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폴 세잔 'Trois baigneuses', 몸은 왜 자연 속에서 불편하게 남았나
1874~1875년 세 여성의 누드를 통해 드러난 초기 세잔의 급진성…해부학적 정확성보다 인체와 공간의 충돌을 앞세운 회화
[KtN 임민정기자]폴 세잔(Paul Cezanne)의 'Trois baigneuses'(1874~1875)에는 세 명의 여성 누드가 등장한다. 왼쪽의 인물은 등을 보인 채 몸을 비스듬히 눕히고, 가운데 인물은 두 팔을 앞으로 뻗으며 서 있다. 오른쪽 인물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다. 세 사람은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거나 하나의 행동을 공유하지 않는다. 인물의 자세도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19세기 누드화에서 기대되는 매끄러운 신체와 안정된 비례도 찾기 어렵다. 가운데 인물의 몸은 길게 늘어나고, 오른쪽 인물은 몸통과 다리가 하나의 둥근 덩어리처럼 접힌다. 왼쪽 인물의 등과 엉덩이는 크게 부풀어 있고 팔과 다리의 연결도 매끄럽지 않다. 세잔은 인체를 아름다운 선으로 정리하기보다 서로 다른 방향과 무게를 가진 형태로 다룬다.
바로 이 어색함이 작품의 출발점이다.
세 인물은 자연 속에 있지만 자연과 편안하게 결합하지 않는다. 나무와 풀, 하늘은 인체를 감싸는 배경으로 물러나지 않고 인물과 비슷한 강도로 앞에 나온다. 왼쪽의 나무줄기는 인물의 몸을 비스듬히 가르고, 오른쪽의 수직적인 나무들은 웅크린 인물 바로 뒤에서 강한 축을 만든다. 사람과 자연을 구분하는 경계보다 두 요소가 서로 밀고 당기는 구조가 먼저 읽힌다.
가운데 서 있는 인물은 작품의 중심을 잡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주인공은 아니다. 몸은 정면에 가까우면서도 얼굴은 아래로 기울었고, 팔은 앞으로 길게 뻗어 있다. 손은 세밀하게 묘사되지 않고 하나의 방향을 표시하는 형태에 가깝다. 발도 땅을 단단히 딛는 느낌보다 아래쪽 색면 속으로 들어간다.
몸이 공간 안에 안정적으로 서 있지 않기 때문에 인물은 조각처럼 단단하면서 동시에 불안하다.
세잔은 명암으로 인체의 부드러운 입체감을 만드는 방식에서도 벗어난다. 피부에는 흰색과 회색, 녹색, 옅은 청색이 함께 들어간다. 살색을 자연스럽게 재현하기보다 주변의 나무와 하늘에서 사용한 색을 인체에도 끌어온다. 오른쪽 인물의 등과 허벅지에는 녹색과 회색이 스며들고, 가운데 인물의 몸에는 하늘의 푸른빛과 가까운 색이 섞인다.
피부와 자연의 색이 분리되지 않으면서 사람은 풍경 속에 녹아든다. 그러나 그 결과가 목가적인 조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체와 자연이 같은 회화적 재료로 만들어지면서 두 영역 사이의 긴장이 커진다.
붓질도 이러한 긴장을 감추지 않는다. 나뭇잎은 짧고 거친 초록과 검은색 터치로 쌓이고 인체에는 두꺼운 흰색과 회색 붓질이 겹친다. 윤곽은 곳곳에서 흔들린다. 선으로 몸의 경계를 확정한 뒤 안쪽을 채우는 방식보다 색의 덩어리를 이어 붙이며 몸을 만들어간 흔적이 더 강하다.
왼쪽 인물은 특히 세잔의 방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등을 돌린 몸은 해부학적 정확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허리에서 엉덩이, 허벅지로 이어지는 곡선은 과장돼 있고 상체와 하체의 연결도 조금 비틀려 있다. 그런데 이런 불균형 때문에 몸이 오히려 하나의 커다란 형태로 강하게 남는다.
세잔에게 인체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대상보다 회화의 구조를 만드는 덩어리에 가까워지고 있다.
오른쪽 인물은 더 극단적이다.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접은 자세 때문에 몸은 거의 원형에 가까운 덩어리가 된다. 팔과 다리, 몸통의 경계가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밝은 피부색 안쪽으로 녹색과 회색이 들어오면서 인체는 주변 땅과 이어진다.
세 명의 자세를 함께 보면 서로 다른 방향성이 만들어진다. 왼쪽 인물은 비스듬하게 눕고, 가운데 인물은 수직으로 서며, 오른쪽 인물은 둥글게 몸을 접는다. 세잔은 세 몸을 이용해 하나의 안정된 삼각형 구도를 만들기보다 직선과 곡선, 수직과 사선이 충돌하는 구조를 세운다.
작품의 크기가 크지 않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인물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지만 기념비적인 누드화처럼 장엄하게 펼쳐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물과 나무, 땅이 좁은 공간 안에 밀집하면서 압박감이 생긴다.
공간 역시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왼쪽의 나무와 중앙의 인물, 오른쪽의 수직 나무 사이에서 원근은 분명하게 깊어지지 않는다. 인물들은 서로 다른 거리에 있는 듯하면서도 거의 같은 평면에 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배경의 하늘과 나무가 멀리 물러나지 않기 때문에 앞과 뒤의 차이도 약해진다.
이런 공간의 불안정성은 이후 세잔 회화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특징으로 이어진다. 정물에서는 탁자와 접시의 각도가 서로 어긋나고, 풍경에서는 산과 나무, 들판이 하나의 소실점에 종속되지 않는다. 'Trois baigneuses'에서도 인물과 자연은 완벽한 원근법 안에 들어가기보다 각자의 위치를 유지하면서 하나의 캔버스에 함께 놓인다.
1874~1875년이라는 제작 시점도 중요하다. 첫 인상주의 전시가 열린 1874년과 겹치는 시기다. 당시 세잔의 회화가 낯설고 과격하게 받아들여졌던 이유를 이 작품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인체는 이상화되지 않았고 공간은 안정적으로 정리되지 않았으며 붓질은 거칠게 남아 있다.
전통적인 누드화가 몸의 아름다움과 조화로운 구성을 기대하게 했다면 세잔은 그 기대를 여러 방향에서 흔든다.
세 여성에게는 뚜렷한 서사도 없다. 고전 신화의 인물인지, 목욕을 준비하는 사람들인지 작품 자체만으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확정하기 어렵다. 세잔은 인물의 정체를 설명하기보다 몸의 형태와 배치에 집중한다.
그래서 제목의 '세 명의 목욕하는 여성'이라는 정보보다 중요한 것은 세 개의 몸이 어떻게 서로 다른 덩어리와 방향을 만드는가에 있다.
후대의 '목욕하는 사람들' 연작과 연결해 보면 이 초기작의 의미는 더욱 커진다. 세잔은 목욕하는 인물을 일회성 소재로 끝내지 않고 반복해서 다뤘다. 인체와 자연을 어떻게 하나의 회화 안에 조직할 것인지는 오랫동안 이어진 관심이었다.
후기로 갈수록 인물은 더욱 건축적인 형태로 단순해지고 자연과 인체의 경계도 더 복잡하게 결합한다. 'Trois baigneuses'에서는 그 출발점에 가까운 긴장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아직 거칠고 불균형하지만 바로 그 불균형 속에서 세잔이 전통적 인체 표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드러난다.
세잔의 누드는 관람자에게 쉽게 아름다움을 제공하지 않는다. 몸은 비례가 어긋나 있고 피부의 색도 자연스럽지 않으며 자세 역시 편안하지 않다.
하지만 세잔은 인체를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대신 몸을 하나의 회화적 구조로 다시 바라본다. 팔과 다리는 방향을 만들고, 몸통은 덩어리가 되며, 피부의 색은 주변 자연과 연결된다. 사람과 나무, 땅과 하늘이 서로 다른 대상이면서 동시에 같은 붓질과 색채로 만들어진다.
'Pommes et biscuits'에서 사과가 단순한 정물의 소재를 넘어 공간을 조직하는 단위가 됐다면, 'Trois baigneuses'에서 인간의 몸도 비슷한 역할을 맡는다. 세잔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렸느냐보다 형태들이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는가에 점차 가까워진다.
그래서 이 작품의 어색함은 제거해야 할 결함이라기보다 세잔 회화의 중요한 징후로 읽힌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몸보다 불균형한 몸, 안정된 원근보다 흔들리는 공간, 매끄러운 마감보다 드러난 붓질을 선택하면서 세잔은 인체를 바라보는 오래된 회화의 질서를 조금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1874~1875년의 'Trois baigneuses'는 아직 세잔의 후기 회화처럼 구조가 극도로 응축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훗날 피카소와 마티스를 비롯한 현대미술가들이 세잔에게서 발견하게 될 문제들이 이미 여기에서 움직이고 있다.
세 명의 여성은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쉬지 않는다. 몸과 공간은 끊임없이 부딪치고, 그 불편한 관계가 그림을 지탱한다. 세잔이 현대미술로 건너가는 길은 아름다운 조화보다 바로 이런 어긋남에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