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조운호 ‘혼의 비상’, 비대칭 날개에 겹친 색과 내면
청색·보라·금빛으로 변주한 독수리…2024년 ‘환골탈태’에서 2025년 ‘내면적 상승’으로 이어진 수채화
[KtN 박준식기자]옅은 푸른 하늘 사이로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친다. 오른쪽 날개는 위로 치솟고 왼쪽 날개는 비스듬히 길게 뻗었다. 몸통도 정면을 향해 반듯하게 놓이지 않았다. 좌우가 맞물린 안정된 비행보다 날개를 움직이며 고도를 높이는 순간에 가깝다. 조운호의 수채화 ‘창공을 나는 독수리’는 독수리의 위용을 크게 부각하기보다 비행 중에 생기는 움직임과 색의 변화를 앞세웠다.
‘혼의 비상(Soaring Soul)-빛의 날개(Wings of Light)’에는 실제 독수리의 깃털에서 벗어난 색이 두드러진다. 청색과 보라, 적갈색, 황금빛이 날개를 따라 이어지면서 자연의 새와 상징적 이미지 사이에 거리를 만든다.
오른쪽 날개 안쪽에는 보라와 적갈색이 짙게 모여 있다. 날개 끝으로 갈수록 남청과 코발트 계열의 푸른색이 길어지고, 반대편 날개에서는 청록과 회청색, 옅은 노란빛이 상대적으로 가볍게 번진다. 좌우 날개의 색조와 농도가 달라 한쪽으로 치우친 자세가 더욱 두드러진다.
조운호 작가는 푸른색에 이성, 보라에 통찰, 금빛에 믿음과 영광의 의미를 담았다. 세 색은 각기 떨어져 있지 않다. 청색 사이로 보라가 번지고 황갈색과 노란빛이 그 경계를 가로지른다. 개별 색에 부여한 의미와 달리 실제 그림에서는 여러 색이 서로 포개지며 하나의 깃털과 날개를 만든다.
‘빛의 날개’라는 표현도 강한 광원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하늘에 남겨진 종이의 흰색과 투명한 청색, 보라 사이로 들어온 황금빛이 밝기의 차이를 만든다. 색을 짙게 채우기보다 물감이 스미고 비치는 수채화의 성질을 이용해 날개의 빛을 드러냈다.
하늘은 독수리에 비해 크게 비워졌다. 옅은 청색이 넓게 번지고 구름의 경계도 뚜렷하게 닫히지 않는다. 산이나 나무, 지평선처럼 높이와 거리를 가늠할 만한 대상도 배치하지 않았다. 배경을 단순하게 처리하면서 독수리의 자세와 색에 시선이 모인다.
머리와 몸통에서는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묘사가 이어진다. 흰 머리와 노란 부리, 눈 주변의 윤곽, 갈색 몸통은 실제 독수리의 특징을 남겼다. 날개에서는 붓질이 한층 자유로워진다. 몸 가까이에는 짧은 색의 흔적이 촘촘히 겹치고, 날개 끝의 긴 깃은 바깥쪽으로 빠르게 뻗는다.
“깃털은 사실보다 빛과 색의 내면 에너지로 표현되었다”는 조운호 작가의 말은 이 부분과 맞닿는다. 머리와 몸에서는 독수리의 형태를 유지하고, 날개에서는 실제 깃털색을 벗어난다. 구체적인 형상과 상징적 색채를 한 몸 안에서 나눠 사용한 셈이다.
아래로 내려온 두 발도 눈에 남는다. 날개가 위와 좌우로 크게 펼쳐진 것과 달리 발과 발톱에는 아래쪽으로 향하는 힘이 남아 있다. 모든 요소를 상승 방향으로 몰아가지 않고 몸의 무게를 함께 두었다.
조운호가 ‘현실의 무게를 넘어서는 인간의 내면적 상승’이라고 표현한 뜻도 이 구성에서 읽힌다. 현실을 지우고 가볍게 날아오르는 모습이 아니다. 아래로 향한 발과 위로 펼쳐진 날개가 한 몸에 놓이면서 무게와 상승이 함께 드러난다.
비대칭 구도 역시 독수리를 정적인 상징에서 벗어나게 한다. 두 날개를 같은 높이로 펼쳤다면 안정감과 위엄이 강해질 수 있지만, 한쪽 날개를 세우고 다른 날개를 길게 벌리면서 움직임이 커졌다. 기울어진 몸통도 비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더한다.
독수리는 조운호의 수채화에서 이미 한 차례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2024년 말 작업에서는 ‘환골탈태’와 ‘신생’이라는 의미가 독수리와 연결됐다. 생명의 변화와 새 출발에 무게를 두었던 표현은 2025년 ‘혼의 비상’에서 내면적 상승과 삶의 방향으로 이어진다.
재생을 상징했던 독수리는 1년 뒤 색채의 변화까지 품었다. 청색과 보라, 금빛에 각각 의미를 두고 비대칭의 자세를 택하면서 독수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한층 안쪽으로 향했다. 변화 자체보다 변화 이후 이어지는 삶의 태도가 작품에 더 많이 스며들었다.
설악산과 남해, 아이거봉, 브리엔츠호 등 조운호가 그려온 자연 수채화에서도 물과 빛, 공기는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산과 바다, 호수를 넓게 다룬 작업에서는 수채화의 번짐과 여백이 풍경의 거리와 깊이를 만들었다. ‘혼의 비상’에서는 넓은 자연에 사용했던 색과 물성이 독수리의 날개로 옮겨왔다.
브리엔츠호에서 넓게 퍼지던 청색은 이번 작업에서 깃털 사이에 모인다. 물과 하늘을 이루던 투명한 색층이 날개의 움직임을 만드는 데 쓰이면서 풍경의 넓이는 줄고 대상의 밀도는 높아졌다. 자연을 바라보던 시선이 한 생명체의 움직임에 집중되는 변화다.
조운호 작가가 경영과 출간 활동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자기다움과 목적 있는 삶도 작품 주변의 서사를 이해하는 한 갈래가 된다. ‘해내는 것’을 내놓던 시기에는 자기다움을 지키고 목적 있는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조했다. 본질을 찾고 방향을 세운 뒤 행동으로 옮기는 태도는 오랜 경영 경험을 풀어내는 과정에서도 거듭 등장했다.
회화에서는 같은 가치가 경영 용어로 등장하지 않는다. 방향을 잡는 독수리의 몸, 위로 열린 날개, 서로 다른 색이 겹쳐지는 과정으로 형태가 바뀌었다. 경영철학과 회화를 하나로 묶어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오랫동안 이어온 삶에 대한 인식이 작품의 상징 체계와 맞닿는 부분은 남는다.
세계 미술시장의 최근 변화도 작가의 작업이 축적되는 과정을 함께 살피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초고가 작품 거래의 등락이 커지는 사이 비교적 접근 가능한 가격대와 온라인 거래는 시장 저변을 넓혔다. 주요 컬렉션에서는 희소성과 작품 이력뿐 아니라 여러 작품이 함께 만들어내는 맥락과 서사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시장 흐름을 곧바로 조운호 작품의 가치와 연결할 근거는 없다. 다만 작가의 작품을 한 점씩 분리하기보다 반복되는 소재와 색, 표현 방식의 변화를 함께 살피는 데에는 참고할 만한 변화다. 조운호의 경우 산과 바다, 호수, 독수리로 대상이 달라지는 동안 자연을 삶의 감각과 연결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혼의 비상’에서 새롭게 두드러지는 것은 색에 부여한 상징이다. 청색과 보라, 금빛은 하나로 섞이지 않고 깃털을 따라 교차한다. 이성, 통찰, 믿음이라는 서로 다른 의미도 하나로 정리되지 않은 채 날개 안에서 함께 움직인다.
독수리는 힘과 자유, 권위와 초월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오랫동안 사용돼 왔다. 조운호는 익숙한 상징에 비대칭의 자세와 수채화의 투명성을 더했다. 강한 윤곽으로 독수리를 고정하기보다 물감의 번짐과 여백을 남겼고, 날개에도 하나의 색을 부여하지 않았다.
높이 오른 결과보다 비행 중의 움직임이 더 많이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몸에는 무게가 남아 있고 두 날개의 방향도 서로 다르다. 청색과 보라, 금빛 역시 정돈된 하나의 색으로 끝나지 않는다.
‘혼의 비상’은 독수리의 힘을 강조한 상징화보다 현실의 무게와 상승의 움직임을 함께 놓은 수채화에 가깝다. 조운호가 자연을 그려온 흐름 속에서도 독수리는 풍경과 다른 밀도를 갖는다. 넓은 자연에 흩어져 있던 빛과 색이 날개 안으로 모이면서 인간의 내면과 삶의 방향을 다루는 이미지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