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트렌드] 홍콩 가을 경매 2억5500만달러…아시아 미술시장, 거래는 늘고 매수 기준은 더 까다로워져
크리스티·소더비 각각 1억2000만달러대, 필립스까지 3사 거래액 2억5500만달러 넘어 바스키아·나라 요시토모·리히터 주요 거래…일본·동남아시아 작가에도 자금 유입 거래 규모 회복에도 초고가 시장 부담 남아…작품 질·소장 이력·가격 따라 응찰 격차
[KtN 임민정기자]홍콩의 2026년 가을 경매에서 약 2억5500만달러 규모의 미술품 거래가 이뤄졌다. 9월 말 크리스티(Christie's), 소더비(Sotheby's), 필립스(Phillips)가 진행한 주요 근현대·컨템퍼러리 미술 경매를 합친 금액이다.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각각 1억2000만달러 안팎의 거래를 기록했고 필립스는 약 1200만달러를 보탰다.
지난해까지 이어진 아시아 고가 미술시장의 위축과 비교하면 거래 규모는 분명 확대됐다. 다만 이번 성적을 가격 상승장이 다시 시작됐다는 신호로 읽기는 어렵다. 낙찰이 집중된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의 차이가 컸고, 고가 구간으로 갈수록 구매자층도 빠르게 얇아졌다. 시장에 돈은 돌아왔지만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이전보다 더 까다로워졌다.
크리스티의 홍콩 20·21세기 미술 가을 경매는 9억5653만홍콩달러, 약 1억2192만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가을보다 17% 늘었다. 20·21세기 미술 야간 경매에서는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의 1984년작 'Ancient Scientist'가 7697만5000홍콩달러에 거래되며 이번 홍콩 가을 시즌 최고가를 기록했다.
바스키아의 낙찰가가 1000만달러에 미치지 않았다는 점은 현재 시장의 가격대를 보여준다. 고가 작품에는 매수세가 붙었지만 1000만달러를 넘어서는 초고가 작품까지 구매 기반이 충분히 회복됐다고 보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크리스티 야간 경매의 높은 낙찰률도 작품 선정과 가격 조정을 함께 봐야 한다. 경매사는 최근 시장 조정기를 거치면서 위탁작의 추정가를 낮추거나 판매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중심으로 경매를 구성하는 방식을 강화했다. 높은 낙찰률 자체보다 어느 가격대에서 실제 거래가 이뤄졌는지가 시장 상황을 판단하는 데 더 중요해졌다.
소더비에서는 나라 요시토모(Yoshitomo Nara)의 1994년작 'Present'가 7166만홍콩달러에 거래됐다. 또 다른 나라 작품 'The Crated Room in Iceland/Drawing Room'은 6190만홍콩달러에 낙찰됐다. 일본 현대미술에 대한 기존 아시아 컬렉터층의 수요가 이어진 결과다.
나라 작품의 성적을 일본 현대미술 전반의 상승으로 확대해석하기는 어렵다. 같은 작가라도 제작 시기와 크기, 이미지, 시장 출현 빈도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고,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를 비롯한 주요 작가 작품에서도 경매사와 작품에 따라 응찰 강도가 달랐다. 유명 작가의 이름만으로 모든 작품이 같은 평가를 받는 시장은 아니었다.
소더비의 현대·컨템퍼러리 관련 경매와 단일 소장자 경매를 합친 거래 규모는 약 9억5600만홍콩달러였다. 레오나르 쓰구하루 후지타(Léonard Tsuguharu Foujita)의 작품을 모은 단일작가 경매에서는 6722만4000홍콩달러가 거래됐다.
후지타 경매에서 눈에 띈 것은 작가의 시장가격 자체보다 소장 이력이었다. 오랜 기간 한 컬렉션에 머문 작품이 한꺼번에 나오면서 일반적인 개별 위탁 경매와 다른 수요가 형성됐다. 최근 경매시장에서 작품의 출처와 소장 경로가 가격 형성에 다시 강하게 반영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동남아시아 미술에서는 베트남 작가 부 까오 담의 1939년작 'Conversation d'élégantes au jardin'이 2896만홍콩달러에 거래되며 작가와 베트남 미술시장에 새로운 가격 기준을 만들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작품에서도 아시아 경매 기준 높은 가격이 나왔다.
홍콩 시장의 매수 범위가 중국 현대미술에만 머물지 않는 흐름은 이번 시즌에서도 이어졌다. 일본과 동남아시아 미술, 유럽 근현대미술이 같은 경매장에서 거래되면서 아시아 컬렉터의 선택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필립스의 현대·컨템퍼러리 미술 경매는 모두 9447만홍콩달러, 약 1205만달러를 기록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1983년작 'Abstraktes Bild (522-1)'가 2300만홍콩달러를 넘기며 최고가를 기록했다. 자오우키(Zao Wou-Ki), 장페이리(Zhang Peili),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작품도 거래됐다.
세 경매사의 실적 차이는 현재 홍콩 경매시장의 공급 구조를 보여준다.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고가 작품과 주요 개인 컬렉션을 확보하면서 거래 규모를 키웠고, 필립스는 상대적으로 작은 물량으로 시장에 대응했다. 경매사의 실적은 전체 시장의 수요뿐 아니라 얼마나 경쟁력 있는 위탁작을 확보했는지에 따라 크게 갈렸다.
올해 가을 시장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도 경매사별 총액보다 작품 간 가격 차이다.
오랜 기간 시장에 나오지 않았거나 소장 경로가 분명한 작품에는 응찰이 붙었다. 반대로 유명 작가 작품이라도 추정가격이 높거나 비슷한 작품이 시장에 자주 나온 경우에는 가격 저항이 나타났다. 매수자가 돌아온 시장과 가격을 따지지 않는 시장은 서로 다르다.
초고가 시장의 부담도 남았다. 수백만달러 수준에서는 구매자를 찾을 수 있지만 작품 가격이 1000만달러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실제 응찰자는 급격히 줄어드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홍콩 가을 경매의 최고가 작품도 1000만달러를 밑돌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미술시장을 압박했던 금리와 경기 불확실성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중국 부동산 경기와 소비 둔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중화권의 고액 자산가가 과거와 같은 속도로 미술품을 매입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홍콩 경매 거래액이 늘어난 것과 중국의 자산시장 전반이 회복된 것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대신 자금의 이동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작가의 시장 인지도만 보고 매수하기보다 작품의 제작 시기와 희소성, 소장 이력, 전시 기록, 추정가격을 함께 따지는 방식이 강해졌다. 작품의 조건이 좋으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지역의 작가에게도 자금이 움직이고, 유명 작가 작품도 조건이 약하면 응찰이 제한된다.
경매사도 같은 변화에 맞춰 물량을 늘리는 방식보다 작품을 선별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경매 직전 작품을 빼거나 추정가를 조정하고, 단일 소장자 컬렉션과 장기간 시장에 나오지 않았던 작품을 확보하는 전략이 중요해졌다. 시장 회복의 상당 부분이 수요 증가뿐 아니라 공급 관리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크리스티 경매에는 36개국 구매자가 참여했고 신규 구매자 가운데 젊은 세대의 비중도 적지 않았다. 홍콩이 중국 본토 자본에만 의존하는 시장에서 벗어나고 있는 흐름도 이어졌다. 대중화권과 일본,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컬렉터가 동시에 거래에 참여하면서 홍콩의 고객 기반은 이전보다 다층적으로 변하고 있다.
아시아 미술시장 안에서 홍콩의 지위 역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과 싱가포르, 도쿄 등 주요 도시가 국제 갤러리와 아트페어를 끌어들이면서 아시아 컬렉터가 작품을 접하고 구매하는 경로도 늘어났다. 홍콩은 세금과 물류, 글로벌 경매사 인프라에서 여전히 강점을 갖지만 아시아 시장을 독점적으로 연결하는 유일한 창구는 아니다.
경매시장 밖에서도 국제 미술 유통망의 재편은 계속되고 있다. 뉴욕 아트페어 Independent는 글로벌 전시기업 Informa의 소유로 들어갔고, 뉴욕의 살롱 94(Salon 94)는 파리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했다. 경매사뿐 아니라 갤러리와 아트페어도 주요 미술도시 사이의 거점을 넓히면서 컬렉터를 확보하려는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홍콩의 2억5500만달러는 아시아 미술시장이 지난해의 위축에서 일부 벗어나고 있다는 수치다. 그러나 거래액 증가를 시장 전체의 가격 회복으로 연결하기에는 아직 작품별 편차가 크다.
바스키아와 나라 요시토모, 리히터처럼 국제 거래기록이 충분한 작가가 주요 경매를 받쳤고, 후지타처럼 소장 이력이 명확한 작품군에는 집중적인 수요가 나타났다. 부 까오 담처럼 동남아시아 작가에게도 새로운 가격이 형성됐다. 반면 가격 조건이 맞지 않는 작품에는 시장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낮아졌다.
2026년 가을 홍콩에서 나타난 변화는 뜨거운 상승장보다 거래 가능한 가격을 다시 찾아가는 시장에 가깝다. 판매자는 과거의 최고가격을 고집하기 어려워졌고 구매자는 작품을 더 세밀하게 고르고 있다. 경매사도 높은 추정가를 앞세우기보다 거래 성사 가능성을 계산해야 하는 환경에 놓였다.
아시아 미술시장에 자금은 다시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돈이 모든 작품을 함께 끌어올리고 있지는 않다. 2억5500만달러라는 거래액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작품마다 가격이 다시 구분되고 있다는 데 있다. 홍콩의 가을 경매는 시장이 살아나는 과정과 동시에 매수자가 훨씬 냉정해진 시장의 모습을 함께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