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쿤스 컬렉션②] 피카소의 키스, 헤라클레스의 황소…제프 쿤스가 모은 ‘사적인 미술사’

르네상스 신화부터 마네·피카소까지…사랑·욕망·육체·힘으로 이어진 500년 'Femme au tub'와 'Woman in Tub', 'Hercules and Achelous'와 'Antiquity'의 시각적 공명 거장의 이름보다 반복된 이미지에 주목…컬렉션이 드러낸 쿤스의 미적 관심

2026-10-08     임민정 기자

[KtN 임민정기자]제프 쿤스(Jeff Koons)가 소장해온 'Heroes & Lovers'에는 르네상스와 후기 고딕, 19세기 근대회화, 20세기 피카소가 한데 들어 있다. 제작 시기만 놓고 보면 수백 년의 간격이 벌어지지만 작품 안에서는 사랑과 욕망, 육체와 힘이 반복된다. 고전 신화의 영웅부터 욕조 속 여성, 서로 얼굴을 맞댄 연인까지 인간의 몸이 중심에 놓였다. 쿤스의 개인 컬렉션은 시대순으로 정리된 미술사보다 자신이 오래 바라본 이미지와 감정의 계보에 가깝다.

작가가 무엇을 소장했는지는 작품세계와 다른 방식으로 취향을 남긴다. 전시에서는 완성된 작업이 관객 앞에 놓이지만 개인 컬렉션에는 작가가 타인의 작품에서 무엇을 선택했는지가 축적된다. 피카소와 마네처럼 세계 미술사의 중심에 놓인 이름도 중요하지만 쿤스의 컬렉션에서는 작품마다 반복되는 육체와 성애, 신화적 힘의 이미지가 더 또렷한 연결고리를 만든다.

코르넬리스 코르넬리스존 판 하를럼(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의 'Hercules and Achelous'. 황소로 변신한 아켈로오스와 헤라클레스의 격투를 전면에 배치해 신화적 육체와 힘의 충돌을 강조했다. 제프 쿤스의 'Antiquity' 연작에서도 고전 조각과 신화적 신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사진=Christie'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코르넬리스 코르넬리스존 판 하를럼(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의 'Hercules and Achelous'는 힘의 충돌을 전면에 내세운다. 헤라클레스는 황소로 변신한 아켈로오스와 몸을 맞대고 싸운다.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배경이나 서사적 장치보다 인간과 황소의 육체다. 팽팽하게 긴장한 근육과 뒤틀린 몸,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밀어내는 힘이 신화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압축한다.

쿤스의 'Antiquity' 연작에서도 고전 조각과 신화적 신체는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2009~2012년 제작된 'Antiquity (Farnese Bull)'에는 고대 조각의 이미지가 현대적인 회화 언어와 함께 놓인다. 과거의 신화와 고전 조각을 박물관 안에 고정된 역사로 두기보다 현재의 이미지 환경으로 끌어오는 방식이다. 판 하를럼의 황소와 쿤스의 'Farnese Bull' 사이에서는 신화적 육체와 힘에 대한 관심이 시대를 건너 반복된다.

쿤스는 오래전부터 고전미술과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같은 작업 안에 놓아왔다. 고대 조각과 풍선 장난감, 광고 이미지와 미술사의 도상이 서로 다른 등급의 이미지라는 구분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고귀한 것과 통속적인 것,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한 공간에 병치하면서 이미지가 지닌 욕망과 소비의 구조를 드러냈다. 개인 컬렉션에서도 특정 시대의 권위보다 자신을 붙잡은 형상과 주제를 따라 작품을 선택한 흔적이 남는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1878~79년작 'Femme au tub'에는 욕조에 몸을 둔 여성이 등장한다. 일상의 욕실과 여성의 신체를 회화의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당시의 현대생활을 바라보는 마네의 시선이 드러난다. 쿤스는 1988년 'Woman in Tub'을 제작했다. 두 작품 사이에는 한 세기가 넘는 간격이 있지만 욕조와 여성의 몸이라는 이미지가 다시 등장한다.

쿤스의 'Woman in Tub'은 마네와 같은 형식을 되풀이하기보다 훨씬 다른 시대의 소비문화와 성적 이미지 안에서 전개된다. 욕조라는 사적인 공간과 여성의 신체가 고급미술과 대중이미지 사이를 오가며 다시 사용된다. 마네의 작품을 소장했다는 사실은 쿤스가 자신의 작업에서 다뤄온 신체와 욕망의 이미지가 과거 미술에서도 어떻게 나타났는지 가까이 두고 보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1969년작 'Le Baiser'에서는 사랑과 욕망이 보다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두 얼굴은 거의 하나의 덩어리처럼 붙어 있고 눈과 코, 입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다. 흑백과 회색이 뒤엉킨 거친 붓질은 입맞춤을 낭만적인 순간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사랑과 욕망이 신체적인 압력과 긴장으로 바뀌면서 두 인물의 관계 자체가 화면의 힘이 된다.

쿤스의 작품에서도 사랑과 성애는 오랫동안 반복됐다. 친밀함과 욕망을 개인적인 감정에만 가두지 않고 소비문화와 이미지, 노출과 시선의 문제까지 확장했다. 피카소의 'Le Baiser'가 보여주는 육체적 밀착과 쿤스 작업에서 반복된 성적 욕망은 서로 다른 시대와 표현방식을 거치면서도 인간의 욕망을 미술의 중심으로 끌어온다는 점에서 만난다.

피카소 후기작을 선택했다는 점도 컬렉션의 성격을 보여준다. 피카소의 미술사적 명성은 청색시대와 입체주의에만 머물지 않지만 시장과 대중의 기억에서는 특정 시기가 강하게 부각돼 왔다. 'Le Baiser'는 말년의 피카소가 빠른 붓질과 과장된 신체, 강한 성적 에너지를 밀어붙인 후기 회화다. 정교하게 계산된 균형보다 넘치는 에너지와 충동이 앞선다.

쿤스의 작업에도 과잉은 익숙한 성격이다. 거대한 크기와 반짝이는 표면, 극도로 정교한 제작, 대중적인 이미지가 한 작품 안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피카소 후기 회화의 거친 과잉과 쿤스의 산업적으로 정밀한 과잉은 시각적으로 전혀 다르지만 절제보다 강한 감각을 선택한다는 점에서는 묘한 거리를 두고 마주한다.

'Heroes & Lovers'라는 이름도 컬렉션의 성격과 맞물린다. 헤라클레스는 영웅의 힘을 보여주고 피카소의 연인은 욕망을 드러낸다. 마네의 욕조 속 여성과 후기 고딕 조각까지 더하면 인간의 몸이 신성함과 일상, 사랑과 힘 사이를 오간다. 영웅과 연인은 서로 다른 역할이지만 모두 신체를 통해 감정과 권력, 욕망을 표현한다.

르네상스와 후기 고딕, 19세기와 20세기가 한 컬렉션 안에서 이어지는 방식도 눈에 띈다. 시대별 대표작을 고르게 모은 백과사전식 컬렉션보다 특정한 감각을 따라 작품을 모은 성격이 강하다. 신체와 욕망, 신화와 사랑이라는 축이 작품의 제작연도보다 앞에 놓인다. 개인 컬렉션이 공적인 미술사와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술관은 시대와 지역, 사조와 작가를 체계적으로 분류해 작품을 보여준다. 개인의 수집에서는 이런 경계가 느슨해진다. 한 사람이 좋아하는 이미지와 감정이 시대를 뛰어넘어 서로 가까워진다. 쿤스의 소장품에서도 르네상스의 헤라클레스와 20세기 피카소의 연인이 같은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사적인 선택이 놓여 있다.

작가의 컬렉션은 작업실 밖에서 형성된 또 하나의 미적 환경이기도 하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실제 크기와 표면, 물감의 밀도로 오래 바라보는 경험은 도판이나 전시장 관람과 다르다. 경제적으로 극히 제한된 방식이지만 세계적인 작가가 자신의 공간에 어떤 작품을 두었는지는 작업을 둘러싼 시각적 환경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쿤스의 경우 그 환경에는 피카소와 마네뿐 아니라 판 하를럼과 리멘슈나이더까지 들어 있었다. 현대미술의 스타 작가가 자신의 시대와 가까운 작품만 모으지 않고 수백 년 전 미술까지 소장했다는 사실은 쿤스가 고전미술을 현재와 분리된 과거로만 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실제 작품에서도 고전 조각과 고대 신화는 현대의 이미지와 계속 부딪쳤다.

개인 컬렉션이 경매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이 관계는 다시 분리되기 시작한다. 한 공간에서 쿤스의 취향으로 묶였던 작품들은 피카소, 마네, 올드 마스터와 조각 등 각자의 시장으로 돌아간다. 소장자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미술사가 경매에서는 다시 개별 작품의 작가와 시대, 가격으로 나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도 쿤스의 이름은 작품의 소장 이력에 남는다. 작품 자체의 미술사적 위치를 바꾸지는 않지만 세계적인 현대미술가가 선택해 오랫동안 소장했다는 기록은 이후 작품의 생애에 포함된다. 컬렉션을 해체하는 경매가 동시에 새로운 프로비넌스를 완성하는 순간이다.

'Heroes & Lovers'를 가격만으로 보면 약 1억달러 규모의 대형 컬렉션이다. 작품을 하나씩 따라가면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욕조 속 여성과 입맞춤하는 연인, 황소와 싸우는 영웅이 서로 다른 시대에서 반복해 인간의 몸을 전면에 세운다. 쿤스가 오랫동안 자신의 작업에서 다뤄온 욕망과 신체, 고전과 대중이미지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제프 쿤스의 개인 컬렉션은 미술사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작가가 수백 년의 미술 가운데 무엇을 선택했고 어떤 이미지를 자신의 곁에 남겼는지를 보여준다. 피카소의 키스와 마네의 욕조, 판 하를럼의 황소가 한 컬렉션 안에서 만난 이유는 시대가 같아서가 아니다. 인간의 몸과 욕망, 사랑과 힘을 바라보는 시선이 수백 년을 건너 이어졌기 때문이다.

경매가 시작되면 작품들은 다시 각자의 가격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Heroes & Lovers'가 공개되면서 이미 드러난 것은 쿤스의 또 다른 얼굴이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높은 가격을 만든 작가이기 이전에 어떤 그림과 조각을 가까이 두고 바라봤는지, 그 선택이 어떤 미술적 관심을 남겼는지가 개인 컬렉션을 통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