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EY MIYAKE SS27①] 몸에서 떨어진 옷, 사토시 곤도가 만든 ‘Figure of Ma’
밀착한 토르소 톱부터 풍선처럼 부푼 아우터까지…몸과 천 사이의 여백을 실루엣으로 바꾼 ISSEY MIYAKE SS27
[KtN 임우경기자]파리패션위크의 검은 무대에 베이지색 플리츠를 두른 무용수가 먼저 들어섰다. 이어 구름처럼 크게 부푼 천이 펼쳐졌고, 사토시 곤도(Satoshi Kondo)의 ISSEY MIYAKE SS27 ‘Figure of Ma’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에 붙는 민소매 톱과 골반 양옆이 크게 벌어진 팬츠, 바람을 받아 부푸는 트렌치코트, 움직일 때마다 폭이 달라지는 플리츠가 차례로 이어졌다. 옷의 크기를 키우는 데 머물지 않고 몸과 천 사이에 남은 여유까지 실루엣에 포함시킨 컬렉션이다.
‘마(間, Ma)’는 일본 미학에서 요소와 요소 사이의 여백이나 간격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쓰인다. 사토시 곤도는 이를 몸과 옷 사이로 가져왔다. 천이 피부에 붙는 곳과 몸에서 멀어지는 곳을 한 벌 안에 나눠 놓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옷의 부피가 달라지도록 했다.
가슴과 허리를 따라 밀착한 톱에서는 신체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난다. 반대로 팬츠와 아우터는 골반과 어깨에서 크게 벌어진다. 상체와 하체를 같은 폭으로 정리하지 않고 서로 다른 크기로 나누면서 몸의 비율도 달라졌다.
석고 거즈를 떠올리게 하는 민소매 톱은 특히 몸 가까이 붙는다. 보라색과 옅은 노란색, 검정으로 이어진 상의는 가슴과 허리를 감싸며 상체를 작게 잡고, 아래에서는 넓은 팬츠가 크게 퍼진다. 가는 상체와 넓은 하체가 맞붙으면서 실루엣의 차이가 한층 선명해졌다.
이세이 미야케가 넉넉한 옷을 다루는 방식도 달라졌다. 품을 크게 잡은 옷이라도 몸 전체를 한꺼번에 넓히지 않는다. 어깨와 소매, 골반과 밑단 가운데 필요한 부분에 부피를 집중하고, 다른 부분은 몸에 가깝게 붙인다. 같은 착장 안에서 밀착과 볼륨이 함께 나타나는 이유다.
머리부터 몸통까지 넓게 감싼 옷은 신체의 선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후드와 칼라 주변에는 얼굴보다 큰 부피가 생기고, 어깨 아래로 떨어지는 천은 팔과 몸통을 한꺼번에 감싼다. 모델이 걸으면 접혀 있던 부분이 펴지고, 다시 모이면서 옷의 폭도 바뀐다.
검정과 흰색, 보라색이 섞인 선은 천의 움직임에 따라 모양이 계속 달라진다. 걸음을 옮길 때 문양이 접혀 사라졌다가 다시 펼쳐지고, 넓은 면이 몸 쪽으로 들어왔다가 바깥으로 밀려난다. 옷에 인쇄된 무늬만큼 천이 움직이며 만드는 변화가 크게 들어온다.
사토시 곤도가 다룬 ‘마’는 몸에서 멀리 떨어진 옷에만 머물지 않는다. 몸에 붙는 상의가 있어야 넓게 벌어진 하의의 부피도 더 크게 느껴진다. 밀착된 부분과 여유가 큰 부분을 한 벌 안에 붙여 놓으면서 서로의 크기를 강조했다.
짧고 몸에 붙는 상의 아래에 폭이 넓은 팬츠를 배치한 착장에서는 골반 주변의 부피가 두드러진다. 허리까지는 신체의 선이 그대로 이어지다가 하의에서 갑자기 폭이 커진다. 다리를 감추기보다 다리 주변에 더 큰 형태를 덧붙인 방식이다.
플리츠도 같은 흐름 안에서 움직인다. 세로로 떨어지는 주름은 모델이 걸을 때 벌어졌다가 다시 모이고, 드레이프가 섞인 옷에서는 주름의 방향이 몸을 따라 달라진다. 정지했을 때 한 번 정해진 모양보다 걷는 동안 나타나는 변화가 더 중요해졌다.
파란색 아우터에서는 부피가 한층 과감해졌다. 후드는 머리를 깊게 감싸고, 소매는 팔보다 훨씬 넓게 잡혔다. 허리를 좁히지 않은 몸통은 골반 아래까지 둥근 형태를 유지한다.
눈에 띄는 것은 소재의 가벼움이다. 부피가 크다고 해서 옷이 단단하게 서 있지 않는다. 걸음을 옮기면 소매와 밑단이 바람을 받아 앞으로 밀렸다가 다시 내려온다. 두꺼운 구조물로 형태를 고정하는 대신 가벼운 천의 움직임으로 큰 실루엣을 만든다.
팔의 움직임도 실제 동작보다 크게 보인다. 팔을 조금 들어도 넓은 소매가 함께 흔들리면서 옷 전체가 반응한다. 걸음이 빨라지면 밑단의 폭도 커지고, 멈추면 천이 아래로 내려앉는다. 몸의 움직임과 옷의 움직임이 같은 크기로 움직이지 않는 점이 SS27 아우터의 특징이다.
보라색과 검정 트렌치코트도 비슷한 구조를 이어간다. 전통적인 트렌치의 칼라와 길이를 떠올릴 수 있지만, 몸에 맞춰 반듯하게 떨어지는 형태와는 거리가 있다. 소매와 몸판에 여유를 크게 두면서 코트 안쪽의 공간이 실루엣을 바꾼다.
머리를 감싸는 플리츠 헤드웨어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모자가 머리에 밀착하기보다 주름과 천이 머리 주변에 별도의 부피를 만든다. 옷에서 시작된 넓은 실루엣이 얼굴과 머리까지 이어진다.
반대로 메시 니트와 카프리 형태의 하의에서는 소재 자체가 가볍게 비친다. 촘촘하게 몸을 감싸는 직물 대신 성긴 짜임을 사용하면서 피부와 옷 사이의 경계가 느슨해졌다. 크고 부푼 아우터와는 다른 방식으로 몸 주변의 여유를 만든 것이다.
반투명한 흰색 아우터에서는 몸과 옷의 차이가 더욱 또렷하다. 안쪽의 다리와 몸통은 희미하게 비치고, 그 바깥으로 넓은 소매와 몸판이 크게 퍼진다. 실제 신체의 폭과 옷이 만든 폭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착장이다.
흰색과 얇은 소재는 큰 부피의 무게도 줄인다. 같은 크기의 검정 아우터가 외곽을 또렷하게 잡는다면 반투명한 흰색은 몸이 안쪽으로 비치면서 경계가 한결 가벼워진다. 넓은 옷이 신체를 완전히 가리는 대신 안쪽의 몸까지 함께 남긴다.
색에 따라서도 부피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진다. 강한 파란색은 넓은 면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검정은 옷의 윤곽을 단단하게 잡는다. 흰색과 연한 색의 얇은 소재는 같은 큰 실루엣에서도 무게를 낮춘다. 사토시 곤도는 비슷한 구조를 색과 소재를 달리해 전혀 다른 인상으로 바꿨다.
SS27에서 이세이 미야케의 대표적인 플리츠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주름 하나로 컬렉션 전체를 설명하기는 어려워졌다. 토르소형 톱과 메시 니트, 크게 부푼 트렌치코트와 초경량 아우터까지 옷의 구조가 넓어졌다.
플리츠가 몸의 움직임에 따라 펴지고 접혀왔다면 이번 시즌의 아우터는 옷 전체가 같은 역할을 맡는다. 소매가 부풀고 밑단이 흔들리며, 천이 몸 가까이 왔다가 다시 멀어진다. 이세이 미야케가 오랫동안 다뤄온 움직임의 범위가 주름에서 옷 전체의 부피로 넓어진 것이다.
사토시 곤도의 ‘Figure of Ma’는 몸을 크게 감싸는 옷만을 위한 컬렉션이 아니다. 몸에 붙는 상의와 크게 퍼지는 팬츠, 얇게 비치는 소재와 부풀어 오른 아우터를 함께 놓으면서 신체와 옷의 관계를 여러 방식으로 나눴다.
SS27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는 것은 움직일 때마다 달라지는 실루엣이다. 가슴과 허리를 감싼 상의는 몸의 선을 그대로 남기고, 넓은 팬츠와 아우터는 몸 바깥으로 크게 퍼진다. 모델이 걷기 시작하면 플리츠와 소매, 밑단이 움직이며 또 다른 형태가 생긴다.
이세이 미야케의 옷은 이번 시즌에도 몸을 억누르는 대신 움직임을 받아들였다. 차이는 그 움직임이 주름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데 있다. 몸에 밀착한 작은 상의에서 풍선처럼 부푼 아우터까지, 사토시 곤도는 몸과 천 사이의 여유를 크기와 소재, 움직임으로 나눠 SS27의 실루엣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