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황소의 뿔을 움켜쥔 헤라클레스…판 하를럼이 육체로 만든 ‘힘의 신화’

거대한 황소와 근육질 영웅이 작품 전면 장악…신화의 서사보다 충돌하는 신체가 먼저 검은 배경과 황갈색 황소, 밝게 솟은 팔의 대비…빛이 힘의 방향을 따라 움직여 작은 인물군은 오른쪽 뒤로 밀려나…승부의 순간을 하나의 육체적 사건으로 압축

2026-10-11     임민정 기자
코르넬리스 코르넬리스존 판 하를럼(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 'Hercules and Achelous'. 황소로 변신한 아켈로오스의 뿔을 붙잡은 헤라클레스를 작품 전면에 크게 배치해 신화적 격투를 육체와 힘의 충돌로 압축했다. 거대한 황소의 황갈색 몸과 어두운 배경, 밝게 드러난 헤라클레스의 근육이 강한 명암 대비를 만든다.  사진=Christie'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코르넬리스 코르넬리스존 판 하를럼(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의 'Hercules and Achelous'에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무게다. 황소의 거대한 몸이 왼쪽에서 중앙까지 길게 누워 있고, 헤라클레스는 위에서 몸을 비틀어 황소의 뿔을 붙잡는다. 두 존재가 차지하는 면적이 압도적으로 크다. 신화적 사건을 여러 인물과 배경으로 설명하기보다 사람과 짐승의 몸을 한곳에 밀어 넣어 힘의 충돌 자체를 전면에 세웠다.

작품의 중심은 황소의 뿔이다. 헤라클레스의 오른손이 뿔을 강하게 움켜쥐고, 팔과 어깨의 근육은 그 힘을 그대로 따라간다. 왼팔은 바닥을 짚어 몸을 지탱하고 한쪽 다리는 황소의 몸 가까이 붙는다. 헤라클레스의 신체는 안정적으로 서 있는 자세가 아니라 한순간 모든 힘을 한쪽으로 몰아넣은 상태다. 팔과 어깨, 목과 등의 방향이 뿔로 집중되면서 보는 사람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같은 곳으로 모인다.

황소의 몸은 반대로 아래쪽으로 눌려 있다. 커다란 몸통은 땅 가까이 내려앉고 앞다리는 접혀 있으며 머리는 바닥을 향한다. 몸 전체는 왼쪽에서 오른쪽 아래로 길게 기울어진다. 헤라클레스가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힘과 황소가 옆으로 버티는 힘이 교차하면서 작품에는 강한 대각선이 만들어진다.

두 신체의 크기 차이도 극적이다. 황소의 몸은 헤라클레스보다 훨씬 크지만 주도권은 위쪽의 인간에게 있다. 판 하를럼은 인간을 더 크게 그리는 대신 팔과 손, 자세를 통해 힘의 우위를 보여준다. 몸집이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힘이 작용하는지가 승부를 결정한다.

황소의 황갈색 몸통은 작품에서 가장 넓고 밝은 색면을 만든다. 검게 내려앉은 배경 속에서 따뜻한 갈색이 크게 떠오르고, 그 위로 헤라클레스의 밝은 피부가 다시 분리된다. 머리와 몸통 주변은 어둡게 눌려 있어 팔과 어깨의 밝기가 더욱 선명해진다. 빛은 인물을 고르게 비추기보다 힘이 집중되는 부위를 따라 움직인다.

헤라클레스의 오른팔에는 특히 강한 밝기가 걸린다. 어깨에서 팔꿈치, 손까지 이어지는 근육이 한 덩어리로 연결되고, 피부의 명암 변화가 힘의 방향을 강조한다. 반대쪽 팔은 어두운 공간 속에서 아래로 길게 떨어진다. 두 팔의 차이가 상체를 비틀어놓고, 이 비틀림이 황소의 뿔을 잡아당기는 동작을 더 강하게 만든다.

머리카락도 정지돼 있지 않다. 사자의 갈기처럼 퍼진 머리카락이 뒤로 날리며 몸의 움직임을 확대한다. 헤라클레스의 얼굴은 아래로 향하고 눈은 황소를 쫓는다. 표정은 영웅의 승리를 선언하기보다 힘을 쏟는 순간의 집중에 가깝다. 판 하를럼은 영웅을 이상적인 조각처럼 세우지 않고 몸 전체를 사용해 싸우는 존재로 만든다.

황소의 얼굴에는 다른 긴장이 있다. 머리는 낮게 눌렸지만 한쪽 눈은 옆을 향해 살아 있다. 입 주변과 코, 이마의 어두운 색이 머리를 무겁게 만들고 흰 털이 있는 이마와 뿔 주변만 밝게 솟는다. 거대한 몸에 비해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아 있어 몸 전체가 땅으로 끌려 내려가는 느낌이 강해진다.

판 하를럼 특유의 과장된 근육 표현도 작품의 성격을 결정한다. 헤라클레스의 팔과 어깨, 다리는 실제 인체보다 부피가 크게 강조돼 있다. 근육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보다 각각의 덩어리가 분명하게 나뉜다. 신화 속 영웅의 힘을 설명하기 위해 해부학적 정확성보다 시각적 효과를 앞세운 방식이다.

이런 신체 표현은 북유럽 매너리즘의 특징과도 맞닿는다. 자연스러운 자세보다 비틀린 몸, 긴장된 근육, 복잡한 움직임이 앞선다. 인체를 이상적인 균형 안에 두기보다 극단적인 동작 속에서 과장한다. 헤라클레스의 자세가 불편할 정도로 꼬여 있는 것도 육체의 힘을 최대한 드러내기 위한 구성이다.

작품 오른쪽 뒤편에는 규모가 훨씬 작은 인물들이 모여 있다. 밝은 피부를 가진 여성들과 주변 인물이 초록빛 땅 위에 놓였지만 전면의 격투에 비하면 거의 별개의 세계처럼 작다. 판 하를럼은 서사를 설명하는 인물군을 뒤로 밀고 가장 중요한 승부를 앞에 끌어냈다. 이야기를 읽기 전에 육체의 충돌을 먼저 느끼게 한다.

왼쪽 뒤편에도 작은 인물과 풍경이 들어가지만 시선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황소의 커다란 몸이 배경 대부분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배경은 사건을 설명하는 무대이면서 동시에 전면의 신체를 더 크게 보이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 주변을 비워 두는 대신 작은 인물을 넣어 앞의 두 존재가 얼마나 거대한지 상대적으로 강조했다.

황소의 몸과 헤라클레스의 피부는 색에서도 서로 다른 힘을 가진다. 황소는 넓고 따뜻한 갈색으로 한 덩어리를 만들고, 헤라클레스는 밝은 피부와 강한 음영으로 근육 하나하나를 나눈다. 한쪽은 거대한 질량으로 버티고 다른 한쪽은 분절된 근육의 긴장으로 공격한다. 색과 명암이 두 존재의 싸움 방식을 다르게 만든다.

바닥의 돌과 식물은 작품 아래쪽에서 현실적인 무게를 더한다. 왼쪽 앞의 돌과 잎은 황소의 거대한 몸과 대비될 만큼 작다. 황소의 다리와 배가 땅에 가까이 눌려 있어 신화적 존재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땅 위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듯한 감각이 생긴다. 영웅 서사가 육체적인 사건으로 바뀌는 부분이다.

판 하를럼은 승리 이후의 영웅을 보여주지 않는다. 왕관이나 전리품, 환호하는 인물보다 싸움이 끝나기 직전의 순간을 택했다. 뿔을 잡은 손과 구부러진 몸, 바닥에 눌린 황소가 결과를 예고하지만 긴장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신화도 작품 안에서는 현재 진행형의 싸움으로 남는다.

헤라클레스의 영웅성도 이 순간에는 추상적인 덕목이 아니다. 힘은 팔의 부피와 손의 위치, 허리를 비튼 각도, 바닥을 짚은 왼팔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판 하를럼은 용기나 승리를 상징으로 설명하기보다 몸이 어떻게 힘을 쓰는지 보여준다. 영웅을 정신적 존재보다 강한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끌어내린 셈이다.

황소 역시 단순한 동물로 처리되지 않는다. 거대한 등과 굵은 다리, 어두운 머리가 헤라클레스의 힘을 받아낼 만큼 충분한 무게를 가진다. 상대가 강해야 영웅의 힘도 커진다. 판 하를럼은 아켈로오스를 약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작품에서 가장 큰 몸으로 배치해 헤라클레스의 승리를 극적으로 만들었다.

신화에서 아켈로오스는 여러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존재로 전해지고, 헤라클레스와의 싸움에서는 황소의 모습으로 맞선다. 작품은 변신 과정이나 앞뒤의 이야기를 길게 펼치지 않는다. 황소의 형상과 뿔을 붙잡은 헤라클레스만으로 가장 중요한 대목을 압축한다. 신화를 알고 있는 관람자는 이야기의 결말을 떠올릴 수 있지만, 모르는 관람자도 두 몸의 힘 관계만으로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힘을 어떻게 보이게 하는가’다. 판 하를럼은 큰 몸을 그리는 데서 끝내지 않고 서로 다른 방향의 움직임을 한 지점에서 충돌시켰다. 황소의 수평적인 몸과 헤라클레스의 수직·대각선 움직임, 따뜻한 갈색과 밝은 피부, 검은 배경과 번쩍이는 근육이 모두 뿔 주변으로 모인다.

신화적 영웅을 다룬 많은 작품이 승리의 상징을 앞세우지만 'Hercules and Achelous'에서는 승리보다 과정이 더 크다. 헤라클레스의 몸이 극도로 긴장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쉽게 이긴 영웅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전부 사용해야 하는 순간을 보여주면서 육체 자체가 서사가 된다.

제프 쿤스(Jeff Koons)가 이 작품을 자신의 컬렉션에 두었다는 사실도 작품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맥락을 만든다. 쿤스의 'Antiquity' 연작에서도 고전 신화와 조각, 육체의 이미지가 반복됐다. 판 하를럼의 회화와 쿤스의 작업은 시대와 제작 방식이 크게 다르지만 거대한 몸과 신화적 이미지가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호출된다는 점에서 서로 가까워진다.

쿤스의 작업에서 표면과 크기, 과장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판 하를럼의 헤라클레스 역시 과장된 근육과 비틀린 자세를 통해 인간의 몸을 현실보다 더 강한 이미지로 만든다. 한쪽은 16세기 말 회화의 붓질과 인체를 사용했고, 다른 한쪽은 현대적인 재료와 이미지 문화를 사용했다. 서로 다른 시대에서 과장이 힘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작동한다.

'Hercules and Achelous'에는 조용한 영웅성이 없다. 거대한 황소의 몸과 팽팽한 근육, 어둠 속에서 솟는 피부, 뿔을 움켜쥔 손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판 하를럼이 그린 것은 신화를 아름답게 정리한 결말이 아니라 인간과 짐승의 힘이 최고조로 부딪치는 순간이다.

작품의 긴장은 헤라클레스의 승리가 확정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황소는 여전히 작품에서 가장 큰 몸을 차지하고, 영웅의 근육은 끝까지 긴장돼 있다. 승자는 강하지만 상대 역시 거대하다. 그 힘의 차이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에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작품에는 움직임이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