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트렌드②] 객실보다 건축을 고른다…호텔이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시대

4×4m 모듈 8개로 짠 ‘MASU’…수기야의 공간 질서를 철골 구조로 재구성 단게 겐조의 1953년 세이조 자택에서 출발…전통 재현보다 공간 원리의 현대화 객실 시설 경쟁 넘어 건축·가구·미술까지 숙박 선택의 이유로…디자인 호텔의 다음 단계

2026-10-08     임민정 기자

[KtN 임민정기자]호텔을 고르는 기준에서 건축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객실 크기와 침대, 전망, 조식과 부대시설을 비교하던 방식에 머물지 않고 특정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만든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험 자체가 여행의 이유가 되는 흐름이다. 일본 군마현 북가루이자와의 ‘MASU’도 이런 변화와 맞닿아 있다. 숲속에 객실을 배치한 리조트라기보다 하나의 건축을 경험하도록 생활공간 전체를 조직했고, 전통적인 일본 공간과 모더니즘, 미드센추리 가구와 현대미술을 한 건물 안에 겹쳤다.

목재 천장과 벽, 넓은 유리면이 길게 이어지는 ‘MASU’ 내부. 복도와 생활공간을 따라 숲이 계속 시야에 들어오도록 구성해 실내 이동과 외부 풍경을 연결했다. 사진=NOT A HOTEL·Wonderwall,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긴 복도를 따라 목재 천장과 벽이 이어지고 한쪽 유리창 너머로 숲이 펼쳐진다. 공간을 장식물로 채우기보다 천장과 바닥, 벽의 수평선이 길게 이어지면서 시선이 건물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실내에서 자연을 바라보도록 창을 크게 낸 호텔은 흔하지만 MASU에서는 유리창이 전망을 담는 액자보다 건축의 경계를 얇게 만드는 역할에 가깝다. 객실을 닫힌 상자로 나누기보다 사람이 이동하는 동안 숲이 계속 따라붙도록 구성했다.

건축의 기본 단위는 4×4m다. 상층에는 같은 크기의 ‘마스’ 여덟 개가 결합되고 바깥을 360도 데크가 감싼다. 일본 목조건축에서 사용해온 격자식 공간 질서를 그대로 목조로 반복하지 않고 철골 구조로 바꿔 기둥 사이를 넓혔다. 정해진 모듈 안에서 방의 기능을 나누면서도 벽과 개구부를 조정해 내부와 외부를 유연하게 연결할 수 있도록 한 방식이다.

전통을 표현하는 방법도 익숙한 일본식 호텔과 다르다. 다다미와 쇼지, 목재를 눈에 띄게 배치해 ‘일본적인 분위기’를 직접 설명하기보다 수기야 건축이 공간을 나누고 자연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구조 안에 남겼다. 일본 전통을 시각적인 장식으로 소비하는 대신 현대 주거에 필요한 개방성과 이동 동선으로 바꾼 셈이다.

출발점에는 단게 겐조(丹下健三)가 1953년 완성한 도쿄 세이조 자택이 있다. 단게의 자택은 일본 전통 목조건축의 공간 감각과 근대 건축의 구조적 사고를 한 건물에서 결합했던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MASU는 외형을 복제하기보다 전통과 현대를 한 공간 안에서 다시 엮는 태도를 가져왔다. 목조 격자는 철골의 4×4m 모듈로 바뀌고, 고상식 건축에서 볼 수 있는 하부 공간은 1층의 필로티와 야외 생활공간으로 이어진다.

낮은 바닥과 목재 천장, 유리창으로 구성된 ‘MASU’의 일본식 공간. 전통적인 장식을 반복하기보다 단순한 비례와 여백, 숲과의 연결을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했다. 사진=NOT A HOTEL·Wonderwall,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비워진 방과 낮은 바닥, 목재 천장으로 구성된 공간에서는 일본 건축의 절제가 비교적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한쪽 전체를 유리로 열어 숲과 데크를 붙인 방식은 전통 가옥의 복원과 거리가 있다. 방을 과거의 생활양식으로 되돌리지 않고 현재의 휴식과 전망, 이동에 맞게 다시 구성했다.

호텔업계에서 지역성을 표현하는 방법도 이런 방향으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로비와 객실에 지역 문양과 공예품을 배치하거나 전통적인 색을 사용하는 방식이 많았다. 최근 고급 숙박에서는 건물의 재료와 공간 구성, 조경과 가구까지 지역의 건축문화와 연결하면서 장소의 성격을 만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어느 나라에 있어도 비슷하게 보이는 국제적인 럭셔리 인테리어보다 그 장소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건축을 만들려는 움직임이다.

MASU 역시 일본적인 장식을 많이 넣는 방식보다 공간을 사용하는 원리를 가져왔다. 숲과 건물 사이에 데크를 두고 실내 어느 방향에서도 외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면서 자연은 전망용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1층의 필로티는 다이닝 공간에서 야외 생활공간과 화덕으로 이어지고, 상층에서는 데크가 방 전체를 감싼다. 자연을 감상하는 객실이 아니라 실내와 야외를 오가며 생활하도록 만든 구조다.

호텔에서 건축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사진을 잘 찍을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숙박시설의 기본 기능은 상당 부분 표준화됐다. 고급 객실에서는 좋은 침대와 욕실, 안정적인 냉난방과 서비스가 기본 조건이 됐고, 비슷한 수준의 시설 사이에서 차이를 만드는 일이 어려워졌다. 건축은 객실 안에 머무는 시간과 이동하는 방식, 밖을 바라보는 방향까지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인테리어 장식보다 더 깊게 숙박 경험에 개입한다.

반대로 건축이 너무 앞서면 호텔이 전시장처럼 변할 수 있다. 공간의 형태와 유명 가구, 미술품의 이름이 실제 사용감보다 중요해지는 순간 숙박객은 생활하는 사람보다 작품을 관람하는 방문객에 가까워진다. 건축을 여행의 목적으로 만드는 호텔일수록 보기 좋은 공간과 실제 머물기 편한 공간 사이의 균형이 중요해진다.

MASU 내부의 가구 선택도 이런 경계에 놓인다.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의 아카리(Akari) 조명, 조지 나카시마(George Nakashima)의 벤치,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의 움 체어(Womb Chair) 등 20세기 중반의 대표적인 디자인이 곳곳에 놓였다. 미드센추리 가구를 단순히 유명 제품의 목록으로 채운 것이 아니라 목재와 유리, 낮은 가구가 중심인 건축과 연결해 동서양의 서로 다른 디자인 언어를 함께 배치했다.

목재 벽과 천장 아래 검붉은 카펫과 낮은 가구를 배치한 ‘MASU’ 내부. 수평적인 건축선과 가구의 높이를 맞추면서 목재와 강한 색의 대비를 더했다. 사진=NOT A HOTEL·Wonderwall,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목재 천장과 벽이 이어지는 공간 아래에는 검붉은 카펫과 검은 테이블이 강한 색의 중심을 만든다. 벽면 수납과 가구는 장식적인 형태보다 직선과 낮은 높이를 유지한다. 전통적인 일본 공간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높은 가구로 시야를 막지 않고 낮은 가구와 넓은 여백을 사용하는 방식은 실내에서도 건축의 수평성을 이어간다.

고가 숙박에서 가구와 미술품이 차지하는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 호텔의 가구가 객실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집기의 성격이 강했다면 디자인 중심 호텔에서는 의자와 조명, 작품 자체가 숙박 경험을 구별하는 요소로 들어온다. 고객은 좋은 침대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디자이너의 의자에 앉고 특정 작품과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호텔이 미술관이나 디자인 갤러리와 겹치는 부분도 여기에서 생긴다.

Mika Tajima의 ‘Negative Entropy’가 거실 공간에 들어간 것도 비슷하다. 작품은 벽면의 빈 곳을 채우는 장식보다 현대적인 시각언어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전통 건축의 원리에서 출발한 공간 안에 20세기 디자인과 동시대 미술을 함께 놓으면서 특정 시대 하나로 인테리어를 고정하지 않았다.

호텔 디자인의 고급화가 유명 디자이너와 작품의 이름을 늘어놓는 방식으로 흐를 위험도 있다. 건축가와 가구, 미술가의 명성이 숙박료를 설명하는 장치로만 소비되면 공간은 생활보다 컬렉션에 가까워진다. 투숙객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디자인했는지뿐 아니라 그 디자인이 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쉬는 시간에 실제로 어떤 차이를 만드는가에 있다.

MASU에서 4×4m 모듈을 반복한 이유도 형태의 독특함보다 사용 방식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네 동은 같은 골격을 공유하지만 일부 마스를 일본식 방과 서재, 시어터룸, 추가 침실 등 서로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하나의 건축 규칙을 유지하면서 생활방식에 따라 내부 프로그램을 바꿀 수 있는 구조다. 표준 객실을 같은 모양으로 반복하는 호텔과 달리 건축의 규칙 안에서 차이를 허용한다.

이런 접근은 대형 호텔이 오랫동안 지켜온 표준화와 반대편에 있다. 전통적인 호텔산업에서는 어느 객실에 묵더라도 동일한 서비스와 시설을 경험할 수 있도록 규격을 맞추는 일이 중요했다. 운영 효율과 관리 측면에서도 표준화가 유리했다. 디자인을 여행의 목적으로 삼는 소규모 숙박시설에서는 오히려 모든 공간이 똑같지 않다는 점이 가치가 된다.

건축을 앞세운 호텔이 늘어나는 흐름에는 여행 방식의 변화도 겹친다. 목적지의 명소를 하루 종일 돌아본 뒤 잠만 자러 호텔로 돌아오는 여행에서는 객실의 건축적 차이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숙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식사와 독서, 휴식까지 한 장소 안에서 해결하는 여행에서는 건물 자체가 여행 일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호텔을 선택한다는 일이 목적지 안에서 또 하나의 목적지를 고르는 행위에 가까워진다.

북가루이자와의 숲은 MASU에서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한다. 건축이 숲을 향해 크게 열려 있고 방에서 데크로 직접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계절과 날씨가 실내 경험을 바꾼다. 같은 건물이라도 녹음이 짙은 여름과 단풍이 드는 가을, 눈이 쌓이는 겨울의 인상이 달라진다. 호텔이 자체 인테리어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주변 환경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구조다.

숙박시설이 건축을 경쟁력으로 삼을수록 오래 버틸 수 있는 디자인도 중요해진다. 유행하는 색과 형태를 강하게 적용한 공간은 개장 당시에는 주목받기 쉽지만 시간이 지나면 특정 시기의 스타일로 빠르게 읽힐 수 있다. 반복적인 모듈과 목재, 유리, 낮은 가구처럼 비교적 기본적인 요소를 중심에 두는 방식은 화려한 시각효과보다 시간에 따른 변화와 사용을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다.

호텔이 건축을 상품으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말은 건물이 더 화려해졌다는 뜻과는 다르다. 건축가의 이름을 전면에 붙이는 것보다 공간이 투숙객의 행동을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가 더 중요하다. 창의 위치가 아침의 시선을 바꾸고, 데크가 실내 생활을 밖으로 끌어내며, 낮은 가구가 숲을 가리지 않는다면 디자인은 장식이 아니라 숙박의 방식이 된다.

MASU는 이런 변화가 일본 전통과 현대 건축의 관계에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기야를 재현한 테마형 숙소를 만드는 대신 오래된 공간 질서를 철골과 유리, 미드센추리 가구와 동시대 미술 속에서 다시 사용했다. 일본적 이미지를 많이 보여주는 것보다 일본 건축이 공간을 조직해온 방식을 현재의 호텔과 주거에 적용하는 쪽에 무게를 뒀다.

호텔산업에서 건축은 더 이상 시설을 담는 외피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부 고급 숙박시장에서는 어떤 방을 예약할 것인가보다 어떤 건축 안에서 하루를 보낼 것인가가 선택의 이유가 되고 있다. 객실 경쟁이 침대와 면적의 차이를 넘어 공간의 경험으로 옮겨가면서 호텔과 건축의 관계도 한층 가까워졌다.

MASU의 가치 역시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이나 미드센추리 가구의 목록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오래된 일본 건축의 질서가 실제 생활 속에서 작동하고, 숲과 연결된 구조가 머무는 방식을 바꾸며, 가구와 미술이 생활을 방해하지 않을 때 건축은 숙박 자체의 일부가 된다. 반대로 디자인이 경험보다 앞서면 아무리 정교한 공간도 잘 꾸며진 전시장에 머물 수 있다.

호텔이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시대에는 건축의 역할도 더 무거워진다. 아름다운 사진을 만드는 공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생활의 그릇이어야 한다. MASU가 보여주는 호텔 트렌드의 핵심도 건축을 크게 과시하는 데 있지 않다. 객실이라는 작은 단위에서 벗어나 건물 전체를 하나의 체류 경험으로 설계하려는 변화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