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쿤스 컬렉션①] 피카소·마네 1억달러 경매로…제프 쿤스, 소장품 9점 다시 시장에
피카소 'Le Baiser' 약 4000만달러 추정…2008년 1740만달러에 매입 'Rabbit' 9110만달러 기록 이후 쿤스 작품시장 조정…소장 미술품과 엇갈린 가격 흐름 르네상스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진 컬렉션…창작으로 번 자본, 수집 거쳐 다시 시장으로
[KtN 임민정기자]제프 쿤스(Jeff Koons)가 소장해온 피카소와 마네, 르네상스와 후기 고딕 작품 9점이 경매시장에 나온다. 'Heroes & Lovers'라는 이름으로 묶인 작품들의 총 추정가는 1억달러를 웃돈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작품 네 점을 비롯해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코르넬리스 코르넬리스존 판 하를럼(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 틸만 리멘슈나이더(Tilman Riemenschneider) 등의 작품이 포함됐다. 자신의 작품으로 세계 미술시장의 최고가 기록을 세웠던 작가가 이번에는 오랫동안 모아온 작품을 다시 시장에 내놓는다.
피카소의 1969년작 'Le Baiser'에는 약 4000만달러로 가장 높은 추정가가 붙었다. 쿤스는 2008년 이 작품을 1740만달러에 사들였다. 두 인물의 얼굴과 몸을 밀착시킨 대형 회화로, 흑백과 회색을 중심으로 한 굵은 붓질과 과장된 눈·코·입이 강한 긴장을 만든다. 부드러운 입맞춤보다 육체의 충돌과 욕망이 앞서는 피카소 후기 회화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1740만달러였던 매입가격과 약 4000만달러의 현재 추정가 사이에는 큰 폭의 차이가 생겼다. 실제 낙찰가는 경매에서 결정되며 장기간 보유와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도 별도로 반영된다. 피카소 작품 한 점을 18년 동안 보유한 뒤 다시 시장에 내놓는 과정은 미술품이 감상의 대상과 자산이라는 두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쿤스 자신의 작품시장에서는 다른 흐름이 나타났다. 1986년작 'Rabbit'은 2019년 9110만달러에 거래되며 당시 생존작가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풍선 장난감을 연상시키는 형상을 스테인리스스틸로 정밀하게 구현한 작품은 쿤스를 세계 현대미술시장의 대표적인 고가 작가로 올려놓았다. 이후 경매시장에서는 2019년의 열기가 그대로 이어지지 않았고 작품별 거래가격과 수요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같은 기간 쿤스가 보유한 피카소 작품에는 매입 당시보다 훨씬 높은 가격 기대가 붙었다. 자신의 작품과 소장한 거장의 작품이 한 사람의 자산 안에서 서로 다른 가격 흐름을 만든 것이다. 최고가 기록을 가진 작가의 작품시장과 피카소라는 블루칩 거장의 시장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도 이번 경매를 통해 함께 드러난다.
'Heroes & Lovers'에는 이름값만으로 묶기 어려운 작품들이 들어 있다. 마네의 'Femme au tub'에는 욕조 속 여성의 몸이 등장하고, 쿤스는 1988년 'Woman in Tub'을 제작했다. 판 하를럼의 'Hercules and Achelous'에는 헤라클레스와 황소로 변신한 아켈로오스의 격투가 담겼으며, 쿤스의 'Antiquity' 연작에서도 고전 조각과 신화적 신체가 반복됐다. 피카소의 'Le Baiser'까지 더하면 육체와 욕망, 사랑과 힘이 수백 년의 시차를 넘어 컬렉션 안에서 이어진다.
작품들의 제작 시기와 쿤스의 작업 시점은 서로 다르지만 반복되는 관심사는 분명하다. 여성의 신체와 욕조, 신화적 육체와 힘, 남녀의 밀착과 욕망이 서로 다른 시대의 작품에서 되풀이된다. 르네상스와 후기 고딕, 19세기와 20세기라는 시대 구분보다 쿤스가 어떤 이미지에 오래 끌렸는지가 컬렉션의 성격을 만든다.
작가들의 개인 컬렉션에는 작업실 밖의 미감이 쌓인다. 동시대 작가와 작품을 교환하기도 하고 경제적 여유가 생긴 뒤 과거 거장의 작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시장가치를 확보한 작가의 수집은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한 규모의 자산으로 변한다. 개인 공간에 걸려 있던 그림이 다시 경매장으로 이동하면 취향의 기록은 수천만달러의 가격을 가진 재산으로 모습을 바꾼다.
쿤스의 작업 방식은 이런 자금의 이동과 맞닿아 있다. 스테인리스스틸 표면을 정밀하게 가공하는 대형 조각과 복잡한 회화 제작에는 전문 기술과 다수의 인력, 긴 제작기간이 필요하다. 작품 한 점의 높은 판매가격과 새로운 작품을 계속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제작비는 별도의 흐름으로 움직인다. 대규모 스튜디오를 유지하는 작가에게 장기 프로젝트와 인력 운영을 위한 자금은 작업의 지속성과 직결된다.
피카소와 마네처럼 국제적인 거래시장이 형성된 작품은 오랫동안 보유할 수 있는 동시에 필요할 때 다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자산이기도 하다. 창작 활동으로 축적한 자본이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이동하고, 시간이 흐른 뒤 소장품이 다시 현금화되는 구조다. 매각 자금이 새로운 제작에 사용될 경우 수집에 머물던 자본은 다시 창작 영역으로 돌아가게 된다.
'Heroes & Lovers' 9점은 두 차례에 나뉘어 경매에 오른다. 7점은 11월 뉴욕의 20세기 미술 경매에 나오고, 올드 마스터 작품 2점은 2027년 클래식 위크에서 새 소장자를 찾는다. 한 사람의 컬렉션 안에서는 함께 있었던 작품들이 실제 시장에서는 근현대미술과 올드 마스터라는 서로 다른 영역으로 나뉘는 구조다.
피카소와 마네를 찾는 구매자와 르네상스·후기 고딕 작품을 찾는 구매자는 관심 영역과 가격 판단 기준이 다르다. 같은 소장 이력을 공유해도 경매에서는 작가의 미술사적 위치와 제작 시기, 희소성, 상태, 시장 수요가 각각 가격에 반영된다. 개인 공간에서는 한 사람의 취향으로 묶였던 작품들이 시장으로 돌아오는 순간 다시 개별 작품의 가치로 평가받는다.
쿤스의 소장 이력도 작품의 역사에 새로 더해진다. 피카소나 마네의 미술사적 위치가 소장자의 이름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현대미술가가 장기간 보유했다는 사실은 새로운 프로비넌스로 남는다. 작품은 제작 이후 여러 소장자를 거치면서 각각의 시간을 축적하고, 그 기록 역시 다음 거래에서 작품의 역사와 함께 따라간다.
'Le Baiser'가 2008년 1740만달러에 거래된 뒤 18년 만에 약 4000만달러의 추정가를 받고 다시 등장한 과정에는 미술시장에서 시간이 만들어내는 변화가 담겼다. 작품은 개인 컬렉션에 들어간 뒤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시 거래되는 순간 과거 매입가격과 보유기간, 작품의 희소성, 현재 시장의 수요가 한꺼번에 새로운 가격을 만든다.
쿤스 역시 같은 시장에서 자신의 작품가격 변화를 겪었다. 'Rabbit'이 9110만달러에 거래됐을 때는 작가 쿤스의 시장가치가 전면에 나왔다. 'Heroes & Lovers'에서는 피카소와 마네를 골라 보유한 컬렉터 쿤스의 선택이 시장에 나온다. 한 사람 안에서 작품을 만드는 작가와 작품을 사는 컬렉터, 오랫동안 보유하는 소장자와 다시 시장에 내놓는 매도자의 위치가 겹친다.
약 1억달러의 총 추정가는 이번 컬렉션의 규모를 압축해 보여준다. 그러나 가격보다 더 넓게 보면 쿤스가 구축한 자본의 이동 경로가 드러난다. 자신의 작품이 만든 경제적 성공은 다른 시대의 미술을 수집할 수 있는 기반이 됐고, 그 작품들은 오랜 보유기간을 거쳐 다시 공개시장으로 돌아왔다.
11월 경매에서는 피카소 'Le Baiser'가 약 4000만달러의 추정가를 어느 수준까지 이어갈지가 먼저 드러난다. 피카소 후기 회화에 대한 현재의 수요와 함께 쿤스의 소장품에 시장이 어떤 가격을 붙이는지도 결정된다. 작가 쿤스의 최고가 기록과 컬렉터 쿤스의 자산이 같은 미술시장에서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는 순간이다.
제프 쿤스가 소장해온 9점의 이동은 현대미술에서 창작과 수집이 얼마나 가까이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품을 팔아 형성한 자본은 다시 다른 작품을 사는 데 쓰였고, 수집품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시장으로 돌아왔다. 한 작가의 개인 컬렉션 안에서 미술적 취향과 경제적 가치가 함께 축적돼온 시간이 이제 경매가격으로 다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