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Laurent SS27④] 트로카데로를 무대로 끌어들인 생 로랑, 금빛 옷과 샹들리에가 겹친 밤
에펠탑을 마주한 야외 런웨이와 검은 바닥, 머리 위를 채운 조명…옷과 공간을 같은 색으로 묶은 SS27 연출
[KtN 박인경기자]파리 트로카데로에 설치된 생 로랑(Saint Laurent) SS27 런웨이는 옷만 따로 떼어 보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모델 머리 위에는 수많은 전구가 달린 대형 샹들리에형 조명이 길게 이어졌고, 바닥은 주변의 빛과 금색 의상을 받아들이는 어두운 표면으로 정리됐다.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는 금빛 옷을 금빛 조명 아래 세우면서 모델과 런웨이, 배경을 비슷한 색조 안에 넣었다. 에펠탑을 마주한 장소까지 더해지면서 개별 착장과 쇼 전체 풍경이 동시에 시야에 들어왔다.
금색 옷 자체가 강한데 주변까지 같은 계열의 빛으로 채웠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일반적인 흰 조명 아래였다면 소재의 색과 실루엣이 배경에서 쉽게 분리됐겠지만, SS27에서는 옷과 조명의 경계가 가까워졌다. 금색 재킷과 스커트 뒤로 샹들리에의 불빛이 이어지고, 광택이 강한 소재에는 주변 조명이 다시 반사됐다.
금색 재킷은 자체 광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머리 위의 조명이 옷 표면에 닿으면서 어깨와 소매, 스커트의 밝기가 달라진다. 주름이 많은 소재에서는 빛이 여러 방향으로 나뉘고, 매끄러운 직물에서는 비교적 넓은 반사가 생긴다. 같은 옷이라도 어느 위치에서 조명을 받느냐에 따라 금빛의 농도가 달라진다.
배경의 샹들리에도 단순한 장식으로 남지 않는다. 모델 뒤쪽에 작은 불빛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금색 의상의 표면과 비슷한 입자를 만든다. 옷의 브로케이드나 촘촘한 직조가 작은 단위의 반사를 만들었다면, 공간에서는 전구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옷과 배경이 서로 다른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반짝임의 크기와 밀도는 가까워진다.
검은 바닥은 반대 역할을 맡는다. 머리 위와 의상이 금빛으로 차오른 상태에서 바닥까지 같은 밝기로 처리하지 않았다. 어두운 런웨이가 모델의 다리와 힐 주변에 검은 여백을 만들고, 금빛이 아래로 번지는 정도만 남겼다. 상단에는 조명이 밀집하고 바닥에는 어둠이 자리 잡으면서 모델의 신체가 두 영역 사이에 놓였다.
테일러링에서는 공간과 옷의 관계가 더 선명하다. 넓은 어깨를 가진 재킷은 조명을 받을 수 있는 면적이 크고, 각진 부분마다 밝기가 달라진다. 반면 가는 다리와 높은 힐은 검은 바닥 위에서 상대적으로 또렷하게 남는다. 옷의 상체와 하체를 다르게 보이게 한 것은 재단뿐 아니라 조명과 바닥의 명암이기도 했다.
생 로랑은 에펠탑을 배경으로 삼는 장소 자체도 런웨이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트로카데로는 파리라는 도시를 즉시 떠올리게 하는 장소다. SS27에서는 그 도시 풍경 앞에 대형 조명 시설을 다시 설치하면서 자연스러운 야경 그대로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미 상징성이 강한 장소 위에 생 로랑이 만든 별도의 빛을 얹은 셈이다.
이런 방식에서는 옷만 보여주는 런웨이와 다른 문제가 생긴다. 조명과 공간이 강할수록 개별 재킷의 주머니나 스커트의 재단선처럼 작은 요소는 멀리서 쉽게 묻힌다. 대신 한 컷 안에 모델과 샹들리에, 반사되는 바닥이 함께 들어오면서 브랜드가 만든 전체 풍경은 훨씬 또렷하게 남는다.
패션쇼가 옷을 가까이에서 확인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사진과 영상으로 다시 유통되는 행사라는 점도 드러난다. 생 로랑 SS27의 런웨이는 정면 사진 한 장만으로도 금빛 의상과 조명, 검은 바닥이 반복해서 함께 기록된다. 배경을 잘라내지 않는 이상 옷과 쇼 연출을 완전히 분리하기 어렵다.
옷의 길이가 짧아진 착장에서는 주변 공간이 더 많이 드러난다. 긴 코트가 프레임 상당 부분을 차지할 때보다 짧은 재킷과 스커트에서는 모델 주변의 검은 바닥과 조명이 넓게 남는다. 금빛 의상의 면적은 줄었지만 사진 전체에서 금색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옷에서 빠진 금빛을 배경의 조명이 계속 채운다.
피부가 많이 드러난 착장에서는 그 차이가 더 커진다. 복부와 다리에는 조명이 직접 닿고, 금색 천과 피부가 같은 빛 아래 놓인다. 옷과 몸, 조명을 각기 다른 영역으로 분리하기보다 하나의 색조 안에서 밝기 차이로 구분하는 방식에 가깝다.
금색이 반복되는 컬렉션에서 공간 연출은 단조로움을 줄이는 수단으로도 작동했다. 모델이 걸을 때마다 옷의 반사 위치가 달라지고, 샹들리에의 불빛과 바닥의 반사가 각기 다른 깊이에 놓인다. 의상의 색은 크게 변하지 않지만 사진 안에서는 금빛이 여러 층으로 나뉜다.
검정 의상이 등장하면 같은 공간도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금색 옷에서는 배경과 의상이 서로 가까워졌지만 검정 드레스는 머리 위의 금빛 조명과 뚜렷하게 갈린다. 드레스 자체는 어두운 바닥과 이어지고, 얼굴과 어깨, 다리처럼 피부가 드러난 부분에 조명이 집중된다.
검정의 등장은 색만 바꾼 것이 아니라 공간을 읽는 방식까지 달라지게 한다. 금색 착장에서는 의상과 샹들리에가 한 덩어리처럼 이어졌지만 검정에서는 밝은 배경과 어두운 옷 사이에 경계가 생긴다. 길게 늘어진 드레스 자락은 검은 바닥과 맞닿아 옷의 끝을 흐리고, 상체는 뒤쪽의 조명 때문에 윤곽이 더 선명해진다.
같은 무대를 사용하면서도 옷의 색에 따라 조명이 맡는 역할이 달라진 셈이다. 골드에서는 의상의 일부처럼 겹쳤고, 블랙에서는 옷을 배경에서 떼어내는 빛으로 작용했다.
트로카데로라는 장소도 이런 대비 안에서 사용됐다. 파리의 야경을 그대로 배경에 두는 데 그치지 않고 거대한 인공 조명을 전면에 배치하면서 자연스러운 도시 풍경보다 패션쇼가 만든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유명 장소를 빌린 쇼라기보다 장소 위에 별도의 시각 환경을 다시 만든 구성이었다.
생 로랑 SS27의 런웨이는 옷과 무대를 서로 다른 요소로 나누기 어렵게 만들었다. 금색 의상에는 샹들리에의 빛이 겹쳤고, 검은 바닥에는 모델과 조명의 반사가 남았다. 검정 드레스가 등장한 뒤에는 같은 조명이 옷과 배경을 갈라놓았다.
트로카데로와 에펠탑이라는 장소의 상징성보다 실제 런웨이 사진에 더 반복적으로 남는 것은 금빛 조명과 검은 바닥이다. 생 로랑은 파리의 대표적인 장소를 배경에 두면서도 시선을 도시 풍경에만 맡기지 않았다. 옷의 색과 소재, 조명과 바닥을 함께 조정해 런웨이 전체가 하나의 이미지로 기록되도록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