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cci SS27③] 홀스빗, 로퍼 벗어나 벨트·팬츠·포켓으로
구찌 상징 크기 키우고 여러 개 겹쳐 사용 레드·그린 스트라이프와 모노그램까지, 뎀나가 SS27에 남긴 하우스의 표식
[KtN 임우경기자]말의 재갈에서 가져온 홀스빗(horsebit)이 로퍼를 벗어났다. Gucci SS27에서는 익숙한 금속 장식의 위치와 크기가 크게 달라졌다. 벨트에는 홀스빗 여러 개가 겹쳐졌고, 팬츠에는 허리와 골반 부근을 가로지를 정도로 커진 장식이 들어갔다. 셔츠와 아우터에서는 포켓 주변의 작은 금속 부품으로 모습을 바꿨다. 구찌가 오래 사용해 온 상징을 새로 만드는 대신, 이미 알려진 형태를 옷 곳곳으로 옮긴 것이 이번 컬렉션에서 눈에 띄는 변화다.
홀스빗은 크기가 작을 때와 커졌을 때 역할부터 달라진다. 로퍼 위의 금속 장식은 신발의 일부로 받아들여지지만, 허리 위에 여러 개가 겹쳐지면 옷 전체의 인상을 좌우한다. 검정 재킷과 팬츠처럼 색을 절제한 착장에서는 금속의 반사와 반복이 더욱 두드러진다. 재킷이나 팬츠의 형태보다 허리 주변으로 시선이 모이면서 장식이 스타일의 중심에 가까워진다.
여러 개를 한꺼번에 사용한 벨트는 전통적인 가죽 벨트와도 거리가 있다. 허리를 고정하는 기능보다 금속 장식을 보여주는 비중이 커졌다. 뎀나(Demna)가 구찌의 상징을 조심스럽게 숨기기보다 눈에 띄는 위치로 끌어냈다는 사실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팬츠에 사용한 홀스빗은 변화가 더 크다. 작은 금속 부속을 허리 가까이에 크게 배치하면서 로퍼에서 보던 장식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만든다. 신발에서는 몇 센티미터 안에 머물던 형태가 옷의 넓은 면적을 차지하면서 장식과 옷의 경계도 흐려졌다.
크기를 키우는 선택은 단순한 장식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홀스빗을 알아보는 순간 구찌라는 브랜드가 함께 떠오른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옷의 새로운 절개나 복잡한 제작 기법만으로 구찌를 설명하기보다 브랜드가 이미 갖고 있는 상징을 크게 드러내는 쪽에 가깝다.
SS27에서 같은 역할을 하는 요소는 홀스빗만이 아니다. 레드와 그린을 맞붙인 스트라이프, 모노그램, 광택이 강한 가죽도 여러 착장에 들어갔다. 서로 형태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별도의 설명이 없어도 구찌를 떠올릴 수 있는 요소들이다.
레드·그린 스트라이프는 색 자체가 강하다. 검정이나 브라운을 중심으로 한 옷 사이에 들어가면 작은 면적만 사용해도 존재감이 커진다. 모노그램 역시 옷 전체를 덮기보다 안감이나 일부 면적에 들어가면서 무늬가 노출되는 순간 브랜드 이름을 대신한다.
뎀나는 구찌에 합류한 뒤 과거의 상징을 없애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SS27에서는 오히려 홀스빗과 스트라이프, 모노그램이 한 컬렉션 안에서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다. 다만 사용 방식은 과거 제품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과 다르다. 홀스빗은 크기가 달라지고, 위치가 이동하며, 여러 개가 겹쳐진다. 익숙한 상징의 형태는 유지하면서 옷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바꿨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오래된 장식을 그대로 반복하면 복각에 가까워지고, 기존 상징을 모두 걷어내면 새 디자이너의 개인적 색깔이 앞선다. SS27에서는 어느 쪽도 극단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구찌라는 사실을 즉시 알아볼 수 있는 요소는 남기되, 뎀나가 즐겨 사용해 온 과장과 반복을 그 위에 얹었다.
금속 장식이 많아진 착장에서는 가죽도 함께 힘을 받는다. 검정과 짙은 브라운의 가죽 재킷, 벨트, 팬츠가 홀스빗과 만나면서 옷의 표면이 단단해지고 무게감도 커진다. 프레피 계열의 화이트 팬츠와 해링턴 재킷에서 보였던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와는 다른 모습이다.
가죽과 금속의 조합은 뎀나가 이전 작업에서 자주 사용했던 거친 스타일과도 이어진다. 다만 SS27에서는 그 거친 인상이 구찌의 기존 상징과 결합한다. 벨트와 하드웨어를 과하게 쌓는 방식은 뎀나의 취향에 가깝고, 그 위에 올라간 홀스빗은 구찌의 것이다. 두 요소가 같은 옷 안에서 만난다.
구찌라는 이름을 크게 새긴 로고보다 홀스빗이 더 직접적으로 작동하는 순간도 있다. 로고를 읽지 않아도 형태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속 장식을 크게 키우거나 여러 개 반복하면 브랜드 상징 자체가 패턴처럼 변한다. SS27에서 홀스빗이 단순한 신발 장식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차지하게 된 배경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셔츠와 아우터에 들어간 작은 홀스빗은 반대 방향의 접근을 보여준다. 팬츠와 벨트에서는 크기를 크게 키웠지만 포켓 주변에서는 버튼에 가까운 크기로 줄였다. 같은 형태를 크게도 쓰고 작게도 쓰면서 옷의 성격에 따라 존재감을 조정했다. 홀스빗 하나를 반복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크기와 위치를 계속 바꾼 셈이다.
SS27의 홀스빗을 ‘전통의 현대화’라고만 부르면 변화의 구체적인 모습이 가려진다. 실제로 달라진 것은 훨씬 단순하고 분명하다. 로퍼에 있던 장식이 벨트와 팬츠, 셔츠와 아우터로 이동했고, 크기는 극단적으로 커졌다가 버튼만큼 작아졌다. 여러 개를 겹쳐 쓰는 방식도 더해졌다.
구찌가 오래 쌓아 온 상징을 뎀나가 자신의 디자인으로 완전히 덮어버린 것도 아니다. 홀스빗과 모노그램, 레드·그린 스트라이프는 여전히 구찌를 가장 빠르게 알아보게 하는 요소로 남았다. 대신 어느 위치에 놓고 얼마나 크게 보여줄지를 바꾸면서 익숙한 상징의 인상을 달리했다.
SS27에서 구찌의 과거는 조용히 보관되지 않았다. 허리를 감싸고, 팬츠 위에 크게 걸리고, 포켓의 작은 금속 장식으로 다시 나타났다. 뎀나가 구찌의 상징을 다룬 방식은 새 로고를 만들거나 오래된 표식을 없애는 쪽보다, 이미 존재하는 홀스빗을 옷의 여러 부분으로 옮겨 더 자주 보이게 만드는 데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