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눈을 감지 않은 키스…피카소가 사랑을 ‘욕망의 충돌’로 바꾼 1969년

두 얼굴이 캔버스 중앙에서 하나처럼 밀착…입맞춤보다 강한 신체의 압력 활짝 뜬 눈과 뒤틀린 코·입, 머리를 감싼 손…친밀함과 긴장이 동시에 작동 회색·검정·아이보리로 색을 걷어내고 표정과 접촉에 집중한 피카소 후기 회화

2026-10-13     임민정 기자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Le Baiser', 1969. 두 인물의 얼굴을 캔버스 중앙에서 강하게 밀착시키고 크게 뜬 눈과 뒤틀린 코·입, 머리를 감싼 손을 통해 입맞춤을 친밀함과 긴장이 공존하는 신체적 사건으로 표현했다. 회색과 검정, 아이보리 중심의 제한된 색조와 거친 붓질이 피카소 후기 회화의 강한 에너지를 드러낸다.  사진=Christie'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1969년작 'Le Baiser'에서 입맞춤은 조용하지 않다. 두 얼굴이 캔버스 중앙에서 거의 부딪치듯 맞닿아 있고 코와 입, 턱의 윤곽은 서로의 영역을 밀고 들어간다. 한 사람의 얼굴이 끝나고 다른 사람의 얼굴이 시작되는 경계도 선명하지 않다. 사랑을 표현한 제목과 달리 그림에서 먼저 느껴지는 것은 낭만보다 육체의 압력이다.

가장 낯선 부분은 두 인물의 눈이다. 입술은 맞닿아 있지만 눈은 감기지 않았다. 왼쪽의 인물은 크게 뜬 눈으로 오른쪽을 향하고, 오른쪽의 인물 역시 눈을 열어둔 채 상대와 가까운 거리에 놓인다. 키스라는 행위에서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몰입과 평온 대신 서로를 계속 바라보는 긴장이 남는다.

눈을 감지 않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완전히 녹아들지 않는다. 몸은 가장 가까운 상태에 있지만 시선에는 여전히 각자의 의식이 남아 있다. 사랑과 욕망이 상대와 하나가 되는 감정이라기보다 상대를 바라보고 붙잡으며 확인하려는 행위처럼 읽히는 이유다.

입술은 그림의 중심에 있다. 두 사람의 입이 맞닿는 부분은 작지만 얼굴 전체의 선이 그곳으로 몰린다. 코는 크게 돌출되고 턱과 볼의 윤곽도 입을 향해 휘어진다. 피카소는 입술 자체를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 얼굴 전체를 움직여 키스를 표현했다.

왼쪽 인물의 얼굴은 짙은 회색과 검정으로 무겁게 구성됐다. 둥근 머리와 귀, 굵은 눈썹, 크게 열린 눈, 코와 턱의 굴곡이 반복되는 곡선으로 연결된다. 입 주변과 턱에는 소용돌이치듯 겹친 붓질이 집중돼 얼굴의 부피를 크게 만든다. 얼굴 하나가 거의 조각처럼 돌출된 듯한 무게를 갖는다.

오른쪽 인물은 상대적으로 밝다. 아이보리와 옅은 황색이 얼굴 중심을 채우고 검은 선이 눈과 코, 입의 윤곽을 크게 끊는다. 얼굴은 세로로 곧게 놓이지 않고 옆으로 기울어 있다. 이 기울기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든다. 한쪽은 앞으로 밀고 들어가고 다른 한쪽은 뒤로 젖혀진 듯한 움직임이 생긴다.

두 얼굴의 크기도 비슷하지 않다. 왼쪽 얼굴이 더 크게 확대돼 있고 오른쪽 인물의 얼굴은 기울어진 채 아래쪽으로 밀린다. 대칭적인 연인의 초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무게와 방향을 가진 두 신체가 한 지점에서 만나는 구성이다.

오른쪽 아래에 놓인 손도 중요하다. 커다란 손이 상대의 머리 뒤쪽과 목 가까이를 감싼다. 손가락은 길게 펼쳐져 검은 머리카락 위에 놓이고 손톱에는 옅은 황색이 남아 있다. 이 손은 다정하게 상대를 받쳐주는 동작으로도, 놓치지 않으려 단단히 붙잡는 동작으로도 읽힌다.

바로 이 모호함이 'Le Baiser'의 긴장을 만든다. 입맞춤과 손길은 친밀함의 몸짓이지만 그림의 선은 부드럽지 않다. 눈은 크게 열려 있고 코와 입은 과장됐으며 손가락도 큼직하게 강조됐다. 사랑의 행위와 소유하려는 힘이 한 그림 안에서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피카소는 얼굴을 아름답게 정돈하지 않았다. 눈의 크기와 위치는 서로 다르고 코는 크게 돌출됐으며 입은 비대칭적으로 뒤틀린다. 얼굴의 실제 비례보다 감정이 만드는 변형이 앞선다. 키스할 때 두 사람의 얼굴이 서로 가까워지면서 평소의 초상이 무너지는 순간을 과장한 것처럼 느껴진다.

거리의 붕괴도 중요하다. 일반적인 초상화라면 한 사람의 얼굴을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지만 이 그림에서는 얼굴이 너무 가까이 있다. 코와 입, 눈이 관람자 앞으로 밀려나면서 인물 전체보다 일부 신체가 먼저 들어온다. 사랑을 멀리서 감상하게 만들기보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로 끌어당긴다.

회색과 검정, 흰색에 가까운 제한된 색조도 감정의 강도를 높인다. 화려한 색을 걷어내면서 시선은 얼굴의 구조와 두 인물의 접촉에 집중된다. 왼쪽의 어두운 얼굴과 오른쪽의 밝은 얼굴이 대비되고, 두 사람이 만나는 중앙에서는 두 색이 뒤섞인다.

검은색은 단순한 윤곽선에 머물지 않는다. 눈과 눈썹, 코 주변, 머리카락, 오른쪽 상단의 어두운 공간까지 이어지며 그림 전체에 무게를 준다. 아이보리와 옅은 황색은 오른쪽 얼굴과 손, 어깨 일부에서 빛처럼 남는다. 밝음과 어둠이 두 사람의 신체를 각각 나누면서 동시에 중앙의 키스에서 다시 만난다.

붓질도 매끄럽게 감춰지지 않았다. 회색 물감은 머리와 이마, 볼을 따라 넓게 밀리고 흰색은 그 위에 다시 겹쳐진다. 얼굴은 세밀한 피부 표현보다 굵은 붓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졌다. 피카소 후기 회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빠르고 거친 제작 감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왼쪽 귀와 턱 주변에서는 원형과 곡선이 반복된다. 오른쪽 얼굴에서는 눈과 코, 머리카락의 검은 선이 더 날카롭게 꺾인다. 한쪽의 둥근 운동과 다른 한쪽의 각진 선이 중앙에서 만난다. 두 인물의 성격을 표정만으로 나누는 대신 형태의 차이로도 구별한 구성이다.

오른쪽 상단에는 흰 천처럼 보이는 곡선과 검은 삼각형이 자리한다. 실내의 일부만 남겨져 있을 뿐 공간 전체는 설명되지 않는다. 배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아 두 사람의 관계가 어디에서 벌어지는지보다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는지가 더 크게 느껴진다.

왼쪽에도 몇 개의 수평선이 있을 뿐 실내의 구조는 거의 사라져 있다. 인물 주변을 비워두면서 두 얼굴이 캔버스 대부분을 점유한다. 사랑이라는 사건을 방이나 침대, 주변 인물로 설명하지 않고 얼굴과 손만으로 압축한 것이다.

'Le Baiser'라는 제목은 미술사에서 익숙하다. 입맞춤은 오랫동안 사랑과 결합, 화해와 욕망을 상징해왔다. 피카소의 키스는 그 전통적인 이미지에 쉽게 들어가지 않는다. 서로를 껴안은 두 사람이 평온하게 결합하기보다 상대를 강하게 바라보고 밀착하며 붙잡는다.

두 얼굴이 거의 하나가 됐지만 완전히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검은 선은 끝까지 각각의 눈과 코, 입을 나누고 있다. 육체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들어갔지만 두 사람의 개별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친밀함 속에서도 상대는 끝내 다른 존재로 남는다.

이 그림에서 사랑은 부드러운 감정만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상대를 원하고 바라보고 붙잡는 욕망이 함께 들어 있다. 입맞춤은 두 사람이 평온하게 합쳐지는 결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욕망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는 행동이 된다.

1969년이라는 제작 시점도 작품의 인상을 더한다. 피카소 후기 회화에서는 인간의 신체와 성, 욕망을 거칠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다룬 작품들이 이어졌다. 젊은 시절의 입체주의에서 보여준 치밀한 형식 실험과는 다른 에너지가 강해졌고, 붓질과 형태는 더욱 빠르고 과감해졌다. 'Le Baiser'에서도 정확하게 정돈된 인체보다 감정을 밀어붙이는 선과 물감이 앞선다.

노년의 작가가 키스를 다뤘다는 점도 작품을 단순한 연애 이미지와 거리를 두게 한다. 사랑과 성은 젊음에만 속한 소재가 아니라 인간의 생애 전체를 따라가는 욕망으로 남는다. 피카소의 후기 인물들이 종종 과도할 만큼 큰 눈과 입, 성적 에너지를 드러내는 이유도 신체와 욕망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관심과 맞물린다.

제프 쿤스(Jeff Koons)가 이 작품을 오랫동안 소장했다는 사실은 'Le Baiser'에 또 다른 맥락을 더한다. 쿤스 역시 사랑과 성애, 욕망과 신체를 자신의 작업에서 반복해왔다. 매끄럽고 완벽한 표면으로 욕망을 보여준 쿤스와 거칠고 뒤틀린 얼굴로 욕망을 밀어붙인 피카소는 표현 방식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인간의 욕망을 미술의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는 연결된다.

피카소의 키스에는 이상화된 연인이 없다. 아름답게 정리된 얼굴도, 감미로운 표정도 없다. 눈을 크게 뜬 두 사람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손은 상대의 머리를 감싸며, 입술은 캔버스 한가운데서 부딪친다.

'Le Baiser'가 강하게 남는 이유도 키스를 아름답게 묘사했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 안에 들어 있는 친밀함과 욕망, 소유하려는 마음과 상대를 끝내 완전히 알 수 없는 긴장을 한꺼번에 끌어냈다. 피카소는 두 사람을 가장 가까이 붙여놓고도 두 얼굴 사이의 거리를 완전히 없애지 않았다.

1969년의 'Le Baiser'에서 입맞춤은 결합의 완성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부딪치는 순간이다. 사랑을 부드러운 감정으로 정리하지 않고 몸과 시선, 욕망이 동시에 움직이는 상태로 붙잡았다는 데 이 후기작의 힘이 남아 있다.