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잔, 우리 시대의 미술이 말하는 것

한때 낯설고 불완전했던 그림에서 현대미술의 기준으로…작품의 생명은 완성되는 순간보다 이후의 시간 속에서 결정된다

2026-10-28     임민정 기자
폴 세잔 'La Montagne Sainte-Victoire vue des Lauves'(1904~1905). 세잔은 고향 엑상프로방스 인근의 생트빅투아르 산을 80점이 넘는 작품에 반복해서 담았다. 생트빅투아르 산은 세잔의 회화를 대표하는 모티프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 courtesy of Nelson-Atkins: Digital Production & Preservation

[KtN 임민정기자]1874년 파리에서 폴 세잔(Paul Cezanne)의 그림은 환영받지 못했다. 첫 인상주의 전시에서 일부 비평가는 세잔의 회화를 정신 이상과 연결했고, 인상주의를 지나치게 밀어붙인 그림이라고 공격했다. 인상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세잔은 가장 낯선 쪽에 가까웠다. 원근은 익숙한 방식으로 깊어지지 않았고, 형태는 매끈하게 마무리되지 않았으며, 붓질은 감춰지지 않았다. 후대가 세잔의 혁신이라고 부르게 된 요소들이 당시에는 결함에 가까운 것으로 읽혔다.

2026년 파리 그랑팔레에 놓인 세잔은 150여 년 전의 세잔과 전혀 다른 지위에 있다. 'Cezanne et nous'에는 세잔의 작품 69점과 세잔 이후 78명 작가의 작품 105점, 모두 174점이 모였다. 고갱과 마티스, 피카소, 몬드리안에서 조안 미첼, 브리짓 라일리, 데이비드 호크니, 피터 도이그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의 작가들이 한 화가를 사이에 두고 만난다. 한 사람의 회고전이라기보다 세잔을 통과한 140여 년의 미술을 다시 펼쳐놓은 전시에 가깝다.

세잔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미술의 가치는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에 확정되지 않는다는 오래된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세잔은 에콜 데 보자르 입학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공식 살롱에서도 반복해서 외면받았다. 프랑스 미술관의 수집도 늦었다. 지금은 미술사의 중심에 놓인 화가가 정작 살아 있을 때는 제도의 바깥을 오래 맴돌았다. 작품은 이미 존재했지만 작품을 받아들일 언어와 제도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던 셈이다.

앙브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가 1895년 세잔의 첫 개인전을 열고 100점이 넘는 작품을 확보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컬렉터가 움직였고 동료 화가들이 작품을 다시 보았다. 피카소는 세잔을 직접 만난 적이 없지만 첫 번째 위대한 스승으로 받아들였고 작품 여섯 점을 소장했다. 세잔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07년 그랑팔레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은 생전의 주변부 화가를 사후의 중심부로 옮겨놓는 과정에 놓여 있었다.

여기에는 미술사를 바라보는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제도는 작품의 가치를 공인하지만, 언제나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시장 역시 가격을 만들 수 있지만 작품의 의미까지 결정하지는 못한다. 비평은 한 시대의 언어로 작품을 해석하지만 다음 시대의 판단을 구속할 수도 없다. 세잔의 경우에는 오히려 당대의 부정적 평가가 후대의 미술사 안에서 뒤집혔다. 낯설다는 평가는 새로움이 됐고, 미완성처럼 보였던 붓질은 회화의 자율성을 설명하는 근거가 됐다.

2026년 그랑팔레가 흥미로운 이유도 세잔을 이미 완성된 거장으로 봉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시는 피카소가 본 세잔, 고갱이 본 세잔, 브리짓 라일리가 읽은 세잔, 피터 도이그가 다시 발견한 세잔을 함께 놓는다. 같은 화가에게서 가져간 것도 서로 다르다. 누군가는 형태와 공간을 읽었고, 누군가는 어색함과 미완성의 선을 받아들였다. 또 다른 작가는 생트빅투아르 산이라는 하나의 풍경을 자신의 시대에 맞게 바꾸었다.

 

폴 세잔(Paul Cezanne)의 'Le Baigneur'(약 1885)와 피터 도이그(Peter Doig)의 'Bather'(2023). 세잔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도이그의 작품은 래리 가고시안(Larry Gagosian) 컬렉션에서 왔다. 130년 넘는 시차를 둔 두 작품은 'Cezanne et nous'에서 서로 가까이 배치됐다. ©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Scala, Florence·© Peter Doig. All Rights Reserved, DACS/Adagp, Paris, 2026, Collection of Larry Gagosian/Maris Hutchinson, courtesy Gagosian

세잔의 'Le Baigneur'와 피터 도이그의 'Bather'가 가까운 위치에 놓인 구성이 대표적이다. 1885년께 그려진 세잔의 인물에는 완성되지 않은 발과 드러난 붓질이 남아 있다. 2023년 도이그의 인물은 같은 제목을 갖지만 세잔을 복제하지 않는다. 도이그가 가져간 것은 표면적인 닮음보다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형태가 만들어내는 긴장에 가깝다. 영향은 모방보다 선택에 가깝고, 계승은 반복보다 변형에 가깝다는 사실이 두 작품 사이에서 드러난다.

생트빅투아르 산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쳤다. 세잔이 엑상프로방스 인근의 산을 수십 차례 그린 뒤 마스던 하틀리는 붉은 산으로 바꾸었고, 자오우키는 2005년 세잔에게 바치는 작품으로 다시 불러냈다. 마크 탠지는 'Valley of Doubt'에서 산을 문자와 단어가 뒤섞인 이미지로 재구성했다. 세잔에게 생트빅투아르가 끊임없이 바라보아야 할 실제 풍경이었다면 후대의 작가들에게는 이미 미술사 자체가 된 이미지였다.

여기서 미술관의 역할도 달라진다. 미술관은 이미 결정된 미술사를 보관하는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어떤 작품을 함께 걸고, 어느 작가를 한 계보 안에 넣으며, 어떤 관계를 앞에 세울 것인지 결정하면서 미술사를 다시 편집한다. 세잔과 도이그를 나란히 놓으면 미완성과 인체가 부각되고, 브리짓 라일리를 연결하면 구조와 시각 체계가 앞으로 나온다. 피카소를 세우면 입체주의로 이어지는 공간의 문제가 나타난다. 한 작가의 의미가 작품 배치에 따라 다시 달라지는 이유다.

그 작업은 관념만으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오르세미술관과 오랑주리미술관, 퐁피두센터가 이 규모로 컬렉션을 함께 움직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욕과 마드리드, 워싱턴의 미술관과 재단, 개인 컬렉션에 흩어진 작품도 파리로 모였다. 네 명의 큐레이터가 약 3년에 걸쳐 전시를 준비했다. 한 세기의 미술사를 한 공간에 불러들이는 일에는 해석뿐 아니라 작품을 움직일 수 있는 제도와 네트워크의 힘이 필요하다.

폴 세잔 'Le Jardin des Lauves'(약 1906). 세잔의 생애 마지막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다. 세잔 사망 이듬해인 1907년 파리 그랑팔레에서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세잔의 120년은 그래서 과거의 미술 이야기만으로 읽기 어렵다. 오히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미술을 바라보는 태도와 더 가까이 닿아 있다. 동시대는 작품을 가장 먼저 볼 수 있지만 작품의 마지막 의미까지 알 수는 없다. 지금 높은 가격을 얻는 작품이 다음 세대에서도 같은 위치에 있을지, 오늘의 미술관이 주목하지 않는 작업 가운데 무엇이 뒤늦게 새로운 언어가 될지는 아무도 확정할 수 없다.

미술사는 결국 작품과 시간이 벌이는 긴 협상에 가깝다. 작가는 작품을 끝낼 수 있지만 작품의 의미까지 끝낼 수는 없다. 세잔이 세상을 떠난 뒤 피카소가 다른 세잔을 발견했고, 라일리가 또 다른 세잔을 읽었으며, 도이그와 탠지가 다시 자기 시대의 세잔을 만들었다. 작품은 남았지만 작품을 둘러싼 의미는 계속 움직였다.

우리 시대의 미술도 같은 운명 앞에 놓여 있다. 지금의 제도와 시장, 비평은 작품의 현재 위치를 정할 수는 있어도 미래의 위치까지 결정하지는 못한다. 동시대는 작품을 소유할 수는 있어도 작품의 최종 의미를 독점할 수 없다.

세잔이 우리 시대에 다시 필요한 이유는 이미 위대한 화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 시대의 판단이 얼마나 잠정적인지, 낯섦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지, 작품의 생명이 작가의 생애보다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2026년 그랑팔레에 모인 174점 사이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세잔이라는 이름의 권위보다, 미술을 판단하는 우리의 현재 역시 언젠가는 다시 판단받게 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