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l Sander SS27⑥] 회색과 검정 사이 핑크·옐로·블루…뉴트럴에 색을 끼워 넣다

페일 핑크·블루는 넓게, 코발트와 레드는 작게…단색 미니멀웨어 안에서 달라진 컬러 면적

2026-10-01     임우경 기자

[KtN 임우경기자]회색과 검정이 넓은 면적을 차지한 가운데 피치와 연분홍, 옅은 블루, 노랑, 코발트 블루가 드레스와 재킷, 셔츠와 슈즈에 들어갔다. 시몬 벨로티(Simone Bellotti)의 Jil Sander 2027년 봄여름 컬렉션은 브랜드가 익숙하게 사용해 온 뉴트럴 컬러를 걷어내지 않았다. 대신 밝은 색은 한 벌 전체로 넓히고, 강한 색은 목과 발끝처럼 작은 면적에 배치하면서 무채색 중심의 옷장 안에 색이 들어갈 자리를 늘렸다.

검정과 회색 수트에서는 허리와 여밈의 변형이 먼저 드러났지만 색이 들어간 옷에서는 면적 자체가 실루엣을 바꿨다. 연한 핑크의 긴 아우터는 몸 전체에 부드러운 색 면을 만들고, 코발트 블루는 상의나 드레스에서 윤곽을 또렷하게 잡았다. 노란 드레스와 붉은 슈즈처럼 옷과 액세서리의 색을 분리한 조합도 등장했다. 색을 많이 섞기보다 한두 곳의 대비를 남긴 방식이다.

Jil Sander SS27 Puts a Wrinkle In Its Minimalism. 사진=Filippo Fio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피치에 가까운 밝은 색은 검정과 회색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큰 면적을 차지한다. 짧은 장식이나 액세서리에만 사용하지 않고 드레스 전체로 넓혀 색 자체가 실루엣을 만들도록 했다. 장식이 많지 않은 옷일수록 색의 면적과 소재의 움직임이 그대로 드러난다.

피치와 살구 계열은 흰색보다 따뜻하고 브라운보다 가볍다. 검정처럼 몸의 외곽을 강하게 끊지도 않는다. 넓은 드레스나 부드러운 소재에 사용하면 몸과 천 사이의 여유가 색과 함께 드러난다. 벨로티가 이번 컬렉션에서 반복한 느슨한 볼륨과도 충돌이 적다.

밝은 색이라고 모두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몸에 붙는 드레스에서는 색이 신체의 굴곡과 함께 읽히고, 몸에서 떨어지는 옷에서는 색 자체가 하나의 큰 면으로 남는다. Jil Sander SS27은 후자에 가까운 옷을 여러 차례 배치하면서 파스텔을 장식색보다 실루엣의 일부로 사용했다.

뉴트럴 컬러를 중심으로 한 브랜드에서 이런 변화는 색의 수보다 사용 면적에서 더 크게 느껴진다. 회색 재킷 안쪽에 밝은 셔츠를 넣는 정도와 드레스 전체를 피치나 블루로 채우는 것은 결과가 다르다. 벨로티는 두 방식을 함께 사용하면서 컬러의 강도를 조절했다.

Jil Sander SS27 Puts a Wrinkle In Its Minimalism. 사진=Filippo Fio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분홍 아우터는 검정 수트와 다른 방식으로 몸의 외곽을 만든다. 색이 밝아지면서 어깨와 소매, 옷의 길이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검정에서는 그림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주름과 겹침도 핑크에서는 상대적으로 분명해진다.

핑크를 로맨틱한 장식과 연결하지 않은 점도 눈에 띈다. 러플이나 꽃 장식 대신 재킷과 코트처럼 구조가 분명한 옷에 사용하면서 색과 형태의 성격을 분리했다. 밝고 부드러운 색을 선택했지만 실루엣까지 가볍거나 장식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이런 배치는 SS27 컬러 흐름과도 일부 맞닿는다. 시즌 개막 전 패션업계에서는 ‘클린 걸’과 콰이어트 럭셔리의 영향이 약해지고, 색 충돌과 자유로운 스타일링을 포함한 보다 표현적인 방향이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Vogue Business가 정리한 SS27 전망에서도 오렌지와 옐로 계열의 가시성 확대, 서로 다른 색과 프린트를 섞는 스타일링이 주요 변화로 언급됐다. 

Jil Sander는 그런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여러 색을 한 착장에 겹쳐 강한 충돌을 만드는 대신 뉴트럴을 넓게 남기고 핑크나 블루, 옐로를 제한된 방식으로 넣었다. 표현적인 컬러가 늘어나는 시즌 분위기 속에서도 색을 사용하는 방식은 여전히 절제돼 있다.

Jil Sander SS27 Puts a Wrinkle In Its Minimalism. 사진=Filippo Fio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코발트에 가까운 블루는 연한 핑크나 피치와 다르다. 색 자체의 채도가 높아 옷의 선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검정이나 회색 사이에 들어가면 면적이 작아도 시선이 빠르게 이동하고, 넓게 사용하면 실루엣 전체가 하나의 색으로 묶인다.

이번 컬렉션의 블루는 옅은 페일 블루와 강한 코발트 사이를 오간다. 옅은 블루는 넓은 드레스와 연결돼 부피를 가볍게 만들고, 진한 블루는 비교적 간결한 형태에서 색 자체의 존재감을 높인다. 같은 계열 안에서도 명도와 채도를 달리해 옷의 크기와 소재에 맞췄다.

밀라노에서 공개된 다른 SS27 컬렉션에서도 강한 블루와 파스텔의 병치는 나타났다. Genny는 파스텔 블루·핑크·옐로 사이에 코발트 블루와 애시드 그린을 배치했다. 한 시즌 전체의 방향으로 단정하기에는 밀라노와 파리 일정이 진행 중이지만, 뉴트럴이나 파스텔만으로 정리하지 않고 선명한 색을 함께 사용하는 움직임은 여러 컬렉션에서 확인되고 있다. 

Jil Sander가 다른 점은 색을 프린트와 장식에 겹치기보다 단순한 옷의 면으로 남겨두는 데 있다. 코발트가 들어가더라도 실루엣 자체는 비교적 간결하고, 핑크 아우터에서도 장식은 절제된다. 색은 강해졌지만 옷의 정보량 전체가 함께 늘어난 것은 아니다.

노랑 역시 같은 방식으로 사용됐다. 밝은 옐로 드레스는 버블헴과 넓은 부피를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어두운 색이었다면 그림자로 묻힐 수 있는 둥근 밑단과 주름이 밝은 색에서는 그대로 노출된다. 색과 실루엣이 서로를 강조한 경우다.

여기에 붉은 슈즈가 들어가면서 발끝에 또 다른 색이 생긴다. 드레스와 같은 색으로 신발까지 연결하지 않고 작은 면적에서 대비를 만들었다. 전체를 컬러 블로킹으로 채우는 방식보다 한 벌의 옷과 액세서리 사이에서 색을 끊는 방법이다.

슈즈는 이번 컬렉션에서 컬러를 실험하기 가장 부담이 적은 부분이기도 하다. 회색 수트 아래 핑크나 붉은색, 블루 계열 신발을 두면 옷 전체의 뉴트럴 구조는 유지하면서 발끝에만 강한 색이 남는다. 옷장을 크게 바꾸지 않고도 색을 넣을 수 있는 방식이다.

Jil Sander SS27 Puts a Wrinkle In Its Minimalism. 사진=Filippo Fio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한 핑크가 다시 등장하는 착장에서는 색보다 옷의 길이와 소재가 먼저 정리돼 있다. 핑크가 넓은 면적으로 사용돼도 실루엣이 복잡하지 않아 색과 형태가 경쟁하지 않는다. 벨로티가 밝은 색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반복되는 특징이다.

연한 색과 검정 액세서리를 함께 두면 전체가 지나치게 부드럽게 흐르는 것도 막을 수 있다. 가방과 슈즈처럼 형태가 분명한 소품을 어두운 색으로 두면 옷의 밝은 면적과 경계가 생긴다. 반대로 회색과 검정 착장에서는 신발이나 이너에 밝은 색을 넣어 무채색의 면적을 나눈다.

가방에서도 같은 절제가 이어졌다. 기하학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색이나 표면으로 변화를 주면서 옷의 실루엣과 별도로 작은 구조를 만든다. 드레스의 부피가 큰 경우에는 가방의 형태를 단순하게 두고, 수트처럼 옷의 면이 정리돼 있을 때는 액세서리의 색이 상대적으로 더 또렷하게 보인다.

색이 많아졌다고 해서 Jil Sander가 뉴트럴에서 벗어난 컬렉션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검정과 회색, 크림과 네이비가 여전히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핑크와 옐로, 블루는 그 바탕 위에서 면적을 달리하며 들어왔다. 컬러가 컬렉션 전체를 지배했다기보다 단색 미니멀웨어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 쪽에 가깝다.

SS27 컬러 트렌드에서도 선명한 색과 시즌리스 뉴트럴이 동시에 거론되고 있다. 뉴욕 패션위크를 앞두고 공개된 팬톤 컬러 전망 역시 대담한 색과 계절 구분이 약한 기본색이 함께 사용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WWD) 하나의 색 방향으로 시즌이 정리되기보다 안정적인 기본색 위에 강한 컬러를 선택적으로 더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Jil Sander에서는 이런 병치가 특히 명확하다. 회색 수트 전체를 컬러로 바꾸지 않고 셔츠 칼라나 스타킹, 슈즈에 색을 남기는가 하면, 반대로 드레스와 아우터에서는 피치와 핑크, 블루를 넓은 면적으로 사용한다. 색을 어디에 얼마나 둘 것인지가 옷의 인상을 가르는 기준이 됐다.

강한 색을 사용하는 방식에도 한계는 있다. 핑크와 블루, 옐로를 한꺼번에 늘리면 Jil Sander 특유의 절제된 구조보다 색 자체가 먼저 들어올 수 있다. 이번 컬렉션은 대부분 한 착장에서 한두 색의 대비만 남기면서 그 위험을 줄였다. 컬러가 늘어났지만 장식적인 방향으로 급격히 움직이지 않은 이유다.

회색과 검정 사이에 들어온 핑크와 옐로, 블루는 Jil Sander의 미니멀리즘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뉴트럴 수트와 코트는 여전히 남아 있고, 단색을 넓게 사용하는 방식도 유지됐다. 달라진 부분은 밝고 강한 색을 예외적인 포인트에만 가두지 않았다는 데 있다.

피치는 드레스 전체를 덮고, 연분홍은 아우터의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코발트 블루는 단순한 형태를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붉은색과 핑크, 블루는 슈즈와 스타킹처럼 작은 부분에서도 사용됐다. 미니멀한 옷의 구조를 유지한 채 컬러의 면적을 넓혔다가 다시 줄이는 방식이다.

벨로티가 SS27에서 바꾼 것은 Jil Sander의 기본색 자체보다 색을 쓰는 범위에 가깝다. 검정과 회색만으로 완성하던 옷장에 피치와 핑크, 블루와 옐로가 들어왔지만 색의 수를 과도하게 늘리지는 않았다. 정돈된 수트와 느슨한 드레스, 구겨진 재킷과 볼륨 있는 아우터 사이에서 컬러 역시 한쪽으로 고정되지 않았다. 뉴트럴을 남긴 채 밝은 색의 면적을 조금씩 넓힌 것이 SS27에서 확인되는 또 하나의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