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트렌드④] 같은 객실을 반복하지 않는다…호텔이 ‘생활 방식’을 설계하는 시대로
같은 4×4m 모듈 안에 다실·서재·시어터·침실…객실 등급보다 체류 방식으로 공간 분화 침대 중심 객실에서 거실·식사·업무·휴식이 공존하는 주거형 체류로 이동 개인화도 서비스 취향에서 공간 선택으로…호텔의 표준화와 다양성 사이 새로운 균형
[KtN 임민정기자]호텔 객실은 오랫동안 같은 모습이어야 했다. 같은 등급이라면 어느 층 어느 방에 들어가도 비슷한 침대와 욕실, 가구와 조명을 제공하는 것이 안정적인 서비스의 기준이었다. 객실을 표준화하면 청소와 유지보수, 비품 관리가 쉬워지고 고객도 예약 단계에서 공간을 예측할 수 있다. 대형 호텔산업이 규모를 키울 수 있었던 배경에도 같은 공간을 반복해서 운영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일본 군마현 북가루이자와의 ‘MASU’는 같은 규칙 안에서 다른 생활을 허용하는 쪽을 택했다. 네 채의 주택은 4×4m 크기의 ‘마스’를 기본 단위로 사용하지만 일부 공간의 기능은 서로 다르다. 다실과 일본식 방, 서재, 시어터룸, 추가 침실처럼 머무는 방식에 따라 필요한 공간을 달리 배치했다. 객실의 차이를 단순히 면적과 가격으로 나누기보다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지에 맞춰 나눈 구조다.
낮은 좌석과 넓은 카펫을 중심으로 한 거실에서는 침대가 공간의 중심에서 물러난다. 호텔 객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침대와 협탁, 책상, TV의 일렬 배치보다 여러 사람이 오래 머물 수 있는 생활공간에 가깝다. 앉아 이야기하거나 책을 읽고, 창밖의 숲을 바라보는 시간이 수면과 비슷한 비중으로 다뤄진다.
호텔의 개인화도 이런 공간에서는 의미가 달라진다. 기존의 개인화가 베개 종류와 음료, 객실 온도처럼 서비스의 세부를 맞추는 방식이었다면 주거형 숙박에서는 공간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일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서재가 필요하고, 가족과 오래 머무는 사람에게는 추가 침실과 넓은 거실이 중요하다.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과 조용히 차를 마시고 싶은 사람이 같은 객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건축에 반영된다.
호텔 객실의 등급은 오랫동안 면적과 전망, 침대 수로 구분됐다. 같은 호텔 안에서도 더 넓고 높은 층의 방이 더 비싼 것이 일반적이었다. 체류 시간이 길어지면 이런 기준만으로 객실의 가치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같은 면적이어도 서재가 있는 방과 시어터룸이 있는 방은 전혀 다른 시간을 만든다.
MASU의 4×4m 모듈은 공간의 규칙을 유지하면서 기능을 바꿀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완전히 다른 구조를 네 채에 각각 적용하지 않고 동일한 크기의 단위를 반복한 뒤 일부 공간의 용도를 달리했다. 운영 효율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각 주택의 성격을 구분할 수 있는 방식이다. 호텔이 표준화와 개인화 가운데 하나를 버리는 대신 두 방식을 동시에 조정하는 접근으로 읽힌다.
침실에서도 주거의 성격이 드러난다. 목재와 수납, 낮은 가구를 정돈해 배치하고 넓은 유리면은 숲을 향한다. 잠을 자는 기능만 강조하기보다 물건을 두고 반복해서 생활하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구성이 강하다. 하루 이틀 머무는 객실보다 다시 돌아와 사용할 수 있는 방에 가까운 모습이다.
체류가 길어질수록 공간에 요구되는 기능도 늘어난다. 짧은 여행에서는 수납이 적어도 큰 불편이 없고 식사는 밖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며칠 이상 머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옷과 개인 물건을 정리할 곳, 혼자 있을 작은 공간, 동행인과 떨어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이 필요해진다. 객실이 커지는 것보다 생활의 기능이 세분화되는 변화가 더 중요해진다.
고급 숙박이 주거와 가까워지는 흐름도 단순히 소파와 주방을 더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집의 편안함은 가구의 종류보다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늦게 일어나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영화를 보거나 아무 일정 없이 머무는 하루를 호텔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주거형 숙박의 차이는 ‘집처럼 보이는가’보다 ‘집처럼 시간을 쓸 수 있는가’에서 갈린다.
호텔의 비일상성과 주거의 편안함 사이에는 긴장도 생긴다. 여행자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텔을 찾기도 한다. 지나치게 집처럼 구성된 공간은 여행지에서 느끼는 낯섦과 특별함을 약하게 만들 수 있다. 호텔이 주거 기능을 받아들이더라도 일상의 복제에 머물지 않고 그 지역의 자연과 건축, 식문화까지 함께 경험하도록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가루이자와에서는 숲이 그 차이를 만든다. 집과 비슷한 생활 기능을 갖추고 있어도 창밖의 수목과 계절, 데크와 외부 공기가 일상적인 주거와 다른 시간을 만든다. 주거의 편리함을 가져오면서 여행지의 감각까지 없애지 않는 구조다.
긴 다이닝 공간은 객실이 맡는 역할이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러 사람이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유리 너머 외부 공간까지 시야가 이어진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객실로 돌아오는 방식과 달리 식사가 주택 안의 생활 중심으로 들어온다.
다이닝 공간이 커진다는 것은 숙박업이 투숙객의 하루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졌다는 뜻이다. 밖에서 관광하고 돌아와 잠을 자는 사람보다 숙소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상정한다. 가족이나 친구가 함께 머물 때는 식탁이 식사만 하는 곳이 아니라 이야기하고 일을 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공간이 된다.
여러 명이 함께 머무는 여행에서도 공간의 분화는 중요하다. 한 사람은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은 영화를 보며, 누군가는 사우나를 이용할 수 있어야 장시간의 공동 체류가 편안해진다. 넓은 방 하나보다 서로 다른 성격의 작은 공간 여러 개가 더 유용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도 객실 문 하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집 안에서 각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로 넓어진다.
이런 구조는 가족여행과 장기체류, 워케이션처럼 여러 형태의 여행이 한 시장 안에서 겹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호텔이 하나의 전형적인 투숙객을 상정하기 어려워질수록 객실도 단일한 사용법에서 벗어난다. 모든 방을 다르게 만드는 대신 몇 가지 생활방식을 구분해 공간을 선택하게 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운영에서는 복잡성이 커진다. 동일한 구조와 가구를 반복하는 객실은 청소와 정비, 부품 교체가 단순하지만 서재와 다실, 시어터룸은 관리 방식이 다르다. 공간마다 필요한 설비와 비품도 달라지고 고객에게 제공해야 할 안내도 늘어난다. 개인화가 커질수록 운영사는 서로 다른 공간의 품질을 같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호텔산업이 표준화를 완전히 버릴 수 없는 이유도 여기 있다. 깨끗한 침구와 안정적인 설비, 예측 가능한 서비스는 고객의 신뢰를 만든다. 개성이 강한 객실이라도 기본적인 편의와 관리가 흔들리면 다양성은 장점보다 불편으로 남는다. 미래의 호텔은 표준화를 없애는 대신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는 더 정교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객실 선택 방식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디럭스’와 ‘스위트’처럼 가격과 크기를 중심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 독서와 업무, 가족 체류, 영화 감상처럼 사용 목적에 가까운 분류가 늘어날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도 몇 제곱미터 더 넓은 방보다 자신의 여행 방식에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쉬워진다.
선택지가 많아진다고 개인화가 자동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수십 가지 객실 유형과 옵션을 제시하면 예약 과정 자체가 피로해질 수 있다. 이용자가 필요한 공간을 쉽게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차이를 명확하게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개인화는 선택의 숫자가 아니라 선택의 정확도에 가깝다.
호텔이 집과 가까워질수록 서비스의 역할도 바뀐다. 모든 시간을 호텔 프로그램으로 채우기보다 머무는 사람이 자신의 하루를 구성하도록 여지를 남겨야 한다. 식사와 휴식, 업무와 목욕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아무 계획 없이 머무는 시간도 받아들이는 공간이 필요하다.
MASU의 네 주택은 같은 건축 질서를 사용하면서 모두 같은 하루를 요구하지 않는다. 공간의 규칙은 일정하게 유지하지만 일부 방의 기능을 달리해 이용자가 다른 생활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호텔의 개인화가 서비스의 말투나 취향 데이터에서 건축의 기능으로 옮겨간 모습이다.
표준 객실이 사라질 필요는 없다. 출장이나 짧은 도시 여행에서는 익숙한 구조와 빠른 서비스가 여전히 효율적이다. 반면 같은 장소에 오래 머물거나 반복해서 찾는 체류에서는 획일적인 객실보다 자신의 생활과 가까운 공간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 있다. 호텔시장은 하나의 객실 유형으로 통일되기보다 체류 목적에 따라 더 세밀하게 나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집 같은 호텔’이라는 표현도 달라져야 한다. 소파와 주방을 넣는다고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속도로 먹고 쉬고 일하며, 필요할 때 혼자 있을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주거의 성격이 생긴다. 호텔이 집에서 가져와야 할 것은 인테리어보다 시간의 사용법에 가깝다.
MASU가 보여주는 변화도 화려한 맞춤형 객실 경쟁과는 거리가 있다. 같은 4×4m 모듈을 반복하면서 일부 공간만 다르게 구성하고, 생활의 차이를 제한된 범위 안에서 받아들였다. 건축의 통일성과 사용자의 다양성을 함께 남긴 방식이다.
호텔의 미래에서 개인화는 고객을 더 많이 기억하는 서비스만을 뜻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방에서 어떤 하루를 보낼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공간 설계가 함께 중요해지고 있다. 객실의 가격과 면적보다 머무는 방식이 숙박 선택의 기준으로 들어오는 변화다.
오랫동안 호텔의 품질을 지켜온 것은 ‘어디서나 일정한 경험’이었다. 주거형 체류가 넓어지면서 일부 시장에서는 여기에 다른 가치가 더해지고 있다. 관리와 서비스의 수준은 일정하게 유지하되 머무는 사람의 하루까지 같을 필요는 없다는 접근이다. 호텔과 집의 경계가 흐려지는 변화는 결국 얼마나 집처럼 꾸몄느냐보다 얼마나 자신의 방식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느냐에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