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폴 세잔 'Pommes et biscuits', 사과를 놓고 공간의 질서를 흔들다
1880년 정물에서 드러난 기울어진 탁자와 서로 다른 시점…사물을 ‘닮게 그리는 회화’에서 ‘보는 방식의 회화’로 옮겨간 세잔
[KtN 임민정기자]폴 세잔(Paul Cezanne)의 'Pommes et biscuits'(1880)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 탁자 위에는 여러 개의 사과가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접시가 걸쳐 있다. 사과 아래로 짙은 회색빛 탁자 면이 펼쳐지고, 아래쪽에는 천이나 가구의 일부가 잘린 채 나타난다. 정물화에서 익숙한 사물들이다.
그런데 오래 바라볼수록 공간은 안정되지 않는다.
사과는 탁자 위에 놓여 있지만 탁자는 한 방향으로 정확하게 기울어 있지 않다. 오른쪽 접시는 위에서 내려다본 듯 타원형으로 보이고, 사과들은 거의 정면에서 바라본 듯 묵직하게 자리한다. 탁자의 앞쪽 선도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정돈되지 않는다. 위쪽과 아래쪽, 왼쪽과 오른쪽의 시점이 미세하게 어긋난다.
세잔은 이 어긋남을 감추지 않는다.
전통적인 원근법이 관람자의 눈을 한 지점에 고정하고 공간 전체를 하나의 질서로 맞춘다면, 'Pommes et biscuits'에서는 사물마다 조금씩 다른 시선이 작동한다. 사과를 바라본 눈과 접시를 본 눈, 탁자의 가장자리를 따라간 눈이 하나의 순간에 머물지 않는다.
정물은 정지해 있지만 보는 행위는 움직인다.
작품 중앙에는 사과가 밀집돼 있다. 노랑과 주황, 붉은 갈색이 섞인 사과들은 각각 완벽한 구형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윤곽은 조금씩 흔들리고 표면의 색도 한 방향의 빛에 따라 매끄럽게 변하지 않는다. 붉은색과 황토색, 녹색과 어두운 갈색이 겹치면서 사과의 부피가 만들어진다.
세잔에게 색은 사물의 표면을 꾸미는 요소에 머물지 않는다. 형태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
밝은 노란색 사과 옆에 어두운 붉은 사과를 놓고, 다시 주황빛 사과를 겹쳐놓으면서 앞뒤의 관계를 색의 차이로 만들어낸다. 윤곽선과 명암만으로 부피를 만드는 방식과는 다르다. 색과 색이 맞닿는 경계 자체가 형태를 세운다.
사과의 배열도 자연스럽게 흩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다. 왼쪽에는 노란 사과 하나가 조금 떨어져 있고 중앙에는 여러 개가 밀집돼 있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다시 간격이 벌어지면서 접시로 이어진다.
밀도 높은 중앙과 비어 있는 가장자리 사이에서 시선이 움직인다.
특히 오른쪽 접시는 작품의 균형을 흔드는 역할을 한다. 접시 전체가 캔버스 안에 들어오지 않고 오른쪽 가장자리에서 잘린다. 중앙의 사과들이 둥근 덩어리로 무게를 만들고 있다면 접시의 푸른 테두리는 그 무게를 오른쪽으로 끌어당긴다.
접시 안에는 밝은 흰색과 옅은 색조의 형태가 놓여 있다. 제목의 'biscuits'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세잔은 각각의 사물을 세밀한 묘사로 구별하기보다 접시와 그 안의 밝은 형태를 하나의 색채 덩어리처럼 다룬다.
배경도 평범하지 않다.
사과 뒤의 벽은 회백색과 푸른빛이 뒤섞여 있고, 중앙에는 식물이나 천의 흔적처럼 보이는 붓질이 떠 있다. 형태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배경을 사실적인 실내 공간으로 완성하기보다 색과 붓질이 남은 평면으로 처리했다.
그 결과 사과의 존재감은 더욱 강해진다.
사물의 배경이 구체적인 장소를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관람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사과와 탁자의 관계로 돌아온다. 어디에 놓인 사과인가보다 사과들이 어떻게 서로 공간을 만들고 있는가가 중요해진다.
탁자 아래쪽은 작품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상단의 정물만 떼어놓으면 비교적 전통적인 구성이지만,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탁자의 앞면과 천처럼 보이는 넓은 색면이 등장한다. 왼쪽에는 밝은 크림색, 가운데에는 어두운 세로 형태, 오른쪽에는 황토색이 넓게 퍼져 있다.
이 부분에서는 사물의 정확한 정체보다 면과 색의 관계가 앞선다.
탁자의 위쪽과 아래쪽은 같은 공간에 속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직된다. 위에는 사과라는 분명한 대상이 있고 아래에는 형태가 점차 불분명해진다. 정물화가 구상에서 추상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이미 한 작품 안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세잔의 사과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도 단순히 사과를 많이 그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과는 움직이지 않는다. 인물처럼 자세를 바꾸지도 않고 풍경처럼 빛과 날씨가 빠르게 변하지도 않는다. 세잔은 정지된 사물을 앞에 두고 형태와 색, 공간을 오랫동안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관찰은 하나의 순간을 사진처럼 고정하는 방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사과 하나를 바라보다가 다른 사과로 시선을 옮기고, 탁자의 끝을 보고, 다시 접시를 바라보는 시간 전체가 회화 안에 축적된다. 그래서 'Pommes et biscuits'의 공간은 조금씩 어긋난다. 하나의 눈, 하나의 위치, 하나의 순간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세잔의 정물은 이후 현대미술과 연결된다.
20세기 초 입체주의는 사물을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여러 시점을 하나의 평면에 결합했다. 세잔의 정물에 이미 완성된 입체주의가 들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단일한 원근법을 흔들고 사물을 여러 관계 속에서 다시 조직하는 태도는 이후 회화가 공간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
피카소가 세잔을 자신의 중요한 스승으로 받아들였던 이유도 단순한 화풍의 유사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세잔은 사물을 얼마나 정확하게 닮게 그릴 것인가보다 사물을 바라보는 경험을 어떻게 캔버스 위에 다시 구성할 것인가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Pommes et biscuits'에서 사과는 그래서 사과이면서 동시에 회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단위가 된다.
둥근 형태 하나가 다른 둥근 형태와 겹치고, 노랑이 붉은색을 만나며, 밝은 면이 어두운 면을 밀어낸다. 탁자의 수평선과 접시의 곡선, 아래쪽의 세로 형태가 서로 맞물리면서 작품 전체가 구축된다.
세잔은 일상의 사물을 특별한 상징으로 바꾸지 않았다. 사과에 거창한 서사를 부여하지도 않았다.
대신 평범한 사과를 앞에 놓고 인간이 세계를 본다는 일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파고들었다.
눈은 하나의 순간만 보지 않는다. 시선은 이동하고, 기억은 이전의 모습을 붙잡으며, 가까운 것과 먼 것을 번갈아 확인한다. 세잔의 정물에서 미세하게 어긋나는 원근과 불안정한 탁자는 그런 시각 경험을 하나의 캔버스 안에 남긴 결과로 읽을 수 있다.
1880년의 'Pommes et biscuits'에는 화려한 소재도 극적인 서사도 없다. 사과 몇 개와 접시, 탁자가 전부다.
그러나 세잔은 가장 평범한 사물을 통해 회화의 오래된 전제를 바꾸기 시작했다. 세계를 한 점에서 바라본 완결된 공간으로 재현하는 대신 여러 번 보고, 다시 보고, 서로 다른 순간의 감각을 한곳에 쌓았다.
사과는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사과를 바라보는 눈이고, 세잔의 회화는 바로 그 움직임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