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Laurent SS27③] 같은 금빛, 다른 질감…생 로랑 SS27이 소재로 만든 차이
금속성 광택에서 기퓌르 레이스와 브로케이드까지…색을 늘리지 않고 직물의 두께와 조직, 빛의 반사로 갈라놓은 골드
[KtN 박인경기자]생 로랑(Saint Laurent) SS27의 금색은 멀리서 하나로 이어지지만 가까이에서는 서로 다른 질감으로 갈린다.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는 매끄럽게 빛나는 직물과 깊게 구겨진 소재, 피부를 드러내는 레이스, 문양이 촘촘하게 올라온 직물을 한 팔레트 안에 배치했다. 색상 변화에 기대기보다 천의 두께와 조직, 빛을 받아들이는 차이로 옷마다 다른 표정을 만들었다.
라메(lamé), 오간자(organza), 기퓌르 레이스(guipure lace), 무슬린(mousseline), 브로케이드(brocade), 자카드(jacquard)가 사용됐고 금박을 입힌 라텍스도 포함됐다. 같은 골드 계열이라도 평평한 천에서는 빛이 넓게 번지고, 주름이 깊은 소재에서는 밝고 어두운 부분이 잘게 갈린다. 레이스는 피부가 색 사이로 들어오고, 브로케이드와 자카드는 직조된 문양 자체가 명암을 만든다.
구겨진 금속을 연상시키는 소재에서는 주름이 장식보다 먼저 기능한다. 평평한 부분은 조명을 강하게 받아 밝게 드러나고, 깊게 접힌 부분은 갈색에 가까운 음영으로 내려앉는다. 모델이 움직이면 주름의 방향이 달라지면서 같은 옷 안에서도 금빛의 위치가 계속 바뀐다.
사하리엔과 재킷처럼 형태가 분명한 옷에도 이런 표면을 사용했다. 큰 주머니와 칼라, 벨트가 옷의 윤곽을 잡고 그 위에 불규칙한 주름이 얹힌다. 반듯하게 다림질한 금색 직물과 달리 표면이 완전히 정돈되지 않아 금이라는 색이 가진 장식성을 조금 눌러준다.
라메는 다른 방식으로 금빛을 만든다. 금속성 광택을 가진 실이 직물 안에서 빛을 받아 옷 전체에 반짝임을 만든다. 넓은 면에서 사용할 때는 강한 광택이 살아나지만, 주름이 생기거나 재단선이 꺾이면 밝기의 차이가 커진다. 같은 라메 계열에서도 옷의 형태에 따라 금색의 농도가 달라지는 이유다.
기퓌르 레이스는 금속성 아우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금색을 사용한다. 기퓌르 레이스는 바탕망 없이 문양 자체를 연결하는 레이스다. 촘촘한 부분과 빈 공간이 선명하게 나뉘기 때문에 직물과 피부가 함께 드러난다.
금색의 면적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직물로 몸을 완전히 덮는 아우터에서는 색이 옷 전체를 차지하지만 레이스에서는 피부가 색 사이에 들어온다. 금빛이 한 덩어리로 이어지지 않고 문양의 크기와 간격에 따라 끊어진다.
몸을 따라 내려오는 좁은 드레스에서는 레이스의 성질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옷의 부피를 바깥으로 키우기보다 몸 가까이에서 문양을 이어가고, 팔과 어깨를 노출해 직물과 피부가 차지하는 비율을 나눈다. 금속성 소재가 빛으로 옷의 존재감을 키웠다면 레이스는 빈 공간을 이용해 밀도를 낮췄다.
오간자와 무슬린처럼 얇은 소재는 또 다른 차이를 만든다. 두꺼운 금속성 직물보다 가볍고, 걸음에 따라 천이 쉽게 움직인다. 천이 겹치는 부분에서는 색이 짙어지고 한 겹으로 펼쳐진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남는다. 긴 스카프와 흐르는 천이 재킷이나 코트의 단단한 형태와 대비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브로케이드와 자카드는 빛보다 직물의 조직이 먼저 드러나는 소재다. 브로케이드는 문양을 직조 과정에서 입체적으로 만들고, 자카드는 짜임 자체로 무늬를 구성한다. 표면이 평평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금색 실을 사용해도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재킷과 스커트에서는 촘촘한 문양이 옷 전체를 채운다. 어깨와 허리의 재단선 위에 직조 무늬가 겹치면서 금색은 하나의 넓은 면보다 작은 단위의 반복으로 읽힌다. 강한 광택을 앞세운 소재와 달리 빛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흩어진다.
브로케이드와 자카드의 두께도 옷의 형태를 받쳐준다. 몸을 따라 흐르는 얇은 무슬린과 달리 재킷의 어깨와 소매, 스커트의 외곽선을 비교적 또렷하게 유지한다. 소재의 무게와 조직이 실루엣에 직접 영향을 주는 부분이다.
금박을 입힌 라텍스는 직물과 다른 질감을 더한다. 라텍스 특유의 매끄러운 표면은 빛을 넓게 반사하면서도 몸의 움직임을 따라 휘어진다. 단단한 금속처럼 보이는 외관과 유연하게 움직이는 소재의 성질이 함께 나타난다. 금속성 직물을 사용한 착장과 비슷한 색을 유지하면서 표면의 매끄러움과 몸에 붙는 정도를 달리할 수 있다.
소재가 몸에 가까워질수록 금색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진다. 넓은 재킷에서는 광택이 옷의 면적을 따라 크게 퍼지지만 좁은 상의와 드레스에서는 신체의 굴곡에 따라 반사되는 위치가 빠르게 바뀐다. 직물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곳과 느슨하게 남는 곳에서도 밝기의 차이가 생긴다.
액세서리 역시 같은 금속성 질감을 반복한다. 필리그리(filigree) 귀걸이는 금속을 가늘게 엮어 빈 공간을 만들고, 체인을 사용한 신발은 작은 금속 조각이 이어지면서 빛을 여러 갈래로 나눈다. 옷이 넓은 면과 직조 문양으로 금색을 달리했다면 액세서리는 더 작은 단위에서 같은 효과를 이어간다.
생 로랑 SS27에서 금색의 차이는 색 이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구겨진 아우터에서는 주름이 명암을 만들고, 레이스에서는 피부가 금빛 사이를 채운다. 브로케이드와 자카드에서는 문양의 높낮이가 반사를 나누고, 오간자와 무슬린에서는 천의 얇기와 움직임이 색의 농도를 바꾼다.
금색을 계속 다른 색으로 바꾸지 않아도 옷마다 인상이 달라진 이유는 소재에 있다. 반사되는 빛의 크기와 방향, 피부가 드러나는 면적, 직물의 두께와 문양이 달라질 때마다 같은 골드도 전혀 다른 질감을 가졌다. 생 로랑 SS27의 금빛은 색을 늘리는 대신 재료를 바꾸면서 폭을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