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AX 대전환과 노동의 미래…인류가 다시 세워야 할 기준

AI가 대신할 수 있는 업무는 빠르게 늘고 있다 생산성·고용·임금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아 기술이 만든 시간과 부를 어디에 돌릴지가 AX 이후의 기준

2026-10-10     조종식 기자

[KtN 조종식기자]인공지능(AI)이 사람보다 빠르게 글을 쓰고 코드를 만들며 자료를 분석하는 일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기업에서는 한 직원이 여러 AI 에이전트를 움직이고, 과거 여러 사람이 나눠 처리했던 업무를 한 사람이 끝내는 조직도 등장하고 있다. 같은 AI를 쓰면서도 기업 사이의 활용량은 8배 넘게 벌어졌고,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생산성 향상도 대다수의 3%와 상위 집단의 55%로 갈렸다. 기술은 비슷한데 결과는 같지 않다. AX(AI Transformation)가 본격화하면서 먼저 드러난 변화다.

AI가 널리 보급되면 기업의 생산성이 일정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기업 현장에서는 데이터와 업무 구조, 의사결정 방식, 직원의 활용 역량에 따라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AI 자체보다 AI를 기업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지가 경쟁력이 됐다. 노동 역시 같은 과정을 거친다. AI가 직업 하나를 통째로 가져가기보다 직업 안에서 수행하던 일을 먼저 나누고 있다.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초안을 만들며 단순 계산과 코딩을 처리하는 업무는 빠르게 AI로 이동한다. 사람에게 남는 일은 결과를 검증하고 예외를 처리하며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책임을 지는 쪽으로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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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는 코드를 직접 입력하는 시간보다 설계와 검증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회계사는 숫자를 정리하는 업무보다 이상 징후와 사업상 의미를 판단하는 비중이 커진다. 변호사는 계약서 초안을 만드는 일보다 위험을 판단하고 협상하는 역할에 집중할 수 있다. 기자 역시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비용이 낮아질수록 취재와 사실 검증, 맥락을 판단하는 능력의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직업의 이름은 남아 있어도 직업을 구성하는 일의 순서와 비중은 달라지고 있다. 노동의 가격 역시 직업명보다 어떤 판단과 책임을 맡고 있는지에 따라 다시 매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가장 민감한 곳은 노동시장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이다. 자료조사와 초안 작성, 기본 분석과 단순 코딩은 신입사원이 맡아온 대표적인 업무다. 기업에는 생산을 위한 일이었지만 신입에게는 일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선배가 수정한 문서를 보고, 잘못 만든 코드를 다시 짜고, 자료를 놓친 뒤 지적을 받으면서 판단 기준을 익혔다. AI가 기초 업무를 더 싸고 빠르게 처리하면 기업은 당장 신입을 많이 채용할 이유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숙련자도 과거에는 신입이었다. 기업이 모두 이미 숙련된 사람만 찾고 초급 인력의 교육비용을 줄이기 시작하면 몇 년 뒤 필요한 전문가와 관리자, 중간숙련 인력의 공급도 줄어들 수 있다.

노동은 생산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 한 세대가 지식과 경험을 다음 세대로 넘기는 통로이기도 하다. 신입의 초급 업무가 단순해 보여도 그 안에는 판단을 배우는 시간이 들어 있다. AI가 반복업무를 대신하는 과정에서 이런 시간을 모두 비용으로만 본다면 기업은 단기 효율을 얻는 대신 숙련의 재생산 구조를 약화시킬 수 있다. AX가 노동에 던지는 문제는 일자리 숫자보다 깊다. 사람이 어떻게 전문성을 얻고, 책임을 배우고, 다음 세대의 숙련자로 성장할 것인지까지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여기에 인구 감소라는 조건이 겹친다. 생산연령인구는 빠르게 줄고 있다. 지역 제조업과 중소기업에서는 이미 사람을 구하지 못해 외국인력에 의존하는 곳이 늘고 있다. 반면 대졸 청년이 주로 진입하는 사무·전문직에서는 AI가 초급 업무를 흡수하면서 신규 채용의 문을 좁힐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람이 부족한데 첫 일자리를 찾기는 어려운 경제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AI를 노동 대체 기술 하나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방 제조업에서는 사람이 없어 멈출 수 있는 생산을 유지하는 기술이 될 수 있고, 사무직에서는 같은 업무를 더 적은 사람으로 처리하는 기술이 될 수 있다. 고령화가 빠른 산업에서는 숙련자의 생산성을 보완하고, 청년층이 몰리는 분야에서는 첫 일자리의 수요를 낮출 수 있다. 자동화가 절실한 곳과 인간의 경험을 쌓을 자리를 지켜야 하는 곳이 같은 경제 안에 공존한다.

기업의 인력표도 바뀌고 있다. 한 직원이 여러 AI 에이전트를 운용하게 되면 조직의 생산능력을 사람 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과거에는 매출이 늘면 영업과 개발, 관리 인원을 함께 늘렸다. 앞으로는 어느 업무를 AI에 맡기고 어느 판단을 사람에게 남길지 정한 뒤 필요한 인원을 계산하는 방식이 늘어날 수 있다. 관리자의 역할도 정보 취합과 보고에서 사람과 AI의 업무를 나누고 결과를 검증하며 책임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노동자의 삶이 자동으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한 직원이 AI를 사용해 하루 여덟 시간 걸리던 일을 여섯 시간 만에 끝냈다면 두 시간이 생긴다. 기업은 그 시간에 더 많은 업무를 요구할 수 있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할 수도 있다.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보상을 높일 수도 있다. 같은 생산량을 유지하면서 신규 채용을 줄일 수도 있다. 기술은 두 시간을 만들어낼 뿐 그 두 시간이 누구의 것이 될지는 결정하지 않는다.

AX 이후 노동과 경제를 판단할 기준은 이 지점에서 찾아야 한다. 생산성 증가분이 어디로 가는지 봐야 한다. 기업의 이익으로만 쌓이는지, 더 높은 임금으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지,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 쓰이는지, 새로운 일자리와 사업을 만드는 데 다시 투자되는지에 따라 기술의 사회적 결과는 달라진다. AI가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인다는 전망과 노동자의 삶이 나아진다는 전망은 같은 말이 아니다.

AI에는 막대한 자본도 필요하다. GPU와 고대역폭메모리, 데이터센터, 클라우드와 전력망에 투자가 집중된다. AI 경제가 커질수록 노동뿐 아니라 자본의 몫도 커질 수 있다.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일부 고숙련 인력은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지만 반복적인 지식노동을 담당해온 중간층의 시장가치는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경제 전체가 성장하면서 노동자 사이의 격차가 더 커지는 경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서 AX를 평가하는 기준을 GDP와 기업 매출, AI 투자액만으로 잡기는 어렵다. 노동생산성과 함께 실질임금이 움직였는지, 근로시간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신규 채용은 어느 연령과 직무에서 늘거나 줄었는지, AI가 만든 생산성이 기업 안에서 어떻게 분배됐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를수록 생산성의 총량보다 그 성과가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가 중요해진다.

사람의 판단이 남아 있어야 하는 영역도 있다. AI가 더 많은 결정을 대신할수록 효율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채용과 해고, 신용과 보험, 의료와 법률, 교육처럼 한 사람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영역에서는 빠른 판단보다 책임의 소재가 중요하다. AI가 판단했다는 이유로 책임질 사람이 사라지는 구조는 기술 발전만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결정을 자동화할 수 있다는 것과 결정을 맡겨도 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기업에서도 AI 에이전트가 고객에게 답하고 계약서를 검토하며 코드를 만들더라도 결과에 대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인간의 판단을 보완할 수 있지만 책임의 주체까지 대신하기는 어렵다. AI의 성능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누가 마지막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감당할 것인지가 더 분명해져야 한다.

여기에는 노동을 바라보는 오래된 질문도 다시 등장한다. 사람은 일을 통해 단지 소득만 얻는 것이 아니다. 사회 안에서 역할을 얻고, 능력을 쌓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감각도 얻는다. 노동을 전적으로 효율과 비용의 문제로만 다루면 AI가 인간보다 싸고 빠른 순간 사람의 자리가 사라지는 결론에 쉽게 도달한다. 그러나 인간의 노동에는 생산량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경험과 책임, 관계의 의미도 들어 있다.

그렇다고 사람이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효율적인 반복업무를 계속 맡겨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무거운 물건을 기계가 들고 복잡한 계산을 컴퓨터가 대신하면서 사람은 다른 일을 맡아왔다. AI 역시 의미 없는 반복을 줄일 수 있다면 인간에게 더 많은 시간을 돌려줄 수 있다. 문제는 확보한 시간을 다시 더 많은 생산에만 투입할지, 학습과 돌봄, 휴식, 창조와 새로운 산업에 사용할지에 있다.

기계가 근육을 대신했을 때 인간은 두뇌를 자신의 경쟁력으로 삼았다. AI가 글을 쓰고 분석하며 추론하기 시작한 지금은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여겨온 경계까지 흔들리고 있다. 인간의 가치를 AI보다 글을 잘 쓰는지, 계산을 빨리 하는지, 코드를 많이 만드는지로만 판단한다면 더 좋은 모델이 나올 때마다 인간의 노동가치는 다시 내려갈 수밖에 없다.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능력, 결과에 책임지는 능력, 다른 사람의 이해와 권리를 고려하는 판단, 경험과 지식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역할은 생산 속도로만 측정하기 어렵다. AI가 더 뛰어난 답을 내놓는 시대에도 어떤 답을 선택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일지는 인간에게 남는다.

한국에는 이런 기준이 더욱 절실하다. 노동력이 빠르게 줄어드는 경제에서 생산성을 높이지 않는 선택은 현실적이지 않다. AI와 자동화 없이 지금의 생산과 서비스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워질 산업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사람을 줄이는 것과 사람이 적어도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다. 전자는 비용 절감이고 후자는 경제와 노동의 재설계다.

한 사람이 AI와 함께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면 그 능력을 노동자를 더 압축해서 사용하는 데만 쓸 것인지, 노동시간을 줄이고 새로운 산업과 연구, 돌봄과 교육에 사람을 다시 배치하는 데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AX 이후 사회의 모습은 크게 달라진다. 기술이 만들어낸 여유를 다시 기술 경쟁에만 투입하면 사람의 삶은 더 바빠질 수 있다. 생산성의 일부를 시간으로 돌려놓는 선택을 한다면 AI는 노동의 의미 자체를 바꾸는 기술이 될 수도 있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은 늘 인간의 노동을 바꿨다. 생산성은 크게 높아졌지만 그 성과가 노동자의 삶으로 전달되는 과정은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동시간 단축과 사회보장, 교육, 노동법과 제도가 뒤따르면서 기술의 이익이 사회 전체로 조금씩 확산됐다. AI 역시 기술의 속도만으로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 기업이 어떤 조직을 만들고, 노동자가 어떤 권리를 가지며, 정부가 어떤 이동과 교육의 통로를 만들고, 사회가 생산성의 성과를 어떻게 나눌지가 함께 미래를 만든다.

AX 대전환을 평가할 기준도 결국 그 결과에서 찾아야 한다. 사람이 덜 일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지, 청년이 첫 경험을 얻고 숙련자로 성장할 길이 남아 있는지, 기술이 만든 부가 소수의 기업과 자본에만 쌓이지 않는지, AI가 판단하는 영역이 늘어도 인간의 책임과 선택이 유지되는지, 노동력이 줄어드는 사회에서 기술이 사람을 밀어내는 대신 부족한 사람의 능력을 넓혀주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AI가 인간보다 얼마나 똑똑해지는지는 기술의 문제다. 그 지능을 이용해 어떤 사회를 만들지는 인간의 선택에 남아 있다. AX 이후 인류의 미래를 가르는 기준도 결국 AI의 성능이 아니라 기술이 만들어낸 생산성과 시간을 누구에게, 어떤 삶으로 돌려놓느냐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