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업을 다시 짠다①] AI가 14개 기술 트렌드 관통…한국 ‘AI 고속도로’도 인프라 경쟁
맥킨지 2026 기술 전망, AI 고유 영역 넘어 로봇·과학·반도체·전력까지 영향 확대 이재명 정부 ‘AI 3대 강국’ 국정과제…GPU·국가 AI 컴퓨팅센터 중심 인프라 확충 2024년 시작된 AI G3 전략 이어 ‘AI 고속도로·전 사회적 AX’로 정책 범위 확대
[KtN 김 규운기자]인공지능(AI)이 하나의 기술 분야라는 경계를 벗어나고 있다. 맥킨지가 9월 15일 공개한 'McKinsey Technology Trends Outlook 2026'은 올해 주목할 기술 흐름을 14개로 분류했다. AI에 직접 해당하는 분야는 네 개지만 나머지 10개 기술에도 AI가 기반 기술로 작동하거나 발전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소프트웨어 개발과 과학 연구에서 시작된 변화는 로봇, 반도체, 사이버보안, 첨단 연결망, 양자기술, 에너지 인프라까지 번지고 있다.
기술 경쟁의 무게중심도 달라졌다. 생성형 AI 모델이 얼마나 정교한 답을 내놓는지를 겨루던 단계에서 벗어나, AI를 실제 산업과 조직에서 얼마나 넓게 가동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를 채울 반도체, 대규모 연산을 감당할 전력망, AI를 물리 공간으로 옮길 로봇과 센서, 보안체계와 인력까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맥킨지가 14개 기술 흐름에서 반복적으로 포착한 변화는 다섯 갈래다. 기계의 자율성이 높아지고, AI가 만들어내는 기술적 결과의 속도가 기존 조직과 제도가 받아들이는 속도를 앞서고 있다. 공격과 방어 모두 AI를 사용하는 사이버보안 환경은 대응 시간을 줄이고 있으며,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는 AI 작업 특성에 맞춰 함께 설계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대규모 연산을 뒷받침할 전력과 전력망은 AI 확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자율성 확대는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먼저 나타났다. 에이전틱 AI는 문서를 작성하거나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업무 순서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는 코드를 작성하고 시험한 뒤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까지 AI가 맡는 형태가 등장했다. 로봇과 모빌리티에서는 인식과 판단, 행동을 결합한 피지컬 AI가 제조·물류를 넘어 의료와 건설, 농업, 도시 인프라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AI가 결과를 만들어내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존 산업의 처리 능력과 간극도 커지고 있다. 바이오·제약 분야에서는 AI가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신약 후보를 제안할 수 있지만 실험실 검증과 임상시험, 규제 심사는 기존 시간을 크게 줄이기 어렵다. 소프트웨어 역시 코드 생성 속도가 검토와 보안 시험, 실제 배포 속도를 넘어설 수 있다. 기술 발전 자체보다 AI가 쏟아내는 결과를 조직이 얼마나 안전하게 검증하고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지는 구조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AI 모델 학습뿐 아니라 실제 서비스를 구동하는 추론 작업이 늘면서 범용 반도체만으로는 연산 효율과 전력 소비를 동시에 맞추기 어려워지고 있다. 아마존과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형 기술기업들은 AI 모델과 작업 특성에 맞춘 반도체를 개발하거나 반도체 기업과 공동 설계를 확대하고 있다. 모델과 소프트웨어를 먼저 만들고 하드웨어를 선택하던 방식에서 연산 효율과 전력 소비까지 함께 설계하는 구조로 바뀌는 흐름이다.
투자 규모도 AI 경쟁이 물리적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인프라와 모델 아키텍처 분야의 지분투자는 2025년 약 1450억달러였다. 맥킨지가 2026년 상반기 투자 흐름을 연간 기준으로 환산한 전망치는 약 7700억달러로 5배를 넘는다. 에이전틱 소프트웨어 개발과 AI 기반 과학적 발견, 로봇 분야 투자도 2025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나는 흐름을 보였다. 전망치는 상반기 투자 속도가 연말까지 이어진다는 전제에 따른 추산이지만, 투자 자금이 모델 개발뿐 아니라 AI를 실제로 작동시키는 기술 기반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방향은 뚜렷하다.
전력은 AI 확장의 물리적 한계로 떠올랐다. 데이터센터는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건설할 수 있지만 송전선과 변전소, 변압기 같은 전력 인프라는 같은 속도로 늘리기 어렵다. 맥킨지는 미국에서 AI 작업을 수행하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만 2030년이면 현재 캘리포니아주의 전체 전력 소비량에 맞먹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AI 경쟁이 알고리즘과 반도체를 넘어 전력 확보와 전력망 건설까지 이어지는 배경이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AI 고속도로’도 같은 흐름 위에 놓여 있다. 이재명 정부는 ‘AI 3대 강국 도약’을 국정과제로 두고 GPU와 데이터 등 AI 인프라 구축, 차세대 AI 기술 확보, 핵심 인재 육성, 독자 AI 모델 개발, 산업·공공·지역의 AI 전환을 정책 범위에 포함했다. 국가AI전략위원회가 마련 중인 'Korea AI Action Plan'은 AI 혁신 생태계 구축과 전 사회적 AI 전환, 글로벌 AI 사회 기여를 세 개 정책축으로 두고 12개 전략 영역을 제시했다.
컴퓨팅 자원 확충에는 상당한 재원이 투입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6년 투자계획에는 첨단 GPU 1만5000개를 추가로 확보해 누적 3만7000개 수준의 자원을 마련하는 계획이 포함됐다. 국가 AI 컴퓨팅센터도 별도로 구축되고 있다. 정부는 공공·민간 협력을 통해 AI 고속도로 전체에 5만개 이상의 GPU를 확보하는 방향을 제시했으며, 국가 AI 컴퓨팅센터에는 2028년까지 1만5000개 이상의 첨단 AI 연산 자원을 갖추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해남 솔라시도 데이터센터파크에서는 지난 8월 국가 AI 컴퓨팅센터 건설이 시작됐다. 삼성SDS가 주도하고 네이버클라우드, 삼성전자, KT, 카카오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력 방식이다. 2028년 완공을 목표로 하며 일부 연산 자원은 2027년부터 선행 공급할 계획이다. 전력 공급 신청과 용수관 구축 등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한 기반시설 작업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다만 AI G3와 국가 AI 컴퓨팅센터 자체가 이재명 정부에서 처음 만들어진 구상은 아니다. 2024년 윤석열 정부 당시 국가인공지능위원회에서도 AI 3대 강국을 목표로 GPU 연산 역량을 2030년까지 당시의 15배 수준으로 확대하고 최대 2조원 규모의 국가 AI 컴퓨팅센터를 구축하는 정책이 제시됐다. 이후 GPU 확보와 컴퓨팅 인프라 확충이 진행됐고, 이재명 정부는 기존 사업을 ‘AI 고속도로’라는 국가 인프라 구상과 산업·공공·지역을 포함한 전 사회적 AI 전환 정책으로 넓혀가고 있다.
정책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GPU 보유량만으로 AI 경쟁력을 설명하기는 어려워진다. 맥킨지가 제시한 2026년 기술 변화에는 연산 자원과 함께 전력, 전용 반도체, 소프트웨어 구조, 보안, 인재가 동시에 등장한다. GPU를 확보해도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전력과 네트워크가 부족하면 가동 규모가 제한되고, 연산 자원이 충분해도 기업과 연구기관이 실제 성과로 연결하지 못하면 인프라 투자의 생산성은 낮아진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반도체 산업과 AI 인프라 전략의 접점도 넓어지고 있다. AI 작업별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설계하는 흐름이 강해질수록 메모리와 파운드리,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운영 역량을 하나의 산업 생태계 안에서 연결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국가 AI 컴퓨팅센터 사업에도 국내 AI 반도체 도입과 실증, 산업·학계·연구기관에 대한 연산 자원 공급이 포함돼 있다. 단순한 GPU 구매 사업보다 국내 AI 산업의 수요 기반을 함께 형성하려는 구조다.
AI 기술 경쟁은 이제 더 좋은 모델 하나를 만드는 경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모델을 구동할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망을 확보하고 소프트웨어와 산업 현장을 연결하며 기업이 실제 생산성을 만들어내는 과정까지 경쟁 범위가 확장됐다. 맥킨지가 14개 기술 트렌드 전반에서 AI의 영향을 포착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국가AI전략위원회는 11월까지 12개 전략 영역별 세부 실행 내용을 포함한 'Korea AI Action Plan'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가 AI 컴퓨팅센터는 2028년 완공과 1만5000개 이상의 AI 연산 자원 확보를 목표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AI 고속도로가 확보한 연산능력이 기업과 연구현장의 기술 개발과 산업 생산성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GPU 숫자 이후 한국의 AI 경쟁력을 가르는 지표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