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Laurent SS27⑤] 블랙 피날레로 닫힌 생 로랑 SS27, 바카렐로 거취설 확산

2016년 취임 10년 맞은 트로카데로 쇼…샤를로트 갱스부르 공연과 기립박수 뒤 이어진 퇴임 관측, 케어링은 공식 확인 없어

2026-10-05     박인경 기자

[KtN 박인경기자]금빛으로 채워졌던 생 로랑(Saint Laurent) SS27 런웨이에 검정이 등장했다. 검정 벨벳과 장식 버튼을 사용한 테일러링에 이어 몸을 크게 감싸는 드레스와 긴 자락의 이브닝웨어가 이어졌다. 샤를로트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는 검정 수트를 입고 무대에 올랐고,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는 쇼가 끝난 뒤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2016년 생 로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한 지 10년을 맞은 시점과 겹치면서 패션업계에서는 바카렐로의 거취를 둘러싼 보도가 이어졌다. Reuters

검정 의상은 금색을 조금씩 걷어내는 방식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금빛 테일러링과 드레스가 이어지던 흐름이 끊긴 뒤 색과 옷의 부피가 함께 달라졌다. 몸에 가까이 붙었던 스커트와 짧은 상의 대신 검정 재킷과 드레스에 다시 많은 양의 천이 들어갔다. 어깨를 감싸는 넓은 천과 한쪽 다리를 드러내며 길게 떨어지는 자락이 금빛 의상과 다른 윤곽을 만들었다.

금빛 의상이 끝난 뒤 검정 테일러링이 등장했다. 높은 목선과 장식적인 여밈, 무릎 부근까지 내려오는 좁은 하의가 금색 착장과 색부터 분명하게 갈린다. 사진=Saint Laurent,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검정 테일러링은 생 로랑의 익숙한 색으로 돌아온 착장이기도 하다. 금색에서는 소재의 반사가 재킷 표면을 계속 바꿨지만 검정에서는 어깨와 허리, 여밈의 위치가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장식 버튼과 광택이 일부 남아 있어도 옷 전체를 덮었던 금속성 반짝임은 사라졌다.

검정은 바카렐로가 생 로랑에서 꾸준히 사용해온 색이지만, SS27에서는 바로 앞까지 이어졌던 금색과 맞닿으면서 차이가 커졌다. 같은 트로카데로 조명 아래에서도 검정 천은 샹들리에와 분리되고, 피부와 금속 장식만 부분적으로 빛을 받았다. 색의 변화가 옷뿐 아니라 런웨이 전체의 명암까지 바꿨다.

검정 드레스에서는 재킷보다 천의 양이 크게 늘어난다. 목과 어깨 주변에 직물을 모으거나 상체를 감싸고, 허리 아래로 긴 자락을 떨어뜨렸다. 한쪽 다리를 깊게 드러낸 드레스에서도 반대쪽에는 천을 길게 남겼다. 몸에 붙는 부분과 크게 부풀린 부분을 한 벌 안에 함께 넣으면서 금색 드레스와 다른 무게를 만들었다.

검정 드레스는 어깨와 상체를 넓게 감싼 뒤 한쪽 다리를 드러내고 긴 자락을 바닥 가까이 떨어뜨렸다. 몸에 붙는 부분과 넓게 늘어지는 천이 한 착장 안에서 대비된다. 사진=Saint Laurent,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검정 피날레가 곧바로 작별을 뜻한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바카렐로의 퇴임 가능성은 쇼 이전부터 업계에서 제기됐다. 패션산업 전문 매체 Puck은 9월 10일 바카렐로가 생 로랑을 떠날 예정이라고 보도했고, 쇼 이후에도 여러 매체가 마지막 컬렉션일 가능성을 거론했다. 생 로랑과 모기업 케어링(Kering)은 10월 2일 현재 바카렐로의 퇴임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케어링 최고경영자 루카 데 메오(Luca de Meo)도 9월 30일 생 로랑과 발렌시아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Puck

쇼의 여러 요소가 퇴임설과 겹치면서 해석은 더 커졌다. 바카렐로는 이번 컬렉션을 오래 구상해왔고 개인적인 감정이 담겼다는 취지의 글을 초대와 함께 전했다. 쇼가 끝난 뒤에는 오랫동안 생 로랑과 인연을 맺어온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무대에서 공연했다. 바카렐로가 어린아이에게 열쇠를 건네는 모습도 포착됐지만, 생 로랑이나 바카렐로가 해당 행동을 후임자나 퇴임과 연결해 설명한 사실은 없다. Vogue

따라서 검정 드레스를 ‘작별의 상징’으로 규정하거나 열쇠를 ‘승계의 의미’로 단정하는 것은 현재 공개된 사실보다 앞선 해석이다. 블랙 피날레와 공연, 바카렐로의 인사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퇴임 보도도 존재하지만, 각각의 연출이 거취를 뜻한다는 공식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검정 테일러링은 장식을 상체 중앙에 모으고 무릎 부근까지 좁은 실루엣을 유지했다. 금빛 소재가 사라지면서 어깨와 허리, 재킷의 재단선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사진=Saint Laurent,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바카렐로가 생 로랑에 합류한 것은 2016년 4월이다.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의 뒤를 이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임명된 뒤 여성복과 남성복, 광고와 쇼 연출까지 생 로랑의 시각적 방향을 맡아왔다. SS27은 취임 10년을 지난 시점에 공개된 컬렉션이다. 생 로랑 공식 브랜드 연혁에도 2016년 바카렐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선임이 기록돼 있다. 예스알

10년 동안 브랜드의 사업 규모도 달라졌다. 다만 최근 실적만 놓고 보면 계속된 상승 흐름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생 로랑의 2025년 매출은 26억4300만 유로로 전년보다 8% 감소했고, 환율과 사업 범위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면 감소율은 6%였다. 영업이익도 5억2900만 유로로 전년보다 11% 줄었다. 서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일본에서 매출이 감소한 가운데 북미는 연말로 갈수록 회복세를 나타냈다. Kering

2026년 들어서는 방향이 달라졌다. 케어링은 1분기에 생 로랑이 전년 동기 대비 성장했으며 신발과 기성복 판매가 강했다고 밝혔다. 상반기에도 생 로랑 매출이 다시 성장세로 돌아섰고 북미와 서유럽에서 실적이 개선됐다고 발표했다. 그룹 전체 상반기 매출은 72억2000만 유로로 비교 가능한 기준에서 1% 증가했다. 생 로랑은 매출 감소에서 벗어나던 시기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거취라는 또 다른 변수를 맞은 셈이다. Kering

검정 드레스는 상체에 큰 부피를 두고 치맛자락을 길게 늘어뜨렸다. 금색의 좁은 스커트와 짧은 상의에서 벗어나 천의 양과 길이를 크게 늘린 실루엣이다. 사진=Saint Laurent,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바카렐로의 거취가 더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교체는 한 시즌의 옷만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생 로랑은 지난 10년 동안 바카렐로가 여성복과 남성복을 비롯해 광고, 쇼 장소와 무대 연출까지 일관된 방향으로 묶어왔다. 실제 퇴임이 결정될 경우 제품 디자인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 전반의 변화가 뒤따를 가능성이 생긴다.

반대로 현재 상태가 유지된다면 SS27은 작별 컬렉션이 아니라 바카렐로의 재임 10년을 통과한 또 하나의 시즌으로 남게 된다. 퇴임설을 근거로 금색을 회고, 검정을 작별로 해석하는 방식과 실제 인사 결정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케어링의 다음 실적 발표 일정도 잡혀 있다. 그룹은 10월 22일 2026년 3분기 매출을 발표할 예정이다. 생 로랑이 상반기에 되찾은 성장세를 이어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첫 공식 수치다. 바카렐로의 거취에 대해서는 별도의 공식 발표가 없는 상태다. 트로카데로에서 검정 드레스가 런웨이를 닫았지만,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체제를 둘러싼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