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업을 다시 짠다⑤] 신약개발 들어간 AI…‘분자 설계’ 넘어 발견의 방식 바꾼다

생명과학 업무 약 80% 에이전트 적용 가능성…대규모 도입 시 성장률 5~10%·마진 3~5% 개선 추산 논문 탐색부터 실험 설계·임상시험 시뮬레이션까지 범위 확대…연구개발 순차 구조도 변화 한국도 AI-네이티브 자율실험실·디지털 AI 세포 추진…임상 성공 여부는 장기 검증 남아

2026-10-09     김 규운 기자
배경훈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부위원장  /사진=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 규운기자]인공지능(AI)은 이미 생명과학 기업의 제조 수율 최적화와 공급망 운영, 임상시험, 연구실의 반복 업무에 들어와 있다. 다음 변화는 업무시간을 줄이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질병과 분자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연결하고 수많은 실험 가능성을 동시에 계산하면서 신약을 찾는 연구 방식 자체를 바꾸는 단계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맥킨지는 생명과학 분야의 AI 활용을 ‘과학적 AI(scientific AI)’와 ‘운영 AI(operational AI)’로 구분한다. 운영 AI가 문서 작성과 제조·공급망, 임상 운영을 효율화한다면 과학적 AI는 질병을 더 세분화해 분석하고 치료 표적과 분자를 찾으며 임상 결과를 예측하는 연구 과정에 직접 들어간다.

적용 범위는 넓다. 생명과학 기업의 업무 흐름 가운데 약 80%는 AI 에이전트를 적용할 가능성이 있는 영역으로 분석됐다. AI가 대규모로 도입될 경우 성장률은 약 5~10%, 마진은 3~5% 개선될 수 있다는 추산도 나왔다. 단순 자동화보다 연구와 임상, 제조, 영업에 흩어진 업무 흐름을 연결할 때 경제적 효과가 커지는 구조다.

신약 연구에서는 사람이 한 번 명령을 내릴 때마다 결과 하나를 내놓는 생성형 AI보다 여러 작업을 연속적으로 수행하는 에이전틱 AI의 영향이 커지고 있다. 논문을 읽고 관련 데이터를 정리한 뒤 실험 조건을 설계하고 결과를 분석해 다음 실험 방향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자동화 실험장비가 결합되면 연구자는 반복 작업의 실행자보다 여러 AI와 실험 시스템의 결과를 판단하고 조정하는 역할에 가까워질 수 있다.

임상시험 설계도 달라질 수 있다. 기존에는 연구진이 제한된 수의 임상 설계를 검토한 뒤 시험 규모와 환자 조건, 평가지표 등을 결정했다. AI는 여러 조건을 바꾼 수백 개의 설계를 사전에 시뮬레이션하면서 시험기간과 비용, 환자군 구성을 비교할 수 있다.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과정에서는 사람이 검토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 연구자가 알고 있는 화합물과 논문, 실험 경험을 바탕으로 후보를 좁혀가던 방식에서 AI 모델이 방대한 분자 공간을 탐색하고 수많은 가상 실험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알렉스 데버슨(Alex Devereson)은 생명과학의 발전이 오랫동안 과학자와 설계자, 의사결정자의 개인적 전문성에 크게 의존해 왔다고 설명했다. AI는 질병이나 분자에 축적된 지식을 한꺼번에 활용하고, 사람이 직접 발견하기 어려웠던 데이터 간 연관성을 탐색할 수 있도록 한다.

연구개발의 시간 구조까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신약 연구개발에는 대략 30개의 순차적인 과정이 이어지지만, AI가 발달하면 치료표적과 분자, 환자군, 임상 근거, 실제 생산 가능성을 초기부터 함께 계산하는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각 단계가 끝난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직렬형 연구에서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검토하는 병렬형 연구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다만 연구 속도가 빨라지는 것과 실제 치료제가 성공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AI 신약개발 투자는 현재 분자 설계에 집중돼 있다. 구조화된 데이터가 비교적 풍부하고 실험 결과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어 AI 모델을 적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맥킨지가 9월 내놓은 별도 분석에서는 2025년 AI 기반 신약개발 기업에 대한 투자금액이 84억달러로 2023년 41억달러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부 공개 프로그램에서는 최초 인체투여 또는 이에 준하는 전임상 단계까지 걸리는 시간이 대형 제약사의 통상적인 기간보다 15~80%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속도를 가장 많이 높인 영역이 신약개발에서 가장 어려운 영역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어떤 질병 기전을 겨냥해야 하는지, 치료 표적이 실제로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과 연결돼 있는지 판단하는 과정은 분자 설계보다 복잡하다. 잘 설계된 분자를 만들어도 처음 선택한 질병 기전이나 표적, 환자군이 잘못됐다면 임상시험에서 실패할 수 있다.

생물학에서는 데이터의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별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이 질병과 함께 나타난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요소가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 세포와 조직에서 실제 변화를 검증하고 인간에게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AI가 아무리 많은 계산을 짧은 시간 안에 수행해도 세포가 자라는 물리적 시간이나 장기간의 임상 관찰까지 동시에 압축할 수는 없다. 연구실에서 얻은 초기 속도 향상이 실제 환자의 치료 성공률로 그대로 이어지는지 확인하려면 임상시험이라는 별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AI에서 출발한 신약 후보 가운데 상당수도 임상 1상이나 2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는 임상 3상의 결과는 앞으로 수년에 걸쳐 축적될 전망이다. AI가 초기 신약개발 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근거는 늘고 있지만 최종 임상 성공률까지 높이는지는 아직 판단할 단계가 아니다.

전임상 연구에서도 불확실성이 남는다. 동물이나 세포 수준에서 얻은 결과가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고, 예상하지 못한 독성과 표적 밖의 작용도 발생한다. AI가 분자 설계를 빠르게 만들수록 임상 이전 단계에서 안전성과 인간 생물학을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의약품 분야에서는 설명 가능성과 검증 절차의 무게도 다른 산업보다 크다. 광고문구나 업무문서를 생성하는 AI의 오류와 치료 결정을 지원하는 AI의 오류는 결과가 다르다. 질병과 치료에 관한 AI의 판단에는 검증 가능성과 기록, 추적 가능한 근거가 필요하고 연구자와 의료진의 최종 판단도 남아야 한다.

생명과학 기업이 기존에 축적해 온 품질관리 체계는 AI 도입에서 자산이 될 수 있다. 임상시험과 의약품 제조에서는 데이터의 신뢰성과 편향, 실험 규정 준수를 오랫동안 관리해왔다. AI 모델의 한계와 오류 가능성, 사람의 개입 기준을 정하는 작업도 이런 관리체계와 연결된다.

기업 구조도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생성형 AI 이전까지 생명과학 기업의 AI는 주로 연구개발 부문의 데이터과학자와 전문 연구자의 영역이었다. 생성형 AI와 에이전트가 일반 직원도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면서 임상, 규제문서, 제조, 공급망, 영업 등으로 적용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향후에는 AI를 기존 제약회사에 붙이는 방식과 처음부터 AI를 중심으로 연구와 조직을 설계한 기업이 함께 경쟁할 가능성이 높다. 맥킨지는 앞으로 5~10년 사이 AI-native 생명과학 기업이 늘어나고, 연구실과 생산시설 자체가 에이전트와 자동화 설비를 전제로 설계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한국에서도 AI와 바이오를 직접 결합하는 연구가 2026년 사업으로 구체화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월 ‘AI-네이티브 첨단바이오 자율실험실 사업’을 공고했다. 연구자가 수행하던 실험 과정에 AI와 자동화 기술을 결합하는 연구기반 구축이 사업 범위에 들어갔다. 같은 시기 ‘AI×바이오 혁신연구거점 조성’ 사업과 ‘디지털 AI 세포 구축사업’도 추진됐다.

AI-네이티브 자율실험실은 시리즈 앞선 회차에서 다뤘던 에이전틱 AI의 변화가 연구현장으로 들어가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사람이 하나씩 실험 조건을 설정하고 결과를 정리하는 방식에서 AI가 실험 설계와 데이터 분석을 연결하고 자동화 장비가 반복 실험을 수행하는 구조로 옮겨갈 수 있다.

디지털 AI 세포 연구는 생명현상을 디지털 환경에서 분석하고 예측하는 기반과 연결된다. 실제 세포와 질병에서 가능한 변화를 컴퓨터 모델로 더 정교하게 다룰 수 있다면 신약 후보를 실제 실험에 투입하기 전 탐색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다만 디지털 모델이 실제 생물학을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하는지가 연구 가치의 기준이 된다.

이재명 대통령도 9월 23일 뉴욕에서 열린 ‘대한민국 투자 서밋 2026’에서 AI·반도체와 함께 바이오를 한국의 미래 첨단산업으로 제시했다. AI를 독립된 정보기술 산업에 한정하지 않고 바이오를 포함한 산업 경쟁력과 연결하는 방향이다.

한국의 산업 기반을 감안하면 AI와 바이오의 결합은 반도체나 데이터센터와도 떨어져 있지 않다. 생명과학 AI가 대규모 생물학 데이터와 반복적인 시뮬레이션을 처리할수록 연산자원과 데이터 관리 능력이 연구 인프라의 일부가 된다. 동시에 고성능 컴퓨팅만으로 질병 기전을 규명하거나 임상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생명과학 특유의 조건도 남는다.

지난 네 편에서 AI 경쟁은 인프라 확보, 생산성 격차, 비용 관리, 조직 재설계로 이어졌다. 생명과학에서는 모든 요소가 한꺼번에 만난다. 대규모 연산자원이 필요하고, 연구자의 생산성을 바꾸며, 실험 비용을 조정하고, 연구조직의 업무 흐름까지 다시 구성한다. 결과가 잘못됐을 때 감당해야 하는 위험은 일반 기업 업무보다 훨씬 크다.

AI 신약개발의 다음 경쟁은 후보물질을 더 빨리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질병의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이를 겨냥한 분자를 설계하고, 전임상 결과를 인간의 임상 결과로 연결한 뒤 실제 치료효과를 입증하는 전 과정이 이어져야 한다.

2026년 현재 AI는 신약개발의 초기 속도를 끌어올리고 생명과학 기업의 업무 구조를 바꾸고 있다. 한국에서도 AI-네이티브 자율실험실과 디지털 AI 세포 등 연구 기반 구축이 시작됐다. AI에서 출발한 신약 후보들의 임상 3상 결과가 축적되는 앞으로의 수년은 연구 속도의 향상이 실제 치료 성공률 상승으로 이어지는지를 가르는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