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억8000만달러가 말하는 우리 시대 미술의 가격

컨템포러리 조정 뒤 검증된 거장으로 자금 이동…소더비 블라키에 컬렉션과 한국 경매시장이 드러낸 희소성·보증·마케팅의 질서

2026-10-01     임민정 기자
빈센트 반 고흐, 'Châtaigniers en fleurs roses et blanches'(1890). 사진=Sotheby's.

[KtN 임민정기자]미술의 가격은 작품의 가치를 숫자로 번역한 결과가 아니다. 어느 시대에 어떤 자본이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희소하다고 여기고 어디에서 위험을 느끼는지가 경매가격에 함께 찍힌다. 최고가 기록은 미술사의 서열표라기보다 당대 자본의 심리에 가깝다. 2026년 가을 소더비가 내놓은 블라키에-아리에타 컬렉션은 그런 가격의 성격을 유난히 선명하게 드러낸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1890년작 'Châtaigniers en fleurs roses et blanches'에 약 1억8000만달러, 폴 세잔(Paul Cézanne)의 'Arlequin'에 약 1억2000만달러가 책정됐다. 작품 12점의 전체 추정가 약 4억5000만달러 가운데 두 점이 3억달러를 차지한다.

고흐가 하루아침에 더 위대한 화가가 된 것은 아니다. 세잔의 미술사적 위치가 2026년에 갑자기 높아진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은 시장이다. 팬데믹 이후 젊은 작가와 컨템포러리 아트에 빠르게 몰렸던 자금은 조정을 거쳤고, 시장은 오래 검증된 작가와 좀처럼 다시 나오지 않는 작품을 찾기 시작했다. 2025년 세계 미술시장 거래액은 596억달러로 전년보다 4% 늘었지만 회복은 고르게 나타나지 않았다. 1000만달러 이상 작품의 경매액은 30% 증가한 반면 5만달러 미만 거래는 금액과 건수 모두 줄었다. 돈이 미술시장 전체로 돌아왔다기보다 가장 비싼 작품으로 집중됐다는 편이 가깝다.

작가의 세대에서도 방향이 갈렸다. 포스트워·컨템포러리 경매시장은 2021년 정점 이후 수년 동안 축소됐고, 컨템포러리 아트는 2024년 큰 폭의 하락을 거친 뒤 2025년에도 뚜렷한 반등을 만들지 못했다. 반면 인상주의·후기인상주의 경매액은 2025년 큰 폭으로 증가했고 모던 아트도 성장했다. 한동안 시장을 달궜던 새 이름보다 이미 미술사적 위치와 거래 이력이 쌓인 작가로 자금이 옮겨간 흐름이다.

컨템포러리 시장의 조정을 젊은 작가의 실패로 읽을 수는 없다. 2020~2021년 온라인 거래가 급격하게 늘면서 새 작가가 짧은 시간 안에 세계 컬렉터에게 노출됐고, 갤러리에서 판매된 작품이 얼마 지나지 않아 경매에 등장해 가격이 크게 뛰는 일도 이어졌다. 미술사적 평가가 축적되는 시간과 시장가격이 올라가는 시간이 서로 달랐다. 작품보다 가격이 먼저 유명해진 시장은 상승할 때는 화려하지만 매수자가 줄어드는 순간 이전 최고가가 부담으로 돌아온다. 단기간에 오른 가격이 작가의 장기적인 시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지난 몇 년간 확인됐다.

고흐와 세잔은 정반대에 있다. 새 작품이 더 만들어질 수 없고 박물관에 들어간 대표작은 거래시장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낮다. 개인 소장자가 매각하지 않으면 수십 년 동안 시장에서 사라진다. 블라키에 부부가 주요 작품을 사들인 것도 1960~70년대다. 고흐 작품은 1975년 뉴욕 와일덴스타인앤드컴퍼니(Wildenstein & Co.)에서 구입했다. 미술시장에서 희소성은 단순히 작품 수가 적다는 사실보다 원하는 시기에 살 수 없다는 사실에서 더 큰 힘을 갖는다. 50년을 기다려야 다시 만날 수 있는 작품과 다음 시즌에도 새 작품이 공급되는 작가의 가격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기 어렵다.

인상주의·후기인상주의 시장이 크게 늘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갑자기 19세기 회화를 더 사랑하게 됐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고가 작품 몇 점의 출품 여부가 연간 거래액을 크게 바꾸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대형 작품이 2억달러를 훌쩍 넘는 가격에 거래되면 그 한 점이 장르 전체의 통계를 크게 끌어올린다. 반대로 중요한 개인 컬렉션이 시장에 나오지 않으면 거래액은 빠르게 줄어든다. 미술시장 통계는 수요만큼 공급에 민감하다. 최고급 작품이 나오는 해에는 시장이 커지고, 소장자가 팔지 않으면 시장 자체가 작아진다.

그래서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경쟁하는 대상도 달라졌다. 구매자를 많이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초고가 경매를 만들 수 없다. 먼저 팔 만한 작품을 가져와야 한다. 레너드 로더(Leonard Lauder), S.I. 뉴하우스(S.I. Newhouse), 블라키에처럼 한 세대가 수십 년 동안 구축한 개인 컬렉션이 양대 경매사의 실적을 좌우하는 이유다. 20세기 후반에 형성된 대규모 개인 컬렉션이 상속과 자산 재편을 거쳐 다시 움직이는 시기와도 겹친다. 경매사의 경쟁은 경매장에서 구매자를 놓고 벌이는 싸움보다 먼저, 중요한 작품을 가진 소장자의 선택을 받는 경쟁으로 옮겨갔다.

블라키에 컬렉션에는 소더비의 보증도 들어갔다. 경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매도자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조건이다. 구체적인 보증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소더비는 다시 제3자 투자자의 불가역적 입찰(irrevocable bid)을 받아 부담을 줄이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제3자가 일정 가격에 작품을 사겠다고 미리 약속하면 유찰 가능성은 낮아진다. 경매사는 좋은 작품을 가져오기 위해 매도자에게 가격을 약속하고, 다시 다른 자본을 끌어들여 손실 가능성을 낮춘다. 공개경매가 열리기 전에 이미 상당 부분의 거래 조건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경매의 한계도 여기서 생긴다. 경매가 오랫동안 신뢰받은 이유는 공개된 경쟁을 통해 가격을 찾아간다는 데 있었다. 사고 싶은 사람이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없으면 유찰됐다. 보증과 사전 입찰이 늘어나면 판매의 안정성은 높아지지만 낙찰 숫자를 해석하는 일은 어려워진다. 열 명이 경쟁해 1억달러가 된 작품과 한 명의 사전 구매자가 예정된 가격에 가져간 작품은 모두 1억달러 낙찰로 남는다. 두 거래가 말하는 시장의 수요는 같지 않다. 경매가격은 정확한 숫자이지만 그 숫자 하나가 시장의 넓이와 깊이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소더비가 블라키에 컬렉션을 ‘Collection of the Year’라고 부르는 이유도 작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경매사는 고흐 한 점과 세잔 한 점을 따로 팔지 않는다. 반세기 동안 한 가문이 구축한 컬렉션, 작품의 이전 소유자, 구입했던 갤러리, 오랫동안 시장에 나오지 않았던 시간까지 함께 묶는다. 사이먼 쇼(Simon Shaw)가 컬렉션을 두고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나 오르세미술관을 걷는 듯하다고 표현한 것도 같은 판매 언어 안에 있다. 작품 12점을 하나의 수집사로 묶으면 개별 작품의 가격 경쟁은 컬렉션 전체의 명성과 연결된다. 미술사와 소장 이력이 마케팅의 재료가 되고, 마케팅은 다시 가격을 밀어 올리는 힘으로 작용한다.

마케팅이 작품의 가치를 만든다고 말하면 지나치다. 고흐와 세잔의 미술사적 위치를 소더비가 만든 것은 아니다. 다만 시장이 작품의 어느 부분을 먼저 보게 할지는 경매사가 바꿀 수 있다. 1890년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제작된 회화라는 설명과 ‘1억8000만달러 고흐’라는 설명 가운데 어느 쪽이 세계 언론의 제목이 되는지는 이미 짐작할 수 있다. 가격이 작품을 설명하는 가장 강한 언어가 되면 작품을 보기 전에 가격부터 알고, 가격을 통해 작품의 중요성을 짐작하는 순서도 굳어진다.

한국 미술시장에서도 규모는 다르지만 비슷한 간극이 나타난다. 2025년 국내 경매시장 낙찰총액은 약 1435억원으로 전년보다 늘었지만 2021년의 고점과 비교하면 여전히 크게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상반기에는 주요 경매사의 거래액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크게 줄었고 낙찰률도 50% 안팎에 머물렀다. 하반기 고가 작품 거래가 연간 실적을 끌어올렸지만 시장 전체가 같은 속도로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한국 시장에서도 최고가 작품의 존재감은 갈수록 커졌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을 비롯한 해외 거장의 고가 거래가 전체 낙찰총액을 끌어올렸고, 검증된 국내 주요 작가에게도 자금이 집중됐다. 그러나 몇 점의 고가 작품이 팔렸다는 사실이 중소 화랑의 매출이나 신진작가의 거래 증가를 그대로 뜻하지는 않는다. 서울에서 수십억원짜리 작품 한 점이 낙찰됐다고 국내 미술시장 전체가 살아났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세계 시장과 한국 시장을 같은 크기로 놓을 수는 없다. 컬렉터층과 작품 공급, 거래 규모가 전혀 다르다. 다만 최고가 작품이 만들어내는 활기와 시장 전체의 체감경기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은 닮았다. 뉴욕에서 고흐가 1억8000만달러에 팔리더라도 세계 컨템포러리 시장이 곧바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고, 서울에서 수십억원짜리 작품이 거래돼도 신진작가와 중간 가격대 시장까지 동시에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자금이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이미 이름이 굳어진 작가에게 매수세가 모인다. 시장이 불안할수록 컬렉터가 익숙한 이름을 선택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런 선택이 반복되면 미술시장은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고 키우는 기능보다 이미 인정받은 작품의 가격을 높이는 기능에 더 많은 자본을 배치하게 된다. 경매 최고가가 올라가는 동안 1차 시장과 젊은 작가의 거래가 약해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우리 시대 미술의 가격은 그래서 작품의 우열보다 자본의 선택을 더 많이 말한다. 새로움보다 검증을 택하는지,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희소성을 사는지, 한 세대가 모은 작품을 다음 세대가 어떤 방식으로 처분하는지, 경매사가 어느 정도의 보증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한 번의 낙찰에 들어간다. 1억8000만달러에는 고흐의 예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급이 거의 없는 작품을 원하는 세계의 부, 불확실한 시장에서 검증된 이름으로 향하는 자금, 높은 보증을 감당하는 경매사, 컬렉션을 하나의 사건으로 만드는 마케팅이 함께 들어 있다.

11월 18일 뉴욕에서 고흐가 얼마에 팔렸는지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세잔이 기존 최고가에 얼마나 가까이 갔는지도 기사 제목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경매가 끝난 뒤 더 오래 봐야 할 숫자는 따로 있다. 고흐와 세잔 아래 가격대에서도 여러 구매자가 경쟁했는지, 사전 보증을 맡은 구매자가 작품을 가져갔는지, 12점 전체에 수요가 이어졌는지가 시장의 상태를 더 정확하게 말한다. 최고가 한 점은 시장의 꼭대기를 알려주지만 바닥의 넓이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미술의 가치는 경매봉 한 번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가격은 작품에 대한 최종 판정도 아니다. 다만 한 시대가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어느 곳에 돈을 집중하며, 불확실성을 어떤 방식으로 피하려 했는지는 남긴다. 컨템포러리의 급등과 조정을 지나 다시 고흐와 세잔으로 향하는 자금, 작품을 확보하기 위한 보증 경쟁, 컬렉션을 브랜드로 바꾸는 소더비의 마케팅, 고가 작품과 시장 전체의 온도 차를 함께 안고 있는 한국 경매시장까지 놓고 보면 방향은 또렷하다.

우리 시대 미술의 가격은 작품의 서열보다 시대의 욕망과 불안을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