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보여주는 시대②] 냄새를 전송하지 못하는 화면…향수, 시각의 언어로 이동
세계 뷰티 판매 28%가 온라인…소셜커머스 성장 속 향수도 ‘화면 속 경쟁’ 향은 직접 전달할 수 없어 병·색·소재·공간이 후각 대신 첫인상 형성 향수 시장 성장과 디지털 구매 맞물려…냄새보다 먼저 기억되는 이미지의 영향 확대
[KtN 홍은희기자]향수는 디지털 시대에 불리한 상품이다. 립스틱은 화면으로 색을 보여줄 수 있고 스킨케어는 제형과 사용 모습을 영상으로 전달할 수 있다. 향수는 가장 중요한 상품 정보인 냄새를 화면으로 보낼 수 없다. 소비자가 사진과 영상을 아무리 오래 보더라도 실제 향은 맡아볼 수 없다.
문제는 향수를 발견하고 구매하는 공간이 빠르게 디지털로 이동하고 있다는 데 있다. 세계 뷰티 판매에서 전자상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28%로 단일 유통 채널 가운데 가장 크다. 2030년까지 발생할 뷰티시장 성장분에서도 온라인 판매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셜미디어는 광고를 보는 장소를 넘어 제품을 처음 발견하고 바로 구매하는 판매 채널로 바뀌고 있다.
향수 산업은 냄새를 전달할 수 없는 공간에서 냄새를 팔아야 하는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집 안의 가구와 소품 사이에 놓인 르 라보(Le Labo)의 Concrete Home Diffuser에서도 실제 향은 사진 밖에 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콘크리트와 유리, 전구의 빛, 주변 공간의 색과 질감이다. SANTAL 26이 어떤 향인지 사진만으로 알 수 없지만 제품이 놓일 공간의 분위기는 짐작할 수 있다.
향수를 보여주는 방식이 냄새 자체보다 냄새를 둘러싼 환경으로 넓어지는 이유다.
향수 산업이 시각을 이용한 것은 오래된 일이다. 꽃향을 꽃 이미지와 연결하고 우디 계열을 숲이나 목재와 함께 보여주는 광고는 익숙하다. 바다와 푸른색으로 시원한 향을 표현하고, 흰색과 투명한 유리로 깨끗한 향을 암시하는 방식도 반복돼 왔다. 향수병과 광고 모델, 공간과 색은 보이지 않는 향을 소비자의 머릿속에 먼저 그려내는 수단이었다.
디지털 유통의 확대는 이런 역할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과거에는 광고가 소비자를 매장까지 데려오면 마지막에는 직접 시향할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는 향을 맡기 전에 구매가 끝날 수도 있다. 소비자는 제품 설명과 사진, 영상, 후기와 다른 사람의 표현을 조합해 자신이 맡아보지 못한 향을 상상한다.
이른바 ‘블라인드 바잉(blind buying)’이 가능한 구조다.
향수를 맡지 않고 구매하는 행동은 향의 품질이 중요하지 않아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정보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들 수 있는지가 구매 이전 단계에서 중요해졌다는 뜻에 가깝다.
2024년 발표된 감각마케팅 연구에서는 향과 연결된 시각적 요소가 소비자의 머릿속에 후각 이미지를 형성하고, 향에 대한 인식과 구매 의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실제 냄새가 전달되지 않아도 제품 사진이나 광고 속 이미지가 소비자로 하여금 특정한 향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는 연구도 이어졌다.
사람이 향을 기억하는 방식 자체가 후각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향을 처음 맡았던 장소와 당시의 빛, 병의 형태, 주변의 색, 함께 있던 사람까지 하나의 기억으로 연결될 수 있다. 향수 브랜드가 특정한 색과 소재, 매장 분위기를 반복하는 이유도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순간까지 시각적 기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는 이 기억의 순서가 뒤집힐 수 있다. 향을 먼저 맡고 병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병과 영상을 먼저 본 뒤 나중에 향을 경험한다. 이미지가 향의 기억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향에 대한 첫 기대를 만드는 위치로 이동한다.
짧은 영상이 주도하는 소셜커머스에서는 향수가 가진 약점이 더 뚜렷해진다.
피부에 바르면 즉시 색이 변하거나 제형이 녹는 화장품은 몇 초짜리 영상에서도 변화를 보여줄 수 있다. 틴트의 발색, 쿠션의 커버력, 각질이 벗겨지는 과정은 카메라에 잡힌다. 향수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촬영되지 않는다. 향수를 한 번 뿌린 뒤 공간에 어떤 냄새가 퍼졌는지는 영상 밖에 남는다.
제품을 보여줄 다른 이유가 필요해진다.
향수병의 형태를 강조하거나 분사되는 미스트를 느린 영상으로 보여주고, 독특한 포장을 열어보는 과정을 콘텐츠로 만들며, 특정한 공간과 의상·조명 속에 제품을 배치하는 방식이 중요해지는 배경이다. 홈 프래그런스에서는 디퓨저와 캔들 자체가 인테리어 오브제가 되면서 시각적 요소를 활용할 범위가 더 넓어진다.
세계 뷰티 유통시장에서는 이런 변화가 이미 매출 구조를 바꾸고 있다. 미국의 TikTok 뷰티 판매는 2023년 이후 연평균 약 260% 증가해 올해 약 40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Amazon과 TikTok의 핵심 뷰티 판매를 합친 규모가 올해 Sephora와 Ulta Beauty의 합산 판매를 넘어설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발견되는 상품과 매장에서 발견되는 상품의 경쟁 조건은 다르다. 매장에서는 판매직원이 제품을 설명하고 소비자는 직접 테스트할 수 있다. 짧은 영상에서는 몇 초 안에 제품의 차이를 이해시켜야 한다. 바로 눈에 보이는 효과와 독특한 형태를 가진 제품이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향수는 이런 환경에서 본래의 후각적 강점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향을 표현하는 말도 시각과 공간의 언어를 빌린다. ‘따뜻하다’, ‘차갑다’, ‘어둡다’, ‘투명하다’, ‘비 온 뒤의 숲 같다’, ‘오래된 호텔 로비를 떠올리게 한다’는 식의 표현이 향수 설명에서 반복된다. 냄새를 정확한 언어로 옮기기 어렵기 때문에 소비자가 이미 알고 있는 이미지와 공간을 끌어와 후각을 설명한다.
제품 이름도 같은 기능을 한다. 특정 장소와 시간, 계절과 기억을 제품명에 붙이면 소비자는 향을 맡기 전부터 하나의 분위기를 상상한다. 향수가 액체의 조합뿐 아니라 이야기와 이미지까지 판매하는 상품이 되는 과정이다.
니치 향수의 성장도 이런 변화와 겹쳐 있다. 향료와 조향사의 개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병과 라벨, 매장 공간까지 일관된 디자인으로 묶는 브랜드가 늘었다. 약병이나 실험실 용기를 연상시키는 병을 사용하기도 하고 반대로 조각품에 가까운 용기로 제품 자체를 장식물처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서로 다른 전략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소비자가 향을 맡기 전에 브랜드의 성격을 눈으로 먼저 읽을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SANTAL 26 Diffuser Oil만 놓고 보면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정보는 많지 않다. 작은 갈색 유리병과 검은 스포이트, 흰색 라벨이 전부다. 상품의 핵심은 병 안의 향이지만 사진에서는 그 향을 확인할 수 없다.
향기 산업의 디지털 마케팅은 이 빈자리를 채우는 작업과 가깝다. 오일병만 보여주는 대신 어떤 공간에서 사용하는지, 어떤 소재의 기기에 넣는지, 빛은 어떻게 바뀌는지까지 함께 제시한다. 냄새를 보여줄 수 없으니 냄새가 들어갈 생활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향수 시장 자체도 커지고 있다. 향수는 올해 세계 뷰티시장에서 색조화장품을 넘어 세 번째로 큰 핵심 카테고리로 올라섰다. 2030년까지 가격대 전반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이 예상되고 있으며, 니치 향수와 프레스티지 향에 대한 수요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올해 상반기 프레스티지 향수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6% 증가했다. 판매 수량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향 농도가 높은 제품과 고가 제품으로 이동하면서 평균 판매가격이 높아졌다. 대중 유통시장의 향수 매출은 같은 기간 15%, 판매 수량은 7% 증가했다. 고가 향수와 접근성이 높은 향수 모두에서 소비가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향을 사용하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 하나의 향수를 자신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향’으로 사용하는 데서 여러 향을 겹쳐 사용하거나 하루 중 시간과 상황에 따라 바꿔 사용하는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향수가 특별한 외출을 위한 제품에서 일상의 감정과 상황을 바꾸는 제품으로 범위를 넓히면서 구매 횟수와 제품군도 함께 다양해질 수 있다.
향의 소비가 늘수록 브랜드는 소비자의 기억 안에 들어가기 위해 더 많은 이미지와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는 위험도 있다. 향을 보여주는 경쟁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향료의 완성도보다 사진에 잘 나오는 병과 포장, 한정판 디자인이 제품의 가치를 앞설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주목받기 쉬운 형태를 만들기 위해 실제 사용성과 관계없는 요소를 계속 추가할 가능성도 있다.
향수는 패션처럼 눈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상품이다. 소비자가 실제 냄새를 맡았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결국 재구매를 결정한다. 시각적 마케팅이 첫 구매를 만들 수는 있어도 향 자체에 대한 경험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향수 산업이 시각적 표현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조건은 사라지지 않는다. 뷰티 소비의 발견과 구매가 온라인으로 이동할수록 후각 상품은 가장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 채 다른 제품과 경쟁해야 한다.
화면은 향기를 전송하지 못한다.
대신 브랜드는 병을 보여주고 색을 입히며 공간을 만들고 빛을 사용한다. 소비자는 그 이미지로 보이지 않는 냄새를 먼저 상상한다. 향을 직접 맡아본 뒤 판단하던 소비 과정 가운데 일부가 향을 보기 전에 상상하는 과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는 향수의 본질이 시각으로 바뀌었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향수의 마지막 평가는 여전히 코에서 이뤄진다. 다만 소비자가 그 향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사진으로 냄새를 보낼 수 없는 디지털 시대가 역설적으로 향수를 더 시각적인 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향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병과 색, 소재와 공간은 더 많은 설명을 맡는다.
향수는 냄새를 팔지만 소비자는 점점 냄새를 맡기 전에 이미지를 먼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