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 Demeulemeester Paris②] 150㎡에 전 컬렉션, 앤 드뮐미스터 ‘작은 플래그십’의 경제학

남녀 레디투웨어·슈즈·액세서리·Serax까지 한 공간에…매장 크기보다 상품 밀도와 체류 동선을 택한 파리점

2026-10-06     박인경 기자

[KtN 박인경기자]앤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의 파리 플래그십은 150㎡다. 남성복과 여성복, 슈즈, 액세서리, Serax 테이블웨어까지 브랜드의 주요 상품군을 한 공간에 넣었지만 매장 내부는 상품으로 빽빽하게 채워지지 않았다. 밝은 벽과 검은 구조물 사이에 랙을 나누고 중앙부에는 이동할 수 있는 폭을 남겼다. 판매 면적을 크게 늘리는 대신 제한된 공간 안에서 상품과 고객 동선을 함께 관리하는 방식이다.

플래그십의 경제성은 매장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넓은 공간은 상품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지만 임대료와 인테리어, 인력, 냉난방·관리비, 재고 부담도 함께 커진다. 150㎡ 규모에서는 한정된 면적을 어떻게 나누느냐가 곧 매장 생산성으로 이어진다. 같은 면적에서 고객이 더 많은 상품군을 접하고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공간 한 단위가 만들어내는 가치도 커진다.

밝은 벽면과 검은 천장 아래 의류 랙과 진열 구조를 나눠 배치한 Ann Demeulemeester 파리 플래그십 내부. 150㎡ 안에서 상품을 과도하게 늘리지 않고 랙 사이의 이동 폭과 시야를 확보해 의류 한 벌의 존재감을 살렸다. 사진=Ann Demeulemeeste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파리점 내부에서는 한꺼번에 많은 제품을 노출하기보다 각각의 랙과 진열 구역을 떨어뜨려 놓은 구성이 눈에 들어온다. 옷이 서로 겹쳐 보이지 않고 방문객도 다음 상품군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다. 작은 매장에서 상품 수만 늘릴 경우 진열 밀도가 지나치게 높아지고, 고객이 한 제품을 살펴보는 시간도 짧아질 수 있다. 앤 드뮐미스터는 반대로 상품 사이의 간격을 확보하면서 매장 전체를 한눈에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구성에서는 진열 상품 한 점의 역할이 커진다. 매장에 모든 재고를 꺼내놓기보다 대표적인 상품을 보여주고 필요한 사이즈와 색상은 별도로 관리하는 방식이 효율적이다. 판매 공간을 재고 보관 공간처럼 사용하지 않으면 같은 150㎡에서도 고객에게 보여주는 면적을 넓게 쓸 수 있다. 고가 패션 매장에서 넓은 여백이 단순한 인테리어 취향을 넘어 판매 방식과 연결되는 이유다.

남녀 레디투웨어와 슈즈, 액세서리, 테이블웨어를 한 장소에 모은 것도 면적 활용과 맞닿아 있다. 고객이 재킷을 보러 들어왔다가 신발과 가방, 생활용품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고, 별도의 층이나 매장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 상품군을 여러 공간으로 나누는 대형 플래그십과 달리 150㎡ 안에서는 카테고리 간 거리가 짧다. 한 번의 방문에서 여러 제품을 비교하기 쉽고 교차구매 가능성도 높아진다.

객단가를 끌어올리는 데도 이런 구성이 유리할 수 있다. 의류만 판매하는 매장에서는 한 시즌의 구매가 끝나면 다음 방문까지 간격이 길어질 수 있지만 신발과 액세서리, 테이블웨어까지 갖추면 구매 가격과 시점이 다른 상품이 생긴다. 고가 아우터를 구매하지 않는 날에도 액세서리와 생활용품을 살펴볼 수 있어 매장을 찾을 이유가 늘어난다.

다만 상품군이 많아질수록 150㎡의 운영 난도도 높아진다. 남녀 컬렉션과 신발, 액세서리, 테이블웨어가 서로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어느 품목에 얼마만큼의 면적을 배정할지가 중요해진다. 판매 반응이 좋은 제품을 늘리면 다른 카테고리의 진열 공간이 줄어들고, 반대로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다양한 제품군을 유지하면 개별 상품의 재고 효율이 낮아질 수 있다.

결국 작은 플래그십은 상품을 많이 쌓는 매장보다 더 세밀한 운영을 요구한다. 어느 랙에 어떤 제품을 둘지, 재고를 얼마나 보유할지, 고객이 어느 지점에서 머무는지에 따라 판매 효율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150㎡라는 숫자가 작아도 운영은 단순하지 않다.

고객 동선은 이 문제를 풀어내는 또 다른 요소다. 파리점은 입구에서 안쪽까지 시야가 이어지고, 양옆으로 상품이 배치돼 있다. 방문객이 매장 안쪽까지 자연스럽게 걸어가면서 여러 카테고리를 차례로 접할 수 있는 구조다. 입구 부근에만 판매가 집중되는 것을 줄이고 매장 전체를 고르게 사용하는 데 유리하다.

매장 안쪽까지 이어지는 통로를 중심으로 양옆에 의류와 진열 공간을 배치했다. 입구에서 안쪽까지 시야가 이어져 방문객이 매장 전체를 걸으며 여러 상품군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구조다. 사진=Ann Demeulemeeste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매장 안쪽으로 고객을 끌어들이는 동선은 공간 생산성과 직결된다. 입구 주변 몇 미터에만 시선이 머물면 안쪽 공간은 사실상 판매 기능이 떨어진다. 긴 시야를 확보하고 랙과 가구를 통로 양옆으로 나누면 고객이 이동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여러 제품을 보게 된다. 150㎡ 전체를 판매 공간으로 활용하려면 이런 동선이 중요하다.

여백도 같은 역할을 한다. 상품이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옷 한 벌이 충분히 보이고 고객이 멈춰 설 자리가 있어야 실제 구매 과정이 시작된다. 고가 의류는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상품보다 소재와 재단, 착용감을 확인하는 시간이 길다. 피팅과 상담까지 이어지는 매장에서는 고객이 움직이고 머물 수 있는 공간 자체가 판매 과정의 일부가 된다.

직원 운영에서도 매장 크기는 영향을 미친다. 면적이 지나치게 크면 여러 구역에 인력을 배치해야 하지만 150㎡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으로도 매장 전체를 살필 수 있다. 고객이 어느 상품을 보고 있는지 파악하기 쉽고, 의류에서 신발이나 액세서리로 이동할 때 같은 직원이 응대를 이어가기에도 유리하다.

반면 고객이 몰리는 시간에는 작은 면적이 부담으로 바뀔 수 있다. 여러 팀이 동시에 피팅과 상담을 진행하면 통로와 진열 공간이 빠르게 혼잡해지고, 여백을 강조한 내부의 장점도 줄어든다. 특히 파리 패션위크와 같은 시기에는 방문객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어 매장의 수용 능력과 서비스 속도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

재고 운영은 더 복잡하다. 플래그십이라는 이름에 맞게 전체 컬렉션을 보여주려면 다양한 사이즈와 품목을 준비해야 하지만 150㎡ 안에서 판매 공간과 보관 공간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매장에 모든 재고를 두기보다 필요한 수량을 빠르게 보충할 수 있는 물류 체계가 중요해진다. 제한된 면적일수록 재고가 오래 머무는 비용도 크게 느껴진다.

이 때문에 작은 플래그십의 성과는 매출 총액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당 매출과 객단가, 구매 전환율, 재고 회전 속도를 함께 봐야 한다. 넓은 매장보다 매출 총액이 작더라도 공간 한 단위에서 높은 판매 효율을 낼 수 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반대로 좋은 위치와 고급 인테리어를 확보했어도 상품 회전이 느리면 150㎡의 장점은 빠르게 사라진다.

앤 드뮐미스터가 파리점에서 선택한 방식은 초대형 플래그십과 다르다. 넓은 공간을 브랜드의 위세로 사용하는 대신 비교적 작은 매장 안에 브랜드의 주요 상품을 집약했다. 고객이 한곳에서 남녀 컬렉션과 슈즈, 액세서리, 테이블웨어를 모두 볼 수 있도록 하고, 상품 사이에는 충분한 여백을 남겼다.

파리에서 플래그십을 운영한다는 상징성과 매장의 실질적인 생산성을 동시에 고려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공간을 지나치게 크게 만들면 고정비가 늘어나고, 판매 효율만 좇아 상품을 빽빽하게 채우면 앤 드뮐미스터 특유의 공간 경험이 약해질 수 있다. 150㎡는 두 조건 사이에서 상품과 여백을 함께 유지해야 하는 크기다.

밀라노에 이어 파리까지 직접 매장을 늘리고 2027년 런던과 도쿄 플래그십을 준비하는 상황에서는 이 운영 방식이 더욱 중요해진다. 신규점을 계속 늘릴수록 매장 하나의 비효율이 여러 도시에서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공간에서 상품군과 재고, 직원, 고객 동선을 정교하게 맞추는 방식은 이후 매장망 확대에서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앤 드뮐미스터 파리점의 150㎡는 단순히 ‘작은 매장’이라는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상품을 많이 쌓기보다 각 제품을 볼 수 있는 여백을 남기고, 한 번 방문한 고객이 여러 카테고리를 접하도록 구성했다. 매장 면적을 키워 성장하는 방식보다 같은 공간에서 얼마만큼의 구매와 체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중시한 선택이다.

파리 플래그십의 성패도 결국 이 지점에서 갈린다. 팔레 루아얄이라는 주소가 고객을 불러들이는 힘과 150㎡ 안에서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힘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앤 드뮐미스터가 파리에서 선택한 작은 플래그십은 규모보다 공간 생산성을 앞세운 리테일 전략의 출발점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