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산장 48년③] 그레고리·노로나·레키까지…49개 브랜드를 한곳에 모은 이유
배낭·의류·등산화·스틱부터 물병·백패킹 장비까지 넓힌 구성 브랜드 이름보다 전문 영역과 사용 목적에 무게 둔 편집숍 방식
[KtN 박준식기자]그레고리(Gregory), 노로나(Norrøna), 레키(LEKI), 맘무트(Mammut), 미스터리랜치(Mystery Ranch), 블랙다이아몬드(Black Diamond), 스카르파(SCARPA), 실바(SILVA), 오들로(ODLO), 오보즈(Oboz), 헬리녹스(Helinox). 도심산장의 브랜드 구성에는 49개 로고가 배열돼 있다. 의류만 모은 매장도, 등산화만 판매하는 전문점도 아니다. 배낭과 스틱, 신발, 기능성 의류, 물병, 캠핑과 백패킹 장비까지 서로 다른 분야의 브랜드가 한 매장 안에서 만난다.
브랜드 숫자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구성 방식이다. 한 회사의 의류와 신발, 배낭을 모두 채우기보다 여러 제조사의 제품을 섞는다. 배낭을 고를 때와 스틱을 고를 때, 등산화를 고를 때 판단 기준이 각각 다르다는 김길재 도심산장 대표의 생각이 반영된 방식이다.
김 대표는 오랫동안 한 품목을 만들어온 전문 제조사의 축적된 경험을 중요하게 본다. 토털 아웃도어 브랜드가 다양한 품목을 한꺼번에 다루는 방식과 특정 장비에 집중해온 제조사의 접근에는 차이가 있다는 판단이다. 같은 가격대라면 브랜드 인지도만 따지기보다 해당 제조사가 어떤 제품을 오랫동안 다뤄왔고 어떤 기능에 강점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배낭이면 배낭, 스틱이면 스틱처럼 하나를 계속 만들어온 회사들이 있어요. 오랫동안 만들면서 쌓은 노하우가 제품에 들어갑니다.”
김 대표가 전문 브랜드를 설명할 때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도 ‘오래 만든 시간’과 ‘한 분야에 대한 축적’이다. 제품 하나를 새로 내놓는 과정에서 기존 모델의 구조와 사용 경험을 다시 반영하고, 다음 제품에서 이를 수정하는 시간이 쌓인다는 것이다.
매장에 들어온 브랜드의 성격도 한 방향으로 몰리지 않는다. 배낭과 등산 장비에서 출발해 기능성 의류, 등산화, 양말, 물병, 보온용품, 백패킹과 캠핑용품으로 범위가 이어진다. 실제 판매 제품에서도 그레고리 캠프박스, 오들로 기능성 티셔츠, 오보즈 트레킹화, 날진 물통, 코글란 접이식 식기처럼 사용 목적이 서로 다른 품목들이 함께 다뤄진다.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에는 산행 방식도 들어간다. 하루 일정으로 가까운 산을 걷는 사람과 장거리 종주를 준비하는 사람, 백패킹 장비를 등에 지고 이동하는 사람에게 같은 구성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낭 용량이나 신발 종류뿐 아니라 의류의 기능, 물을 휴대하는 방식, 수납 장비까지 달라진다.
같은 품목에서도 차이는 더 세분화된다. 배낭은 용량만으로 고를 수 없고 등판 길이와 어깨끈 구조, 체형을 함께 살펴야 한다. 스틱 역시 길이와 사용 방식이 맞아야 한다. 기능성 의류는 겉옷 하나만 고르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입는 옷과 산행 중 체온 변화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49개 브랜드를 한곳에 배치한 이유도 모든 고객에게 같은 제품을 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브랜드마다 잘 만드는 품목과 제품의 성격이 다르고, 사용자마다 필요한 기능이 다르다는 전제에서 선택지를 넓혀 놓는 방식이다.
김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따라 산을 다녔고 국내 산행과 기술등반을 경험했다. 동생은 원정등반과 등산 교육 활동을 이어갔다. 산에서 장비를 사용해본 경험과 강의를 준비하며 쌓은 제품 지식이 브랜드를 고르는 기준으로 연결됐다.
전문 브랜드를 취급한다고 해서 고가 제품을 일률적으로 권하는 방식과도 거리를 둔다. 김 대표는 날씨가 좋고 짧은 산행을 하는 사람에게 고기능 장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비와 강풍, 기온 변화가 예상되는 환경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산행 조건에 따라 필요한 수준을 나눠야 한다는 설명이다.
가격 역시 기능과 분리해서 보지 않는다. 비슷한 가격대라면 어떤 소재와 구조가 사용됐는지, 실제 산에서 어떤 기능을 쓰게 되는지까지 따져야 한다. 비싼 제품을 사는 행위 자체보다 구입한 장비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오들로 제로웨이트 칠텍 티셔츠를 구매한 소비자 반응에서도 기능을 비교하는 방식이 나타난다. 한 구매자는 다른 기능성 티셔츠들과 번갈아 입으면서 속건성과 냄새 관리에서 차이를 느꼈다고 적었고, 다른 색상을 추가 주문했다고 남겼다. 또 다른 구매자는 한 벌을 사용한 뒤 같은 제품을 다시 구입했다고 적었다.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 역시 로고보다 실제 착용 과정으로 이동하는 대목이다.
그레고리 캠프박스 후기는 수납과 재질, 색감에 집중됐고, 날진 물통과 코글란 접이식 식기는 이동과 휴대 과정에서의 편의성이 주로 언급됐다. 오보즈 트레킹화는 착화감, 소프트 플라스크는 무게와 수납성이 주요 반응으로 이어졌다. 한 매장에서 서로 다른 브랜드가 공존하는 이유를 실제 사용 목적이 보여준다.
브랜드 큐레이션에는 세대 변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등산 장비의 기능과 사용법에 대한 설명을 원하는 고객이 있는 반면, 젊은 소비자 가운데는 디자인과 착장, 현재 많이 선택되는 브랜드를 먼저 살피는 경우도 있다. 김 대표는 패션 분야에 강한 직원들과 의견을 나누며 브랜드 구성을 조정하고 있다. 본인이 잘 알지 못하는 영역에서는 직원의 전문성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유행을 따라 모든 브랜드를 들여오는 방식에는 신중하다. 러닝이 빠르게 성장할 때도 관련 제품을 곧바로 대규모로 늘리기보다 일부 품목부터 다뤘다. 변화가 빠른 시장에서 움직임이 늦었다는 김 대표의 자평도 있지만, 직접 경험하지 않은 분야를 유행만 보고 확대하는 데 대한 부담도 있었다.
도심산장의 브랜드 구성은 그래서 한 번 정해 놓은 목록에 가깝지 않다. 등산에서 백패킹과 트레일러닝으로 활동이 넓어지고 소비자 연령이 달라지면서 필요한 품목도 변한다. 기능을 중심으로 제품을 찾는 고객과 스타일을 중시하는 고객이 같은 매장을 찾으면서 브랜드를 고르는 기준 역시 세분화되고 있다.
49개의 로고는 매장을 채우기 위한 숫자보다 서로 다른 장비를 조합하기 위한 선택지에 가깝다. 배낭은 몸에 맞는 제품을, 신발은 산행 환경과 발에 맞는 제품을, 의류는 계절과 활동량에 맞는 제품을 고른다. 한 브랜드로 모든 장비를 맞추기보다 품목마다 필요한 기능을 따져 조합하는 방식이 도심산장의 편집숍 운영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