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cci SS27①] 구찌 SS27, 매장으로 만든 런웨이
박물관·타임스스퀘어 지나 밀라노 컨벤션센터에 부티크 재현 거대한 배경 대신 수트·아우터·스커트·드레스가 실제 놓일 자리를 택한 뎀나
[KtN 임우경기자]밀라노의 대형 컨벤션센터 안에 구찌 매장이 들어섰다. 낮은 벨벳 의자와 넓은 출입구, 밝게 정돈된 바닥과 매장 안쪽으로 이어지는 동선까지 실제 부티크에 가깝게 만들었다. 9월 25일 열린 Gucci SS27 ‘The Store Show’의 무대다. 하루짜리 패션쇼를 위해 만든 공간이지만, 구찌가 앞으로 실제 매장에 적용할 새 디자인을 먼저 공개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런웨이 세트와는 성격이 달랐다.
뎀나(Demna)가 구찌에서 택해 온 장소를 놓고 보면 변화는 더 분명하다. 2026 FW는 밀라노 팔라초 델레 신틸레(Palazzo delle Scintille)를 거대한 전시장으로 바꿨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허가를 받아 고대 조각을 스캔하고 복제한 조형물이 런웨이를 둘러쌌다. 피렌체 방문 뒤 구찌가 이탈리아 문화에서 차지해 온 위치를 새삼 확인했다는 뎀나는 당시 쇼장을 ‘박물관’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석 달 뒤 뉴욕에서는 무대를 도시 한복판으로 옮겼다. Resort 2027은 타임스스퀘어에서 열렸다. 쇼를 앞두고 약 50개의 대형 전광판에는 자연 풍경과 실제 구찌 제품, 가상의 구찌 상품 광고까지 흘렀다. 세계에서 가장 노출이 많은 상업 공간 가운데 하나가 쇼장이 됐다.
밀라노에서 다시 만난 구찌는 박물관도, 타임스스퀘어도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옷과 가방, 신발을 고르고 사는 매장을 세웠다. 제작 규모가 작아진 것은 아니다. 대형 컨벤션센터 내부를 신규 구찌 매장처럼 보일 정도로 다시 꾸몄다. 달라진 쪽은 규모보다 시선이 향하는 곳이다. 문화적 권위와 도시의 스펙터클을 끌어오던 무대에서 실제 상품이 놓이는 자리로 이동했다.
옷의 구성도 매장이라는 선택과 떨어져 있지 않다. 검정과 흰색 수트뿐 아니라 화이트 팬츠, 브라운 해링턴 재킷, 네이비 퀼팅 재킷, 블레이저와 스트라이프 폴로셔츠, 니트가 남성복에 들어갔다. 가죽 재킷과 데님, 로퍼와 벨트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정장 하나로 남성복의 인상을 고정하기보다 출근복과 주말 옷, 가죽 아우터와 프레피 스타일을 한 컬렉션 안에 함께 담았다.
뎀나가 구찌에 합류한 뒤 이어온 작업과 비교하면 SS27의 차이는 옷의 종류에서 드러난다. 2025년 ‘La Famiglia’에서는 구찌를 여러 인물 유형으로 나눠 살폈고, 2026 FW에서는 몸에 붙는 실루엣과 1990년대 구찌의 관능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됐다. Resort 2027에서는 ‘GucciCore’를 앞세워 일상복과 구찌의 익숙한 디자인 요소를 다시 끌어왔다.
SS27에서는 어느 하나를 대표 이미지로 세우기보다 수트와 프레피웨어, 가죽, 승마복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 스커트와 이브닝드레스까지 한 컬렉션에 함께 담았다. 뎀나는 이번 쇼를 준비하며 구찌가 자신에게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1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여성복도 한 가지 모습에 머물지 않는다. 어깨를 뾰족하게 세운 검정 재킷과 미니·미디 스커트, 블라우스가 자리하고, 타탄 스커트와 부피가 큰 아우터, 굵은 체인 장식이 더해진다. 몸에 밀착되는 드레스와 비대칭으로 떨어지는 이브닝웨어까지 포함됐다. 1980~90년대 오피스웨어를 떠올리게 하는 옷과 펑크 계열의 타탄, 저녁용 드레스가 같은 컬렉션에 들어왔다.
구찌의 오래된 상징도 적극적으로 사용됐다. 홀스빗은 로퍼에서 벗어나 벨트와 팬츠, 셔츠와 아우터까지 자리를 옮겼다. 여러 개를 한꺼번에 겹친 벨트가 등장하고 팬츠에는 크기를 키운 홀스빗이 달렸다. 레드·그린 스트라이프와 모노그램도 남았다. 과거의 표식을 걷어내고 새로운 장식으로 교체하기보다 이미 알려진 구찌의 요소를 크기와 위치를 바꿔 다시 사용했다.
매장이 무대가 됐다고 해서 옷까지 얌전해진 것은 아니다. 수트와 해링턴 재킷, 화이트 팬츠처럼 비교적 익숙한 옷 옆에는 여러 개의 벨트, 부피가 큰 아우터, 타탄과 체인, 강한 가죽 스타일링이 자리한다. 홀스빗과 모노그램처럼 구찌를 곧바로 떠올리게 하는 요소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SS27을 단순히 ‘절제된 컬렉션’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상에서 활용하기 쉬운 옷이 늘었지만 뎀나가 이전부터 사용해 온 과장된 비례와 장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익숙한 옷과 강한 장식을 한 컬렉션 안에 병치한 쪽에 가깝다.
뎀나는 쇼 노트에서 SS27을 자신의 “complete personal vision for the brand”라고 표현했다. 한 사람의 구찌를 완성했다는 선언에 비해 실제 옷은 한 가지 모습으로 쉽게 압축되지 않는다. 테일러링과 프레피, 가죽과 타탄, 미니 스커트와 긴 드레스가 함께 들어 있다. 서로 다른 상황에서 입을 옷을 한 매장에 갖춰 놓은 모습이 이번 컬렉션에 더 가깝다.
블랙과 화이트, 퍼플과 메탈릭 계열의 드레스까지 더해지면서 SS27의 범위는 데이웨어에서 이브닝웨어까지 넓어진다. 남성 수트와 화이트 팬츠, 가죽 재킷, 여성용 재킷과 타탄 스커트, 긴 드레스가 한 컬렉션을 구성한다.
FW26처럼 관능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밀어붙이거나 Resort 2027처럼 도시 전체를 쇼의 배경으로 삼았던 것과는 다른 선택이다. SS27에서는 옷을 둘러싼 세계를 크게 만드는 대신 서로 다른 구찌 제품을 한곳에 모았다.
구찌는 밀라노에서 먼저 선보인 새 매장 디자인을 앞으로 실제 점포에 순차적으로 적용할 예정이다. 박물관에서 타임스스퀘어로, 다시 부티크로 이동한 세 번의 쇼 가운데 SS27은 실제 고객과 가장 가까운 장소를 택했다. 뎀나가 구찌에 합류한 뒤 브랜드의 과거와 이미지를 여러 방향에서 끌어낸 끝에, 이번에는 옷과 가방, 신발이 실제 놓이는 매장을 런웨이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