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보여주는 시대①] 향이 빛으로 번역될 때…홈 프래그런스, 후각 밖으로 확장

콘크리트·유리·전구 결합한 르 라보 새 디퓨저 SANTAL 26 확산 강도 따라 조명 밝기도 변화 향기 제품과 조명·인테리어 경계 흐려져…후각 상품의 시각화 확대

2026-10-05     홍은희 기자

[KtN 홍은희기자]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공간에 퍼지고 사라지지만 어느 정도의 강도로 머물고 있는지는 코로 느낄 뿐 시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르 라보(Le Labo)가 10월 5일 선보인 Concrete Home Diffuser는 이런 후각의 특성을 빛과 연결했다. SANTAL 26의 확산 강도가 높아지면 전구가 밝아지고 강도가 낮아지면 빛도 함께 어두워지는 방식이다.

제품은 손으로 주조한 콘크리트 받침과 유리 구조물, 에디슨 전구로 구성됐다. 내부에서는 네뷸라이저(nebulizer)가 향 오일을 미세 입자로 만들어 공간에 확산한다. 향을 퍼뜨리는 기능은 네뷸라이저가 맡고 전구는 향의 강도를 시각적으로 표시한다.

르 라보 Concrete Home Diffuser. 콘크리트 받침 위에 향 확산 장치와 전구를 결합했으며 SANTAL 26의 확산 강도에 따라 조명의 밝기도 달라진다. 사진=Le Labo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향과 빛의 결합 자체가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캔들은 불꽃을 통해, 인센스는 연기를 통해 향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전기식 디퓨저에서는 이런 시각적 변화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향이 나고 있어도 사용자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냄새와 작은 작동 표시 정도에 머물렀다.

Concrete Home Diffuser에서는 이 관계를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향의 출력과 전구의 밝기를 묶으면서 후각 정보를 시각 정보로 바꿨다. 전구가 향 자체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간에 향이 어느 정도 퍼지고 있는지는 빛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제품에서 더 눈에 띄는 부분은 향기 기기와 생활 오브제의 경계다. 낮고 무거운 콘크리트 받침 위에 투명한 유리와 전구가 놓이면서 일반적인 향수용품보다 작은 조명기구에 가까운 형태가 만들어졌다. 향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도 제품은 거실이나 침실, 책상 위에 남아 인테리어의 일부가 된다.

홈 프래그런스 시장에서는 이 지점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몸에 뿌리는 향수는 사용 뒤 보관할 수 있지만 디퓨저와 캔들, 인센스 홀더는 공간에 계속 노출된다. 소비자가 향을 고르는 동시에 집 안에 어떤 물건을 놓을지도 결정하게 되면서 향료와 제품 디자인을 분리해서 보기 어려워졌다.

르 라보가 이번 제품에 목재 대신 콘크리트를 사용한 것도 같은 흐름 안에서 볼 수 있다. 콘크리트는 향수나 화장품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소재와 거리가 있다. 건축과 가구에서 익숙한 재료를 향기 제품으로 가져오면서 뷰티와 홈 인테리어의 경계를 좁혔다.

콘크리트 받침은 미국에서 주조하고 연마한 뒤 마감하며 제작 과정에서 나타나는 색의 차이와 작은 공기층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일정한 표면을 만드는 플라스틱이나 금속 제품과 달리 개별 제품에 작은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표면에 생기는 흔적도 그대로 남는다.

이런 물성은 향과 대비된다. 향은 공기 중에 퍼진 뒤 사라지지만 콘크리트는 무게와 흔적을 남긴다. 유리는 투명하고 전구의 밝기는 계속 달라지지만 받침은 같은 자리에서 제품 전체를 지탱한다. 형태가 없는 후각 제품에 건축적인 물성을 더한 구성이다.

르 라보 Concrete Home Diffuser의 전체 구성. 콘크리트 받침과 유리 구조물, 전구를 나란히 배치해 향기 기기와 생활 오브제의 성격을 함께 갖췄다. 사진=Le Labo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흰 배경에서 제품 전체를 보면 향수용품보다 산업디자인 제품에 가까운 인상이 강하다. 콘크리트 바닥과 유리 용기, 전구가 각각 분리된 형태로 놓여 있고 장식적인 요소는 많지 않다. 향을 발생시키는 장치를 감추기보다 외부에 그대로 드러낸 구조다.

향수 산업에서 제품 외형이 중요했던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향수병은 오랫동안 향 자체와 함께 브랜드 정체성을 만드는 수단이었다. 병의 곡선과 색, 캡, 라벨은 소비자가 향을 맡기 전 제품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했다.

달라진 부분은 시각적 요소가 패키지에서 사용 경험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Concrete Home Diffuser에서는 빛이 제품을 장식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향의 작동 상태와 직접 연결된다. 향을 광고하기 위해 사용하던 시각적 언어가 실제 제품 기능의 일부가 된 것이다.

디지털 유통 환경도 이런 변화를 키우고 있다. 립스틱은 화면으로 색을 보여줄 수 있고 스킨케어는 제형과 사용 모습을 영상으로 전달할 수 있다. 향수는 사진과 영상으로 냄새 자체를 전달할 수 없다.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향수를 처음 접할 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병과 색, 소재, 공간 연출과 설명뿐이다.

보이지 않는 향을 판매하려면 다른 감각의 언어를 빌릴 수밖에 없다. 우디 계열 향을 숲이나 나무와 연결하고, 깨끗한 향을 흰색과 투명한 이미지로 표현하는 방식이 오래전부터 사용돼 왔다. 최근에는 제품 자체를 조명이나 가구, 조형물처럼 만들면서 시각적 번역의 범위가 더 넓어지고 있다.

향기 제품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다. 향수를 몸에 뿌리는 행위는 개인의 인상을 만드는 데 가까웠다면 홈 프래그런스는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바꾼다. 같은 향이라도 침실과 거실, 매장에 놓였을 때 경험이 달라지고 주변 가구와 조명까지 제품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SANTAL 26 역시 향만 놓고 소비되는 구조에서 벗어난다. 디퓨저 본체와 향 오일, 유리 부품, 전구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이면서 향료 한 병보다 제품이 놓이는 공간 전체를 판매하는 방식에 가까워졌다.

세트에 왁스드 캔버스 토트백까지 포함된다는 점도 향기 제품이 생활용품의 영역으로 넓어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다만 이런 구성은 제품 경험을 확장하는 동시에 향 자체보다 포장과 오브제의 희소성을 앞세우는 방식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향료의 완성도와 공간에서의 실제 사용성보다 한정판이라는 조건이나 디자인이 구매를 자극하는 구조라면 홈 프래그런스 역시 패션 상품과 비슷한 소비 주기를 따를 수 있다.

콘크리트와 전구를 사용했다고 향수 산업의 본질이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네뷸라이저 역시 이미 사용돼온 방식이고 조명과 향을 함께 사용하는 제품도 존재한다. 이번 제품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기술적 새로움보다 향을 소비자에게 인식시키는 방식의 변화다.

후각만으로 전달되던 정보에 시각적 신호가 붙고, 향수용품은 가구와 조명에 가까운 물성을 갖기 시작했다. 향의 사용 공간이 피부에서 집으로 넓어지면서 제품 디자인 역시 뷰티 산업 내부의 문법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이 변화는 향수 산업이 겪는 구조적 한계와도 연결된다. 향수는 가장 중요한 상품 정보를 온라인으로 직접 전달할 수 없는 제품이다. 소비자는 냄새를 맡지 못한 상태에서 사진과 설명, 다른 이용자의 평가를 통해 제품을 먼저 판단한다. 화면에서 향을 팔아야 하는 시장이 커질수록 향을 눈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의 중요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Concrete Home Diffuser의 전구는 이런 흐름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빛은 SANTAL 26이 어떤 냄새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보이지 않는 향이 공간 안에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향기 산업의 경쟁이 후각에서 시각으로 이동했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좋은 향을 만드는 일은 여전히 제품의 중심에 있다. 다만 향 하나만으로 소비 경험을 설명하던 구조는 약해지고 있다. 제품의 형태와 소재, 빛, 공간이 향과 함께 구매 판단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향은 여전히 코로 맡는다. 달라진 것은 향을 소비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보이지 않는 냄새를 빛과 소재로 번역하고, 향이 놓일 공간까지 제품의 일부로 만들기 시작했다.

르 라보의 Concrete Home Diffuser는 향수 산업의 혁신이라기보다 이런 변화가 물건의 형태까지 들어온 한 단면에 가깝다. 향기가 피부를 넘어 집 안으로 이동하면서 홈 프래그런스는 냄새를 내는 제품과 조명, 인테리어 오브제 사이의 경계를 함께 건드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