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 대전환, 노동의 재편⑥] AI 생산성의 몫…임금·이익·자본소득 갈라지는 분배 구조
국내 취업자 51.8% 업무에 생성형 AI 활용…주당 약 1.5시간 절감 절약된 시간과 실제 산출 증가 상관관계는 사실상 ‘0’ AI 도입 기업 매출·1인당 생산성 개선에도 노동시장 효과는 직무별 차이 고숙련 노동·AI 자본에 수익 집중되면 성장과 소득 사이 간극 확대 가능성
[KtN 조종식기자]인공지능(AI)을 업무에 사용하는 국내 근로자는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 2025년 기준 취업자의 51.8%가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했고, AI를 사용하는 근로자는 같은 일을 처리하는 시간을 평균 3.8% 줄였다.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약 1시간30분을 절약한 셈이다. 그런데 줄어든 시간과 실제 산출량 증가 사이의 상관관계는 사실상 나타나지 않았다. AI가 사람의 일을 빠르게 만들기 시작했지만 절약된 시간이 곧바로 기업의 생산량이나 노동자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AX가 경제 전체에 던지는 분배 문제도 이 간극에서 시작한다. 직원이 같은 일을 1시간30분 빨리 끝냈을 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기술이 결정하지 않는다. 기업이 더 많은 업무를 맡길 수도 있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성과급을 높일 수도 있다. 같은 생산량을 적은 인원으로 만들 수 있다면 신규 채용을 줄이는 선택도 가능하다. AI가 만들어낸 생산성 증가분이 임금과 고용, 기업이익 가운데 어디로 이동할지는 기업의 운영 방식과 노동시장 제도에 따라 달라진다.
국내 기업 자료에서도 AI 도입 효과는 단순한 인원 감축과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2017~2023년 기업 패널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AI와 관련 디지털 기술을 도입한 기업의 근로자 1인당 매출이 약 5~20% 높아지는 효과가 관찰됐다. 증가분은 주로 고용 감소보다 매출 확대를 통해 나타났다. AI를 활용해 같은 사람으로 더 많은 매출을 만들거나 사업 규모를 키우는 기업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 생산성의 상승이 경제 전체의 생산성으로 전달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국내 산업과 직무의 실제 자동화 비용까지 고려한 분석에서는 기술적으로 AI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고용 비중이 약 8~12%였지만, 현재 비용으로 실제 자동화가 경제성을 갖는 업무까지 좁히면 고용의 1~3% 수준으로 낮아졌다. AI가 노동시장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기보다 경제성이 높은 특정 업무부터 선택적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국 경제 전체에 미칠 생산성 효과도 폭발적인 단기 상승보다 장기간의 누적 변화에 가깝다. 국내 직무와 기업 자료를 결합한 거시경제 모형에서는 기본 시나리오에서 AI 확산이 향후 10년 동안 총요소생산성(TFP)을 누적으로 약 2.3% 끌어올리는 것으로 추산됐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조직 개편, 인재 투자까지 포함하면 실제 효과는 달라질 수 있지만 AI의 경제적 가치는 기술을 배포한 다음날 한꺼번에 나타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생산성이 높아진 뒤에는 분배가 남는다. 기업의 생산량이 늘고 영업이익이 커진다고 해서 노동자의 임금이 같은 비율로 오르는 것은 아니다. 추가로 만들어진 가치는 임금과 성과급으로 갈 수도 있고 주주 이익과 설비 투자, AI 인프라 투자에 다시 들어갈 수도 있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는 일부가 제품 가격 인하로 소비자에게 이동할 수 있다. AI가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과 가계소득을 같은 속도로 높이는 것은 서로 다른 과정이다.
세계 AI 이용 데이터를 노동비용으로 환산한 최근 분석에서는 AI가 현재 절약하고 있는 시간을 연간 약 2조7000억달러로 추산했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3.4%에 해당하는 규모다. 실제로 2조7000억달러의 소득이나 생산이 새로 생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AI가 절약한 노동시간을 해당 직종의 임금으로 환산한 잠재적 가치다. 데이터센터와 전력, 모델 사용료 같은 비용도 제외돼 있다. 그럼에도 AI가 이미 상당한 노동시간을 다른 용도로 돌릴 수 있는 수준까지 확산됐다는 사실은 확인된다.
문제는 가치가 고르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분석에서 AI 활용으로 생기는 노동비용 절감 효과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저임금 직종보다 고임금 직종에 더 많이 집중됐다. 고소득 국가에서는 적용 직무가 점차 넓어지고 있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전문직 일부에 가치가 집중되는 경향이 훨씬 강했다. AI에 접근할 수 있는 노동자와 실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노동자 사이의 격차가 생산성 격차를 거쳐 소득 격차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다.
숙련에 따른 차이도 커질 수 있다. AI가 단순 반복업무를 대신하면 해당 업무의 시장가격은 낮아질 수 있지만 AI와 전문지식을 결합해 더 복잡한 판단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생산성은 크게 높아질 수 있다. 같은 변호사, 개발자, 회계사 안에서도 AI가 할 수 있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과 AI가 만든 결과를 검증하고 최종 판단을 내리는 사람의 경제적 가치가 다르게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앞선 노동시장에서 나타난 변화도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신입이 맡았던 자료조사와 초안 작성, 기본 코딩은 자동화 압력을 받고 있고, 숙련자는 AI를 이용해 더 넓은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사람 한 명이 여러 에이전트를 운용하는 조직에서는 소수의 고숙련 인력에게 더 큰 권한과 생산성이 집중될 수 있다. 기업이 절감한 인건비의 일부를 이런 핵심 인력에게 높은 보상으로 돌린다면 평균 생산성과 평균 임금이 함께 오르더라도 노동자 내부의 임금 격차는 커질 수 있다.
자본의 몫도 달라질 수 있다. AI는 소프트웨어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전력망에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 기업이 AI에 투자할수록 노동뿐 아니라 연산설비와 데이터, 모델에 투입되는 자본의 중요성이 커진다. 최근 아시아 경제를 대상으로 한 모형 분석에서는 AI 확산이 고숙련 노동자의 임금을 상대적으로 높이는 동시에 자본소득 비중을 키워 자산을 많이 보유한 계층에 더 큰 이익을 줄 수 있는 경로가 제시됐다.
세대별 영향도 다를 수 있다. 청년은 소득 대부분을 임금에 의존하고 자산 축적이 적은 반면 중·고령층은 금융자산과 연금, 부동산 등 자산소득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AI 투자 확대가 기업가치와 자본수익률을 끌어올리는 동안 초급 사무·전문직의 채용이 압박을 받으면 같은 기술 변화에서 세대별로 받는 영향도 달라질 수 있다. AI가 고령화로 부족해지는 노동력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청년의 경력 형성을 어렵게 만드는 상황도 함께 나타날 수 있다.
한국 경제에서는 생산성 상승 자체가 절실하다. 생산연령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를 높이지 못하면 잠재성장률 하락을 피하기 어렵다. AI와 자동화가 사람 한 명의 생산성을 높이고 기업이 적은 인력으로 생산과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다면 인구 감소의 충격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
생산성 향상만으로 문제가 모두 풀리지는 않는다. 노동자가 AI로 주당 1시간30분을 절약했는데 실제 산출이 늘지 않았다는 국내 조사 결과는 조직과 보상체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업무를 빨리 끝내도 같은 결재와 회의가 남아 있고 추가 성과에 대한 보상이 없다면 근로자는 절약한 시간을 더 많은 생산에 투입할 이유가 크지 않다. 자영업자와 전문직처럼 추가 성과와 보상의 연결이 강하고 업무 자율성이 높은 집단에서 생산성 증가가 상대적으로 뚜렷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AX는 노동시간에 대한 기업의 선택도 바꿀 수 있다. 같은 생산량을 더 짧은 시간에 만들 수 있다면 기존 근로시간을 유지해 생산량을 늘릴 수도 있고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생산량을 유지할 수도 있다. 신규 채용을 줄이는 대신 기존 노동자에게 생산성 증가분을 임금으로 나눌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이 이뤄지느냐에 따라 노동자가 체감하는 AX는 전혀 달라진다.
정부가 7월 발표한 첫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에도 이런 변화가 반영됐다. AI 노출도가 높은 직무의 고용 변화를 추적하는 한국형 AI 노출지수와 ‘카나리아 대시보드’를 구축하고, 산업전환 과정에서 필요한 직업훈련과 소득 보전 방안을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AI 기술의 도입 속도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직무와 연령, 산업 단위로 살피겠다는 방향이다.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이해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에는 한 사람이 두 사람 몫을 하는 것이 생산성 향상이지만 노동자에게 같은 임금으로 업무량이 두 배가 되는 상황은 생산성의 성과를 체감하기 어렵다. 반대로 생산성 향상이 임금과 근로시간, 직무 자율성 개선으로 이어지면 노동자는 AI를 자신의 능력을 높이는 도구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진다.
AI 경제에서 성장과 분배를 따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업이 AI로 비용을 줄이는 동안 노동자의 구매력이 약해지면 경제 전체의 소비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생산성 증가분이 임금과 새로운 고용, 투자로 확산되면 AI가 인구 감소에도 경제 규모를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2026년 현재 한국의 AI는 아직 ‘효율성’과 ‘생산성’ 사이에 있다. 절반이 넘는 취업자가 업무에 생성형 AI를 쓰고 있고 개인의 업무시간은 줄었지만, 절약된 시간이 경제 전체의 생산성으로 충분히 전환됐다고 볼 만한 변화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기업 자료에서는 AI와 디지털 전환을 함께 추진한 기업의 1인당 매출이 증가하고 있어 조직 차원의 변화가 뒤따를 경우 생산성 효과가 커질 가능성도 나타나고 있다.
AX 대전환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숫자는 AI 이용자 수나 GPU 수량만이 아니다. 생산성이 얼마나 올랐는지, 기업의 이익이 얼마나 늘었는지, 노동자의 실질임금과 근로시간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청년의 신규채용과 중장년의 직무전환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AI가 더 많은 부를 만들어낼 가능성과 그 부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는 같은 문제가 아니다. 노동력이 줄어드는 한국에서 생산성 증가는 피하기 어려운 선택에 가까워지고 있다. 높아진 생산성이 기업의 성장과 노동자의 소득, 새로운 일자리와 투자로 얼마나 넓게 이어지는지가 AX 이후 한국 경제의 성장 경로를 가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