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Laurent SS27①] 생 로랑 SS27, 금빛으로 다시 쓴 사하리엔과 테일러링

사하리엔·트렌치에서 레이스 드레스와 짧은 재킷까지…같은 색 안에서 어깨·허리·길이를 바꾼 안토니 바카렐로

2026-10-01     박인경 기자

[KtN 박인경기자]파리 트로카데로에 금색 사하리엔이 등장했다. 큰 주머니와 벨트, 넓은 어깨를 갖춘 익숙한 생 로랑의 옷이었다. 달라진 것은 표면이었다. 금속처럼 빛나는 소재가 사하리엔과 트렌치, 블루종을 덮었고, 런웨이가 이어질수록 레이스 드레스와 재킷, 짧은 상의로 옷의 형태가 바뀌었다. 마지막에는 금빛이 멈추고 검정 테일러링과 긴 이브닝드레스가 나왔다.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가 선보인 Saint Laurent SS27은 새로운 색을 계속 추가하는 대신 골드 계열을 길게 사용했다. 옅은 금빛과 짙은 황금색, 무광에 가까운 표면과 강하게 빛을 반사하는 소재가 한 흐름 안에 놓였다. 색을 좁힌 만큼 재킷의 길이와 어깨 폭, 허리를 잡는 방식, 소재의 두께와 질감 차이가 더 또렷해졌다.

생 로랑 SS27 초반에는 큰 주머니와 벨트를 갖춘 금색 사하리엔과 아우터가 이어졌다. 넓은 어깨와 잘록하게 잡은 허리가 초반 실루엣을 만들었다. 사진=Saint Laurent,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런웨이 초반에는 사하리엔과 트렌치, 블루종처럼 몸을 넓게 덮는 옷이 많았다. 어깨는 바깥으로 넓게 잡았고 허리는 벨트로 조였다. 무릎 부근까지 내려오는 길이와 큰 주머니도 반복됐다. 금색을 사용했지만 옷의 뼈대까지 장식적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칼라와 주머니, 벨트가 형태를 먼저 만들고 금속성 표면이 그 위를 덮었다.

아우터의 금빛도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다. 매끈한 소재는 조명을 길게 반사했고, 구김이 깊게 잡힌 소재에서는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촘촘하게 갈렸다. 같은 금색 안에서도 표면이 얼마나 평평한지, 주름이 얼마나 깊은지에 따라 옷의 인상이 달라졌다.

목에서 길게 떨어지는 스카프도 초반 착장에서 자주 보였다. 황갈색과 짙은 초록, 적갈색 계열의 긴 천이 금색 아우터 사이로 내려오면서 넓은 상체를 세로로 나눴다. 상·하의를 다른 색으로 분리하는 대신 움직임이 큰 스카프에 색을 제한적으로 사용한 방식이다.

아우터가 줄어들면서 몸과 옷의 거리도 가까워졌다. 민소매 드레스와 레이스 드레스는 초반 사하리엔처럼 신체를 크게 감싸지 않았다. 팔과 어깨가 드러났고 허리와 골반을 따라 직물이 붙었다. 무릎 아래까지 좁게 내려오는 드레스에서는 옷의 폭보다 몸의 세로선이 먼저 드러났다.

레이스와 촘촘한 직조가 등장하면서 금빛의 표정도 달라졌다. 피부가 문양 사이로 드러나고 소재의 높낮이에 따라 빛이 잘게 나뉜다. 사진=Saint Laurent,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라메(lamé), 오간자(organza), 기퓌르 레이스(guipure lace), 무슬린(mousseline), 브로케이드(brocade), 자카드(jacquard)처럼 성질이 다른 직물이 사용됐다. 금박을 입힌 라텍스도 포함됐다. 소재 이름보다 눈에 들어오는 차이는 빛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레이스에서는 금색과 피부색이 함께 보인다. 문양이 촘촘한 곳과 비어 있는 곳이 교차하면서 금빛이 한 면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브로케이드와 자카드는 직조된 무늬의 높낮이가 반사를 잘게 끊는다. 주름이 많은 소재는 모델이 걸을 때마다 빛을 받는 위치가 달라진다.

금색을 길게 이어갔지만 옷이 단조롭게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색을 바꾸는 대신 표면을 바꿨다. 금속처럼 매끄러운 옷과 피부가 비치는 레이스, 두께가 느껴지는 직조 소재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같은 색이 다른 밀도로 보였다.

재킷과 스커트가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초반의 긴 아우터보다 옷의 길이가 짧아진다. 넓은 어깨는 남아 있지만 재킷 밑단이 허리 가까이 올라오고, 좁은 펜슬 스커트와 팬츠가 하체선을 길게 만든다. 초반에는 벨트가 허리의 위치를 정했다면 이후에는 재킷의 길이 자체가 상체와 하체를 나눈다.

중반을 지나면서 복부가 드러나는 상의도 늘어난다. 짧은 톱과 크롭 재킷 아래에 좁은 스커트를 배치하면서 허리는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어깨는 여전히 넓게 남겨두고 하체는 가늘게 처리해 상체와 하체의 폭 차이를 유지했다.

런웨이 중·후반에는 상의 길이가 짧아지고 허리가 드러났다. 넓은 어깨는 유지하면서 재킷과 톱의 밑단을 올려 초반 아우터와 다른 비율을 만들었다. 사진=Saint Laurent,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옷이 짧아질수록 몸이 드러나는 범위도 커졌다. 긴 사하리엔과 트렌치가 팔과 허벅지 상당 부분을 덮었던 초반과 달리 짧은 재킷과 미니스커트, 민소매 드레스에서는 팔과 복부, 다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금색은 계속 남아 있지만 옷이 몸을 덮는 면적은 줄어든다.

광택의 강도도 뒤쪽으로 갈수록 달라진다. 밝게 번쩍이는 금색 옆에 갈색이 섞인 짙은 골드와 거친 표면이 놓이고, 촘촘한 무늬가 들어간 소재에서는 금빛이 한층 차분하게 보인다. 색 자체보다 표면과 재단이 착장을 구분하는 요소로 자리 잡는다.

액세서리 역시 옷과 경쟁하는 별도의 색을 거의 만들지 않았다. 필리그리(filigree) 귀걸이와 금속 체인으로 만든 신발, 뱀의 곡선을 닮은 굽이 금빛 의상과 이어졌다. 귀걸이와 신발의 장식은 크지만 착장의 색 범위는 넓히지 않았다.

후반에는 금색이 사라지고 검정이 등장한다. 검정 벨벳 테일러링과 큰 부피의 이브닝드레스가 이어지면서 짧아졌던 옷의 길이도 다시 늘어난다. 어깨와 상체를 넓게 감싸는 천, 바닥 가까이 떨어지는 긴 자락이 금빛 후반의 크롭 재킷과 좁은 스커트와 다른 인상을 만든다.

금빛 의상이 끝난 뒤에는 검정 테일러링과 긴 이브닝웨어가 등장했다. 짧아졌던 상의와 좁은 스커트 대신 넓은 드레이프와 긴 옷자락이 런웨이를 채웠다. 사진=Saint Laurent,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검정으로 바뀌면서도 넓은 어깨와 허리의 대비는 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천의 양과 길이다. 몸 가까이 붙었던 금색 후반부와 달리 검정 드레스는 다시 신체 주변에 부피를 만들었다. 일부 드레스에서는 한쪽 다리를 드러내면서도 반대편 천을 길게 떨어뜨려 짧음과 긴 길이를 한 착장 안에 함께 넣었다.

생 로랑 SS27에서 금색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요소지만 컬렉션의 변화를 만든 것은 색만이 아니다. 사하리엔과 트렌치에서는 넓은 어깨와 벨트가 몸의 형태를 잡았고, 레이스 드레스에서는 직물과 피부가 가까워졌다. 재킷이 짧아진 뒤에는 허리가 드러났고, 마지막 검정 이브닝웨어에서는 다시 길이와 부피가 늘어났다.

같은 색을 오래 사용한 덕분에 오히려 옷의 차이가 또렷해졌다. 큰 주머니를 단 사하리엔에서 시작한 런웨이는 좁은 레이스 드레스와 짧은 재킷을 지나 검정 드레스의 긴 자락으로 이어졌다. 생 로랑 SS27은 금이라는 색 하나보다 어깨와 허리, 옷의 길이를 계속 바꿔가며 만든 변화에서 더 많은 정보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