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ara × John Galliano Re{form}④] 프랑스혁명 이후 복식에서 필름 누아르까지, 갈리아노가 겹친 서로 다른 시대
‘레 앵크루아야블’·‘레 메르베이외즈’와 정원 작업복, 검은 테일러링의 긴장감…‘Re{form}’ Vol. 1에 들어온 복식의 충돌
[KtN 박인경기자]존 갈리아노(John Galliano)는 자라(Zara)의 ‘Re{form}’ Vol. 1에 한 시대의 옷만 가져오지 않았다. 프랑스혁명 이후의 복식에서 출발한 ‘레 앵크루아야블(Les Incroyables)’과 ‘레 메르베이외즈(Les Merveilleuses)’, 전통적인 정원 작업복, 필름 누아르의 어두운 분위기가 한 컬렉션 안에서 겹쳤다. 서로 연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요소들이 큰 모자와 높은 칼라, 조인 허리, 검정 테일러링과 길게 흘러내리는 천으로 이어졌다.
갈리아노가 과거의 옷을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다. 특정 시대의 복식을 복원하기보다 비율과 자세, 옷을 입는 방식에서 필요한 부분을 가져왔다. 칼라는 얼굴 가까이까지 올라오고, 모자는 머리보다 크게 부풀었다. 재킷은 어깨를 넓히고 허리를 강하게 좁혔다. 몸을 단정하게 감싸는 옷과 천이 흘러내리는 옷이 함께 놓이면서 한 사람 안에서도 서로 다른 시대의 인상이 교차한다.
‘레 앵크루아야블’과 ‘레 메르베이외즈’는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극적인 비율을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갈리아노는 당시 복장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과장된 칼라와 머리 장식, 몸의 일부를 크게 보이게 만드는 방식에 집중했다.
머리와 얼굴 주변의 크기를 키우면 몸 전체의 비율도 달라진다. 모자가 커질수록 얼굴은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칼라가 높아질수록 목과 어깨의 경계는 흐려진다. 여기에 허리를 조인 재킷이 더해지면 상체는 위쪽에서 넓어졌다가 허리에서 갑자기 좁아진다.
이런 비율은 일반적인 수트와 거리가 있다. 보통의 테일러링이 몸을 단정하게 정리한다면 Re{form}의 재킷은 몸의 특정 부분을 의도적으로 키우고 줄인다. 넓은 어깨와 조인 허리, 큰 모자가 동시에 들어가면서 실제 신체보다 의복이 만든 윤곽이 먼저 보인다.
갈리아노가 과거 복식에서 가져온 부분도 바로 이런 과장에 가깝다. 몸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대신 옷이 사람의 체형을 새로 만든다. 재킷과 칼라, 모자가 신체 바깥으로 확장되면서 한 사람의 실루엣을 크게 바꾼다.
전통적인 정원 작업복이 함께 들어온 점은 방향이 다르다. 장식과 과장이 강한 역사적 복식 옆에 실용을 위한 작업복이 놓이면서 컬렉션의 온도가 달라진다. 정돈된 쿠튀르와 생활복의 차이를 유지한 채 한 옷 안에서 섞는 방식이다.
갈리아노는 자라의 기존 옷을 해체하면서도 지나치게 고급스럽게 다듬는 데만 머물지 않았다. 셔츠와 재킷처럼 익숙한 옷의 흔적을 남겼고, 몸에 느슨하게 걸치거나 여러 겹을 겹친 형태도 함께 사용했다. 작업복에서 가져온 실용적인 인상과 쿠튀르식 재구성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이유다.
한쪽에서는 허리를 정교하게 조인 재킷이 등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천을 느슨하게 늘어뜨린다. 어떤 옷은 몸의 윤곽을 세밀하게 만들지만 다른 옷은 신체 주변에 넓은 공간을 남긴다. 서로 다른 밀도의 옷이 한 컬렉션 안에서 교차하면서 단정함만으로 정리되지 않는 실루엣을 만든다.
필름 누아르의 분위기는 검정과 그림자, 인물의 자세에서 더 강하게 드러난다. 캠페인에서는 검정 재킷과 코트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얼굴과 피부가 그 사이에서 강한 대비를 만든다. 모델들은 정면으로 반듯하게 서기보다 몸을 기울이거나 서로 기대며 한쪽으로 무게를 싣는다.
옷의 구조만 놓고 보면 재킷과 드레스, 셔츠의 재구성이 먼저 들어오지만 스티븐 마이젤(Steven Meisel)의 사진에서는 인물 자체가 의상의 일부처럼 작동한다. 짙은 메이크업과 부풀린 헤어, 검정 의상, 비튼 자세가 결합되면서 옷의 시대를 정확히 특정하기 어려운 인물이 만들어진다.
갈리아노는 여기에서도 과거 영화의 의상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검정 테일러링과 그림자가 많은 인물 연출, 몸을 곧게 세우지 않는 자세를 사용해 어두운 긴장감을 더한다. 프랑스혁명 이후의 과장된 복식과 작업복의 실용성, 필름 누아르의 어두운 인상이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나타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서로 다른 요소를 연결하는 것은 색보다 비율이다. 큰 모자와 높은 칼라, 넓어진 어깨는 얼굴과 상체의 크기를 바꾸고, 조인 허리는 그 아래에서 몸을 다시 줄인다. 길게 흐르는 천은 단단한 테일러링을 풀어주고, 시어 소재와 노출은 무거운 검정 사이에 피부를 끌어들인다.
옷의 무게도 한 방향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단단한 재킷 옆에 부드러운 천이 붙고, 두꺼운 아우터와 비치는 소재가 한 착장 안에서 만난다. 역사적 복식에서 가져온 과장과 작업복의 거친 인상, 필름 누아르의 검정이 각각 분리되지 않고 소재와 재단에서 섞인다.
갈리아노는 서로 다른 시대를 차례로 소개하지 않았다. 한 착장 안에 여러 요소를 동시에 겹쳤다. 큰 모자 아래에는 현대적인 재킷이 놓이고, 허리를 강하게 조인 테일러링 아래에서는 길고 느슨한 천이 이어진다. 시어 소재와 검정 아우터도 함께 등장한다.
이런 혼합은 ‘Re{form}’ Vol. 1의 해체 방식과도 이어진다. 자라의 기존 옷을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두지 않았던 것처럼 복식의 시대와 용도도 고정하지 않았다. 과거의 칼라와 모자, 작업복의 느슨한 비율, 검정 테일러링을 각각 떼어내 다시 한 몸 위에 배치했다.
결과적으로 어느 한 시대의 복식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옷이 만들어졌다. 재킷은 역사적인 실루엣을 떠올리게 하지만 소재와 착용 방식은 현재에 가깝고, 드레이프와 노출은 정형화된 시대복의 구성을 벗어난다.
이런 방식의 장점은 과거 복식이 장식적인 인용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큰 모자 하나나 높은 칼라 하나를 붙여 역사성을 설명하는 대신 몸의 비율 자체를 바꿨다. 어깨와 허리, 머리와 목의 크기가 달라지면서 과거 복식의 과장된 인상이 현재의 실루엣 안으로 들어온다.
반대로 요소가 많아질수록 한 벌의 구조를 한눈에 읽기는 어려워진다. 큰 모자와 높은 칼라, 조인 허리, 드레이프와 검정 테일러링이 동시에 들어오면 개별 의상의 형태보다 전체 인상이 먼저 보인다. 옷의 실용성보다 캐릭터와 분위기가 강해지는 이유다.
스티븐 마이젤의 캠페인은 이런 성격을 더욱 밀어붙인다. 모델들의 과장된 헤어와 표정, 비튼 자세는 옷을 일상적인 착장보다 등장인물의 의상에 가깝게 만든다. 서로 다른 시대에서 가져온 요소들도 사진 속에서는 하나의 인물군으로 묶인다.
자라와 존 갈리아노의 ‘Re{form}’ Vol. 1은 과거의 복식을 그대로 다시 만드는 데 머물지 않았다. 큰 모자와 높은 칼라, 조인 허리와 검정 테일러링, 느슨한 작업복의 인상을 잘라 현재의 옷 안에 다시 배치했다.
프랑스혁명 이후의 복식과 정원 작업복, 필름 누아르는 서로 다른 시대와 용도에서 출발했지만 갈리아노의 손에서는 같은 몸 위에 놓였다. 자라의 아카이브 의류를 뜯어 다시 조립했던 방식이 복식의 역사에서도 반복됐다. 한 시대의 옷을 복원하기보다 서로 다른 시대의 비율과 소재, 분위기를 섞어 지금의 실루엣으로 바꾼 것이 ‘Re{form}’ Vol. 1의 또 다른 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