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숙, 미술의 다음 시장④] K-Art, 아트페어 이후가 더 길다…아카이브·번역·출판이 만드는 해외의 시간

프리즈 서울 2026에 30개국 130개 이상 갤러리·7만 명 넘는 관람객 작품의 해외 이동에서 비평·출판·소장·디지털 기록으로 넓어진 국제화의 조건 방혜자에서 시작된 홍지숙 관장의 아카이빙…“좋은 작가의 레거시를 오래 남기는 구조”

2026-10-09     박준식 기자
홍지숙 아트큐브 2R2 관장·아트토큰 대표가 한국 작가의 해외 진출을 바라보는 시간도 한 번의 전시보다 길다. 출발점에는 방혜자가 있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지난 9월 서울 코엑스에는 세계 30개국과 지역에서 130개가 넘는 갤러리가 모였다. 5회를 맞은 프리즈 서울 2026에는 나흘 동안 7만 명 이상이 방문했고, 관람객은 54개국과 지역에서 왔다. 25개국 178개 미술관·기관 관계자도 현장을 찾았다. 프리즈 서울 출범 이후 가장 넓은 국제적 참여였다. 참가 갤러리의 70% 이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50곳 이상이 서울에서 상설 공간을 운영하는 구성도 서울 미술시장의 달라진 위치를 보여줬다.

서울에 세계 미술계가 모이는 시간은 이제 나흘간의 아트페어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남과 청담, 삼청과 을지로를 비롯한 주요 전시 지역에서 갤러리와 미술관 프로그램이 동시에 열리고, 해외 컬렉터와 큐레이터가 코엑스 밖의 전시장까지 이동한다. 2026년에는 광주·부산비엔날레까지 같은 시기에 이어지면서 한국 미술을 접하는 동선도 서울에서 지역으로 넓어졌다.

한국 작가가 세계 미술시장과 만나는 통로 역시 한층 많아졌다. 2026년 국내 화랑의 해외 아트페어 참가 지원은 상·하반기에 걸쳐 이어졌고, 한국미술을 다룬 외국어 단행본의 제작과 해외 유통, 해외 미술기관과의 협력 출판, 주요 미술용어의 다국어 정비도 제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작품을 해외 전시장에 내보내는 유통과 작가에 관한 글·연구·용어를 다른 언어권에 축적하는 일이 동시에 움직이는 구조다.

홍지숙 아트큐브 2R2 관장·아트토큰 대표가 NFT 시장을 경험하며 주목한 부분도 가격과 작품이 축적해온 시간의 차이와 맞닿아 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지숙 아트큐브 2R2 관장·아트토큰 대표가 한국 작가의 해외 진출을 바라보는 시간도 한 번의 전시보다 길다. 출발점에는 방혜자가 있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60년 넘게 활동한 방혜자는 한지와 천연안료, 흙과 부직포를 자신의 회화 안으로 끌어들이며 독자적인 ‘빛’의 언어를 구축했다.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간 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작업했고, 생애 후반에는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생피아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까지 영역을 넓혔다. 홍 관장은 방혜자의 작업을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프랑스에서 오랜 시간 축적된 작가의 활동과 국내 일반 대중에게 전달된 정보 사이의 간격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미술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작가의 작업세계가 넓은 대중에게 전달되기까지는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하다. 대표작 몇 점과 전시 경력만으로 수십 년에 걸친 재료의 변화와 작품세계의 맥락을 모두 전달하기 힘들다. 초기 작품에서 후기 작업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작가가 어떤 사람들과 교류했고 어느 전시와 소장으로 이어졌는지, 작품의 제작방식과 재료가 왜 달라졌는지를 함께 축적해야 한 작가의 전체 작업이 비로소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홍지숙 아트큐브 2R2 관장·아트토큰 대표가 한국 작가의 해외 진출을 바라보는 시간도 한 번의 전시보다 길다. 출발점에는 방혜자가 있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 관장의 기억 속 방혜자는 작품을 제작하는 일과 한국 문화를 주변에 알리는 일을 함께 이어간 작가였다. 프랑스에서 한국의 문화와 미감을 소개했고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 후배 작가들과도 관계를 이어갔다. 홍 관장이 프랑스 그룹전에 참여했을 때에는 방혜자가 파리로 나와 주변 사람들을 초대하며 전시를 알리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해외에서 작품을 보여주는 일은 전시장 문을 여는 순간부터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작품을 처음 접한 관객과 컬렉터가 생기고, 갤러리스트와 큐레이터가 작가의 이름을 기억한다. 이후 다른 전시에서 작품을 다시 만나고, 비평문과 도록에서 작업의 맥락을 읽으며, 기관 전시와 소장으로 연결되는 시간이 이어진다. 작품과 사람, 글과 전시가 반복해서 만나면서 작가의 위치가 만들어진다.

아트페어는 이 과정에서 강한 첫 접점을 제공한다. 며칠 동안 수많은 작가와 컬렉터, 갤러리와 기관 관계자가 한 장소에 모이고 작품의 거래와 새로운 협업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 다음부터는 작가를 다시 찾아볼 수 있는 정보와 작품 이미지, 비평과 전시 이력이 역할을 맡는다. 페어에서 처음 만난 이름이 몇 달 뒤에도 검색되고, 몇 년 뒤 새로운 기획전이나 소장 검토 과정에서 다시 등장하려면 작품 바깥의 기록이 함께 남아 있어야 한다.

방혜자의 작업을 가까이에서 접한 경험도 이 구상과 연결됐다. 좋은 작품이 많이 남아 있어도 작가의 긴 작업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통로가 부족하면 작품 사이의 관계가 쉽게 흩어진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작품이 국경을 넘은 뒤에는 작가의 언어도 함께 이동해야 한다.

작가명과 제작연도, 재료와 크기를 영어로 옮기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정보다. 해외 큐레이터와 연구자가 한 작가를 깊이 살피려면 작업이 어느 시점에서 시작됐고, 연작이 어떻게 변했으며, 사용한 재료와 제작방식이 작품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까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안에서 작가가 놓인 위치와 다른 작가·세대와의 관계도 필요하다.

전시 이력도 같은 원리에서 다시 정리된다. 개인전과 단체전을 연도순으로 나열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요 기관 전시와 소장, 대표 연작, 출판과 비평 기록을 체계적으로 연결하면 작가를 다시 조사하는 사람이 따라갈 수 있는 경로가 생긴다. 어떤 작품이 어느 전시에 나왔고 어떤 도록에 수록됐는지, 이후 어느 컬렉션으로 이동했는지가 축적될수록 한 작가의 작업사는 더 촘촘해진다.

홍 관장이 블록체인과 NFT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도 기록의 문제가 있었다. 2019년 전후 NFT 시장에서는 크립토펑크(CryptoPunks)와 Bored Ape Yacht Club 같은 디지털 이미지가 높은 가격에 거래되면서 새로운 미술시장의 가능성이 크게 주목받았다. 홍 관장의 관심은 가격 상승보다 한국 작가의 작품과 작업 이야기를 디지털 환경에 축적하고 시간이 지나도 다시 찾아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향했다.

방혜자의 작업을 가까이에서 접한 경험도 이 구상과 연결됐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방혜자의 작업을 가까이에서 접한 경험도 이 구상과 연결됐다. 좋은 작품이 많이 남아 있어도 작가의 긴 작업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통로가 부족하면 작품 사이의 관계가 쉽게 흩어진다. 작품을 디지털로 기록하고 휴대전화와 TV 같은 일상의 기기를 통해 다시 접할 수 있게 하며, 작가의 자료와 콘텐츠를 계속 축적하는 구상은 이후 아트토큰 설립과 2R2 플랫폼으로 이어졌다.

아카이빙의 범위는 작품 이미지를 저장하는 것보다 넓다. 작품명과 제작연도, 재료와 크기, 개인전과 기획전, 소장처와 출판 기록이 기본 정보를 이룬다. 여기에 작가노트와 인터뷰, 비평문, 작업과정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연결되면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는 변화까지 살펴볼 수 있다. 같은 제목의 작품이 여러 점 존재하거나 하나의 연작이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경우에는 개별 작품을 구분하는 정보의 정확성이 더욱 중요해진다.

작가의 생애가 끝난 뒤에는 이런 기록이 작품과 시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작품 제목과 제작연도, 사용한 재료와 전시 이력이 정확하게 축적돼 있으면 후대 연구자는 작가의 변화를 더 세밀하게 복원할 수 있다. 편지와 작업노트, 당시의 사진과 전시 도록 역시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의 관계와 생각을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홍지숙 관장은 인터뷰에서 방혜자와 주고받았던 이메일을 별도로 보존해두지 못했던 일을 떠올렸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 관장은 인터뷰에서 방혜자와 주고받았던 이메일을 별도로 보존해두지 못했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평범한 연락이었지만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작품과 삶, 두 사람의 관계를 연결하는 기록으로 의미가 달라졌다. 개인적인 이메일 한 통도 시간이 지나면 작가 연구의 작은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이었다.

디지털 기술은 흩어져 있는 자료를 모으고 복제하며 서로 연결하는 도구가 된다. 블록체인은 작품과 관련된 기록의 생성·이동 이력을 남기는 기술로 활용할 수 있고, 데이터베이스는 작품과 전시, 문헌과 영상을 하나의 작가 정보 안에서 연결한다. 고화질 이미지와 영상은 해외 연구자와 큐레이터가 실물 작품을 접하기 전에 작업세계에 접근하는 첫 자료가 된다.

해외 진출에서는 번역이 여기에 한 층을 더한다. 한국어로 축적된 작가노트와 비평이 다른 언어로 제공되면 해외 연구자는 작가의 작업을 보다 깊게 읽을 수 있다. 한국 미술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재료와 제작방식은 용어 자체의 정리도 중요하다. 한지와 닥지, 분채와 석채, 옻칠 같은 용어에는 재료명뿐 아니라 제작방식과 문화적 배경이 함께 들어 있다. 외국어 표기와 설명을 꾸준히 정리해야 번역 과정에서도 같은 개념이 흔들리지 않는다.

출판은 아트페어와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전시 기간이 끝난 뒤에도 책과 비평문은 남고, 이후 다른 큐레이터와 연구자가 다시 인용한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6년 한국미술 해외출판·유통 지원이 외국어 단행본 제작과 유통, 해외 전문기관과의 공동 출판, 영문 콘텐츠 확산을 함께 추진하는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다국어 용어집 제작 역시 해외에서 한국 미술을 설명할 때 필요한 공통 언어를 만드는 작업이다.

출판은 아트페어와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전시 기간이 끝난 뒤에도 책과 비평문은 남고, 이후 다른 큐레이터와 연구자가 다시 인용한다. 새로운 전시를 준비할 때 과거의 도록을 찾아보고, 한 작가를 연구하면서 이전 논문과 비평을 연결한다. 해외 검색 결과에서 한 작가의 이름과 작품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환경도 이런 자료가 여러 해에 걸쳐 축적된 뒤 만들어진다.

갤러리의 역할도 작품 거래와 함께 기록과 관계 관리로 넓어진다. 작가의 작품 이미지를 정리하고 정확한 작품정보를 축적하며, 아트페어에서 만난 컬렉터와 기관 관계자에게 이후의 전시와 신작을 다시 연결하는 일이 이어진다. 한 번 작품을 구입한 컬렉터가 몇 년 뒤 같은 작가의 새로운 작업을 다시 만나고, 해외 큐레이터가 이전 전시 자료를 바탕으로 다음 프로젝트를 검토하는 시간이 갤러리의 장기적인 네트워크를 만든다.

2026년 서울의 변화는 프리즈 서울 최종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30개국과 지역에서 130개가 넘는 갤러리가 참여했고 54개국과 지역에서 7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았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아트큐브 2R2도 국내외 아트페어와 서울의 전시공간을 오가며 접점을 넓혀왔다. 2025년에는 ART DUBAI에 참가했고, 2026년에는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와 Seoul Art Salon 등에 참여했다. 전시공간에서는 회화와 미디어 작업, 한국 근현대미술과 동시대 작가를 함께 다루면서 전시 콘텐츠를 디지털 환경으로 확장하는 방식도 이어가고 있다.

프리즈 서울 기간인 지난 8월 28일에는 김덕용·변용국 2인전 ‘결에 머문 빛(Light Resting in the Grain)’을 열었다. 김덕용은 나무의 결 위에 자개와 옻칠을 사용하고, 변용국은 물감을 쌓고 긁어내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서로 다른 빛을 만들어왔다. 한국적 재료와 오랜 회화적 수행을 동시대 미술의 언어 안에서 함께 보여주는 전시로, 10월 31일까지 이어진다.

2026년 서울의 변화는 프리즈 서울 최종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30개국과 지역에서 130개가 넘는 갤러리가 참여했고 54개국과 지역에서 7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았다. 세계 각지의 미술관·기관 178곳이 현장을 방문하면서 서울은 작품을 사고파는 시장을 넘어 작가와 갤러리, 컬렉터와 기관이 반복적으로 만나는 아시아의 미술 거점으로 자리를 넓혔다.

방혜자는 프랑스에서 수십 년 동안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갔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Art의 다음 시간은 이 강한 집중을 나머지 계절까지 이어가는 데 있다. 해외 아트페어에서 처음 만난 작품을 몇 달 뒤 다시 찾아볼 수 있고, 작가의 글을 다른 언어로 읽으며, 전시가 끝난 뒤에도 도록과 비평이 남고, 관심이 다시 기관 전시와 소장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쌓여야 한다. 국제화의 깊이는 해외 전시 횟수만큼 한 작가를 다시 불러낼 수 있는 자료와 관계의 밀도에서 만들어진다.

방혜자는 프랑스에서 수십 년 동안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갔다. 작품과 함께 편지와 도록, 사진과 비평, 전시와 소장의 시간이 겹쳐지면서 한 작가의 역사가 형성됐다. 홍지숙 관장이 방혜자를 통해 마주한 것도 한 점의 좋은 작품을 넘어 작품이 다른 문화권에서 기억되고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2026년 서울에는 세계 미술계가 매년 찾아오고 한국 작가의 작품도 더 넓은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해외 진출의 기준은 이제 작품이 어느 나라 전시장에 걸렸는지를 넘어선다. 작가의 작품과 언어가 다른 문화권에서 다시 검색되고, 읽히고, 연구되며, 다음 전시와 소장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얼마나 오래 기록과 관계를 축적하는가. K-Art의 국제화는 작품이 국경을 넘는 순간보다 그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남기는지에서 더 길게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