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Jil Sander SS27, 반듯함에 주름을 남긴 미니멀리즘
재킷 허리를 접고 셔츠 칼라를 밖으로, 드레스에는 몸보다 넓은 공간…시몬 벨로티가 손댄 것은 ‘정돈의 규칙’
[KtN 임우경기자]회색 재킷의 허리 한쪽으로 천이 모였다. 셔츠 칼라는 재킷 라펠 밖으로 올라왔고, 밑단은 재킷 아래까지 길게 내려왔다. 네이비와 페일 블루 드레스는 허리를 조이지 않은 채 몸 주변에 넓은 공간을 남겼다. 검정과 회색이 중심을 잡은 옷 사이에는 피치와 핑크, 옐로, 코발트 블루가 들어왔다. 시몬 벨로티(Simone Bellotti)의 Jil Sander 202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익숙한 코트와 수트, 셔츠와 펜슬 스커트는 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옷을 얼마나 반듯하게 만들고, 얼마나 단정하게 입어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이었다.
9월 23일 밀라노 피아차 카스텔로의 Jil Sander 본사에서 열린 SS27은 벨로티의 세 번째 Jil Sander 쇼다. 벨로티는 이번 컬렉션을 준비하며 “미니멀리즘이 너무 주류가 됐다”고 말했다. 한때 장식을 덜어낸 실루엣과 정교한 재단만으로 충분히 구별됐던 미니멀리즘은 이제 패션 시장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검정 재킷과 회색 팬츠, 흰 셔츠, 간결한 코트만으로 브랜드의 차이를 만들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벨로티가 택한 방법은 더 많은 것을 더하는 쪽이 아니었다.
재킷은 여전히 재킷이고 팬츠는 여전히 팬츠다. 코트와 펜슬 스커트도 형태를 유지한다. 대신 재킷의 허리를 한쪽으로 당기고, 앞섶을 조금 비틀고, 평평하게 정리할 수 있는 원단에 주름을 남겼다. 셔츠는 재킷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았고, 칼라는 라펠 위로 빠져나왔다. 완성된 옷을 다시 해체하기보다 잘 갖춰진 옷의 일부를 의도적으로 흐트러뜨린 방식에 가깝다.
회색과 차콜 수트에서 변화는 허리에 집중됐다. 어깨와 소매는 비교적 반듯하지만 앞섶은 몸의 중심을 정확하게 따라 내려오지 않는다. 한쪽으로 모인 천 때문에 밑단의 좌우 높이가 달라지고, 단추를 높게 채운 재킷에서는 아래쪽 원단이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전통적인 수트가 다트와 절개를 이용해 몸의 굴곡을 매끈하게 정리했다면 벨로티는 접힌 원단 자체로 허리를 만들었다.
수트의 긴장감은 남아 있다. 어깨까지 무너뜨리거나 소매를 분리하는 식의 적극적인 해체는 하지 않았다. 팬츠도 긴 세로선을 유지한다. 그래서 허리에 생긴 한 번의 접힘이나 비스듬한 앞섶이 더 크게 들어온다. 장식이 적은 옷에서는 작은 어긋남을 숨길 곳이 없다.
벨로티가 언급한 취약함(fragility)과 연약함(vulnerability)도 여기에서 실제 옷의 형태로 연결된다. 부드러운 색이나 얇은 드레스만으로 연약함을 설명하지 않는다. 가장 단단해야 할 재킷에도 주름을 남기고, 가장 정확해야 할 여밈을 조금 이동시킨다. 수트가 가진 강한 외형 안에 통제되지 않은 부분을 남겼다.
셔츠에서는 변화가 더 일상적이다. 칼라를 재킷 안에 정리하지 않고 밖으로 올렸으며, 긴 셔츠 밑단은 재킷 아래에 그대로 드러냈다. 출근길에 급하게 입은 듯한 상태를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재킷과 셔츠의 길이 차를 디자인 안에 넣었다. 회색 재킷과 팬츠 사이로 흰 셔츠가 길게 내려오면 허리선은 가려지고 상체는 길어진다. 푸른 칼라가 회색 재킷 위로 올라오면 얼굴 가까이에 작은 색 면이 생긴다.
Jil Sander가 다룬 ‘흐트러짐’은 그래서 무질서와 다르다. 셔츠가 밖으로 나와도 어깨는 정돈돼 있고, 재킷이 접혀도 팬츠의 선은 유지된다. 한 벌 전체를 느슨하게 만들지 않고 정확함과 어긋남을 한 옷 안에 동시에 남긴다.
드레스에서는 접근이 달라졌다. 네이비와 페일 블루, 옐로 드레스는 허리와 골반을 따라 신체의 비율을 선명하게 나누지 않는다. 천은 몸에서 떨어지고 소매와 몸판에는 충분한 여유가 생긴다. 버블헴은 밑단을 바깥으로 부풀렸다가 다시 안쪽으로 말아 다리와 옷 사이에 공간을 만든다.
몸을 예쁘게 보이게 만드는 하나의 비율을 제안하는 옷과는 거리가 있다. 잘록한 허리나 긴 다리를 강조하기보다 천이 차지하는 면적을 그대로 남긴다. 걷는 동안 원단이 접히고 펴지면서 옷의 외곽도 계속 달라진다. 수트에서 허리 중심을 몇 센티미터 옮겼다면 드레스에서는 허리 자체의 존재감을 낮췄다.
다만 큰 볼륨이 곧 편안한 옷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몸에서 멀리 떨어지는 드레스는 체격에 따라 사람이 옷보다 작아 보일 수 있고, 허리에 천이 집중된 재킷은 복부와 골반의 면적을 넓힐 수 있다. 버블헴 역시 다리와 옷의 부피 차이를 크게 만든다. 벨로티의 실험적인 비율이 모든 체형에 같은 결과를 주지는 않는다. 런웨이에서 흥미로운 구조가 실제 옷장에서는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소재도 매끈함만을 향하지 않았다. 검정 가죽은 단단하게 빛나고, 얇은 직물은 걸을 때마다 접히면서 다른 명암을 만든다. 주름진 재킷에서는 원단의 접힘 자체가 형태를 결정하고, 일본 풍경을 담은 펜슬 스커트에서는 직물의 이미지가 장식의 역할을 맡는다.
미니멀리즘에서 소재가 중요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다만 SS27에서는 좋은 소재를 얼마나 깨끗하게 정리했는가보다 표면에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가 더 많이 들어왔다. 광택과 구김, 얇음과 두꺼움, 단단함과 유연함이 단색 옷 안에서 차이를 만든다.
최근 패션에서 미니멀웨어를 둘러싼 변화도 여기와 맞닿는다. 몇 시즌 동안 ‘클린’한 스타일과 절제된 럭셔리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무채색 재킷과 단순한 셔츠, 장식 없는 가방은 더 이상 소수 브랜드만의 특징이 아니게 됐다. 2027년 봄여름 시즌에는 이런 기본형을 유지하면서 비대칭과 볼륨, 레이어링과 소재의 질감으로 차이를 만드는 움직임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Jil Sander는 흐름을 과장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프린트를 컬렉션 전체로 넓히지 않았고, 여러 색을 한꺼번에 겹치지도 않았다. 비대칭 역시 재킷 전체를 해체할 정도로 커지지 않았다. 익숙한 옷의 한두 곳을 조정하는 선에서 멈춘다.
컬러는 변화의 폭을 조금 더 넓혔다. 회색과 검정, 네이비가 기본을 이루는 가운데 피치와 연분홍, 페일 블루, 옐로, 코발트 블루가 들어왔다. 밝은 색을 슈즈나 가방에만 제한하지 않고 드레스와 아우터 전체에 사용한 점이 이전의 뉴트럴 중심 옷장과 차이를 만든다.
핑크라고 해서 러플이나 꽃 장식을 붙이지 않았고, 옐로라고 해서 실루엣을 단순하게 줄이지도 않았다. 연분홍은 구조적인 아우터를 덮고, 노란색은 큰 버블 드레스의 부피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반대로 붉은색과 블루는 스타킹과 슈즈처럼 작은 면적으로 들어가 검정과 회색을 끊었다. 색을 많이 쓰기보다 면적을 조절했다.
벨로티가 SS27에서 계속 건드린 것은 ‘완성된 상태’다. 재킷은 주름이 없어야 하고, 셔츠는 재킷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좌우 밑단은 같아야 하고, 허리는 정확하게 잡혀야 한다는 익숙한 규칙을 하나씩 느슨하게 만들었다.
패션에서 완벽하게 정돈된 사람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세련됨과 연결돼 왔다. 구김 없는 셔츠, 몸에 정확하게 맞는 재킷, 제한된 색, 매끈한 소재는 미니멀웨어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벨로티는 정반대의 옷을 만들기보다 기존 기준에 작은 예외를 계속 집어넣었다.
주름은 지워야 할 흔적이 아니라 옷의 형태가 됐고, 밖으로 나온 셔츠는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아니라 재킷과 다른 길이를 만드는 요소가 됐다. 몸보다 큰 드레스는 허리를 감추면서 천 자체의 부피를 남겼다. 가죽과 광택, 풍경이 들어간 직물은 단색과 무장식만으로 설명되던 미니멀웨어의 표면을 넓혔다.
모든 선택이 같은 밀도로 작동한 것은 아니다. 일부 허리 셔링은 정교한 비대칭보다 단순한 구김에 가까워 보일 수 있고, 큰 드레스는 Jil Sander 특유의 날카로운 비율보다 부피가 먼저 들어온다. 컬러 스타킹과 강한 슈즈도 절제된 옷을 선호해 온 시선에서는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불완전함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작업은 우연한 흐트러짐과 디자인된 어긋남 사이의 간격이 좁다는 부담을 안는다.
벨로티는 그 간격을 크게 벌리지 않았다. 어깨는 남겨두고 허리를 접었으며, 수트를 유지하면서 셔츠를 밖으로 꺼냈다. 펜슬 스커트는 그대로 두고 표면을 바꿨고, 검정과 회색을 남긴 채 핑크와 블루의 면적을 넓혔다. 미니멀리즘의 기본형을 유지하면서 완성도를 판단하는 기준만 조금 옮겼다.
Jil Sander SS27이 향하는 곳은 화려함도, 해체도 아니다. 반듯한 수트와 단순한 코트가 이미 충분히 익숙해진 시대에 미니멀리즘이 무엇으로 차이를 만들 수 있는지를 옷의 세부에서 다시 찾는다.
회색 재킷에는 주름이 남았고, 셔츠는 재킷 밖으로 내려왔다. 네이비 드레스는 허리를 감췄으며, 노란 버블헴은 몸보다 넓은 외곽을 만들었다. 검정과 회색 사이에는 핑크와 블루가 들어왔다. 코트와 수트, 셔츠와 펜슬 스커트는 그대로 남았다.
벨로티가 바꾼 것은 Jil Sander의 옷장이 아니라 옷장을 정리하는 규칙에 가깝다. 반듯함을 버리지 않으면서 주름을 허용하고, 절제를 유지하면서 색의 면적을 넓혔다. 2027년 봄여름 Jil Sander가 남긴 변화는 ‘더 적게’ 입는 미니멀리즘보다, 적게 입더라도 반드시 완벽하게 정리할 필요는 없다는 쪽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