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페라가모의 복고는 오늘의 옷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SS27, 1940년대 여성복의 격식을 반투명 소재와 가죽으로 재해석 과거의 의미를 빌리는 일과 입는 사람의 선택을 넓히는 일 사이
[KtN 박인경기자]맥시밀리언 데이비스는 1940년대의 옷을 설명하며 주머니의 위치가 사람이 서 있는 자세와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페라가모 SS27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발언이다. 재단은 몸에 옷을 맞추는 기술이면서, 몸을 특정한 모습으로 보이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어깨를 넓히고 허리를 좁히는 선택에는 어떤 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다운지에 대한 판단이 들어 있다.
데이비스는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주도해가던 시대에서 출발했다. 작업복의 주머니와 여성 수트의 허리선, 무릎길이 스커트를 가져온 뒤 소재와 비례를 바꿨다. 과거의 옷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살피면서 형태를 다시 구성한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자율성을 주제로 삼았다는 사실과 그 옷이 착용자의 선택을 넓혔다는 평가는 구분해야 한다. 좋은 기획 의도가 좋은 옷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번 컬렉션의 성과는 주제를 설명하는 문장보다 재단에서 먼저 드러난다. 소매와 어깨에는 여유를 남기고 허리를 좁혔으며, 상의를 짧게 정리해 스커트가 차지하는 비중을 늘렸다. 남성복에서는 넉넉한 바지에 앞주름을 넣고 베스트를 안으로 넣어 허리선을 드러냈다. 과거의 장식을 옮겨 붙이는 데 머물지 않고 옷의 길이와 폭을 다시 조정했다.
복고가 설득력을 얻는 과정도 이와 같다. 옛 옷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능력과 현재의 옷으로 바꾸는 능력은 서로 다르다. 주머니와 버클이 어느 시대를 연상시키는지보다, 그런 요소를 지금의 몸과 생활에 맞게 어떻게 배치했는지가 중요하다. 페라가모 SS27은 소재와 재단을 통해 과거와의 거리를 만들었다. 1940년대라는 설명을 덜어내도 옷에 남는 변화다.
역사는 패션에 풍부한 참고가 되지만 현재의 평가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특정 시대의 의미를 내세울수록 옷 자체의 성취가 충분한지 더 엄격하게 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글이 없으면 특징을 알아보기 어려운 디자인이라면, 과거의 권위를 빌린 기획이 옷보다 앞선 셈이다. 이번 페라가모에서는 허리와 소매의 비례, 표면의 광택, 길게 늘어진 천이 설명에 앞서 눈에 들어온다.
소재를 바꾼 의상에서는 이러한 성취가 더욱 분명하다. 청색 코트는 익숙한 깃과 여밈을 갖췄지만 강한 광택 때문에 접힘과 곡선이 두드러진다. 반투명한 수트는 단정한 형태 안으로 몸과 안쪽 옷을 드러낸다. 정장의 구성을 유지하면서도 정장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 것이다. 같은 길이의 스커트라도 무엇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가리는 범위와 드러나는 윤곽이 달라진다.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소재와 착용 방식의 변화다. 그 변화를 곧바로 여성의 해방으로 확대하면 디자인의 성과와 사회적 의미가 뒤섞인다. 피부가 더 보인다고 선택의 폭이 반드시 넓어지는 것은 아니며, 몸을 많이 가린다고 자율성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자유를 설명하는 기준은 노출의 양보다 옷을 고르는 사람에게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가 의도한 이미지와 착용자가 원하는 모습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작업복의 주머니를 다루는 방식에도 같은 구분이 필요하다. 주머니는 원래 물건을 담는 공간이지만, 몸에 가까운 여성복에서는 가슴과 골반의 폭을 강조하는 장식이 된다. 기능을 형태로 바꾸는 일은 패션이 할 수 있는 해석이다. 다만 작업복의 외형을 가져오는 것과 일하는 사람의 경험을 담는 것은 다른 일이다. 노동의 흔적을 세련된 장식으로 옮겼다면 그 결과는 우선 디자인으로 평가해야 한다.
페라가모가 보다 설득력 있게 다룬 부분은 단정한 재단과 느슨한 천의 조합이다. 허리를 강조한 의상 옆으로 긴 자락을 남기거나 어깨를 스카프처럼 감싸면서, 수트의 엄격한 형태에 변화를 줬다. 몸에 가까운 부분과 여유 있는 부분을 함께 사용한 방식은 직물과 가죽, 일상복과 이브닝웨어에 걸쳐 반복됐다. 시대를 상징하는 장식 하나보다 이러한 재단의 선택이 컬렉션의 특징을 만든다.
브랜드의 고유함도 반복되는 선택에서 생긴다. 허리를 강조한 수트나 가죽 셔츠 하나만으로 페라가모의 정체성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떤 부위에 여유를 주고, 어디에서 옷의 길이를 끊으며, 서로 다른 소재를 어떤 비율로 조합하는지가 쌓여야 한다. SS27은 여러 의상을 같은 모습으로 만드는 대신 비슷한 재단 원칙으로 연결했다. 복고적인 형태를 활용하면서도 데이비스의 디자인을 구분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성 수트에 길게 늘어진 천을 더한 시도는 그 원칙을 여성복 바깥으로 확장한다. 재킷과 팬츠의 구성은 유지하면서 스카프처럼 감싸고 늘어뜨리는 방식을 적용했다. 정장을 바꾸는 방법이 어깨의 폭이나 바지 통의 조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제안이다. 여성복에서 사용한 드레이핑이 남성복에도 들어오면서 소재와 재단의 실험이 컬렉션 전체로 이어진다.
자율성이라는 주제도 이런 구체적인 선택에서 설명하는 편이 타당하다. 허리를 강조하는 옷과 느슨한 옷, 몸을 드러내는 옷과 감싸는 옷을 서로 다른 취향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특정한 몸의 형태를 자유의 상징으로 정해버리면 입는 사람의 판단은 다시 좁아진다. 디자인에 강한 개성이 필요하더라도 그 개성을 받아들이고 조정하는 방식까지 하나로 정할 필요는 없다.
스팽글 드레스와 깊은 트임 역시 착용자의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특별한 자리를 위한 옷에는 일상복과 다른 표현이 필요하고, 몸을 돋보이게 하는 옷을 고르는 행위도 자율성에 포함된다. 모든 의상을 같은 편안함과 활동성으로 평가하면 패션이 제공하는 즐거움과 표현의 차이를 놓친다. 중요한 것은 화려한 옷을 만들었느냐보다 그 화려함이 누구의 요구와 취향에 응답하느냐다.
런웨이에서는 상의와 하의, 신발과 장식이 하나의 모습으로 제시된다. 실제 생활에서는 재킷을 열어 입고, 벨트를 바꾸고, 셔츠를 다른 바지에 맞춘다. 디자이너가 완성한 조합이 착용자의 선택에 따라 다시 바뀌는 과정이다. 그때도 재단과 소재의 특징이 남아야 옷은 이미지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한 벌을 그대로 재현해야만 성립하는 스타일과 여러 방식으로 입어도 성격이 유지되는 옷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페라가모 SS27에는 그런 가능성을 검토할 만한 구성이 있다. 장식이 많은 상의와 간결한 스커트, 가죽 셔츠와 직물 팬츠, 재킷 없이 입는 베스트 차림이 함께 제시됐다. 긴 드레스의 강한 이미지와 별개로 일상에 가져갈 수 있는 개별 의상도 존재한다. 런웨이의 주제가 실제 옷차림으로 이어질 여지는 과장된 수사보다 이러한 구성에서 찾을 수 있다.
데이비스는 과거의 옷을 자신의 판단으로 바꿨다. 이제 남는 것은 착용자가 그 옷을 다시 해석할 여지다. 제품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어떤 길이와 여유가 유지되고, 다른 옷과 조합했을 때도 특징이 남는지가 중요하다. 페라가모의 복고는 1940년대를 얼마나 그럴듯하게 되살렸는지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의 사람이 자신의 생활과 취향에 맞춰 입을 수 있을 때, 과거를 참조한 이유도 현재의 가치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