짧은 버블 드레스는 하체 노출이 늘어나면서 옷의 부피와 다리의 대비가 커진다. 어깨와 상체가 작은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큰 소매나 몸판이 옷을 먼저 보이게 할 수 있고, 큰 골격에서는 넓은 면적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
벨로티도 실험적인 비율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맞는다고 전제하지 않았다. 대신 가벼운 소재와 비교적 부드러운 색을 사용해 큰 부피가 지나치게 경직되지 않도록 조절했다. 검정의 단단한 구조보다 밝은 블루와 옐로에서 볼륨이 더 가볍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Jil Sander의 전통적인 미니멀리즘과 볼륨 드레스 사이에는 분명한 긴장도 남는다. 매끈한 선과 절제된 형태를 기대하는 시선에서는 일부 드레스의 큰 부피와 버블헴이 다소 과장돼 보일 수 있다. 특히 허리와 몸의 비율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형태는 브랜드의 익숙한 재단을 선호했던 소비자에게 낯설 수 있다.
다만 이번 변화가 장식적인 맥시멀리즘으로 향한 것은 아니다. 꽃이나 자수, 다층적인 장식을 쌓기보다 하나의 색과 한 덩어리의 천으로 볼륨을 만들었다. 복잡한 장식 대신 면적과 움직임을 늘렸다는 점에서 Jil Sander가 기존의 절제된 방식을 완전히 버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SS27에서 나타나는 ‘더 많은 공간’에 대한 관심과도 연결된다. Vogue Business가 시즌 전망에서 언급한 흐르는 실루엣과 드레이프, 조형적인 볼륨은 몸을 정교하게 조이는 옷과 다른 선택지를 넓힌다. 소비자가 편안함을 찾는 흐름과 여름철 기후 조건도 가벼운 소재와 여유 있는 형태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제시됐다.
Jil Sander는 이런 흐름을 보헤미안 드레스나 장식적인 로맨티시즘으로 옮기지 않았다. 높은 목선과 단색, 장식을 줄인 표면을 유지하면서 몸판과 소매, 밑단의 공간을 늘렸다. 같은 볼륨이어도 브랜드가 유지해 온 절제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재킷과 팬츠에서는 어깨와 허리, 앞중심을 기준으로 몸을 읽을 수 있었다. 넓은 드레스에서는 기준 자체가 약해진다. 허리는 천 속으로 들어가고 골반선도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목에서 밑단까지 이어지는 길이와 옷의 외곽, 걸을 때 생기는 주름이 형태를 결정한다.
벨로티가 말한 취약성과 연약함을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부분도 몸을 감추거나 노출하는 정도보다 이런 구조에 있다. 몸을 강한 재단으로 고정하지 않고 천이 움직일 자리를 남긴다. 형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몸을 옷에 맞추는 정도는 낮아졌다.
Jil Sander SS27의 드레스는 허리를 강조하는 대신 몸 주변에 공간을 만들었다. 네이비에서는 큰 면적을 어두운 단색으로 눌렀고, 페일 블루에서는 가벼운 직물과 밝은 색으로 부피를 덜 무겁게 만들었다. 옐로 드레스는 버블헴과 넓은 소매를 통해 형태 자체를 전면에 내놓았다.
수트에서 시작된 작은 어긋남은 드레스에서 더 넓은 여유분으로 바뀌었다. 반듯한 테일러링과 몸에서 떨어지는 볼륨이 한 컬렉션 안에 함께 남으면서 Jil Sander의 SS27 실루엣도 한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정확한 선을 유지하는 옷 옆에 몸의 형태를 직접 고정하지 않는 드레스를 놓은 것, 이번 시즌 벨로티가 미니멀리즘 안에서 벌린 간격은 그 정도에서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