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 120년②] 세잔 69점이 파리에 모였다…174점 뒤의 미술관 네트워크

오르세·오랑주리·퐁피두 대규모 협업…뉴욕·마드리드·개인 컬렉션까지 연결한 3년의 전시 준비

2026-10-03     임민정 기자

[KtN 임민정기자]폴 세잔(Paul Cezanne)의 작품 69점이 파리 그랑팔레에 모였다. 세잔 이후의 미술을 보여주는 78명 작가의 작품 105점까지 더해졌다. 총 174점이다. 2026년 열린 'Cezanne et nous'는 세잔의 생애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는 회고전이 아니라 1880년대부터 현재까지 140여 년 동안 이어진 영향을 한 공간에 펼쳐놓은 전시다.

174점이라는 숫자보다 눈여겨볼 부분은 작품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있다. 프랑스 주요 국립미술관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의 미술관, 재단, 개인 컬렉션에 흩어져 있던 작품이 그랑팔레로 이동했다. 한 작가의 영향력을 보여주기 위해 서로 다른 시대와 국가, 소장 체계를 연결한 대규모 협업이 전시의 바탕에 놓였다.

오르세미술관(Musée d’Orsay), 오랑주리미술관(Musée de l’Orangerie),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가 이 정도 규모로 컬렉션을 함께 구성한 것은 처음이다. 프랑스에서 19세기 미술과 현대미술은 오르세와 퐁피두라는 기관 체계에서도 뚜렷하게 나뉘어 있다. 'Cezanne et nous'는 기관별 시대 구분을 넘어 세잔을 중심으로 작품을 다시 묶었다.

폴 세잔(Paul Cezanne) 'Pommes et biscuits'(1880). 오랑주리미술관 소장 작품으로 2026년 그랑팔레에서 열린 'Cezanne et nous'에 출품됐다. 이번 전시에는 세잔 작품 69점과 후대 작가 78명의 작품 105점이 함께 구성됐다. © GrandPalaisRmn (Musée de l’Orangerie)/Franck Raux

전시는 약 3년에 걸쳐 준비됐다. 네 명의 큐레이터가 각자의 전문 영역을 나눠 맡으면서 작품 선정과 전시 구성은 공동으로 진행했다. 세잔 작품만 모으면 되는 전시가 아니었다. 피카소, 마티스, 고갱, 몬드리안에서 조안 미첼, 데이비드 호크니, 브리짓 라일리, 피터 도이그까지 서로 다른 시대의 작품을 한 전시 안에 연결해야 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한 세잔의 'The Bather'도 파리로 이동했다. 1885년께 제작된 작품이다. 전시장에서는 피터 도이그(Peter Doig)가 2023년에 제작한 동명의 'Bather'와 가까운 위치에 배치됐다. 도이그의 작품은 래리 가고시안(Larry Gagosian) 컬렉션에서 왔다.

두 작품의 제작 시차는 130년을 훌쩍 넘는다. 소장처도 다르다. 세잔의 작품은 미국의 미술관에, 도이그의 작품은 개인 컬렉션에 있다. 그랑팔레에서는 두 작품이 같은 공간에 놓이면서 세잔의 인체 표현과 도이그의 현대적 해석을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졌다.

작품을 빌려오는 일은 전시의 외형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떤 작품을 어디에서 확보하느냐에 따라 세잔과 후대 작가를 연결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파리 피카소미술관(Musée Picasso)에서는 세잔의 'Château Noir'(1905)가 출품됐다. 피카소가 소장했던 세잔 작품 여섯 점 가운데 하나다. 세잔을 자신의 첫 번째 위대한 스승으로 받아들였던 피카소의 개인 소장 이력이 전시장 안에서 다시 연결된 셈이다.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사 국립미술관(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에서는 클리퍼드 스틸(Clyfford Still)의 1965년 작품이 왔다. 스틸은 세잔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쓴 작가다. 세잔과의 관계는 직접적인 모방보다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세잔을 연구하고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174점을 하나의 전시장에 모으는 과정은 결국 국제적인 소장 지도를 다시 연결하는 작업이다. 세잔의 작품은 프랑스에만 남아 있지 않다. 생전 프랑스 공공 미술관의 수집이 늦었던 사이 해외 컬렉터들이 작품을 확보했고, 이후 여러 작품은 미국과 유럽의 주요 미술관과 개인 컬렉션으로 흩어졌다.

2026년 파리에서 세잔의 영향을 대규모로 보여주려면 한 세기 넘게 여러 국가와 기관으로 나뉜 작품을 다시 불러들여야 했다.

마스던 하틀리(Marsden Hartley) 'Mont Sainte-Victoire (montagne rouge)'(약 1927). 세잔이 반복해서 그렸던 생트빅투아르 산을 붉은 색조로 다시 구성했다. 작품은 빌첵재단 컬렉션(The Vilcek Foundation Collection) 소장. © The Vilcek Foundation Collection/The Vilcek Foundation

생트빅투아르 산은 전시의 국제적 연결 구조를 보여주는 소재이기도 하다. 세잔이 고향 엑상프로방스 인근의 산을 반복해서 그린 뒤 여러 작가가 같은 산을 자기 방식으로 다시 해석했다.

마스던 하틀리(Marsden Hartley)는 1927년께 생트빅투아르를 강한 붉은 색조의 산으로 바꿨다. 자오우키(Zao Wou-Ki)는 2005년 'Homage to Cezanne'에서 녹색 계열의 색채로 세잔에게 경의를 표했다. 한 지역의 풍경이 세잔을 거쳐 다른 시대와 다른 국가의 화가들에게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오르세와 퐁피두의 협업도 같은 구조에서 의미를 갖는다. 세잔을 19세기 말 화가로만 다루면 이후의 미술을 보여주기 어렵고, 현대미술만 따로 놓으면 세잔에서 출발한 변화의 출발점을 보여주기 어렵다. 서로 다른 시대의 작품을 소장하는 기관이 함께 움직여야 세잔과 후대 미술 사이의 연결을 실제 작품으로 구성할 수 있다.

큐레이터들은 몇몇 유명 작가만 세잔과 대조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고갱(Paul Gauguin), 마티스(Henri Matisse), 피카소(Pablo Picasso),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조안 미첼(Joan Mitchell),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브리짓 라일리(Bridget Riley), 피터 도이그(Peter Doig) 등 서로 다른 흐름을 가진 작가들을 폭넓게 포함했다.

세잔에게서 가져간 요소도 작가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형태와 구조에 주목했고, 누군가는 미완성처럼 남은 선과 붓질을 받아들였다. 또 다른 작가는 생트빅투아르 산이나 정물 같은 세잔의 소재를 자신의 시대에 맞게 다시 구성했다.

전시의 규모가 커질수록 작품 수보다 소장처의 다양성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같은 작가의 영향을 보여주기 위해 국립미술관과 현대미술관, 재단과 개인 컬렉션의 작품을 동시에 확보해야 했다.

마크 탠지(Mark Tansey) 'Valley of Doubt'(1990). 세잔의 생트빅투아르 산을 문자와 단어의 콜라주로 재구성한 대형 작품이다. 뉴욕 휘트니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소장 작품으로 'Cezanne et nous'에 출품됐다. © Mark Tansey/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Ti Nighswander/Imaging4art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소장한 마크 탠지(Mark Tansey)의 'Valley of Doubt'(1990)도 파리로 이동했다. 탠지는 생트빅투아르 산을 문자와 단어가 뒤섞인 형태로 다시 만들었다. 산 앞에는 바위가 넓게 펼쳐져 있다.

세잔이 실제 풍경을 반복해서 바라보며 그렸다면 탠지는 세잔이라는 미술사적 존재 자체를 재료로 삼았다. 제작 시기도, 회화의 방식도 다르지만 그랑팔레에서는 두 세대의 작품이 하나의 계보 안에 놓인다.

작품 대여는 전시를 준비하는 실무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잔과 도이그를 어느 위치에 놓을지, 생트빅투아르를 그린 여러 세대의 작품을 어떻게 이어놓을지, 피카소가 실제 소장했던 세잔 작품을 어떤 맥락에서 보여줄지에 따라 관객이 읽는 미술사도 달라진다.

그랑팔레는 세잔의 전시 역사에서도 특별한 장소다. 세잔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07년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고, 1995년에도 파리의 주요 세잔전이 개최됐다. 2026년에는 여러 국가와 기관으로 흩어진 세잔과 후대 작가들의 작품이 다시 같은 공간에 모였다.

1907년의 그랑팔레가 세잔의 사후 평가가 커지는 과정에 있었다면 2026년의 그랑팔레는 이미 세계 여러 미술관과 컬렉션으로 확산된 세잔의 유산을 다시 불러들이는 공간이 됐다.

'Cezanne et nous'는 2027년 1월 17일까지 이어진다. 세잔 69점과 후대 작가 105점을 한 전시장에 놓은 규모는 개별 작품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프랑스의 시대별 미술관 경계를 넘은 협업, 해외 미술관의 대여, 재단과 개인 컬렉션의 참여가 동시에 작동했다.

한 세기 넘게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세잔의 작품과 영향을 다시 파리에 모은 2026년 전시는 대형 미술전이 작가의 명성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작품을 소장한 기관과 작품을 움직일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어야 미술사의 연결도 실제 전시장 안에서 구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