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 대전환, 노동의 재편②] 직업은 남아도 일이 달라진다…AI가 다시 쪼개는 노동

세계 노동자 4명 중 1명 생성형 AI 영향권…대규모 직업 소멸보다 업무 구성 변화 가능성 행정·정보처리·반복 가능한 지식업무부터 AI와 결합…판단·책임·대인관계 비중은 높아져 한국 AI 도입 사업체 28.6%…재직 현장에서도 반복 업무 줄고 검증·감수 역할 확대

2026-10-06     조종식 기자

[KtN 조종식기자]세계 노동자 4명 가운데 1명은 이미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전 세계 약 3만개 업무를 분석해 내놓은 결과다. 그러나 같은 분석에서 AI의 영향은 직업 전체가 사라지는 방식보다 한 직업 안의 업무 구성이 바뀌는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평가됐다. 사람이 맡던 일을 AI가 한꺼번에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자료 검색과 정리, 초안 작성, 계산처럼 자동화하기 쉬운 업무부터 떼어내고 판단과 책임, 협상, 예외 처리 같은 업무를 사람에게 더 많이 남기는 변화다.

노동시장을 직업 이름만으로 보면 이런 변화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회계사는 회계사로 남고 개발자는 개발자로 남아 있어도 하루 동안 처리하는 일의 구성은 달라질 수 있다. 과거 회계사가 자료를 모으고 수치를 정리한 뒤 분석까지 직접 했다면 AI가 자료 취합과 기초 분석을 맡고 사람은 오류를 찾거나 숫자가 의미하는 사업 상황을 판단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개발자도 코드를 직접 작성하는 비중은 줄고 설계와 검증, 보안, 오류 판단의 비중이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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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OECD가 직업별 AI 노출도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현재 AI의 능력은 반복적인 정보처리와 행정업무, 일정한 규칙으로 정리할 수 있는 업무에 가장 가까이 접근해 있었다. 반면 상황에 따른 판단, 사람의 감정과 의도를 이해하는 일, 복잡한 의사결정, 결과에 대한 책임이 필요한 업무와는 여전히 거리가 컸다. 과거 자동화가 주로 단순 육체노동과 반복 작업을 겨냥했다면 생성형 AI는 사무직과 전문직 안의 인지 업무까지 직접 건드리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AI 노출도가 높은 직업이 곧 사라질 직업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정보기술 전문가와 경영·비즈니스 전문직, 관리자, 과학·공학 전문직은 최근 AI 기술에 많이 노출되는 직업군으로 분류되지만 전문지식과 판단을 요구하는 업무도 함께 포함한다. AI가 처리할 수 있는 업무가 많아지는 것과 해당 직업의 사람을 모두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ILO도 AI 노출도를 고용 감소 전망치로 곧바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AI 사용 과정에서는 이미 직업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미국 ChatGPT 이용자의 업무 관련 메시지 80만건 이상을 분석한 결과, 특정 직업과 관련된 AI 사용 가운데 43.5%는 이용자의 본래 직종 밖에서 전통적으로 수행해온 일이었다. 고객경험 분야 종사자는 직종 특화 AI 사용의 77%, 디자이너는 75%, 인사 담당자는 69%, 법률 종사자는 56%, 마케팅 종사자는 53%가 자기 직종 밖의 업무와 연결됐다.

영업 담당자가 고객 데이터를 직접 분석하고 마케팅 담당자가 간단한 기술 문제를 처리하며 소상공인이 계약서나 재무자료를 기초적으로 검토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다른 부서나 외부 전문가에게 일을 넘겨야 했던 지점에서 AI가 중간 비용을 낮추고 있다. 기업 안에서 업무를 넘기는 횟수가 줄어들면 부서 사이의 경계와 직무기술서에 적힌 역할도 함께 달라질 수 있다.

한 번 시도한 다른 직종의 업무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4월부터 7월까지 업무 관련 ChatGPT 메시지 150만건 이상을 분석한 후속 연구에서는 일부 직종 밖 업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이용자의 일상적인 업무 흐름에 들어오는 변화가 확인됐다. 다른 직종에서 가져온 업무를 다음 달에도 다시 수행한 평균 비율은 18.5%였다. 고객과 상품·서비스를 논의하는 업무는 54%, 광고 문구 작성은 44%, 마케팅 자료 제작은 37%가 다음 달에도 반복됐다. 직함은 그대로인데 실제로 맡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람을 직무에 고정해 배치하던 방식에 변화가 생긴다. 과거에는 영업 담당자가 분석을 요청하면 데이터 조직이 처리하고, 계약 문제가 생기면 법무조직에 넘기고, 웹사이트 수정이 필요하면 개발조직을 거쳐야 했다. AI가 일정 수준의 전문 업무를 보조하면 문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직접 처리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조직 안에서 일을 주고받는 비용은 낮아지고 한 사람이 맡는 업무의 폭은 넓어진다.

작은 기업에서는 변화가 더 직접적일 수 있다. 전문 부서를 모두 갖추기 어려운 조직에서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때 외부 전문가를 찾거나 대표와 직원이 직접 해결해야 했다. AI가 기초적인 법률 검토와 데이터 분석, 마케팅, 기술 지원을 보조하면 한 사람이 기존보다 많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실제 이용 데이터에서도 직원 수가 적은 조직의 일반 사용자에게서 직종 밖 업무를 AI에 맡기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업무의 경계가 낮아진다고 전문성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업무를 수행하는 비용과 결과를 판단하는 비용이 갈라질 가능성이 크다. AI는 계약서 초안을 만들 수 있지만 기업이 감수할 수 있는 법적 위험을 결정하기 어렵고, 재무자료를 분석할 수 있어도 투자를 집행할 책임까지 맡지는 않는다. 코드를 작성할 수 있지만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과 보안을 책임지는 판단은 별개의 영역이다.

전문직 안에서도 업무의 가격이 다시 매겨질 수 있다. 반복 가능하고 일정한 형식으로 정리되는 업무는 AI와 경쟁하면서 비용이 낮아질 수 있다. 고객과의 협상이나 복잡한 이해관계 조정,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판단,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업무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같은 직업 안에서도 어떤 일을 주로 맡느냐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노동시장에서도 직업 전체의 소멸보다 업무 재구성이 먼저 나타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전국 2297개 사업체를 조사한 결과 AI 도입률은 28.6%였다. AI를 도입한 사업체의 75.6%는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었으며 인원 감축보다 반복 업무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용도로 사용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기업의 매출 성장 기대는 커졌지만 고용이 같은 비율로 늘어나지 않는 흐름도 나타났다.

산업별로 채용 변화도 같지 않았다. 기계장비와 연구개발, 정밀기기,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AI 관련 인력 수요와 신규 채용이 함께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사업지원서비스와 보건·사회, 문화·예술에서는 AI 인력 수요와 신규 채용 수요가 모두 줄어들 것으로 보는 응답이 나타났다. AX가 경제 전체에서 같은 방향으로 고용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산업과 직무에 따라 사람을 더 필요로 하는 곳과 덜 필요로 하는 곳을 동시에 만들고 있는 셈이다.

재직자들이 경험하는 변화도 업무량 감소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IT 개발직과 시각·디지털 디자인, 일반사무직 종사자 305명을 조사한 결과 AI 활용 뒤 업무 효율성 향상은 5점 만점에 3.4점, 문제해결 역량은 3.15점, 생산성은 3.14점으로 나타났다. 창의성은 2.79점, 협업 역량은 2.3점으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AI가 반복 업무와 정보처리를 빠르게 바꾸는 동안 사람 사이의 협업과 조직 운영은 같은 속도로 달라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직무가 달라져도 기업의 인사제도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직원 개인이 먼저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상향식 도입은 빨랐지만 평가와 보상, 직무 설계는 뒤따르지 못하는 흐름이 확인됐다. 직원이 AI를 활용해 과거 두 시간 걸리던 일을 한 시간 만에 끝내더라도 기업이 같은 업무량을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한다면 남은 한 시간에는 다른 일이 더해질 수 있다. 기술이 높인 생산성이 노동자의 업무 자율성이나 보상으로 연결되는지는 별도의 조직 선택에 달려 있다.

직업훈련의 방향도 프로그램 사용법에서 업무 흐름으로 이동하고 있다. 올해 시작된 ‘AI 워커’ 직업훈련은 전국 14개 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에서 84개 훈련기관, 113개 과정을 선정했다. 기존 교육이 특정 소프트웨어 기능을 익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새로운 과정은 실제 업무를 AI와 어떻게 나눌지에 무게를 두고 있다.

출판물 제작 과정의 변화가 이를 보여준다. 기존 교육에서는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해 책을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면 AI 워커 과정에서는 독자층을 분석하고 디자인 방향을 정한 뒤 AI로 삽화와 표지 시안을 제작하고, AI가 수정한 원고를 사람이 감수하며 자동 조판 결과의 오류를 찾아내는 업무까지 다룬다. 사람이 모든 제작 단계를 직접 수행하는 방식에서 AI가 생산하고 사람이 방향을 정하고 검증하는 방식으로 직무가 재구성되고 있다.

노동의 재편은 사람이 하던 일을 AI가 대신하는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과거 다른 직종에 속했던 일을 가져오는 변화도 동시에 일어난다. 영업과 데이터 분석, 마케팅과 기술지원, 디자인과 홍보 업무 사이의 경계가 낮아지면 기업은 기존 직무를 더 넓게 묶거나 여러 직무를 하나로 합칠 수 있다.

인력 배치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직무별로 필요한 사람의 수를 정하던 기업이 앞으로는 어떤 업무를 AI가 처리하고 어느 단계에 사람이 개입할지를 먼저 결정한 뒤 인원을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 사람이 맡아야 할 업무가 판단과 책임 쪽으로 이동하면 채용에서도 단순 업무 수행 능력보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AI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AI가 직업의 경계를 낮추면 조직 안에서 전문 부서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도 일부 달라질 수 있다. 간단한 업무를 다른 부서로 넘기는 과정은 줄지만 복잡한 판단과 높은 위험을 다루는 전문조직의 역할은 오히려 집중될 수 있다. 법무 담당자가 모든 계약서의 초안을 직접 만들기보다 AI가 만든 계약서 가운데 위험도가 높은 사안을 검토하고, 개발자는 모든 코드를 작성하기보다 시스템 전체의 구조와 보안을 맡는 방식이다.

AX가 만드는 노동시장의 변화는 직업이 사라지는 속도만으로는 읽기 어렵다. 직함이 그대로 유지되는 동안 실제 업무는 이미 달라질 수 있고, 같은 직업 안에서도 AI가 처리할 수 있는 일과 사람이 맡아야 하는 일의 가치가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

세계 노동자 4명 가운데 1명이 생성형 AI의 영향권에 들어와 있지만 대부분의 직업에서는 당장 사람 전체가 필요 없어지는 것보다 맡고 있는 일의 조합이 달라질 가능성이 더 크다. 한국에서도 기업의 AI 활용은 인력 감축보다 반복 업무 경감과 직무 재구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직업은 노동시장의 이름표다. 기업이 실제 비용을 지불하는 대상은 직업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수행되는 수많은 일이다. AI가 노동시장에 들어오면서 먼저 바뀌고 있는 것도 이름표보다 업무의 배분이다. 어떤 일은 AI로 넘어가고, 어떤 일은 다른 직종의 사람이 가져가며, 판단과 검증처럼 사람에게 남는 일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AX가 노동을 바꾸는 첫 단계는 직업을 없애는 데서가 아니라 직업 안에 묶여 있던 일을 다시 나누는 데서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