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cci SS27⑥] 구찌 SS27, 매장에 다시 채운 수트·재킷·드레스
상반기 매출 27억5700만유로, 전년보다 9% 감소…2분기 감소폭은 2%까지 축소 제품 구성 손보는 케어링과 맞물린 ‘Store Show’, 디자인 변화와 실적 회복은 따로 봐야
[KtN 임우경기자]구찌의 2027 SS 컬렉션에는 검정 수트와 로퍼부터 흰 바지, 해링턴 재킷, 퀼팅 아우터, 가죽 재킷, 타탄 스커트, 퍼, 이브닝드레스까지 들어갔다. 남성복과 여성복을 합치면 출근할 때 입는 재킷부터 주말용 아우터, 저녁용 드레스까지 한 매장을 채울 만한 옷이 펼쳐진다. 뎀나(Demna)가 밀라노 컨벤션센터에 실제 부티크를 닮은 공간을 만들고 쇼 이름까지 ‘The Store Show’로 정한 배경과 옷의 구성이 맞닿는 대목이다.
구찌가 처한 사업 환경을 함께 놓으면 SS27의 변화는 디자인만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2026년 상반기 구찌 매출은 27억5700만유로로 전년 동기보다 보고 기준 9%, 비교 가능한 기준으로는 5% 줄었다. 직영 매장 매출도 같은 기준으로 6% 감소했다. 다만 2분기 매출은 14억1000만유로로 감소폭이 보고 기준 3%, 비교 가능한 기준 2%까지 좁혀졌다. 1분기 비교 가능한 매출 감소율 8%와 비교하면 하락폭이 상당히 줄었다. Kering
케어링은 올해 들어 구찌의 제품 구성을 다시 손보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1분기 실적 발표에서는 제품 구성을 재정비하고 품목별 집중도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새 컬렉션을 연중 순차적으로 매장에 투입한다고 설명했다. 구찌를 그룹의 최우선 현안으로 규정한 것도 같은 자리였다. Kering
SS27에서 수트와 재킷, 팬츠가 넓게 등장한 사실을 곧바로 실적 개선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컬렉션 제작과 기업의 영업 전략에는 여러 단계의 의사결정이 개입하고, 디자인 하나가 매출을 좌우하지도 않는다. 다만 케어링이 제품 구성을 손보는 시기에 뎀나의 런웨이에서도 특정 이미지 하나보다 실제 매장에서 취급할 수 있는 옷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남성복에서 변화는 일상적인 품목을 통해 드러났다. 검정과 흰색 수트만 밀어붙이지 않고 브라운 해링턴 재킷, 네이비 퀼팅 재킷, 블레이저, 폴로셔츠와 니트, 화이트 팬츠를 함께 넣었다. 가죽 재킷과 데님도 빠지지 않았다. 뎀나 특유의 강한 실루엣을 하나 정해 반복하기보다 서로 다른 가격대와 쓰임을 가진 옷이 넓게 섞였다.
검정 코트와 재킷처럼 구찌의 기존 고객에게 낯설지 않은 품목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디자인의 변화는 기본적인 옷을 없애는 쪽보다 비례와 길이, 스타일링을 조정하는 쪽에서 나타났다. 남성 수트의 재킷은 몸에 가까워졌고 팬츠는 로퍼를 가리지 않을 정도로 짧아졌다. 화이트 팬츠에는 블레이저뿐 아니라 짧은 아우터와 니트를 붙였다.
구찌의 오래된 상징은 오히려 더 눈에 띄게 사용됐다. 홀스빗은 로퍼를 벗어나 벨트와 팬츠, 포켓으로 이동했고, 레드·그린 스트라이프와 모노그램도 여러 옷에 남았다.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색깔을 강조하기 위해 브랜드의 기존 표식을 줄이기보다 소비자가 이미 알고 있는 구찌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브랜드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과 일상적으로 입을 수 있는 옷이 동시에 늘어난 것은 리테일에서 중요한 변화다. 강한 런웨이 이미지가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관심을 끌 수는 있지만, 매출은 가죽제품과 신발, 의류를 실제 고객이 반복해서 구매할 때 만들어진다. SS27은 무대에서 시선을 끄는 몇 벌과 매장에 걸릴 옷을 크게 갈라놓기보다 두 영역을 한 컬렉션 안에 섞었다.
여성복에서도 비슷한 폭이 나타난다. 블랙 재킷과 스커트, 블라우스는 비교적 익숙한 옷이지만 어깨를 날카롭게 세우고 허리를 좁혀 형태를 바꿨다. 미니와 미디 길이를 함께 쓰고, 타탄과 굵은 체인, 볼륨이 큰 아우터를 더했다. 같은 여성복 안에 직장복에 가까운 옷과 장식성이 강한 옷을 동시에 넣었다.
뎀나가 구찌에 들어온 뒤 공개한 컬렉션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커진다. 2025년 ‘La Famiglia’는 여러 인물을 설정해 구찌의 성격을 나눠 살폈고, 2026 FW에서는 몸에 붙는 옷과 관능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뉴욕에서 공개한 Resort 2027은 ‘GucciCore’를 앞세워 일상복을 끌어왔다. SS27에서는 특정 인물이나 한 가지 분위기를 강조하기보다 남성과 여성, 정장과 캐주얼, 데이웨어와 이브닝웨어를 한꺼번에 담았다.
컬렉션을 실제 매장처럼 꾸민 공간에서 공개한 것도 앞선 쇼와 차이가 있다. 2026 FW의 박물관형 무대와 Resort 2027의 타임스스퀘어는 구찌를 문화와 도시의 큰 배경 안에 놓았다. SS27에서는 옷이 최종적으로 판매되는 장소가 무대가 됐다. 구찌는 쇼에 사용한 매장 디자인을 실제 점포에도 순차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캐주얼웨어에서는 이런 변화가 더 직접적이다. 부피가 큰 봄버 재킷과 셔츠, 니트, 팬츠와 스커트를 겹쳐 입은 옷은 전통적인 구찌 정장이나 이브닝드레스와 거리가 있다. 한 매장 안에서 정장과 캐주얼, 아우터와 가죽제품을 함께 선택하는 실제 소비 환경에 가까운 구성이 만들어졌다.
구찌의 실적에서도 매장 판매는 중요하다. 2026년 2분기 직영점 매출은 비교 가능한 기준으로 전년보다 2% 줄었다. 감소세 자체는 이어졌지만 1분기보다 7%포인트 개선됐다. 북미가 성장을 유지했고 서유럽과 아시아·태평양에서도 흐름이 나아졌지만 중국 본토는 여전히 어려운 시장으로 남았다. 상반기 구찌 영업이익은 4억6800만유로, 영업이익률은 17.0%였다. Kering
구찌의 2026년 2분기 실적은 SS27 공개보다 앞선 4~6월 영업 성과다. 9월 말 공개된 SS27의 판매 반응은 이후 실적에 반영된다. 2분기 매출 감소폭 축소는 이번 컬렉션의 성과와는 시차가 있으며, SS27이 공개됐을 당시 구찌의 영업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에 가깝다.
케어링도 회복이 끝났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2분기 실적 발표 뒤 루카 데 메오(Luca de Meo) 최고경영자는 회복 과정이 직선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는 구찌 매출이 12개 분기 연속 감소했지만 2분기 감소폭은 시장 예상보다 작았다고 전했다.
매출이 장기간 줄어든 브랜드에는 런웨이의 화제만큼 매장에 들어갈 제품이 중요하다. 최근 명품업계 전반도 중산층 소비 둔화와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매장 투자와 고객 경험, 제품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밀라노와 파리의 주요 브랜드가 패션쇼에 상당한 비용을 투입하면서도 매장 개편과 제품 조정을 병행하는 배경이다.
퍼플 롱드레스와 이브닝드레스까지 더해지면서 SS27은 수트와 아우터, 캐주얼웨어에서 저녁용 드레스까지 폭넓은 구성을 갖췄다.수트와 흰 바지, 해링턴 재킷만으로 컬렉션을 현실적인 일상복에 묶지 않았고, 퍼와 비대칭 드레스, 광택 소재도 남겼다. 매장에서 판매하기 쉬운 기본 품목과 런웨이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옷을 따로 떼지 않고 같은 컬렉션 안에 넣었다.
SS27의 성격을 ‘상업적인 구찌’라는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교적 익숙한 수트와 아우터가 늘어난 동시에 크게 확대한 홀스빗, 여러 개를 겹친 벨트, 타탄과 체인, 퍼와 컷아웃 드레스도 존재한다. 뎀나의 과장을 지우고 무난한 옷만 늘린 컬렉션은 아니다. 매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옷의 폭을 넓히면서 구찌와 뎀나를 알아볼 수 있는 요소를 곳곳에 남긴 쪽에 가깝다.
구찌의 매출 회복 속도는 디자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가격, 매장망,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 시장의 소비, 가죽제품과 신발 판매, 고객 유입까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케어링은 올해 75개였던 지난해 순폐점에 이어 2026년 상반기에만 직영점 84개를 순감축했고, 연간 100개 순감축을 목표로 유통망도 손보고 있다. 그룹 차원의 비용과 매장 구조 조정이 컬렉션 교체와 동시에 진행되는 셈이다.
케어링의 다음 실적 발표는 10월 22일이다. 발표 대상은 2026년 3분기 매출이어서 SS27 자체의 판매 성적을 판단할 숫자는 아니다. 대신 2분기에 줄어든 구찌의 매출 감소폭이 다시 이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뎀나가 밀라노에 만든 매장은 패션쇼가 끝나면서 사라지지만, 수트와 재킷, 로퍼와 가방, 스커트와 드레스를 넓게 배치한 SS27의 선택은 2027년 실제 판매 현장으로 넘어간다. 구찌가 최근의 매출 감소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디자인 변화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할지는 이후 매장 판매가 말해줄 부분이다. 지금 분명한 사실은 구찌가 새 시즌에 한 가지 강한 이미지보다 더 많은 종류의 옷을 매장 안으로 가져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