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 대전환, 노동의 재편⑤] 사람 줄어드는 한국…AI, 일자리 대체와 노동력 보완 사이
생산연령인구 2022년부터 10년간 332만명 감소 전망 2060년 20~64세 인구 최대 46% 줄어 OECD 최대 감소폭 청년 사무·전문직은 채용 압박, 지역 제조업은 구인난 지속 AX, 인력 감축과 노동력 부족 대응이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
[KtN 조종식기자]한국에서 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얼마나 없앨지를 따지려면 먼저 줄어들고 있는 사람의 숫자부터 봐야 한다.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2022년부터 10년 동안 332만명 감소할 전망이다. 2030년대로 들어가면 감소 속도는 더 빨라져 생산연령인구가 연평균 약 50만명씩 줄어드는 흐름이 예상된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이미 노동 공급 자체를 축소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AX(AI Transformation)는 일자리를 대체하는 기술인 동시에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는 기술이라는 두 얼굴을 갖게 된다.
장기 전망에서는 변화의 폭이 더 커진다. 2023년부터 2060년까지 한국의 20~64세 인구는 최대 46%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큰 감소폭이다. 같은 기간 OECD 전체의 감소 전망치는 약 8%다. 고령인구를 생산연령인구로 나눈 노년부양비도 2060년 한국에서 75%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을 더 뽑아 생산량을 늘려온 기존 성장 방식이 인구구조만으로도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AI 노동 논쟁이 미국이나 유럽과 똑같은 형태로 한국에 적용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력이 비교적 충분한 경제에서는 자동화가 기존 노동자를 밀어내는 효과가 먼저 부각될 수 있다. 생산연령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한국에서는 사람이 없어 유지하기 어려운 생산과 서비스의 일부를 AI와 자동화가 맡아야 하는 상황도 동시에 커진다.
지역으로 내려가면 노동력 감소는 더 가파르다. 2052년 생산연령인구는 2022년과 비교해 울산에서 49.9%, 경남에서 47.8%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의 감소폭은 25.6%, 인천은 27.8%로 상대적으로 작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 생산연령인구가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동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력 확보 조건도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다.
기업 현장에서는 이미 서로 반대 방향의 변화가 함께 나타난다. 사무·전문직에서는 AI가 자료조사와 초안 작성, 기본 분석, 코딩 같은 업무를 가져가면서 신규 채용을 줄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제조와 농축산업, 일부 지역 중소기업에서는 내국인을 구하지 못해 외국인력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가 2026년 도입하기로 한 비전문 외국인력은 19만1000명이다. 고용허가제(E-9) 8만명, 계절근로(E-8) 10만9000명 등이 포함됐다. 비수도권 제조업의 외국인 고용한도도 인력난을 감안해 높였다. AI가 사람의 일을 없앤다는 논쟁이 진행되는 같은 시기에 한국 기업들은 해외에서 노동자를 들여오지 않으면 생산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셈이다.
중장기 전망에서도 노동공급의 제약은 이미 주요 경제 변수로 올라왔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면서 향후 인력 공급 제약이 본격화하고, 디지털 전환과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산업과 직업별 고용 수요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 전체가 남거나 부족한 것이 아니라 특정 산업에는 사람이 남고 다른 산업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현상이 함께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AI가 이 간극을 일부 줄일 가능성은 있다. 자동화가 사람 한 명이 처리할 수 있는 업무량을 늘리면 생산연령인구 감소에 따른 성장 둔화를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확산으로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연간 0.4~0.9%포인트 높아질 수 있다는 추산도 있다. 기술이 숙련인력 부족을 보완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면 고령 인력의 경제활동 기간을 늘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해당 수치는 국가와 기업의 실제 도입 수준, 업무 재설계와 인력 역량에 따라 달라지는 추정치다.
한국의 인구구조에서는 생산성 상승의 의미도 달라진다. 노동자가 충분한 경제에서 생산성 향상은 같은 생산량을 더 적은 인원으로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노동자가 줄어드는 경제에서는 적은 사람이 기존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될 수 있다.
제조업은 두 효과가 동시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분야다. AI 기반 검사장비는 사람이 일일이 제품을 확인하던 품질검사를 자동화하고, 예측정비는 설비 이상을 미리 찾아 유지보수 인력을 더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 일부 생산공정에서는 수십명이 하던 업무를 소수 인력이 담당할 정도로 인력 구조가 크게 바뀌고 있다.
국내 한 전자부품 제조기업의 품질검사 공정에서는 AI 도입 뒤 수백명의 검사 인력이 줄었고, 직접 고용 노동자는 다른 업무로 이동한 반면 협력업체 인력이 주로 감소했다. 기계 운영 공정에서는 과거 수십명이 수행하던 일을 두 명이 담당하는 수준까지 인원이 줄었다. 동시에 해당 기업은 성장과 신규 공장 건설을 이어가 전체 고용을 한꺼번에 줄이기보다 인력 증가 속도가 낮아지는 형태가 나타났다. 개별 기업의 결과를 전체 제조업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AI가 업무 단위에서는 사람을 대체하면서 성장하는 기업 전체에서는 다른 직무를 유지하거나 늘릴 수 있다는 구조를 압축해 드러낸다.
국내 사업체 전체에서도 아직 대규모 인원 감축이 AI 도입의 주된 목적은 아니다. 2297개 사업체 조사에서 AI 도입률은 28.6%였고 도입 기업의 75.6%가 생성형 AI를 사용했다. 상당수 기업은 인력 감축보다 반복업무 경감과 생산성 향상을 주요 활용 목적으로 꼽았다. AI 도입 기업은 매출 성장 기대가 높았지만 고용이 매출과 같은 속도로 늘지는 않는 ‘성장과 고용의 분리’도 나타났다.
경제가 성장해도 과거와 같은 숫자의 노동자를 추가로 고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기업이 매출을 두 배로 늘릴 때 인력도 비슷한 비율로 늘리던 방식에서, 기존 인력과 AI를 결합해 더 큰 사업을 운영하는 구조로 이동할 수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한국에서는 이런 변화가 기업의 인력 부족을 덜어주는 동시에 신규 채용의 증가폭을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청년층과 지역 제조업에서 서로 다른 신호가 나타나는 이유도 같은 구조에 있다. 대졸 청년이 주로 진입하는 사무·전문직에서는 자료정리와 문서작성, 기초분석 같은 초급 업무가 AI에 먼저 노출된다. 제조업 생산현장이나 농축산업에서는 해당 지역에서 일할 사람 자체를 구하지 못해 외국인력을 확대한다.
한쪽에서는 첫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데 다른 쪽에서는 사람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AI가 한국 노동시장에 가져올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실업률 상승보다 노동 미스매치의 확대일 수 있다. 구직자가 가진 기술과 기업이 필요한 기술이 다르고, 사람이 사는 지역과 일자리가 있는 지역이 다르며, AI가 대체하기 쉬운 업무와 사람이 부족한 업무가 서로 겹치지 않는 구조다.
생산연령인구 감소는 외국인력의 역할도 키운다. 내국인 생산연령인구는 2022년 3527만명에서 2042년 2573만명으로 약 954만명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기간 외국인 생산연령인구는 147만명에서 236만명으로 늘어난다. 외국인력이 증가해도 내국인 감소분 전체를 채우기는 어렵다.
여성과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 외국인력 유입, 생산성 향상을 함께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는 이민 확대와 성별 고용격차 축소, 고령층 고용률 상승을 결합하면 생산연령인구 감소 충격의 상당 부분을 흡수할 수 있지만 한국은 감소 속도가 빨라 추가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AI와 자동화가 그 추가 수단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AI만 투입하면 사람이 부족한 곳의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 기업 가운데 AI를 실제 업무에 활용하는 비율은 아직 제한적이다. OECD 조사에서 국내 중소기업의 AI 이용률은 31%로 일본의 27%보다는 높았지만 독일 51%, 아일랜드 45%, 오스트리아 42%보다 낮았다. 한국 전체 고용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0%가 넘는다. 노동력 부족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는 기업 다수가 AI 활용 역량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구조다.
AI를 도입하지 않은 국내 중소기업이 가장 많이 꼽은 장벽도 사람에게 있었다. 53%가 직원의 AI 활용 역량 부족을 주요 이유로 들었다. 노동자가 부족해 AI가 필요한 기업에서 AI를 도입하고 운영할 사람도 부족한 역설이 생기는 셈이다.
지역 격차까지 더해지면 AX의 효과는 더 불균등해질 수 있다. 수도권 대기업과 기술기업에서는 AI 투자와 전문인력 확보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지만 인력이 부족한 지역 중소기업은 데이터와 자금, 전문인력부터 부족할 수 있다. 생산연령인구 감소폭이 큰 지역에서 AI 도입 능력까지 낮다면 노동력 부족과 생산성 격차가 동시에 커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전국 단위 AI 직업훈련과 중소기업 지원을 확대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2026년에는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중소기업 AI 훈련지원센터와 공동훈련센터 30곳을 선정하고, AI 훈련코치가 약 2만5000개 중소기업을 찾아가 수요를 진단하고 맞춤형 훈련을 제공하는 사업이 시작됐다. 노동시장 진입자와 재직자, 이·전직자를 대상으로 2030년까지 100만명 이상에게 AI 직업능력개발을 지원하는 계획도 진행되고 있다.
7월 발표된 첫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은 AX에 따른 고용 변화를 별도 정책 대상으로 올렸다. 정부는 2027년 한국형 AI 노출지수(K-AIOE)를 개발하고, AI 노출도가 높은 직무의 산업·연령별 고용 변화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한국형 카나리아 대시보드’를 운영할 계획이다. 청년의 숙련 형성, 중장년 이·전직, 산업·지역별 고용충격을 기술정책과 함께 추적하는 체계다.
같은 계획에는 AI와 자동화로 높아진 생산성이 노동시간 감소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련 모델을 개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AX로 생산성이 올라갔을 때 기업이 인원을 줄일지, 생산량을 늘릴지, 노동시간을 줄일지, 임금을 높일지는 기술이 자동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기업의 사업전략과 노동시장 제도, 노사 간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사람이 줄어드는 한국에서 자동화의 목표를 단순한 인건비 절감에만 두면 또 다른 불균형이 생길 수 있다. 청년이 원하는 사무·전문직의 초급 일자리는 줄어드는 반면 사람이 부족한 제조·지역 산업으로 노동이 이동하지 않으면 전체 고용률과 기업의 구인난이 동시에 악화될 수 있다. 직업훈련만 제공해도 지역과 임금, 근로조건의 차이가 그대로라면 노동 이동은 제한될 수 있다.
기업도 사람을 줄이는 것과 사람이 없어도 운영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전자는 현재 인건비를 낮추는 선택이고 후자는 장기적인 노동공급 감소에 대응하는 경영전략이다. 같은 자동화라도 목적과 결과가 다르다.
2030년대에는 생산연령인구가 매년 약 50만명씩 감소할 전망이다. 기업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충원하려 해도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업종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그 시기에는 AI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이 사람을 지키는 기업이 아니라 사람을 구하지 못해 생산을 줄이는 기업이 될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AI에 노출된 사무직과 전문직에서는 같은 기술이 신규 인력의 필요성을 낮출 수 있다. 한 명의 숙련자가 AI와 함께 여러 사람의 업무를 처리하면 기업은 신규채용을 미루거나 조직의 하단을 얇게 만들 수 있다.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청년층의 취업난이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 노동시장의 AX는 그래서 ‘AI가 사람을 없앤다’와 ‘AI가 사람 부족을 해결한다’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논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두 변화가 산업과 직업, 연령, 지역에 따라 동시에 진행된다.
청년 사무직에서는 AI가 일자리 진입구를 좁힐 수 있고, 지방 제조업에서는 AI가 부족한 노동력을 대신해야 할 수 있다. 숙련 전문직에서는 한 사람의 생산성을 크게 높이는 도구가 되고, 다른 직무에서는 기존 업무를 직접 대체할 수도 있다. 외국인력은 줄어드는 노동공급을 보완하고, 여성과 고령층의 경제활동 확대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
AX 이후 한국 경제에서 더 중요해질 숫자도 전체 취업자 수 하나가 아니다. 연령별 신규채용, 직무별 임금, 지역별 빈 일자리, 산업별 인력부족률, AI 도입률, 노동생산성, 직업훈련 이후 이동 경로를 함께 봐야 한다. 한쪽에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사람이 부족한 경제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연령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한국에서 AI는 단순한 노동 대체 기술로 머물 수 없다. 기업이 적은 사람으로도 생산을 유지하고 성장하기 위한 생산 기반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동시에 같은 기술이 특정 직무의 신규 채용과 경력 형성 경로를 좁힐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2030년대로 갈수록 한국이 맞닥뜨릴 노동 문제는 사람의 절대 숫자만 줄어드는 데 있지 않다. 필요한 곳에는 사람이 없고,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필요한 일이 줄어드는 불일치가 더 커질 수 있다. AX가 인구 감소의 충격을 줄이는 수단이 되려면 자동화 속도와 함께 사람이 이동하고 새로운 숙련을 얻는 속도까지 맞아야 한다.
AI와 사람이 경쟁하는 경제보다, 줄어드는 사람을 어디에 배치하고 AI를 어디에 투입할지를 다시 정하는 경제가 한국에 먼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