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숙, 미술의 다음 시장⑥] 숲에서 만나는 미술…힐리언스 선마을이 바꾼 예술과 공간의 거리

화이트큐브 밖으로 나온 작품, 자연광·숲길·몸의 움직임과 함께 경험 방혜자의 스테인드글라스부터 한지 작업까지…홍지숙 관장이 체감한 자연과 미술의 연결 디지털 플랫폼과 오프라인 공간을 오간 2R2…미술을 일상 가까이 두는 방식으로 확장

2026-10-11     박준식 기자
힐리언스 선마을에서 홍지숙 아트큐브 2R2 관장·아트토큰 대표가 경험한 미술은 작품 한 점과 관람객 사이에 자연과 건축, 빛과 시간이 함께 들어오는 방식에 가까웠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 숲길을 걷고 돌아온 사람과 도심의 갤러리에서 곧바로 작품 앞에 선 사람은 같은 그림에서도 서로 다른 감각을 받아들일 수 있다. 빛의 방향과 공기의 온도, 걷는 속도와 몸의 긴장이 달라지면 작품을 바라보는 시간도 달라진다. 힐리언스 선마을에서 홍지숙 아트큐브 2R2 관장·아트토큰 대표가 경험한 미술은 작품 한 점과 관람객 사이에 자연과 건축, 빛과 시간이 함께 들어오는 방식에 가까웠다.

홍 관장은 선마을에서 혼자 숲길을 걷던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새벽과 낮, 계절마다 달라지는 나무와 햇살을 반복해서 접하면서 자연을 관찰하는 방식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쓰러진 나무와 곧게 자라는 나무가 같은 햇빛과 비를 받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람의 삶 역시 자신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여러 조건 속에서 이어진다는 생각에 닿았다고 회고했다.

자연에서 보낸 시간은 홍 관장의 직접적인 작업에도 스며들었다. 선마을에 오래 머물면서 익숙해진 산과 자연의 색이 그림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한지를 비롯한 재료에 대한 관심도 깊어졌다. 한지가 지닌 차분한 색감과 섬유의 결, 빛을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질감에서 동양적인 깊이를 느꼈다는 설명이다. 공간에서 반복해 경험한 색과 재료의 감각이 작품을 선택하고 직접 작업하는 방식으로 이어진 셈이다.

힐리언스 선마을의 명상공간에 설치된 방혜자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자연과 미술이 만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화이트큐브는 작품을 집중해서 보기 위해 주변의 변수를 정돈한다. 흰 벽과 일정하게 조절된 조명, 간결한 동선은 작품의 크기와 형태, 색과 표면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외부의 소음과 시각적 요소를 줄여 관람객의 시선을 작품에 머물게 하는 전시 방식이다.

숲과 건축이 함께 놓인 공간에서는 작품을 둘러싼 조건 자체가 계속 변한다. 자연광은 시간에 따라 이동하고 창밖의 나무와 하늘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색을 바꾼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 서기 전에 이미 길을 걷고 주변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몸을 움직였다. 감상은 전시장 안에서 갑자기 시작되기보다 공간에 들어오는 과정에서부터 이어진다.

힐리언스 선마을의 명상공간에 설치된 방혜자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자연과 미술이 만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의 색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연광과 함께 달라진다. 햇빛이 강한 시간과 흐린 날,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색유리를 통과한 청색과 붉은빛의 농도가 달라지고 실내에 번지는 색도 움직인다.

홍지숙 관장은 선마을 증축 과정에 참여하던 시기에 방혜자를 처음 만났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 관장은 선마을 증축 과정에 참여하던 시기에 방혜자를 처음 만났다. 방혜자가 선마을을 방문해 당시 조성 중이던 명상동굴을 둘러보면서 스테인드글라스와 공간의 관계가 이어졌다. 홍 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의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사를 통해 공간의 크기에 맞춰 작품을 제작했고, 완성된 스테인드글라스는 명상공간에 설치됐다.

벽돌 사이로 스며드는 자연광과 색유리를 통과한 빛이 한 공간에서 겹치면서 작품은 건축과 밀접하게 결합한다. 색유리를 지나온 빛이 실내로 퍼지고, 사람이 이동할 때마다 바라보는 각도와 주변의 밝기가 달라진다. 작품의 색과 형태에 자연의 시간이 계속 더해지는 구조다.

방혜자가 평생 다뤄온 ‘빛’도 이 공간에서 다른 물성을 얻는다. 회화에서는 한지와 천연안료, 흙과 부직포의 층을 통해 밝음이 생겨났다. 스테인드글라스에서는 실제 자연광이 색유리를 통과해 작품의 일부가 된다. 종이와 안료 안에서 빛의 깊이를 만들어온 작업이 유리와 건축, 자연광이 함께 작동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홍지숙 관장은 방혜자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빛과 에너지에 처음부터 관심을 가졌다고 기억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 관장은 방혜자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빛과 에너지에 처음부터 관심을 가졌다고 기억했다. 작은 체구의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에서 강한 힘을 느꼈고, 선마을을 좋아했던 방혜자와 작품과 자연,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았다고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후 전시와 아트페어, 홍 관장의 프랑스 전시까지 이어졌다.

선마을에서 자연과 작품을 함께 경험한 시간은 홍 관장이 미술을 바라보는 감각에도 흔적을 남겼다. 한지에 대한 관심은 직접 작업뿐 아니라 컬렉션에서도 반복됐다. 홍 관장은 자신의 소장작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한지를 사용하거나 한국적인 재료감을 지닌 작가의 작업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모여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재료의 표정은 놓이는 공간에 따라 달라진다. 한지에는 섬유의 결이 남아 있고 빛이 닿는 방향에 따라 표면의 농담이 미묘하게 변한다. 옻과 자개는 보는 위치와 조명의 각도에 따라 반사가 달라지고, 천연안료와 흙은 매끈하게 정리된 색면과 다른 입자와 깊이를 남긴다. 시간에 따라 밝기가 움직이는 자연광 아래에서는 이런 재료의 변화가 한층 세밀하게 드러난다.

선마을 웰니스 공간에 미술을 들이는 일도 작품 한 점을 장식처럼 배치하는 수준에서 더 넓게 생각할 수 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웰니스 공간에 미술을 들이는 일도 작품 한 점을 장식처럼 배치하는 수준에서 더 넓게 생각할 수 있다. 작품의 크기와 재료, 건축의 구조와 자연광의 방향, 사람이 이동하고 머무는 방식을 함께 고려하면 공간 전체가 감상의 조건이 된다. 넓은 미술관에서 적절한 대형 작품이 작은 휴식공간에서는 강한 시각적 밀도를 만들 수 있고, 작은 작품은 조용한 명상공간에서 오히려 긴 시선을 붙잡을 수 있다. 작품의 높이와 관람 거리, 서서 보는지 앉아서 보는지에 따라서도 감상은 달라진다.

홍 관장은 선마을에서 자신의 작업을 방혜자의 작품 가까이에 놓기도 했다. 자연 속에서 생활하며 산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직접 그리는 산의 색과 색채를 선택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제작하는 시간과 자연 속 생활이 서로 떨어져 있기보다 하나의 경험 안에서 이어졌다.

명상에 사용하는 도구와 가구, 미술작품 역시 같은 공간에 놓였다.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실을 별도로 찾아가는 대신 쉬고 명상하며 생활하는 동안 반복해서 작품을 만나게 된다. 한 번 보고 지나가는 감상보다 같은 작품을 여러 시간대와 여러 날에 걸쳐 다시 바라보는 경험이다.

홍지숙 관장은 선마을에서 자신의 작업을 방혜자의 작품 가까이에 놓기도 했다. 자연 속에서 생활하며 산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직접 그리는 산의 색과 색채를 선택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런 공간 경험은 아트큐브 2R2와 아트토큰이 오프라인과 디지털을 함께 운영하는 구조와도 이어진다. 아트토큰은 작품을 휴대전화와 스마트TV, 플랫폼으로 연결하며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지 않는 시간에도 작품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실험해왔다. 아트큐브 2R2에서는 다시 실물 작품과 관객이 직접 만난다.

두 공간의 기능은 서로 다르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한 작가의 작품을 시간 순서대로 연결하고, 연작을 비교하며, 전시와 작품 정보를 반복해서 찾아보기 쉽다. 한 번 본 작품의 작가를 나중에 검색하고 다른 작업과 연결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기록과 검색, 접근의 지속성이 디지털의 강점이다.

실물 앞에서는 작품의 크기와 무게, 표면과 물성이 몸의 감각으로 들어온다. 한지 섬유의 미세한 굴곡, 자개의 반사, 두껍게 쌓거나 긁어낸 안료의 흔적은 실제 작품과의 거리와 빛에 따라 달라진다. 대형 작품 앞에서 자신과 작품의 크기를 비교하며 느끼는 신체적인 거리도 작은 디지털 화면과 다른 경험을 만든다.

홍지숙 관장이 스마트TV 기반 미술 서비스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물리적인 전시공간을 운영하는 이유도 두 경험을 함께 가져가는 데 있다. /사진= 아트큐브 2R2 전시장,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홍 관장이 스마트TV 기반 미술 서비스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물리적인 전시공간을 운영하는 이유도 두 경험을 함께 가져가는 데 있다. 디지털 기술은 작품과 관객이 만나는 통로를 넓히고, 갤러리는 재료와 크기, 공간과 빛을 직접 경험하게 한다. 온라인에서 작품을 찾고 정보를 축적한 뒤 오프라인에서 실물을 만나거나, 전시장에서 처음 접한 작가를 이후 디지털 환경에서 다시 탐색하는 순환이 가능해진다.

선마을에서 미술과 웰니스가 만나는 방식 역시 작품을 통해 어떤 의학적 효과를 얻는가보다 사람이 작품을 만나는 환경에 초점을 맞출 때 더 선명해진다. 숲을 걷고, 휴대전화에서 일정 시간 떨어지고, 조용한 공간에 머문 뒤 작품을 바라보는 경험은 도심의 바쁜 동선 속에서 곧바로 작품 앞에 서는 경우와 다른 신체적·감각적 조건을 만든다.

홍 관장은 과거 선마을에서 ‘행복 리더십’을 강의했던 시기도 떠올렸다. 당시에는 행복을 연구와 이론을 통해 설명하는 일이 중심이었지만 이후 숲을 걷고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이어지면서 이전에 말로 알고 있던 개념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이 생겼다고 했다.

선마을에서 '행복 리더십'을 강의하던 이론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자연 속 생활을 통해 행복을 몸소 체득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홍지숙 관장. /사진=힐리언스 선마을 제공

약 7년간 선마을에서 일한 시간은 도시에서 성장한 홍 관장에게 자연과 지속적으로 접하는 새로운 생활이었다. 같은 숲을 여러 계절 동안 걷고, 새벽과 낮의 빛을 반복해서 바라보며 자연의 변화가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하루의 일부가 됐다. 이런 경험은 이후 작품을 보고 선택하는 방식과 자신이 작업할 때 사용하는 색,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까지 여러 층에서 이어졌다.

선마을의 건축 방식도 중요한 환경을 만들었다. 홍 관장은 공간을 조성하고 증축하는 과정에서 산의 비탈과 기존 나무를 가능한 한 살리는 방향이 유지됐다고 기억했다. 자연을 먼저 평평하게 바꾼 뒤 건물을 놓는 방식보다 기존 산의 높낮이와 숲 사이로 사람이 들어가도록 공간을 구성했다는 설명이다.

산의 경사를 걷고 나무 사이를 지나 도착한 공간에서 작품을 바라보면 자연은 작품의 배경을 넘어 감상의 과정에 들어온다. 미술도 같은 방식으로 공간에 자리한다. 작품의 색과 형태만큼 건축의 빛과 동선, 머무는 사람의 행동이 함께 작동한다. 방혜자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는 햇빛과 벽돌, 색유리와 관람자의 위치가 매번 조금씩 다른 모습을 만든다.

휴대전화와 TV를 통해 작품을 반복해서 접하는 경험과 숲속에서 자연광을 받는 작품 앞에 머무는 경험은 매체와 감각이 전혀 다르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화이트큐브와 생활공간은 각기 다른 역할을 갖는다. 미술관과 갤러리에서는 작품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비교하며 안정적인 조건에서 보존할 수 있다. 생활 속 공간에서는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만나고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는 작품의 구조를 깊게 들여다보게 하고, 다른 하나는 작품을 일상의 시간 안으로 가져온다.

디지털 환경까지 더해지면 작품과 사람의 관계는 한층 넓어진다. 휴대전화와 TV를 통해 작품을 반복해서 접하는 경험과 숲속에서 자연광을 받는 작품 앞에 머무는 경험은 매체와 감각이 전혀 다르다. 공통점은 미술을 한 번의 전시장 방문으로 끝내지 않고 생활 속 여러 시간으로 확장한다는 데 있다.

홍지숙 관장의 경력에는 이런 서로 다른 공간이 겹쳐 있다. 힐리언스 선마을에서는 자연과 웰니스, 건축과 미술이 만나는 환경을 경험했고, 아트큐브 2R2에서는 실물 작품과 관객을 연결하고 있다. 아트토큰에서는 작품과 작가의 기록을 디지털 데이터와 IP로 확장해 다른 화면과 플랫폼으로 옮겨왔다.

홍지숙 아트큐브 2R2 관장·아트토큰 대표가 한국 작가의 해외 진출을 바라보는 시간도 한 번의 전시보다 길다. 출발점에는 방혜자가 있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선마을의 숲에서 시작된 경험은 작품과 사람 사이에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는가’라는 또 하나의 조건을 남겼다. 작품의 소장과 거래는 미술을 둘러싼 한 부분이고, 사람이 작품과 마주하는 공간과 시간은 또 다른 경험을 만든다. 같은 작품도 오래 바라보거나 계절을 달리해 다시 만날 때 새로운 부분이 들어온다.

선마을의 방혜자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지금도 바깥의 빛이 들어온다. 햇빛의 강도와 방향이 달라질 때마다 유리를 통과한 색도 조금씩 변하고, 숲길을 지나온 사람의 몸과 시선 역시 매번 다른 상태로 작품 앞에 도착한다. 미술이 생활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작품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물리적으로 좁히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자연과 건축, 빛과 사람의 시간이 함께 쌓일 때 작품은 한 번 보는 대상에서 반복해서 경험하고 기억하는 존재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