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 대전환, 노동의 재편①] 같은 AI인데 8.3배…기업 활용 격차, 노동의 가격까지 흔든다
AI 사용 상위 10% 기업, 활성사용자당 출력 토큰 일반 기업의 8.3배 소프트웨어 개발자 생산성 향상도 3%와 55%로 갈려 기술 보급 뒤 기업 격차 확대…채용·직무·임금 구조 재편으로 연결
[KtN 조종식기자]같은 인공지능(AI) 모델을 쓸 수 있는 기업 사이에서 활용 격차가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오픈AI가 8월 공개한 기업 고객 데이터에서 AI 사용량 상위 10%에 해당하는 ‘프런티어 기업’은 6월 기준 활성 사용자 한 명당 일반 기업보다 8.3배 많은 출력 토큰을 생성했다. 1월 2.6배였던 차이는 다섯 달 만에 세 배 이상 확대됐다. 정보·기술 업종에서는 11.7배, 제조업에서도 5.3배의 차이가 나타났다.
출력 토큰이 많다고 생산성이 같은 비율로 높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토큰은 AI가 만들어낸 글과 코드 등의 양을 나타내며 짧은 결과물 하나가 긴 문서보다 더 큰 사업가치를 만들 수도 있다. 다만 AI에 어느 정도의 업무를 맡기고 있는지, 기업 내부에서 활용 범위가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는 의미가 있다.
프런티어 기업의 활용 방식도 단순한 대화형 AI 사용에서 멀어지고 있다. 기업 내부 정보와 업무도구를 AI에 연결하고 여러 단계의 작업을 에이전트에 맡기는 비중이 커졌다. 6월 기업 고객이 Codex와 ChatGPT에서 생성한 출력 토큰 가운데 Codex 비중은 64%였다. 2월 이후 주간 Codex 활성 사용자는 법무에서 108배, 영업과 채용에서 각각 41배, 마케팅에서 26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엔지니어링 증가폭은 5배였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먼저 확산한 에이전트 활용이 법무와 영업, 채용, 마케팅 등 사무·전문직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업 데이터와 외부 도구를 AI에 연결하는 정도에서도 차이가 확인된다. 프런티어 기업의 주간 활성 사용자 가운데 관련 기능을 이용하는 비율은 21%였고 일반 기업은 9%였다. 같은 기반모델을 사용하더라도 AI가 사내 자료를 읽고 업무용 프로그램을 실행하며 여러 단계의 일을 이어서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는지에 따라 활용 범위가 달라지고 있다.
AI가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는 기업 간 기술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뒤따랐다. 과거 대기업이나 고숙련 전문인력만 수행할 수 있었던 일을 작은 기업과 일반 직원도 AI를 이용해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사람이 자신의 기존 직무 범위를 넘어 다른 직종의 업무까지 수행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 ChatGPT 이용자의 업무 관련 메시지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특정 직업과 관련한 AI 이용 가운데 43.5%가 이용자의 본래 직종 밖 업무에 해당했다. 영업 담당자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마케팅 담당자가 웹사이트 문제를 처리하며, 소상공인이 계약서 검토나 기초 재무분석 일부를 직접 수행하는 방식이다.
기술 접근성이 높아진다고 기업의 성과까지 같은 수준으로 수렴하는 것은 아니다. 맥킨지가 2026년 5월 제품·엔지니어링 분야 종사자를 조사한 결과, AI 도구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가운데 약 80%의 생산성 향상은 평균 3% 수준에 그쳤다. 상위 20%의 평균 상승률은 55%였다. 같은 조사에서 관리자급 응답자의 30%는 AI 도입 뒤 팀 생산성이 오히려 떨어졌다고 답했다.
차이는 AI 모델보다 업무 구조에서 크게 나타났다. 개발자가 AI로 코드를 빠르게 작성해도 요구사항 정리와 설계, 검토, 보안 시험, 승인, 배포가 기존 방식 그대로라면 제품 출시까지 걸리는 시간은 같은 비율로 줄지 않는다. 코드 생산량이 급격히 늘면 검토와 시험 단계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영업조직에서도 AI가 고객 정보를 빠르게 분석하더라도 가격 조정이나 계약조건 변경에 여러 단계의 승인이 필요하면 의사결정 속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보고서 작성이나 자료 정리도 마찬가지다. AI가 초안 작성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도 보고 단계와 회의, 결재 절차가 그대로 유지되면 절약된 시간은 조직의 다른 과정에서 다시 소모된다. 개인 한 명의 업무 속도를 높이는 것과 기업 전체가 같은 인력과 시간으로 더 많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생산성 격차는 기업의 인력 운용에도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한 회사에서는 직원 한 명이 AI를 이용해 과거보다 훨씬 많은 일을 처리하고, 다른 회사에서는 같은 인원이 이전과 비슷한 업무량을 유지한다면 기업이 계산하는 적정 인원부터 달라진다. 조사와 작성, 분석, 기본 코딩을 여러 명이 나눠 맡던 조직에서 숙련자 한두 명이 AI와 함께 처리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면 신규 채용 규모와 직무 구성도 바뀔 수 있다.
AI가 고용을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수행하던 일을 대신하는 대체효과가 있는 반면 기존 노동자의 능력을 높이는 보완효과도 있다. 생산비용이 내려가 시장이 커지면 새로운 고용이 생길 수 있고 AI 확산 과정에서 새로운 직무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국내에서도 현재까지 나타난 변화는 일률적인 인력 감축보다 업무와 공정의 재편에 가깝다. 한국고용정보원이 8월 내놓은 노동시장 분석에서는 국내 AI 도입 사업체 가운데 75%가 인력 대체보다 업무와 공정 혁신을 중심으로 AI를 활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청년 고용 둔화 역시 AI 대체 하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청년인구 감소와 경기, 산업구조 변화 등을 함께 봐야 한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고용 규모보다 먼저 달라지는 것은 한 직무 안에서 사람이 맡는 일의 구성이다. 자료 정리와 초안 작성, 반복 분석을 AI가 처리하고 직원은 결과를 검토하거나 예외 상황을 판단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방식이다. 여러 프로그램을 오가며 사람이 순차적으로 처리하던 업무도 AI 에이전트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업무 구성이 달라지면 노동의 가치도 변한다. AI가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작업의 비중이 높은 직무에서는 사람 한 명을 추가 고용해 얻는 효과가 낮아질 수 있다. 반대로 AI가 만든 결과를 검증하고 오류를 걸러내며 고객과 협상하거나 최종 판단을 내리는 능력의 가치는 높아질 수 있다.
기본적인 AI 사용법 자체는 시간이 흐를수록 일반적인 업무 능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직원 간 차이는 AI를 사용하는지 여부보다 어떤 업무를 맡기고, 회사의 데이터와 프로그램을 연결하며, 생성된 결과를 검증해 실제 성과까지 완결할 수 있는지에서 나타날 수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없는 상태에서는 AI가 만든 오류를 찾아내기도 어렵다.
변화는 경력 초기 노동자에게 더 민감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자료조사와 요약, 문서 초안, 기본 분석, 단순 코딩은 기업이 신입사원에게 맡겨온 대표적인 업무다. 생산을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업무를 익히고 판단 기준을 쌓는 훈련 과정이기도 했다.
AI가 이런 업무를 빠르게 흡수하면 기업은 단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신입 직원이 경험을 축적하는 기존 경로는 좁아질 수 있다. 신입을 적게 채용해도 현재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기업이 늘어날 경우 몇 년 뒤 필요한 중간숙련 인력과 전문가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가 새로운 인력 관리 문제로 남는다.
한국고용정보원도 AI 확산 과정에서 청년층의 ‘숙련 사다리’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직업 자체가 사라지는지를 보는 것만으로는 노동시장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고, 초급 업무가 어떻게 바뀌며 경력 형성 과정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직업훈련 정책도 AI 프로그램 사용법을 가르치는 단계에서 실제 업무를 다시 설계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14개 지역 인적자원개발위원회를 중심으로 ‘AI 워커’ 직업훈련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향후 5년간 100만명의 AI 직업능력 개발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업무 현장에서 AI를 활용하는 능력뿐 아니라 기존 직무와 AI를 어떻게 결합할지까지 직업훈련의 범위가 넓어지는 흐름이다.
AI 활용 격차가 실제 임금과 고용 격차로 어느 정도 이어질지는 산업과 직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업의 생산성이 올라가더라도 생산량 확대와 신규 사업으로 연결되면 고용이 늘 수 있고, 같은 생산량을 적은 인력으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채용은 줄어들 수 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도 양상은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노동력을 계산하는 방식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직원 한 명이 몇 시간을 일했는지보다 사람과 AI를 결합했을 때 어느 정도의 결과를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해졌다. 같은 인원과 같은 기술을 가진 기업에서도 AI에 맡기는 업무의 범위와 조직의 대응 방식에 따라 생산성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1월 2.6배였던 기업의 AI 활용 격차는 6월 8.3배까지 벌어졌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생산성 향상 역시 다수의 평균 3%와 상위 20%의 평균 55%로 갈렸다. AI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기업이 빠르게 늘어난 것과 달리 기술을 실제 업무와 생산성으로 바꾸는 능력은 같은 속도로 평준화되지 않고 있다.
AX가 노동시장에 가져오는 변화도 대규모 인력 감축이라는 하나의 숫자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먼저 업무가 다시 나뉘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직무와 숙련 수준이 달라지며, 신규 채용과 경력 형성 방식이 영향을 받는다. 기업 사이에서 시작된 AI 활용 격차가 노동시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이제 생산성과 고용, 임금 구조를 함께 살펴야 할 단계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